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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하신 하나님

신명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388 추천 수 0 2012.09.14 13: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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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4:15-3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2.8.19주일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자비하신 하나님 (신명기 4장 15-31절)

 

< 모든 것은 변합니다 >

 한 남편이 교회에 올 때마다 항상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그런데 삶은 전혀 성령 충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매번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자 하루는 그의 아내가 옆자리에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항상 하던 대로 큰 소리로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자 옆에서 아내는 더욱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 받고 바로 성령을 흘리지 않게 하소서!”

 문제는 성령의 은혜를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흘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무엇이 성령 충만일까요? 성령 충만의 여러 증거가 있지만 가장 뚜렷한 증거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되고, 불평하는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비판하는 마음이 격려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고, 냉소적인 마음이 믿어주는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선한 변화입니다. 동시에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변화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보다는 현재 그대로의 모습을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변화합니다. 이 세상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중요한 진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입니다.

 싸이란 가수가 있습니다. 외모에서 풍겨지는 반항기, 튀는 행동과 언어, 잘 융화되기 힘든 랩, 그리고 대마초 사건 등으로 그에 대한 나쁜 생각이 영원히 변화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반항기는 진취성의 표시가 될 수 있고, 튀는 행동과 언어는 개성이 강한 표시가 될 수 있고, 랩 음악도 한이 내포된 흑인 문화의 판소리처럼 좋게 생각할 수 있고, 또한 20대 초반의 대마초 사건도 완전히 끊은 지 10년이 넘었다면 마약을 이겨낸 사람처럼 오히려 대견하게 봐주어야 마땅합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저도 그렇게 생각이 변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변화에 대한 반응은 아주 느린 편이지만 그래도 변화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누구나 그래야 합니다. 변화 없이 ‘현재 위치’에서 ‘원하는 위치’로 갈 수 없습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변화를 관리하며 선한 변화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화의 주체가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변화 속에서 승리하는 길 >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한 3편의 고별설교로 이뤄진 책입니다. 눈앞에 닥친 전환기를 앞두고 변화의 시대에 모세는 선민에게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삶을 본문에서 교훈합니다. 변화시대에 승리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눈을 잘 지키십시오

 먼저 모세는 하나님이 호렙(시내) 산 불길 중에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한 것을 상기시키며 그 의미를 깊이 성찰해보라고 권면합니다(15절). 왜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 자신의 형상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봤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한정시키고 그 형상을 만들어 섬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폐단이 없도록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 말은 보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일전에 “내가 천국을 보았다.”고 하며 한 외국의 가짜 목사가 한국에서 집회를 열고 다녔습니다. 그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묘사를 듣고 흥분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짜 목사였습니다. 기자가 그의 처소에 잠입취재를 하자 생활도 엉망이었고 주일예배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다가 한국에서 뜨니까 한국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수많은 성도들을 미혹했고 헌금도 많이 챙겨갔습니다.

 무엇인가 보여준다는 모임을 쫓아다니면 영혼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속속들이 다 보여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보지 않고도 믿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그처럼 진실한 믿음의 백성을 원하셨기에 하나님은 호렙 산에서 말씀할 때 어떤 형상도 보여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너무 보고 믿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마귀와 거짓 목자에게 당합니다. 신기한 것을 너무 쫓아다니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보는 것을 좋아하는 심리를 이용해서 거짓 목자들이 자기 배를 불리려고 눈에 보이는 헛된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결국 ‘보이는 것에 휩쓸리는 마음’과 ‘우상숭배에 넘어가는 마음’은 한 통속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 말씀을 보면 귀신들도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마귀는 한때 하나님 앞에 있어서 우리가 성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아는 사실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고 듣고 체험한 것도 그의 반역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눈으로 분명히 봐도 배신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은 보지 않고도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을 무엇보다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도 유익을 얻지 못한 것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도 신기한 얘기를 듣고 신기한 현상을 보는 것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원리를 모르니까 사단이 신기한 얘기와 현상으로 접근해서 그것이 믿음의 증거인 줄 알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단의 미혹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세상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마디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말씀했고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고후 5:7). 태양을 보면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진리인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야 믿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넘치는 요단강물을 보면 요단강에 들어서기 힘듭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말씀에 의지해서 믿음으로 발을 강물에 들여놓자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수 3장). 그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드리는 모험입니다. 보이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더욱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헌신하면 삶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는 삶이 잘못되는 법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내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왜 선교해야 합니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는 최적의 훈련과목이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선교에 힘써야 합니까? 교회가 성도들에게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라면서 교회 자신이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지 못하면 복된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건축으로 돈이 부족하자 몇 년간 선교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선교를 못할 정도까지 교회 건축에 나서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건축으로 성장했다가 건축으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이기적인 교회의 결말입니까?

