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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원폭피해자 추도식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
일본 규슈지역에서 맞이하는 8월은 땡볕더위도 대단하지만 민족고난의 역사현장이기에 마음도 뜨겁다 못해 쓰리고 아파지는 시기이다.
1945년8월 9일 나가사키원폭 희생자 가운데 약2만여 명의 조선인이 피폭당해 그 절반이 죽었다고 한다. 히로시마를 포함하여 피폭자의 약10%가 조선인이었다. 망국민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출구 가까이 전시되어 있는 *「까마귀」의 그림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일본제국의 아시아태평양침략전쟁과 원폭 일본인 희생자 수는 1명 단위까지 정확하게 집계되고 이름과 출신지도 알 수 있고 전후 원호법에 의하여 희생자와 유족에게 정중하게 치료와 보상을 하고 있다.
한편 일본국적으로 강제동원되어 희생당한 조선인은 제외되었다. 「약2만여 명」「죽었다고 한다.」라고 밖에 표현 못하는 것은 확인할 기록이 없어서 그 당시의 현황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노무현대통령정권은 전후 처음으로 일본정부에 강제동원 진상조사를 요구하였는데 아직도 실태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참 답답한 일이다.
매년 8월9일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아침 추도식」에 참석한다. 히로시마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국가규모의 성대한 추도식이 거행되기 전에 시민들이 자주적으로 행하는 엄숙한 추도행렬은 매년 끊임없이 이어졌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비판과 함께 강제동원후 이름도 없이 이국땅에서 재가 되어버린 이웃에 대한 사죄의 모습이다.
한일의 우정은 이와 같은 역사인식과 아픔의 공유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늘 불안정할 것이다. 한일민족의 잘린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솟아나는 것을 느껴보는 것은 내일의 희망이리라.
전후 독일정부는 나치정권에서 무참히도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중 400만 명을 추적 확인하여 이름과 출신지역을 공개하며 지금도 조사와 보상을 계속하고 있고 주변피해국과의 좋은 관계를 만드는데 혼신을 기울여 왔다. 지난번 유로통화위기 때 안젤리나 메어켈(Angelina Merkel) 독일수상이 자국의 막대한 손실에도 EU공동체 우선 정책을 취한 것도 역사의 속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마다 일본인들과 함께 하는 나가사키 조선인 원폭 추도식은 한일간 미래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평화와 건설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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