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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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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되이 남발되는 할렐루야와 아멘
할렐루야라는 말과 아멘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교인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보면 이 두 거룩한 용어가 거룩하다는 자들로 인해 남발되어 흔히 인사처럼 통용하는 구호나 기분 따라 반사적으로 응답하는 경기장 함성이나 흥분적인 감정에 치우쳐 분위기 따라 소리치는 환호성같이 되어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느낌을 종종 받을 때 마다 나는 심한 거부감을 느꼈는데 근간에 어느 기독교 신문에 난 칼럼을 보면서 이글을 한번 써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받게 됐습니다.
어느 선교단을 이끄는 단장이며 작가이며 신앙생활을 오래한 분 같은데 그 칼럼 내용을 보면 자신은 지난해 시청률이 높았던 TV드라마를 보면서 “아멘”을 연발했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TV드라마 ‘대장금’을 볼 때 마다 나는 자주 ‘아멘’을 연발하곤 했다. 이전에도 ‘허준’을 보면서 무슨 추임새라도 넣듯이 은혜 스런(?)장면마다 늘 ‘아멘’을 터뜨리곤 하여 함께 TV를 시청하던 가족들의 웃음을 산일도 자주 있었다.”
어떻게 드라마를 보면서도 아멘이 나올까? 나는 그것이 의문스럽고 황당하였습니다. 간단히 보면 그만큼 교인들에게 있어 아멘이라는 용어가 자기 기분이나 감동이나 교감의 느낌에 따라 습성 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아멘”은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께 대한 진실하고 신중한 믿음의 응답이요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통해 요구하시는 엄중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멘은 짧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압축된 거룩한 용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멘이라는 용어가 어디서나 어떤 상황이나 구별 없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교회들의 신앙이 어떤 상태로 가고 있는지 단면적으로 보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에 보면 아멘을 그렇게 습성 적으로 때론 장난같이 하는 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오늘 휴강입니다” 하면 “아멘”하는 자도 있었고 어느 교수가 “시험 없이 리포트로 하겠습니다. 점수를 낙제점수 없이 후하게 주겠습니다.”하면 신나서 “할렐루야! 아멘!”하며 외쳤던 것입니다.
모두들 보고 느끼거나 자신들이 그런 것을 알기도 하겠지만 오늘날 시찰회모임, 노회모임, 그리고 수련회나 체육대회에 가볼 것 같으면 먼저 하는 예배시간 때나 이어지는 회의 시간이나 심지어 식사하는 때나 구분 없이 할렐루야, 아멘이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입에서 남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아멘은 더 심합니다. 하도 어이없는 말에 아멘이라는 소리가 나와 모두 웃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럴 경우에 보면 더 웃기려는 의도인지 그런 재미있는 분위기를 더 살리려는지 앞에서 사회 보는 자나 강사도 한 술 더 뜨는 말을 하고 그러면 곳곳에서 더 신나게 아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아멘은 농담 따먹기 식이고 유치한 장난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특히 요즘 많이 하는 집회나 목회자 사모세미나 같은 곳에서는 아멘이나 할렐루야가 거의 함성이나 환호성 같은 수준(?)이랄까요? 물론 믿음의 응답이라고 하겠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강사가 소리치며 욕을 해도 “아멘”이 나오고 코미디처럼 웃겨도 아멘이 나오고 강사가 자기 자랑해도 아멘이 나오고 비 신앙적이고 때론 비상식적이고 터무니없는 얘기를 해도 역시 아멘의 반응이 나오고 개도 방언 받고 잘한다는 성령을 모독하는 말에도 아멘이 나오고 기복적인 선포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아예 처음서부터 끝까지 뭐든지 줄곧 아멘을 연발하여 큰 호응을 열열 하게 보내는 자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의 아멘은 믿음의 응답이나 고백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기대에 찬 감정의 반응이요 재미있고 신난다는 호응이요 그거 좋겠다는 표현이고 자꾸 반응을 유도하는 강사에 대한 알겠다는 복창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멘은 이렇게 공허한 메아리처럼 남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할렐루야나 아멘의 외침은 망령된 고백에 불과 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강사들은 더 큰소리의 아멘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축복받고 응답받고 이루어짐을 받는다면서 목이 터져라 자기 말에 호응케 하려 합니다. 그것은 마치 군대 훈련소 조교가 훈련병들로부터 큰 복창을 유도하기 위해 “알겠습니까?”라고 몇 번씩 외치면 외칠수록 반면에 훈련병들의 복창 소리는 더욱 커져 반응해오는 것 같은 것입니다. 이런 식의 아멘의 유도는 이제 점점 보편화되어 집회가 아닌 대부분의 교회 예배시간에서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아멘이 이렇게 교회에서 아무렇게나 무의미하게 운동장의 관중들처럼 함성이 되고 때로는 장난말처럼 습성 적으로 남발되다보니까 드라마를 보면서도 아멘을 연발하는 교인이 있을만한 것입니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멘”하는 것이나 교회에서 하는 집회라 할지라도 신중함 없이 맹목적으로 누구를 지지하는 구호처럼 내 기분과 감정의 반응으로 아멘 하는 것이나 다를 것 없다고 봅니다. 