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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5:2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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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38) 고통이 크면 축복도 큽니다 (출애굽기 15장 22-27절)
< 완벽한 환경은 없습니다 >
병원에서 병원 청소부들은 정식 직원인 식당 아줌마들을 부러워합니다. 식당 아줌마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을 부러워하고, 사무원들은 간호사들을 부러워하고, 간호사들은 의사들을 부러워합니다. 어떤 의사는 영혼을 살펴주는 원목이 부럽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목은 적은 양떼라도 자기 양떼가 있는 개척교회 목사를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가장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이 바로 개척교회 목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에 완벽하게 만족을 주는 환경은 없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만족하며 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요새 남편에 대해 만족하는 아내는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최고의 배우자를 선택한 줄 알았지만 결혼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살면서 상대의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키도 적고, 눈도 적고, 얼굴도 안 생겼고, 돈도 없고...”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단점을 커버하는 장점도 많습니다. 그런 장점을 보면 이런 감탄이 나옵니다. “키는 작지만 인격의 키는 크구나! 눈은 적지만 시야는 넓구나! 얼굴은 안 생겼지만 인상은 괜찮구나! 돈은 없지만 책임감은 있구나!”
결혼 후 살기 힘들면 가끔 “내가 그때 눈이 삐었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기만 눈이 삐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도 눈이 삐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눈이 삐었어도 서로 장점을 보고 사는 것이 결혼입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바람 피워도 좋으니 돈만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말까지 하겠습니까? 살다 보면 그런 어려움도 생기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몇 가지 원리를 잘 가르쳐줍니다.
< 마라의 극복에 필요한 자세 >
본문을 보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며 찬양했다가 단 3일 만에 마라의 쓴물을 만나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살다 보면 가끔 마라의 쓴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마라의 삶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라를 인정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수르 광야에서 사흘 동안 물을 못 구하다가 간신히 한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자 ‘마라(쓰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세례 받은 것을 상징합니다. 결국 본문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구원받은 성도도 마라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왜 성도에게 마라의 쓴물이 필요합니까? 더욱 큰 믿음과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옛날에는 클럽에서 신나게 춤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지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그런 자리가 불편해집니다. 또한 옛날에는 노래방 가서 신나게 노래 부르면 스트레스가 풀렸지만 요새는 그러면 더 삶의 공허를 느낍니다. 어떤 분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러자 꿈에서까지 담배가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담배가 저절로 쓰게 느껴집니다. 그처럼 세상 즐거움이 마라의 쓴물로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어떤 남편의 고백입니다. 그의 아내는 원래 욕심도 많고 샘도 많아서 자신의 작은 월급으로는 전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아내가 친구 집에 가서 뭔가를 보면 그때부터는 불평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아내와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외출이 줄고 남편의 작은 월급에도 만족하며 남편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잡지를 멀리하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삼겹살집을 찾아 소주잔을 나누던 세상 동창은 점점 멀리하고 점차 교회 식구들과 친해졌습니다. 그 전에는 항상 얼굴이 어두웠지만 점차 얼굴도 환해졌습니다. 그렇게 점차 가정이 천국으로 변하면서 남편은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믿는 아내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자랑했습니다.
믿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세상 즐거움이 마라가 됩니다. 그 마라를 통과하며 축복과 행복이 주어지는 삶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마라가 있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에게 마라의 쓴맛도 보게 하십니다. 그때 마라를 잘 통과하면 대개 평생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을 얻습니다. 결국 마라의 삶은 성도가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그처럼 성도에게도 마라가 있음을 인정하고 마라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연로하신 분들은 병도 친구처럼 대하며 사는 것이 낫습니다. 병 때문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면 몸이 더 상합니다. 그저 “나이가 많으니 병은 있을 수 있다!”고 편하게 병을 친구처럼 생각하면 오히려 병이 더 빨리 낫습니다. 그처럼 마라에 낙심하지 말고 마라를 친구처럼 편히 받아들이면 마라는 큰 믿음을 주고 곧 떠날 것입니다.
