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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5: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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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서로 화목하고 화해하라
본문: 롬5: 1- 11
장 공예의 집안은 9대를 내려오면서 세간을 나지 않고 한 집에서 살아 식구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언제나 화평하고 돈후하여 당나라 고종 황제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들어갔습니다. 고종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 집에 행차하여 주연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때 고종은 장 공예에게 9대를 내려오면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장 공예는 종이와 붓을 가져다 놓더니 참을 인(忍)자를 백 개나 꽉 차게 써넣었습니다. 그것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화목하지 못함은 어른들의 의복과 음식이 고르지 못하다든지 젊은이들의 예절이 잘못되었다든지 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오직 참는 것으로 저희 집안의 헌법을 삼고 있습니다. 누구나 서로 이해하고 참는 데서 자연스럽게 말이 없고 화목하게 됩니다."
에덴 세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는데 악한 마귀가 침투해 증오와 불화를 사람에게 심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의 세계가 싸움의 세계, 질서의 세계가 무질서의 세계로, 조화의 세계가 부조화의 세계로 변했습니다. 이 같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돌아가셨습니다.(엡2:16, 골1:20, 요일4:10)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마5:9)이라면서 화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화목해야 합니까?
첫째,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형제가 서로 화목하는 것 이상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입니다. 자식들이 화목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볼 때 부모의 마음이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좋은 말씀만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활의 본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만을 나타내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고,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본문 10절에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11절 이하에도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있던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길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이름을 의지하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오셨습니다. 그 외에는 주님 앞에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5장23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5:13)
셋째, 천국은 화목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17-19에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평강과 기쁨, 의로움의 세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천국에 갑니다. 그곳은 미움과 싸움이 없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넷째, 화목은 우리의 책임이며, 하나님은 화목케 하는 사람을 천국의 일꾼으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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