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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2: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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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11.8.28 주일 |
아름다운 마음의 능력
빌 2:5-11.
91년도에 동안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마흔 하나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부임 이후 제법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을 교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제 교만한 마음을 아시고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제게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그거 네 목회 아니다’ 깜짝 놀라 제가 하나님께 되물었습니다. ‘그럼 누구 목회입니까?’ ‘너희 교회 원로목사 목회니라’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다시 따지듯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 1,300명 까지는 원로목사님이 하신 것이고 그 다음에 는 것은 제가 와서 는 겁니다.’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았냐? 씨를 뿌렸냐? 네 선배 목사가 수고하여 터를 닦아 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냐? 그걸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할 수가 있냐? 누가 뭐래든 그건 네 원로목사 목회니라.’
저는 그날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목회에는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입니다. 솔직히 목회도 뿌리는 것보다 거두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카운트 하시는 것은 거두는 것 보다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을 받으려면 거두는 목회보다 뿌리는 목회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날부터 제 목회의 방향은 거두는데서 부터 뿌리는 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생각한 뿌리는 목회는 교육목회였습니다.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목회의 포 커스를 맞추고 목회하는 것이 곧 뿌리는 목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안교회의 목회는 청년목회 쪽으로 방향이 잡혀졌고 하나님은 그 목회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청년들이 급성장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청년 모임이 100명이나 겨우 되었던 교회가 청년 예배에 1,600명 정도 모이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니 처음 깨닫고 시작한 뿌리는 목회는 성공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거의 매주일 청년예배를 탐방 오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예배와 부서모임을 돌아 본 후 대개 청년목회에 대한 프로그램을 달라고 요청을 하곤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똑 같았기 때문에 아예 청년목회 프로그램을 잘 정리하여 요청하시는 모든 교회에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꼭 해드리곤 했었습니다.
‘달라고 하시니까 드리기는 하지만 해보니 프로그램 때문에 되는게 아닙디다. 프로그램 때문에 되는게 아니라 되니까 프로그램이 됩디다.’
기독교장로교회인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교회의 전도사님 한 분이 심부름 차 목사님을 만나로 오셨다가 함께 식사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자기가 거의 일 년 가까이 지금 동안교회에서 청년 예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전도사님에게 ‘산업 스파이군요’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렇다고 웃으며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뭐하러 일 년씩이나 예배를 드리세요?’ 전도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청년 목회에 대한 마인드를 배우려구요.’
그 대답이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와 사람들이 청년목회에 대한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전도사님만이 청년목회에 대한 마인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배우고 싶어서 일 년이나 동안교회 청년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그래 어떤 특별한 마인드가 느껴지시든가요?’ 그 전도사님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청년들을 좋아하시데요.’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동안교회 청년 부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저도 그 전도사님의 대답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장로님 한 분이 제 방에 들어오셔서 털썩 앉으셨습니다. 뭔가 기분이 언짢아 보이셨습니다. 저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물었습니다. ‘무슨 언짢으신 일이 있으세요?’ ‘요즘 청년들은 장로를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아요.’
짖꿎은 마음이 들어 장로님에게 농을 했습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자장면 한그릇도 안 사주시고 아이들보러 인사만 안 한다고 하시면 됩니까? 자장면 사줘 보세요 아이들이 인사를 하나 안 하나. 자장면 한 그릇도 안 사주시니까 아이들이 그러는거지요’
어느 날 제 사무실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중고등부 아이들이 옆방에서 시끄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웬만한 일에는 방해를 받지 않는데 워낙 아이들이 시끄럽게 장난을 치는 바람에 방해가 되어 결국 아이들을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뭐 하느라고 그렇게 시끄럽게 구느냐고 물었더니 임원 수련회 중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임원 수련회를 한답시고 모이기는 모였는데 아이들이니까 장난이 벌어지게 되었고 시끄겁게 놀다가 담임목사에게 호출까지 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안하고 창패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습니다. 야단 칠 마음을 잊어버리고 아이들에게 엉뚱하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저녁을 어떻게 먹을 작정이냐?’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이따 교회 부엌에서 라면 끓여 먹으면 돼요.’ 계산해 보니 한 3만 원 정도 주면 아이들이 자장면과 탕수육 정도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3만 원을 주면서 ‘이따 자장면 사 먹어라’ 그리고 돌려 보냈습니다.