아멘이나 할렐루야는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렇게 호응하도록 유도해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강사의 주장이나 말에 무조건 아멘으로 반응케 하여 더 이상 아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실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공허한 복창에 불과한 것이요 그렇게 해서 나오는 아멘소리는 열열 하면 열열 할수록 신앙무지의 증언 소리가 되고 맹종의 반응으로 보여 질뿐 아니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는 무례함과 방자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 3계명을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출 20:7). 망령 돼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다는 것은 직접적이든지 간접적이든지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과 그 말씀과 하나님과 관계되는 신앙적인 언행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경솔히 말하거나 바른 판단 없이 잘못되게 거슬리는 말이나 무례히 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경시여기는 말을 하게 될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렐루야나 아멘이나 주여 등을 함부로 부르고 남발할 때 분명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간접적으로 망령되이 일컫게 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더나가 하나님을 우롱하는 말도 됨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멘은 주로 하나님 말씀의 규례가 선포될 때에 대한 엄중한 응답으로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입니다(신 27:15-26). 또한 시편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함을 영원이 높이고 찬양함에 대해 하나님 백성은 마땅히 아멘 해야 됨이 나옵니다.(시 42:13, 시 106:48).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능력이나 공력이나 성공사례 같은 말로 자기를 높이며 드러내는 경우에는 아멘으로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증거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고후 1:20). 그렇게 아멘은 하나님의 대한 것이며 그의 의에 관한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 안에서 구원의 은혜로 깨달음이 되여 믿음의 확신이 올 때의 고백이요 응답인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아니거나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면 “아멘”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엉터리 같은 주장이나 강사가 자기 영광이나 권위를 드러내는 말이나 코미디 같은 말이나 조잡스런 말이나 그리고 불신앙 적이고 비 진리적인 주장이나 가르침 그리고 그런 중심의 기도에도 절대 아멘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올바르게 하나님께만이 응답되어야할 거룩한 이 믿음의 용어가 인위적으로 도용되거나 아니면 그런 것에 어리석게도 거룩한 용어를 함부로 써서 진실하지 않는 것을 진실하다고 동조하겠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망령되이 조롱하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신중하게 분별하여 하나님의 진실한 것에만 진실로 그렇다고 하는 “아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신중을 가해야할 중요한 용어냐 하면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인격화 하여 증거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계시록 3장 14절에 보면 실제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멘”이 되신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진리 된 언약의 성취자로 오셔서 그대로 완성하신 참된 분이요 진리 그대로 진실하신 분임을 아멘 되심으로 증거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진리 되신 구주로 아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멘을 남발하며 상대적이거나 내 주관적인 반응으로 소리 질러대서 되겠습니까? 아멘을 요구하고 분위기적으로 유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 말에나 분별없이 아멘하고 남 따라서 “옳소”하는 것처럼 목이 터져라 “아~멘~!”을 실내가 떠나가도록 복창해서 되겠습니까?
오늘날 이 땅에 교회들의 신앙이 이지경이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아멘 하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망령 돼다는 것은 나이가 많아 정신이 혼미해져서 말과 행동이 빗나가거나 정상이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할렐루야나 아멘을 그런 상태에서 남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하고 엄숙해야 할 아멘의 고백이 사람들 간에 분위기 따라 기분 따라 요구 따라 구호처럼 질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에서 아멘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참되고 진지한 화답으로 진실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고백되도록 바르게 가르쳐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도자들부터 아멘을 남발하지 말고 또한 남발하도록 강단에서 유도하거나 강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막돼먹은 잘못된 신앙인들이 아니길 원한다면 이 점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에서 진지하게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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