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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 도전하는 기독교

창세기 김동호 목사............... 조회 수 2384 추천 수 0 2012.07.21 23: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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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8:1-15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2011.7.31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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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 도전하는 기독교.
창 18: 1-15

사람들의 제일가는 목표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 사람들의 제일가는 소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제일가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행복입니다.

행복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그 힘을 갖기 위해 평생을 애쓰고 노력하며 삽니다. 행복을 가능케 하는 힘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행복의 힘은 ‘나’에게 있으며 ‘나’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 힘을 얻기 위하여, 그래서 행복해 지기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개발합니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하여 사람처럼 노력하는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인간 외의 다른 존재는 대개 태어난 그대로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는 연약합니다. 그리고 무능합니다. 그래서 자기 개발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인간처럼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자기 발전과 개발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래 태어난 상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해서 얻게 된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행복의 힘은 꼭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의 힘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꼭 내게 힘이 없어도 힘이 있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 힘을 마치 자기 힘과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힘이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자기를 개발하는 만큼 노력하고 힘을 씁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를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여기에 쏟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제법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뇌물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접대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들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꼭 이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 혼자의 힘으로 사는 것보다 서로의 힘을 합하고 그것을 서로 의지하여 사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말씀임으로 무조건 다른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이용하는 것을 나쁜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설교를 했습니다만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은 인간에게 흩어짐이라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져 홀로 될 때 약해지고 불행해집니다. 서로 힘을 합하고 하나 될 때 강해지고 행복해 집니다. 행복의 힘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맞습니다.

행복의 힘은 누가 뭐래도 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돈처럼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집을 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일을 세계 8대 불가사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사 간 첫날 저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잠을 설치며 ‘평생 셋방살이 하다가 자기 집을 이사 간 날 첫날부터 쿨쿨 자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돈이 주는 만족이 있고 돈이 주는 행복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위하여 돈을 벌고 행복을 위하여 돈을 쓰는 일을 저는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돈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악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돈에 대한 저의 기본적인 생각은 부정보다는 긍정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부자’와 같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나타난 돈과 부함에 대한 긍정적인 제 생각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도 받고 심지어는 공격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돈은 행복의 가장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힘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행복의 힘은 출세에 있습니다. 성공에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출세하게 되면 우리에게 명예와 권력을 가져다 줍니다. 명예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명예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줄 때, 자기를 알아 줄 때, 그리고 자기를 좋게 평가해 주고 따라 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낍니다.

성공하게 되면 권력이 생깁니다. 권력은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많이 갖게 합니다. 말하면 말 한대로 되고, 모든 일이 자기가 생각한대로 된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행복해 질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출세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명예와 권력을 함께 가지려고 부단히 힘쓰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하여 얻으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실제로 행복한 삶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그와 같은 것들을 얻기 위하여 정당하게 힘쓰고 노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우스운 일도 아니고 하찮은 일도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그와 같은 것들을 다 얻으면 정말 행복해 지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답은 ‘아니다’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 것을 다 얻어도 인간은 결국 그것 때문에 완전한 행복을 얻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소유했던 사람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는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그는 전도서에서 결국 이렇게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으로 행복의 전부를 쟁취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한 행복은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 밖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행복은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임파서블한 미션입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과 능력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완전한 행복은 초월적인 힘과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되면 비로소 인간의 한계는 극복이 되고 인간은 행복을 쟁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셋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냥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세 사람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하였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십니다. 그것은 내년 이맘 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은 99세였고 그의 아내 사라도 이미 나이 많은 할머니로 생리가 끊긴지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불가능한 일,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하자면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치명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 살이 다 되도록 그에게 자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문화로보면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저주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 바꿀 힘이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힘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지만 그 힘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행복은 그 불가능 저 편에 있었습니다. 그 불가능 때문에 행복도 아브라함에게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99살에 약속해 주셨고 그 불가능한 미션은 정확히 다음 해 아브라함에 100살이 되는 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삭의 탄생이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완벽한 힘과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에게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힘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힘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 불완전한 깨진 그릇으로 행복이 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온전하고도 완전한 행복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행복하지 못하신 것이 아니십니까? 행복이 여러분의 삶 밖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십니까? 여러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여러분의 행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지 못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삶은, 행복은 믿음으로만 쟁취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사람은 살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고 삶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백 살 난 할아버지에게도 아들을 안겨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신 것과 모세가 홍해를 가른 것과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 천 명을 먹이신 것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도전하였습니다. 기독교를 황당한 미신처럼 여기며 믿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건 사람이고 내가 말하는 건 예수님이다. 사람이 물위로 걷는다면 그것은 너희들 말고 뻥이다. 거짓말이다. 사기이다. 그러내가 말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세상에 물에 빠지는 하나님이 어디 있냐? 사람이 물위를 걸었다면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데 그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느냐?’