야단맞으러 들어왔던 아이들이 횡재를 한 셈이었습니다. 고개를 거의 90도 씩이나 굽히며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더니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며 제법 열심히 수련회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 저만 보면 인사를 잘 하였습니다.
어느 날 남자 청년 하나가 머리를 묶고 왔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못 마땅했습니다. 꼭 교회의 물을 흐리러 들어 온 미꾸라지 처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좋은 습관 하나를 주셨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여러 번 다른 방향에서 그것을 생각해 보는 습관입니다. 제 첫 마음과 생각은 ‘미꾸라지 새끼’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머리 깍고 교회 밖으로 나간 놈 보다는 머리 묶고 교회로 들어 온 놈이 낫지 뭐.’
못마땅하지만 기특한 놈이라 생각하고 참기로 하였습니다. 한 달 쯤 지났더니 눈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고 다니니 예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처음엔 이상하더니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고 다니니 예쁘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당신도 동그라니 한 번 묶어 보지?’라고 농담을 걸어왔습니다. 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머리 묶은 사내자식들이 조금만 과장하면 떼거리고 몰려왔습니다.
머리 묶은 아이들을 ‘미꾸라지 새끼’로 보는 마음이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내 몰았던 것이고,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으니까 예쁘네’라는 마음이 청년들을 교회로 불러 드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두 주간 아프리카를 다녀왔습니다. 케냐도 들렀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열매나눔재단이 섬기기로 한 말라위 그물리라 마을을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가 들어가기로 한 8월 17일은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큰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발포를 하여 8명인가 9명이 죽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후속 시위로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말라위로부터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다하지 않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마 미국 사람들 보다 겁이 조금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탄이 겁주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시위가 연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없이 말라위에 들어갔고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을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어느 재단이 300만 불 정도를 후원하여 유엔이 열심히 사역을 하였던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300만 불을 엄청나게 큰 돈입니다. 그날 저희 재단이 마을을 방문한 기념으로 마을 잔치를 하였습니다. 7천명을 위하여 소를 잡아 점심을 잘 대접하였습니다. 소를 잡아 7천 명을 대접한 비용이 300만원이었습니다. 300만 원은 그곳에서 7천 명에서 소고기를 대접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 30만 불 즉 33억원의 돈은 그곳에서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 33억 원의 돈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계자들은 5년 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 든 생각은 ‘투자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앞으로 그 정도의 예산을 이곳에 투자할 작정인데 그 때도 이런 수준이라면 참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청난 재정과 세계적인 석학들이 연구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말 야심차게 하고 있는 프로잭트인데 나름 획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일까를 눈여겨 살펴보았습니다. 제 결론은 간단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인드였습니다. 마음이었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은 이제 겨우 원시 수준을 벗어난 마을 같아 보였습니다. 당연히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습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은 당연히 잘 입지도 못했고 씻지도 못했습니다. 찢어지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먼지 구덩이에서 그냥 짐승처럼 들고 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안아 주기도 힘들었고 손을 잡아 주기도 솔직히 힘었습니다.
유엔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위하여 적지 않는 연봉을 받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그물리라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무실과 주택을 마련하고 거기서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문제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 재단에서는 사무국장을 현지로 파견하였습니다. 인턴 직원들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은 처소가 마땅치 않아 가까이 있는 대양누가 병원 간호대학 기숙사를 빌려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으면 정말 편하고 안전하지만 국장과 직원들이 고맙게도 그물리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잔치를 하는 날 마을을 대표하는 족장들 앞에서 앞으로 우리는 이곳에 숙소를 짓고 들어와 여러분들과 함께 살겠다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소득 2만 불 시대를 살고 있는 최첨단 문명인들이 일인당 200원이면 소고기로 마을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수준과 환경에서 저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저들과 함께 산다고 해서 저들이 사는 것과 같은 집에서 저들이 먹는 것과 똑 같은 것을 먹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집도 조금은 저들보다 크고 편하게 지을 것입니다. 먹는 것도 저들보다는 물론 잘 먹을 겁니다. 그래도 그 마을에 들어가 저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마을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30만 불이 아니라 300만 불을 투자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날 제게 주신 마음을 Helper가 되려 하지 말고 Server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Helper의 마음도 귀합니다. 그러나 돕는 자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지기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높아진 돕는 자의 마음은 받는 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면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물리라 사역의 성패가 어떻게 하면 저들을 우리와 같은 똑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저들을 높여 주고 할 수 있는대로 우리는 낮아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들과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어야만 합니다. 마음의 높이를 맞추어야만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는 일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잔치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이들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해 준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티슈로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주고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는 그와 같은 일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봄이 되면 반마다 환경미화대회를 합니다. 환경미화를 제일 잘 한 반을 선정하여 표창을 하는 것인데 모든 학급이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여 반을 예쁘게 가꿉니다. 동네 별로 환경미화 대회를 열고, 가구마다 환경미화대회를 하여 저희들이 깜짝 놀랄 수준의 시상을 하려고 합니다. 경쟁을 붙여서 마을을 최대한 깨끗하고 예쁘게, 가정을 그렇게 가꾸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들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싶습니다.
