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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 질서-심은 대로 거둠

마가복음 이정수 목사............... 조회 수 3040 추천 수 0 2012.07.19 23:38:39
.........
성경본문 : 막4:1-9 
설교자 : 이정수 목사 
참고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하나님의 창조 질서-심은 대로 거둠(1)
본문/ 막4:1-9, 마13:1-9, 눅8:4-8

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아침 동편 산 능선을 보니 첫 새벽 차고 맑은 샘물에 씻은 듯 초봄의 말간 아침 해가 불끈 솟았습니다. 대지는 봄빛이 감돌고, 땅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뾰족뾰족 봄풀도 솟고 있습니다. “자, 3월이다! 일을 시작합시다” 하는 듯합니다. 3월을 맞아 오늘부터 몇 주 동안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을 큰 주제로 하여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옛글에 이르기를,  
一年之計 莫如種穀(일년지계 막여종곡: 일 년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이 최고)
十年之計 莫如樹木(십년지계 막여수목: 십년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이 최고)
百年之計 莫如敎子(백년지계 막여교자: 백년 계획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최고)
敎育之國家百年大計也(교육지국가백년대계야: 그러므로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일년지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십년지계도 백년지계도 萬事休矣(만사휴의-만사 끝)입니다. 왜? 일 년 굶으면 우리 모두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년지계가 잘 된 이후에야 십년지계-백년지계입니다.

그런데 一年之計在於春(일년지계재어춘: 일년지계의 근본은 봄에 있다!)입니다. 지난 2월 4일이 立春(입춘)-2월 19일이 대동강물이 풀리는 雨水(우수)-3월 5일은 잠자던 개구리가 나오는 驚蟄(경칩)-3월 20일은 春分(춘분), 바야흐로 일년지계를 시작할 봄입니다.

2. 오늘 본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주제는 무엇인가?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육십 배-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예수님의 비유는 참으로 절묘합니다. 一石二鳥(일석이조: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일석이조-일석삼조...일석오조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읽는 사람의 나이-성별-건강 상태-인종-나라-역사-분위기-경험-문화-배움-믿음의 분량에 따라 그 해석이 각각 다르고-비유를 통하여 얻는 깨달음도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조금씩 다른 느낌-해석-깨달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데 一助(일조)를 더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前提(전제)하고, 나는 이 비유의 말씀 주제를 “(1) 씨 뿌리는 사람 (2) 밭 (3) 씨앗” 으로 봅니다. 오늘은 그 첫 주제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 “씨 뿌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프랑스 바르비종 지방 가난한 농부로 농사지어 먹고 살면서 경건한 삶을 살았던 장-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1800년 대 프랑스 농촌 현실을 진솔하게 그린 화가입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저 유명한 “저녁 기도(晩鐘-만종)-이삭 줍는 사람들-양떼 모는 소녀” 등이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 또 하나 유명한 그림은 밀레가 오늘 본문 말씀을 읽고 감동하여 그린 “씨 뿌리는 사람(1850. 101-82.5cm. 보스턴 미술관)”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먼 동튼 이른 아침+일찍부터 먹이를 찾고 있는 새떼+가슴을 쫙 편 남자+깜장 모자+검붉은 셔츠+흙 묻은 낡은 청바지+왼쪽 어깨에 멘 씨앗 보퉁이+한 웅큼 움켜쥔 오른 손으로 흩뿌리는 씨앗+기걸차게 내 딛는 힘찬 발걸음입니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의 농부를 “거칠고-힘찬-野生(야생)의 거대한 농부”라고 하였습니다(나는 이 그림을 새삼 다시 자세히 보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입니다. 본문의 “씨 뿌리는 사람”을 이리저리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의 그림을 척 보면 “오, 그래 바로 이런 사람이야!” 하게 됩니다. 꼭 그의 그림을 찾아 一見(일견) 하시기 바랍니다(나는 지금 40년 전 명동 뒷골목 외국 서적 취급 서점에서 구입한 일본판 “Corot-Millet-Courbet-코로-밀레-꾸르베” 화첩으로 보고 있다).

