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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그림. 크래파스
어제는 대서(大暑)였습니다.
24절기의 열두 번째 절기이며, 일년 중 제일 더운 대서(大暑)를 어찌 살고 있습니까? 큰 더위라는 뜻의 대大 서暑는 반대로 큰 추위인 대한으로부터 꼭 6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대서 이후 20여일이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은 '불볕더위, 찜통더위' 이런 단어들을 마구 사용하여 더운날씨를 더 덥다고 느끼도록 만듭니다.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 때문에 '염소뿔이 녹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특히 무더위를 초ㆍ중ㆍ말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ㆍ대서라는 큰 명칭으로 한 것도 무더위의 경종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도 에어컨 아래서 사는 '철 모르는' 현대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 가장 맛이 납니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단물이 많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는 과실 맛이 매우 달지요. 방학이 시작되면서 교회마다 여름 행사로 분주하고 바쁜 시기이네요. 대서 그림은 쨍쨍째앵쨍 내리쬐는 해를 그려봤습니다.^^ 건강 잃지 않도록 늘 신경 쓰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최용우 201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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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558
“한여름 무더위가 몹시 심하지만 / 盛夏苦炎熱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 / 宵軒美景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 珠涵星照澗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 / 金漏月穿霞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 / 露重梅魂濕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 / 風凄竹韻多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 / 坐來無共賞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 / 幽興屬吟"
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 에 있는 <여름 밤 산가 마루에서 본 풍경[夏夜山軒卽事]> 시입니다. 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라고 노래하니 더위도 범접을 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이며, 잡절 중복(中伏)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 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자리 위에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명 조식 같은 사람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고,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북한산에 올라 북한산수순비 탁본을 해올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남명과 추사는 9세기 동산양개 선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더위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지금 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간간이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그 안엔 이미 가을을 잉태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일입니다. “가을이 땅에선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선 뭉개구름 타고 온다."고 합니다. 가끔 들판에 나가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을 내 안에 담으면 이미 더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요?
밤 마루에는 풍경이 아름다워라 / 宵軒美景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 珠涵星照澗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 / 金漏月穿霞
이슬이 무거우니 매화꽃이 촉촉하고 / 露重梅魂濕
바람이 싸늘하니 대나무 운치 많구나 / 風凄竹韻多
앉았노라니 함께 구경할 사람 없어 / 坐來無共賞
그윽한 흥을 시에 담아서 읊노라 / 幽興屬吟"
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 에 있는 <여름 밤 산가 마루에서 본 풍경[夏夜山軒卽事]> 시입니다. 한여름 풍경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구슬이 빠진 듯 별이 시내에 비치고 금이 새는 듯 달빛이 안개를 뚫는다.”라고 노래하니 더위도 범접을 하지 못할 듯합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이며, 잡절 중복(中伏)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 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자리 위에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명 조식 같은 사람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고,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북한산에 올라 북한산수순비 탁본을 해올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남명과 추사는 9세기 동산양개 선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더위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지금 장마가 기승을 부리고 간간이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그 안엔 이미 가을을 잉태하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을 일입니다. “가을이 땅에선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선 뭉개구름 타고 온다."고 합니다. 가끔 들판에 나가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을 내 안에 담으면 이미 더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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