대신 우리들은 최대한 검소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저들과 정말 같은 눈높이와 마음의 높이를 가지고 저들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이 사역의 성패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마음을 먹으셨습니다. 우리가 말라위 그물리라 마을을 살리겠다고 뛰어든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시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것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였고 감격케 하였습니다. 예수님 속에 있는 그 마음이 우리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픞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 능력이 욕심납니다. 저에게는 지금 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능력은 그 마음에 있습니다. 제가 제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만 그와 같은 능력이 제를 통하여 역사할 수 있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과 전혀 딴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면 그 모든 것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막막해 보이는 말라위 그물리라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것은 유엔에게 배우며 일할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저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저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결국 능력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때문에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가정이 변할 겁니다.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이, 우리가 손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그 아름다운 마음의 큰 능력으로 세상과 사람을 축복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빌 2:5-11.
91년도에 동안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마흔 하나였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는 부임 이후 제법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을 교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제 교만한 마음을 아시고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제게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그거 네 목회 아니다’ 깜짝 놀라 제가 하나님께 되물었습니다. ‘그럼 누구 목회입니까?’ ‘너희 교회 원로목사 목회니라’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다시 따지듯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 1,300명 까지는 원로목사님이 하신 것이고 그 다음에 는 것은 제가 와서 는 겁니다.’ 조금은 억울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또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밭을 갈았냐? 씨를 뿌렸냐? 네 선배 목사가 수고하여 터를 닦아 놓았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냐? 그걸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할 수가 있냐? 누가 뭐래든 그건 네 원로목사 목회니라.’
저는 그날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목회에는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입니다. 솔직히 목회도 뿌리는 것보다 거두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카운트 하시는 것은 거두는 것 보다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을 받으려면 거두는 목회보다 뿌리는 목회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날부터 제 목회의 방향은 거두는데서 부터 뿌리는 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생각한 뿌리는 목회는 교육목회였습니다.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목회의 포 커스를 맞추고 목회하는 것이 곧 뿌리는 목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안교회의 목회는 청년목회 쪽으로 방향이 잡혀졌고 하나님은 그 목회에 기름을 부어주셔서 청년들이 급성장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청년 모임이 100명이나 겨우 되었던 교회가 청년 예배에 1,600명 정도 모이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니 처음 깨닫고 시작한 뿌리는 목회는 성공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거의 매주일 청년예배를 탐방 오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예배와 부서모임을 돌아 본 후 대개 청년목회에 대한 프로그램을 달라고 요청을 하곤 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똑 같았기 때문에 아예 청년목회 프로그램을 잘 정리하여 요청하시는 모든 교회에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꼭 해드리곤 했었습니다.
‘달라고 하시니까 드리기는 하지만 해보니 프로그램 때문에 되는게 아닙디다. 프로그램 때문에 되는게 아니라 되니까 프로그램이 됩디다.’
기독교장로교회인 한신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 교회의 전도사님 한 분이 심부름 차 목사님을 만나로 오셨다가 함께 식사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자기가 거의 일 년 가까이 지금 동안교회에서 청년 예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전도사님에게 ‘산업 스파이군요’라고 이야기했더니 그렇다고 웃으며 대답을 하였습니다.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뭐하러 일 년씩이나 예배를 드리세요?’ 전도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청년 목회에 대한 마인드를 배우려구요.’