첫째. 본문의 “씨 뿌리는 사람”은 自由(자유)-自主(지주)-自立(자립)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도적질 빼고 무슨 일이든지 하여 나는 내 손으로 일하여 먹고 산다!-내 가족은 내가 지고 내가 먹여 살린다!-운명이여 오라, 내가 간다! 하는 사람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나는 내 좋은 친구들 정종수-박현규-권경환-정문호-김지태-박병윤-이광오-우리 동네 유중근 반장-그리고 허심당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본문의 “씨 뿌리는 사람”은 자기 일에 프로페셔널이 되겠다는 사람입니다.  
登山如進學(등산여진학: 산을 오름은 학문을 닦는 것과 같으니)
大苦必大樂(대고필대락: 큰 고난 후에는 당연히 큰 기쁨이 따르는 법이라)
惟天下可升(유천하가승: 천하에 오를 만한 산을 찾아내어)
餘皆得着脚(여개득착각: 하나도 남김없이 기어코 내 발로 밟으리라)
1-2-3차 산업이든 4차 산업이든 우리 시대의 25000종의 직업 중 그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프로페셔널이 되고야말겠다는 사람입니다.

셋째. 본문의 “씨 뿌리는 사람”은 敬天愛人(경천애인-하나님 사랑+사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결코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 아는 사람입니다. 씨는 물론 내가 뿌리지만 바람+비+햇빛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한 이웃 사람의 도움이 없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敬天愛人(경천애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2)
본문/ 막4:1-9, 마13:1-9, 눅8:4-8

1. 들어가는 이야기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육십 배-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나는 오래 전부터 이 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농사법은 먼저 씨를 사방에 뿌리고 그 다음에 쟁기로 밭을 갈아 씨가 땅에 골고루 섞이게 하였다 등등”의 주석서 보았어도 늘 마음에 未審(미심)쩍은 점이 있어 개운치 않았습니다. 즉, 씨를 뿌리는 사람이 어림짐작-눈대중으로라도 90% 이상 싹이 나서 열매를 맺을만한 좋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이 當然之事(당연지사)이지, 더러는 길가-더러는 돌밭-더러는 가시덤불-더러는 옥토-각각 25%로 뒤섞인 땅에 뿌릴 理由(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우연히 이 미심쩍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늦여름 어느 날 우리 동네 뒷산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우리 집 아래 사는 농부가 전혀 밭이 아닌 무덤가로 난 산길-바위-雜石(잡석)-잡풀-가시덤불이 뒤섞인 야산에 무엇인가 흩뿌리고-쇠스랑으로 대충대충 흙으로 덮는 것입니다. “뭐하는 거요?” 물으니, 농부 왈 “열무 씨를 뿌립니다. 이제 늦가을 김장할 때 열무를 넣고 김장하면 김장이 훨씬 맛 있어요” 합니다. 김장할 때 즈음 보니 실로 먹을 만한 열무가 이곳저곳 듬성듬성 잘 자라나 있었습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아하, 예수님이 이런 농촌 생활을 지켜보시고 이런 비유의 말씀을 주신 거로구나!” 하였습니다!

2.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좋은 땅(good soil)이 아닌, 길가(the path)-돌밭(rocky places)-가시덤불(thorns)은 열매(하나님 나라-하늘 나라-Kingdom of God)를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自然(자연)에 있는 길가-돌밭-가시덤불-옥토는 생겨나기를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난 것이므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길가-돌밭-가시덤불-옥토로 點指(점지)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은 時時刻刻(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때로는 길가였다가-때로는 돌밭이었다가-때로는 가시덤불이었다가-때로는 옥토였다가, 그리고 때로는 옥토였다가 순식간에 길가-가시덤불-돌밭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그럼에도불구하고 귀 있는 사람은 듣고 좋은 땅-좋은 마음이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3. 어떻게 좋은 땅-좋은 마음이 되는가?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눅13:6-9)”에서 좋은 땅을 만드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을 만들려면 두루 깊이 파고-거름을 듬뿍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마음을 만드는 것도 그러합니다. 좋은 마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신 말씀을 마음 밭의 거름으로 삼아 마음 깊이 깨닫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온 우주의 森羅萬象(삼라만상)-頭頭物物(두두물물)-天地人(천지인)-蠢動含靈(준동함령)-하늘 위-하늘 아래-땅 위-땅 속-바다에 있는 모든 물체와 생명체-그리고 “나와 너” 그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도록 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서양 사람들은 지혜롭게도 存在(존재)를 "exist=ex(무엇 무엇 밖에) + ist(무엇 무엇이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은 그 존재 자체에 있지 아니하고, 그 존재 밖에(ex)-있다(ist)-곧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被造物(피조물-만들어진 것-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깨달음이 왜 그리 중요한가?
첫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으로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천지는 나와 더불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이다) 임을 깨달아 이기적 개인주의-나 중심적 삶의 감옥에서 벗어나, 나+이웃+자연이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임으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가난-고통-곤궁-두려움-외로움-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立處皆眞 隨處作主(입처개진 수처작주: 내가 선 자리마다 하나님의 땅이니, 어디에 처했든지 주인공으로 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결국 하늘에 계신 참 좋으신 우리 아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으로(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11:36, 우리 아버지는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6), 한 세상 사는 동안 좀 더 베풀고-좀 더 용서하고-좀 더 너그러운 넉넉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1:17, 2:11).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라(요삼1:5).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7)” 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3)
본문/ 막4:1-9, 마13:1-9, 눅8:4-8

