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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민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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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2.7.8 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장대에 달린 놋뱀 민21:1-9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하며, 범죄하고 넘어지며 패배합니다. 이러한 광야를 어떻게 승리하며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인도자이시고 치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광야 인생길이 아무리 험하고 고단하다 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랏과의 전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은 에돔과 모압을 지나가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였습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그의 영토를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에돔 왕이 거절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 막았기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야 했던 이스라엘은 뜻밖의 난관을 만났습니다. 네겝 지방의 아랏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와서 몇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던 것입니다.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1절) 아랏은 브엘세바 동북쪽에 있는 주요 성읍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인하여 위협을 느낀 나머지 선제공격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에 무력으로 맞서기 전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아랏 족속을 멸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2-3절)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는 종종 뜻밖의 곤경을 만나며, 실망과 좌절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려움을 당할 때, 뜻밖의 곤경을 만날 때 어떻게 하십니까?
호르마
그런데 이렇게 승리를 거둔 호르마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38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들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의 성읍들은 견고할 뿐만 아니라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그들이 들어갔다가는 다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아우성을 치고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다시 광야로 나가서 40년을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 후회하면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만류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싸우러 갔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민14:44-45)
호르마는 이렇게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이 뼈아픈 참패를 당했던 곳이었습니다. ‘호르마’는 ‘전멸’이란 뜻입니다. 이 패배는 이스라엘에게 잊을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8년 후 이스라엘은 다시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이곳을 지나가게 된 이스라엘은 그 패배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만히 그곳을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호르마 사람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호르마’와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기게 하시면 그들을 다 멸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싸워 이겨 완전히 멸망시켜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2-3절)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승리로 과거의 패배와 두려움을 완전히 씻어버렸습니다.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함
아랏을 제압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하여 계속 전진해 나갔습니다. 에돔 왕이 길을 막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통과하는 편리한 길을 포기하고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돌아서 가야 했습니다. 이 길은 훨씬 멀고 험했는데, 고통스런 여정 때문에 백성의 마음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4절) 호르마에서는 아랏에게 승리했으나 험한 길을 가게 되자 백성들은 다시 실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었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짧아졌다’ 또는 ‘안목이 좁아졌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상하게 되면, 즉 안목이 좁아지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과 선하신 뜻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와 고통만 보게 됩니다. 그 결과 작은 문제도 이겨내지 못하고 눈앞에 닥친 문제가 전부인 양 마음이 좁아지고 조급해져서 극심한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길이 험하여 마음이 상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외부의 적은 오히려 물리치기 쉬우나,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부의 적은 물리치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이 불신앙과 원망과 두려움으로 약해지면 어떤 적도 이길 수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은혜로 넉넉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이 광야 길을 해쳐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여 고생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마음이 좁아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이기게 하시고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 하나님을 신뢰하는 담대한 마음, 은혜가 넘치는 마음으로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
길로 인하여 마음이 좁아지고 조급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구원과 은혜를 멸시하고, 불신앙적인 원망과 불평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5-6절)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원망했으며,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식물을 싫어하노라”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의 이 말이 얼마나 악하고 어이없는 것인지 봅시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것에 대하여 원망했습니다. 애굽이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억압과 고역의 땅이었으며, 갓 태어난 사내아이들이 강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해야 했던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구원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인도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하나님과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상하여 좁아지고 조급해진 탓에,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망각하고 이렇게 원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시는 은혜를 멸시하며 불평했습니다. 그들이 비록 거친 광야에서 생활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신발과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으면 바위에서 생수를 내셨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이 만나야 말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대표할 만한 놀라운 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공급하신 음식이었으니 얼마나 훌륭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고 불평했습니다.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혹평했습니다. 그것은 배만 부르게 할 뿐 영양분도 없고 맛도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해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마음이 상하고 좁아져서 이 세상의 죄악된 것들, 시시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한하신 은혜를 망각하고 멸시하며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불뱀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멸시하고 원망하며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해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에게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6절)
이 불뱀은 강한 독을 가진 뱀으로, 그것에 물린 백성들은 혈관에 독이 퍼져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순식간에 죽어갔습니다. 불뱀을 보내어 백성을 징계하신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과,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뉘우치고 모세에게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뱀들을 떠나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며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7절)
백성들이 회개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이렇게 신속하게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 적은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 받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사유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를 범했든지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빌면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죄와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도록 합시다.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없애 주신 것이 아니라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아 누구든지 불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고 살게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8-9절)
사실 불뱀에게 물려 온 몸에 독이 퍼져 고통 가운데서 죽어가는 사람이 살기 위해 놋뱀을 바라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힘입기 위하여 인간의 어리석은 지혜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에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들려진 놋뱀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놋뱀은 장대에 높이 매달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표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14).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을 나타냅니다. 누구든지, 무슨 죄를 지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놋뱀은 불뱀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자체에는 독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나 죄는 없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낫게 되는 치유책은 놋뱀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만일 불뱀에 물린 사람이 놋뱀을 바라보지 않고 침대로 가서 아무리 유능한 의사의 치료를 받는다 해도, 아무리 좋은 약을 먹는다 해도 결코 나을 수 없었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치유 받고 사는 길은 오직 놋뱀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장대에 매달린 놋뱀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광야 인생길에도 시험과 도전과 적과 고통이 끊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뼈아픈 실패와 범죄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치료자이고 전능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치료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어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주님만을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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