그 대답이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와 사람들이 청년목회에 대한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전도사님만이 청년목회에 대한 마인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배우고 싶어서 일 년이나 동안교회 청년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그래 어떤 특별한 마인드가 느껴지시든가요?’ 그 전도사님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청년들을 좋아하시데요.’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동안교회 청년 부흥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저도 그 전도사님의 대답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장로님 한 분이 제 방에 들어오셔서 털썩 앉으셨습니다. 뭔가 기분이 언짢아 보이셨습니다. 저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물었습니다. ‘무슨 언짢으신 일이 있으세요?’ ‘요즘 청년들은 장로를 보고 인사도 하지 않아요.’
짖꿎은 마음이 들어 장로님에게 농을 했습니다. ‘아니 아이들에게 자장면 한그릇도 안 사주시고 아이들보러 인사만 안 한다고 하시면 됩니까? 자장면 사줘 보세요 아이들이 인사를 하나 안 하나. 자장면 한 그릇도 안 사주시니까 아이들이 그러는거지요’
어느 날 제 사무실에서 설교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중고등부 아이들이 옆방에서 시끄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웬만한 일에는 방해를 받지 않는데 워낙 아이들이 시끄럽게 장난을 치는 바람에 방해가 되어 결국 아이들을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뭐 하느라고 그렇게 시끄럽게 구느냐고 물었더니 임원 수련회 중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임원 수련회를 한답시고 모이기는 모였는데 아이들이니까 장난이 벌어지게 되었고 시끄겁게 놀다가 담임목사에게 호출까지 당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무안하고 창패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습니다. 야단 칠 마음을 잊어버리고 아이들에게 엉뚱하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저녁을 어떻게 먹을 작정이냐?’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이따 교회 부엌에서 라면 끓여 먹으면 돼요.’ 계산해 보니 한 3만 원 정도 주면 아이들이 자장면과 탕수육 정도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3만 원을 주면서 ‘이따 자장면 사 먹어라’ 그리고 돌려 보냈습니다.
야단맞으러 들어왔던 아이들이 횡재를 한 셈이었습니다. 고개를 거의 90도 씩이나 굽히며 인사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더니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며 제법 열심히 수련회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부터 저만 보면 인사를 잘 하였습니다.
어느 날 남자 청년 하나가 머리를 묶고 왔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못 마땅했습니다. 꼭 교회의 물을 흐리러 들어 온 미꾸라지 처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좋은 습관 하나를 주셨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여러 번 다른 방향에서 그것을 생각해 보는 습관입니다. 제 첫 마음과 생각은 ‘미꾸라지 새끼’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머리 깍고 교회 밖으로 나간 놈 보다는 머리 묶고 교회로 들어 온 놈이 낫지 뭐.’
못마땅하지만 기특한 놈이라 생각하고 참기로 하였습니다. 한 달 쯤 지났더니 눈에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고 다니니 예쁘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처음엔 이상하더니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고 다니니 예쁘더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당신도 동그라니 한 번 묶어 보지?’라고 농담을 걸어왔습니다. 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머리 묶은 사내자식들이 조금만 과장하면 떼거리고 몰려왔습니다.