1. 들어가는 이야기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육십 배-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2. 본문 연구
마태-마가-누가 희랍어 원문에 “씨(seed)”가 조금 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씨의 복수형(씨들)-마가는 막4:1-7에서는 단수형(씨), 막4:8 이하는 복수형(씨들)-누가는 모두 단수형(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가의 본문이 더 좋습니다(참고: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컨콜디아사, 82쪽).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러 사람(복수형)에게가 아니라, “들을 귀 있는 자(이것도 단수형 표현이다!)”-오직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은밀히 자라는 씨 비유-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단수형)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4:26)
겨자씨 비유-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막4:31)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a man)의 영혼(막8:34-36)
무화과나무(the fig tree)의 징조 깨달으라(막13:28-29)
값 비싼 진주 하나(one of great value)-(마13:45-46)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one of these little ones)에게 한 그릇의 냉수-(마10:42)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one of these little ones)를 실족케 말라-(마18:6)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one of these little ones)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마18:10)
달란트 비유-종 세 사람 각각 한 사람-(마25:14-30)
양과 염소의 비유-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마25:31-46)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a fig tree) 비유-(눅13:6-9)
잃은 양 한 마리-(눅15:3-7)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눅15:8-10)
잃은 둘째 아들 한 사람-(눅15:11-32)
한 알의 밀-(요12:24)

즉, 그냥 겨자씨가 아니라 “겨자씨 한 알”-그냥 밀이 아니라 “한 알의 밀알”-그냥 지극히 작은 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그냥 무화과나무가 아니라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그냥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입니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은 여러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나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고 싶어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오직 나만이 들을 귀 있는 줄로 믿고 은밀하게 말씀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좋은 씨란 무엇인가?
나는 “좋은 씨”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선한 말씀-복된 말씀-기쁜 말씀-복된 소식-좋은 생각-복된 생각-축복의 말씀-사람을 살리는 생각-弘益人間(홍익인간)하는 생각-행복하게 하는 생각-Good Idea-Good News-Good Gospel-Good Vision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사람은 생각-뜻-의지-꿈-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이 없이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씨란 아무리 작고-희미하고-뚜렷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악에서 떠난 삶을 살겠다 하는 좋은 한 생각(一念)”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은 “내 마음에 좋은 한 생각을 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좋은 한 생각이 싹을 내어 좋은 한 행동으로 나타나고-그 좋은 한 행동이 점점 자라나서 좋은 한 습관을 만들고-그 좋은 한 습관이 그 사람의 인격, 운명, 인생을 좋게 만들어 그 사람 자신은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복을 받는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좋은 한 생각(一念)을 심을 것인가?

첫째.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실존으로서 무엇보다 좋은 한 생각은 나의 죄됨-나의 약함-나의 모순됨을 진지하게 살피고-깨닫고-인정하고-悔改(회개)하는 것입니다.
百劫積集罪 一念頓蕩塵(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이라고 하여습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 나와 엎드려 진심으로 회개-통회-참회하겠다는 좋은 한 생각(一念)을 품는 순간부터 그 모든 죄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2-43)” 하시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강도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자기 자신의 악한 습관이 있습니다. 욕심-게으름-무례-분노-음란-거짓말-폭력-조급함-기회주의-이기주의-두 마음-미움-시기-무시-교만-열등감-두려움-주저함-대충대충-불충성-작심삼일-책임 떠넘기기-허위 의식-남의 말하기 등등이 그것입니다. 각 사람의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악한 습관을 끊어버리겠다! 하는 좋은 한 생각을 자신의 마음 밭에 심는 것입니다.