하나님께 대한 저의 믿음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는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모두가 다 안 된다고, 불가능하다고 하는 탈북자들을 위한 박스 공장 설립 때에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생각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만 생각한다.’며 도전하였던 것은 작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오 천 명 교인을 데리고 길 밖으로 나 앉게 되었을 때에도 마치 철없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천하태평이었던 까닭도 사랑하는 여러분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해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이 문제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 집니다.

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친해져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인 줄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극진히 대접하다가 백세에 아들을 낳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와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될 만 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그 최선이 지나쳐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잘못된 접대를 못하는 사람도 다른 방법을 찾아 접대를 합니다.

내가 못할 일을 해 줄 수는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다 해 주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과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십시오. 지나가시려는 하나님을 길을 막고서라도 붙잡으십시오. 아브라함처럼 자기의 처소로 영접하시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대접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피하시고 제거하십시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저는 요즘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 라는 마을에 온 마음과 신경이 다 가 있습니다. 제 큰 아이도 아프리카에서 코이카의 후원을 받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릅니다.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 전 메일에는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우리 땅 우리 터가 아니니 사람들이 우리 마음과 뜻대로 움직여 주지도 않습니다. 걸핏하면 속습니다. 걸핏하면 이용만 당합니다. 그리고 일은 진척이 없습니다.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들어가야만 합니다.
사실 그 동안 국내에서 하던 열매나눔재단의 일도 벅찹니다. 그 동안은 우리 높은 뜻 교회가 일 년에 10억 원씩을 지원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원이 올해로 끝납니다. 왜냐하면 5년 동안만 그렇게 지원하겠다고 약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 부터는 그것을 재단 스스로 해결하고 마련해야만 합니다. 그런 부담이 있는데 덜컥 아프키라 말라위 일을 맡았습니다. 하던 일을 줄여도 시원치 않은 판에 일을 더 벌려 놓은 셈이 되었습니다. 재단의 이사장인 저에게는 그것이 짐입니다. 무거운 짐입니다.

지난 번 카나다 토론토 코스타를 갔다가 거기 강사로 오신 분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석사를 하신 설계사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복구해 주려는 계획을 가지고 제가 보기에는 아주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이티의 재건을 위하여 헌신하고 계셨습니다. 우선 급하게 약 20 억 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옳은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제 일은 아닙니다. 제 일은 아이티가 아니라 말라위이기 때문입니다. 제 코가 석자인데 아이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제게는 전혀 없습니다. 그 분의 아이티 사역은 제게 나그네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그 나그네가 꼭 하나님 같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브라함처럼 그 나그네를 그냥 지나 보내지 말고 발이라도 씻어 드리고 저녁 한 끼라도 잘 대접해서 보내드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높은 뜻 씨앗 교회가 지난 3월부터 시작되어 이제 벌써 다섯 달이 되었습니다. 매 주일 여러분들이 정성껏 예배 할 때마다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헌금의 30%는 씨앗 학교 건립을 위하여 떼고 있습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이것 저것 때문에 지출한 돈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지출한 것이 여러분들이 헌금을 한 것보다 많지 않아 제법 잔액이 남아 있습니다. 꽤 있을 겁니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아이티 사역 하시는 분들에게 헌금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들었습니다. 사실 그 헌금은 남아있는 돈은 아닙니다. 우리도 쓸데가 많습니다. 학교 건축도 해야하고, 학교 건축을 하는 동안 임시로 예배 처소도 얻어야만 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아이티 사역이 아니라 말라위 사역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아이티가 아니라 말라위에 보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말라위 사역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미션 임파서블한 사역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닙니다. 조금 과장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거의 100살에 아들 낳는 것만큼 어려운 사역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사역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아이티 나그네를 돕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대접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셔서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 교회도, 우리가 세우려는 학교도, 그리고 우리가 하려고 하는 말라위 사역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높은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열심히 헌금해 주셨던 그 헌금은 아이티 사역하시는 분들에게 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나그네를 섬길 수 있게 해 주세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저는 믿습니다. 100살에 아들을 낳는 것이 우리 기독교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그와 같은 일들을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여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되면 그와 같은 복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이티 나그네로 변장한 하나님을 대접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아브라함처럼 100살에 아들 이삭을 낳아 보십시다. 믿음으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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