2.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복 중의 하나가 건망증의 복입니다. 잘 잊는 사람은 정신병에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처는 잘 잊되 은혜는 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전의 큰 은혜를 잊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모세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가 있다면 출애굽을 이끈 죄밖에 없습니다. 그때 모세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25절). 같은 시련 앞에서 원망하면 꼬리가 되고 기도하면 머리가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무엇보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문제해결의 절반은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해도 나 한 명만이라도 기도하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천만 성도가 있어도 중요한 것은 “내가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도 변화되고, 나라도 변화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의 장벽 앞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나팔 소리만 듣고 묵묵히 기도하며 그 성을 13번 돌았습니다. 그래도 여리고 성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불평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돌다가 정말 돌겠다. 이게 무슨 어리석은 행동인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그래서 하나님은 침묵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침묵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나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그처럼 삶이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 소리에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귀에 탄식이 들리고 입에서 탄식이 나오면 마귀에게 당하지만 귀에 말씀이 들리고 입에서 기도가 나오면 마귀는 꼼짝 못합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기도가 없는 문제입니다. 마라를 만났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욱 귀를 기울여주십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자녀를 엄하게 키웠습니다. 잘못하면 문밖으로 쫓아내고 문을 “쾅!” 닫았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문을 두드리며 잘못했다고 웁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문밖에서 깜빡 잠들면 어느새 엄마가 나와서 안고 들어갑니다. 알고 보니까 문 바로 안에서 대문에 귀를 대고 아이가 어떻게 하나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면 마치 하나님이 외면한 것 같지만 그때 하나님은 그 자녀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울수록 기도하십시오. 그때의 기도는 가장 신속한 응답을 이끌어내는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최고의 영적인 자원과 무기이고 최상의 살 길입니다. 왜 마라가 주어집니까? 조금 더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기도하면 지금보다 훨씬 복된 길이 펼쳐지고 불가능도 가능해집니다.
1967년에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 사이에 6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당시 이스라엘의 다얀 국방상은 모든 입수된 정보와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분석해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그는 컴퓨터를 팽개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과학으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이 전쟁을 다음 안식일 전까지 끝내주소서!”
그때 그들의 제일 목표는 ‘승리’보다 오히려 ‘다음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은 안식일 다음날 전쟁에 돌입해 그 다음 안식일 전까지 6일 만에 전쟁을 끝냈고, 그때 시나이 반도, 요단강 서안, 그리고 골란고원까지 점령했습니다. 승리의 열쇠는 사람의 계산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마라의 쓴물은 곧 단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3.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한 나뭇가지를 가리키셨습니다. 그 나뭇가지를 쓴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십자가는 인생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최적의 도구이고, 인생이 마라를 만났을 때 피할 최적의 장소도 바로 십자가 그늘 밑입니다. 그처럼 마라를 피하지 않고 그때 십자가를 지면 신기하게 상황은 변화되고 역전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한국이 마라인 줄 알고 집을 팔아 전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그런데 낯선 환경에서 사기꾼에게 속아 재산을 다 잃고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이민자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서러움 때문에 울고, 외로움 때문에 울고, 자녀 문제와 문화충격 때문에 우는 것이 이민자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마라를 피해서 이민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이 사업이 마라인 줄 알고 저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가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리고, 어떤 분은 이 직장이 마라인 줄 알고 저 직장으로 옮겼다가 더 큰 시련을 겪고, 어떤 분은 이 친구가 마라인 줄 알고 저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가 더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처럼 마라에서 도피하면 대개 더 큰 마라를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마라를 만났을 때는 물론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를 꼭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사랑과 헌신, 용서와 희생, 그리고 죽음이 십자가입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이 있습니다. 열은 더 큰 열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기독교는 이통치통(以痛治痛)의 종교입니다. 통증은 더 큰 통증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즉 마라의 고통은 더 큰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대개 좋은 곳으로 이민 갈 때 선교사님들은 거꾸로 나쁜 곳으로 이민 가서 십자가의 사랑을 전합니다. 그 희생에 힘써 동참하십시오.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사명을 따라 힘든 선교지로 가서 사역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는데 거할 집도 없고 먹고살기도 벅차서 안식년이 ‘안 쉴 년’이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안식년 때도 선교사님의 생활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병원비 문제 등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어떤 사람은 생각합니다. “나 살기도 벅찬데 어떻게 선교까지 하나?”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전방으로 나간 선교사님들을 위해 후방에서 그 십자가의 짐을 같이 나눠지는 일은 어떤 일보다 소중한 일입니다. 그처럼 마라가 있어도 마라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열심히 나눔을 실천하면 마라는 슬며시 사라지고 더 비울수록 더 채워지는 신기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선교회가 요새 후원금이 많이 줄어서 사실은 매달 200여만의 마이너스가 있었습니다. 저희가 웬만하면 선교 후원금을 지출하지 못할 때가 거의 없습니다. 최우선적으로 지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2달째 지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저희 선교후원 팀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한 은밀한 후원자가 후원해주셔서 2달 미뤄진 선교후원금을 한꺼번에 지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후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얼마나 단비와 같은 소식이겠습니까? 그런 은밀한 헌신자들이 되십시오.