머리 묶은 아이들을 ‘미꾸라지 새끼’로 보는 마음이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내 몰았던 것이고, ‘머리 동그란 자식이 묶으니까 예쁘네’라는 마음이 청년들을 교회로 불러 드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두 주간 아프리카를 다녀왔습니다. 케냐도 들렀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열매나눔재단이 섬기기로 한 말라위 그물리라 마을을 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가 들어가기로 한 8월 17일은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날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큰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발포를 하여 8명인가 9명이 죽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후속 시위로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고 말라위로부터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다하지 않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마 미국 사람들 보다 겁이 조금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탄이 겁주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시위가 연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없이 말라위에 들어갔고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을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어느 재단이 300만 불 정도를 후원하여 유엔이 열심히 사역을 하였던 마을이었습니다. 그곳에서의 300만 불을 엄청나게 큰 돈입니다. 그날 저희 재단이 마을을 방문한 기념으로 마을 잔치를 하였습니다. 7천명을 위하여 소를 잡아 점심을 잘 대접하였습니다. 소를 잡아 7천 명을 대접한 비용이 300만원이었습니다. 300만 원은 그곳에서 7천 명에서 소고기를 대접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니 30만 불 즉 33억원의 돈은 그곳에서 정말 큰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 33억 원의 돈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계자들은 5년 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 든 생각은 ‘투자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앞으로 그 정도의 예산을 이곳에 투자할 작정인데 그 때도 이런 수준이라면 참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청난 재정과 세계적인 석학들이 연구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말 야심차게 하고 있는 프로잭트인데 나름 획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일까를 눈여겨 살펴보았습니다. 제 결론은 간단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인드였습니다. 마음이었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은 이제 겨우 원시 수준을 벗어난 마을 같아 보였습니다. 당연히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습니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은 당연히 잘 입지도 못했고 씻지도 못했습니다. 찢어지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먼지 구덩이에서 그냥 짐승처럼 들고 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안아 주기도 힘들었고 손을 잡아 주기도 솔직히 힘었습니다.
유엔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 위하여 적지 않는 연봉을 받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그물리라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무실과 주택을 마련하고 거기서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든 문제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 재단에서는 사무국장을 현지로 파견하였습니다. 인턴 직원들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은 처소가 마땅치 않아 가까이 있는 대양누가 병원 간호대학 기숙사를 빌려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으면 정말 편하고 안전하지만 국장과 직원들이 고맙게도 그물리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잔치를 하는 날 마을을 대표하는 족장들 앞에서 앞으로 우리는 이곳에 숙소를 짓고 들어와 여러분들과 함께 살겠다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소득 2만 불 시대를 살고 있는 최첨단 문명인들이 일인당 200원이면 소고기로 마을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수준과 환경에서 저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저들과 함께 산다고 해서 저들이 사는 것과 같은 집에서 저들이 먹는 것과 똑 같은 것을 먹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집도 조금은 저들보다 크고 편하게 지을 것입니다. 먹는 것도 저들보다는 물론 잘 먹을 겁니다. 그래도 그 마을에 들어가 저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마을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30만 불이 아니라 300만 불을 투자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날 제게 주신 마음을 Helper가 되려 하지 말고 Server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Helper의 마음도 귀합니다. 그러나 돕는 자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지기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높아진 돕는 자의 마음은 받는 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면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그물리라 사역의 성패가 어떻게 하면 저들을 우리와 같은 똑 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저들을 높여 주고 할 수 있는대로 우리는 낮아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들과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어야만 합니다. 마음의 높이를 맞추어야만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는 일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잔치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이들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해 준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티슈로 아이들의 얼굴을 닦아주고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려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는 그와 같은 일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봄이 되면 반마다 환경미화대회를 합니다. 환경미화를 제일 잘 한 반을 선정하여 표창을 하는 것인데 모든 학급이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여 반을 예쁘게 가꿉니다. 동네 별로 환경미화 대회를 열고, 가구마다 환경미화대회를 하여 저희들이 깜짝 놀랄 수준의 시상을 하려고 합니다. 경쟁을 붙여서 마을을 최대한 깨끗하고 예쁘게, 가정을 그렇게 가꾸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저들의 자존심을 높여주고 싶습니다.
대신 우리들은 최대한 검소하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저들과 정말 같은 눈높이와 마음의 높이를 가지고 저들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이 사역의 성패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마음을 먹으셨습니다. 우리가 말라위 그물리라 마을을 살리겠다고 뛰어든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시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그것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하게 하였고 감격케 하였습니다. 예수님 속에 있는 그 마음이 우리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물리라 마을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픞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5-11)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 능력이 욕심납니다. 저에게는 지금 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능력은 그 마음에 있습니다. 제가 제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만 그와 같은 능력이 제를 통하여 역사할 수 있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과 전혀 딴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면 그 모든 것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막막해 보이는 말라위 그물리라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것은 유엔에게 배우며 일할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저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저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결국 능력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인드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때문에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가정이 변할 겁니다.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이, 우리가 손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아름다운 마음을 품고 그 아름다운 마음의 큰 능력으로 세상과 사람을 축복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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