셋째. 지은 죄가 너무 많고-악한 습관이 너무 많다고 낙심 할 것 없습니다. 내가 항상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만, 삼각형의 세 꼭지점 ABC 중 어느 하나가 이동하면 나머지 두 꼭지점도 자동으로 이동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의 많은 악한 습관 중 둘도 말고 오직 한 가지만 택하여 끊어버리면, 나머지 모든 악한 습관도 자동으로 끊어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한 분야의 高手(고수)는 자기와 다른 분야의 高手(고수)를 만나면 고수인지 아닌지 척 알아봅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과정은 똑 같기 때문입니다. 즉, 처음 한 가지가 어렵지 그 다음 둘-셋-넷...은 같은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4)
본문/ 막4:1-9, 마13:1-9, 눅8:4-8

1. 들어가는 이야기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육십 배-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4:1-9)”

참고: 도마복음서 제9장에는 “60배-120배가 되었느니라” 라고 하였다.

2. 본문 연구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 달란트 비유(마25:14-30) *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3:10-15)

*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40-41)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2:6-8)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9) * 참고: 시18:24-26, 시62:12, 시128:2, 잠1:31, 사3:10, 겔7:27... 등.  

2. 위에 열거한 말씀들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둠의 법칙”은 人生-自然界-精神界-靈界-온 우주의 근본 질서라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 엄숙한 “심은 대로 거둠의 창조 질서”를 잊고 삽니다. 그러나 그 때가 옵니다. 우리 모두 “심은 대로 거둠”의 심판 앞에 설 때가 옵니다! 아- 두렵고 두려운 그 때가 옵니다.

3.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
“심은 대로 거둠의 법칙”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1) 많이 심은 사람-적게 심은 사람-아무 것도 심지 않은 사람의 구별이 있습니다.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아무 것도 심지 않은 사람은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2) 심는 때-심는 장소를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벼는 봄에-논에 심어야 합니다. 보리는 가을에-밭에 심어야 합니다. 禮記(예기)에 이르기를 “貧者不以財貨爲禮 老者不以筋力爲禮(빈자불이재화위례 노자불이근력위례: 가난한 사람은 재물로 예를 차리지 아니하고, 노인은 힘으로 예를 차리지 아니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 심어야 할 것이 있고, 늙었을 때 심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3) 심는다는 말에는 “가꾼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하신 말씀은 달랑 씨만 뿌린다는 뜻은 아닌 줄로 압니다. “눈물을 흘리며-울며” 라는 말씀에서 추위-더위-가뭄-홍수-힘든 노동과 함께 “심은 것이 나지 아니할까?” 애를 태우며 눈물로 가꾼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30배-60배-100배-120배의 열매는 (1)-(2)-(3)의 결과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 심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8:20)” 하신 대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울며-심고-가꾸고-가르치고-고치고-마침내 땀-눈물-피를 다 흘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시어 우리의 영원한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둘째. 漢나라 400년 기틀을 마련한 漢高祖는 秦始皇(진시황)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평민 출신으로써 삼척검을 들고 평생을 칼 산과 창 숲을 누볐습니다. 물론,  인간적 약점이 없지는 않으나, 엄정한 사마천은 사기에서 “故憤發其所謂天下雄 安在無土不王 此乃傳之所謂大聖乎 豈非天哉: 고분발기소위천하웅 안재무토불왕 차내전지소위대성호 개비천재-그러므로 한고조는 億兆蒼生(억조창생)의 평안을 위하여 발분하여 뜻을 세우고 천하의 영웅이 되었으니, 비록 귀족 출신은 아니었으나 어찌 왕이라 아니 하겠는가! 이는 곧 전해 오는 바 대성인이 아닌가!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라고 찬탄하였습니다. 한고조는 백성을 구하겠다는 좋은 한 생각을 마음에 심고, 평생 동안 잘 가꾸었던 것입니다.