어느 날,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는 한 처남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매형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매형! 죄송한 얘기지만 솔직히 말해 설교를 조금 못해도 시설이 좋은 데가 좋습니다. 시설이 좋으면 설교도 은혜롭게 들리고 목사님도 멋지게 보입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의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그처럼 많은 성도들이 외형을 중시하니까 목회자들은 기를 쓰고 교회 건축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부도 위기에 몰린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신도시에 5백억을 들여 교회를 건축한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건물을 보고 신도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매년 1000명 이상 등록했습니다. 겉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는 병이 깊었습니다. 300억의 은행 빚에 한 달 이자만 1억 5천만 원 나갔습니다. 결국 선교사 후원도 다 끊고 교역자 사례도 거의 못주게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해서 목사님이 건축헌금 얘기를 꺼내자 등록했던 신도시 교인들이 썰물처럼 3분의 2가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교회를 떠난 한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만 크지만 그곳에 무슨 비전이 있습니까? 성도들은 교회가 그렇게 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제 소중한 헌금이 은행 빚으로만 나가는 것이 견딜 수 없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제 힘은 미약해도 저라도 한국 교회가 바뀌는데 일조하고 싶어 결단했습니다.”
지금 그런 속병에 걸린 대형 교회만도 수십 개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겉만 보고 등록했다가 속병을 조금 내비치자 썰물처럼 교인들이 빠져나간 것입니다. 그런 교인들을 배신자라고 욕할 수 있겠습니까? 리더가 꾀를 부리면 양떼도 꾀를 부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와 ‘자기가 섬기는 교회’는 다릅니다. 애틋한 교회 사랑도 없이 주일성수와 말씀을 듣는 장소로만 교회를 도구화하면 어떻게 그 삶에 복된 미래가 있겠습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헌신이 늦춰지는 것은 이해되지만 헌신을 피하려고 큰 교회의 뒷자리를 찾지는 마십시오. 신앙생활을 할 때 좁은 문으로도 기꺼이 들어가고 십자가의 부담도 기꺼이 져보십시오. 마라 인생에게도 십자가가 던져지면 관계도 변하고, 가정도 변하고, 환경도 변하면서 결국 살맛나는 복된 삶이 그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4.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뭇가지를 가리켰을 때 모세는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나뭇가지를 마라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본문 25-26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이 순종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언제 ‘치료하는 하나님(여호와 라파)’의 역사가 가장 잘 나타납니까? 치유를 준다는 집회나 사람을 찾아다닐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어디로 많이 다니지 마십시오. 그때는 사람 만나는 것도 줄이고 더욱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축복 받으려는 마음’보다 ‘순종하려는 마음’이 클 때 진짜 축복이 주어집니다. 믿음은 축복과 치유를 위해 집회나 기도원이나 유명한 상담가나 설교자를 찾아다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할 시간도 없이 집회나 사람만 쫓아다니면 오히려 치유와 축복은 더 멀어지고 문제는 더 커집니다.