셋째. 나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심은 대로 거둠(5)
본문/ 막4:26-29

1.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 몇 주 동안 “하나님의 창조 질서-심은 대로 거둠”을 주제로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심은 대로 거둠의 창조 질서”를 초월하는 신비하고-은혜롭고-놀라운 또 다른 창조 질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 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4:26-29)”

2. 본문 연구
비유 해석서들을 보면 오늘 본문의 비유를 “비밀리에 자라는 씨-스스로 자라는 씨-저절로 자라는 씨-가만히 자라는 씨의 비유” 등으로 제목을 달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두 一理(일리) 있는 제목입니다만, 나는 좀 진부하고 그 소리가 그 소리 아닌가? 하실는지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의 제목은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 가운데 자라는 씨의 비유” 라고 불러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 씨는 비밀리에-은밀하게-스스로-저절로 자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심은 대로 거둠의 질서 외에-심은 대로 거둠의 질서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우주 창조의 질서(그것이 곧 하나님의 섭리-은혜-축복-사랑-은총이다!)에 따라 자라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저 난해한 “같은 품삯의 비유(20:1-16)”에서 바로 이러한 또 다른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질서를 읽습니다! 눈물을 흘리며-울며 씨를 뿌리고 가꾸는 힘씀과 애씀이 없을지라도 풍성한 열매-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은총-사랑-섭리 말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찬송가 526장의 뜻을 깊이 생각하면서 찬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 오라, 이곳에 좋은 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2)  이 샘에 솟는 물 강 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에 분별이 없이, 다 와서 쉬고 또 마시겠네
(3)  생명수 샘물을 마시는 자마다, 목 다시 마르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 하네
(4)  이 샘의 이름은 생명의 샘물, 저 수정 빛 같이 늘 맑도다
    어린 양 보좌가 근원이 되어 생명수 샘이 늘 그치잖네

3.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의 유익이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는 “크든 작든 나의 좋은 한 생각(씨)-그 생각 자체”에서 출발합니다. 왜? 나의 좋은 한 생각(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씨가 나서 자라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좋은 한 생각(씨)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1963년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컴퓨터로 모의 기상관측을 한 결과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엄청나게 증폭되어 판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발견한 데서 나온 것이다. 즉, 오늘 북경의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우가 되어 몰아친다는 것이다)를 만듭니다. 또한 인드라망의 빛나는 구슬이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는 사람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우리 사람은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쓸모 있는 것(有用)과 쓸모 없는 것(無用)-有益(유익)한 것과 無益(무익)한 것-좋아하는 것(好)과 싫어하는 것(不好)을 分別(분별)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유용-유익-좋은 것은 감사하고, 무용-무익-싫어 하는 것은 불평-불만-원망-탄식-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자녀 된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를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118:21-23)” 라고 하신 것입니다. 루터는 이를 “내가 비텐베르크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에도 복음은 제 길을 가고 있다” 라고 멋진 조크를 남겼습니다(H. 틸리케, 이계준 역, 기다리는 아버지, 컨콜디아사, 114쪽). 史記에서는 이를 “力田不如逢年(역전불여봉년-열심히 농사 짓는 것이 하늘이 풍년을 주는 것만 못하다)” 이라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를 깨닫는 사람에게는 亢龍有悔(항룡유회-지난 주 말씀의 샘물 제637호 고전예화)가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밤낮 자고 깨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막4:27)”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인가?

亢龍有悔(항룡유회)-용의 눈물은 자신이 세운 가정적-교회적-국가적-사회적-학문적-예술적...등등의 위대한 업적이 “나의 힘씀과 애씀으로 되었다-나의 功(공)이다-내가 세웠다-나의 피땀으로 이루었다-내가 했지!” 하는 공로의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나의 그 모든 위대한 업적에는 “나의 힘씀과 애씀-나의 피땀” 외에 “나는 전혀 생각지도-알지도-짐작조차 못 했던 힘(Power-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이 작동하였다!” 것을 깨닫는다면, 감히 “내가 했지!” 하는 자만심-교만심-공로 의식-대접 받아 마땅하다는 의식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항룡유회-용의 눈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를 깨닫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潛龍(잠룡)-見龍(현룡)-直龍(직룡)-飛龍(비룡)이 될지언정 결코 亢龍(항룡)이 되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창조 질서가 주는 하나님의 은혜-은총-사랑-축복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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