항상 ‘복’이나 ‘복 주는 사람’을 바라보고 찾기보다 ‘복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으십시오. 그리고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배우자를 못 믿는 의처증과 의부증이 얼마나 상대를 힘들게 합니까? 그처럼 의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면 하나님은 어느새 상황을 바꾸어 축복과 회복의 은혜가 신속하게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나오미는 남편과 함께 모압 지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고 결국 이민 생활을 포기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옛 친구들이 반갑게 “너, 나오미가 아니냐?”하고 맞이했습니다. 그때 나오미가 “이제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고통)라 부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말로 영적으로 ‘말씀이 있는 집’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었다고 말씀을 떠나 세상을 상징하는 모압으로 갔다가 결국 기쁨을 잃고 마라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라를 통해 나오미를 다시 베들레헴(떡집), 즉 ‘말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결국 다윗 가문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처럼 말씀 중심적인 삶을 회복하면 하나님은 마라도 극복하게 하시고 장래에 큰 축복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 고통이 크면 축복도 큽니다 >
살면서 마라 앞에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인생을 마라에서 끝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마라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만드시고, 곧 이어 본문 27절 말씀처럼 12개의 물 샘이 있는 엘림의 축복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고통이 크면 그 고통 후에 다가올 축복도 큽니다.
인도에 마리 버기스란 최상류 가정의 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처음에는 절망했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바꾸어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수많은 나환자를 고쳐주는 인도 최고의 존경받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고백했습니다. “저는 두 다리를 잃고 두 날개를 얻었고, 그 시련으로 사랑과 헌신을 알았고 삶의 매 순간을 감사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때로 마라를 만나지만 마라를 잘 극복하면 영혼이 강해지고, 비전이 뚜렷해지고, 인격도 좋아지고, 성공을 위한 귀한 정신력도 얻습니다. 어린이가 한번 심한 병을 앓고 나면 성숙해지고, 지능도 좋아지고, 면역력도 강해지듯이 마라가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도 커지는 체험을 하면서 결국 하나님이 없으면 못사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의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저는 고학했기에 차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차 없이 생활한다는 것은 힘들고 처량한 일입니다. 그때 토요일에 학교를 떠나 뉴욕 시내의 한인 이민교회로 전도사 사역을 하려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주일 오후 늦게까지 중고등부 학생들을 지도한 후 지친 몸으로 학교로 되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는 교회에서 13블럭을 30분쯤 걸어와 플러싱에서 7번 전철을 타고 맨해튼에 와서 거기서 A번 전철을 타고 조지워싱턴 브리지 앞에 내립니다. 그리고 그 다리를 건넌 후 버스정류장에서 90분마다 한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나약(Nyack) 다운타운에서 내려 다시 신학교까지 30분을 걸어 올라갑니다. 그처럼 밤에 겁 없이 흑인 거주지를 통과하며 걷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겨울에는 뉴욕 허드슨 강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으로 영하 5도만 넘어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때 버스에서 내려 별이 총총한 밤에 신학교를 향해 외롭게 걸어갈 때 만약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었다면 정말 외롭고 처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밤길 혹은 눈길을 걸으면서 자주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나님 때문에 그래도 살만 합니다.” 머나 먼 외롭고 처량한 타향살이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느끼면 신기하게 외로움과 두려움과 서글픔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밤길을 걸어 기숙사로 들어오면 쓸쓸하고 한적합니다. 이상하게도 미국 학생들은 공휴일만 되면 어디로 가는지 기숙사에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방안에서 혼자 성경을 보고, 숙제하고, 설교 및 찬송 테이프를 들으면서 또 생각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몰랐다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그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한번 외국에 나가 혼자 살아보면 그런 체험이 실감될 것입니다. 인생의 진짜 기쁨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생깁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롭고 힘들 때 더 하나님을 찾고 믿음도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마라의 고통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때 더욱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추구함으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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