 자기 필요에는 둔감해도 선교사들의 필요에는 민감해지십시오. 자기'를 버리고 이기주의의 틀을 깨십시오. 그 틀을 깨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짜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손을 쥐는 삶보다 손을 펴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쥐기를 좋아하면 인생도 쥐어 짜이지만 펴기를 좋아하면 인생도 펴집니다. 특별히 선교와 구제를 위해 힘써 손을 펴면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포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눈에 보이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의문이 있어도 기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보지 못하고 의문이 있어도 굳은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그의 삶을 굳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2. 우상숭배를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스스로 부패해서 자기를 위해 남자, 여자, 짐승, 새, 곤충, 물고기 형상 등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16-18절). 그러면 인형도 다 버려야 할까요? 어떤 분은 인형을 통해 사단이 틈탈 수 있기에 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 태도가 잘못은 아니지만 남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우상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인형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경배 대상으로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의 숭배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19절). 만물을 다스려야 할 인간이 만물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180도 어기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는 므리바 반석 사건으로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사실을 상기시키고(20-22절),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어떤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23절).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처럼 죄를 무섭게 심판하고 우상숭배를 참지 못하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24절).  

 그 명령을 어기면 하나님의 진노로 가나안 땅에서도 전멸되고(25-26절), 더 나아가 열국에 흩어져서 소수만 남게 되고(27절), 이방 땅으로 쫓겨난 후에 그곳에서도 또 우상을 섬기는 비참한 운명이 된다고 말씀합니다(28절). 그처럼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모든 종류의 우상숭배를 지극히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에 결코 빠지지 마십시오.

 요새는 자녀가 우상이 될 때가 많습니다. 자녀가 우상이 되는 전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배우자보다 자녀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인격관계의 1순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2순위는 부부관계이고, 3순위는 자녀관계이고, 4순위는 동료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배우자보다 앞세우는 삶은 자녀가 우상화되어가는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문제로 부부관계가 어긋나지 않게 지극히 주의하십시오.  

 사단은 영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할 때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언어로 얼마나 간교하게 유혹합니까? 그처럼 간교한 사단은 시대상황도 잘 읽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에는 주로 ‘전쟁’을 앞세워 영혼을 망가뜨리고, 어떤 시대에는 주로 ‘타락’을 앞세워 영혼을 망가뜨리고, 어떤 시대에는 주로 ‘경제문제’를 앞세워 영혼을 망가뜨립니다.

 요새는 ‘자녀문제’를 앞세워 영혼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자녀문제를 건들면 의외로 영혼과 가정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무수히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이 사단에게 얼마나 신나게 보고하겠습니까? “수령님! 자녀문제로 건드리니까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계속 그 문제로 파고듭시다.” 그런 시대상을 잘 파악하고 자녀문제로 인해 믿음과 비전을 잃고 부부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자녀문제가 생기면 부부가 더욱 서로를 힘써 격려하며 그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십시오.

3.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내린 징벌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징계가 아니고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려는 사랑의 채찍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헛됨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는데 그때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자비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만나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29절).

 이제 누가 환상을 보여주고 치유를 준다고 해서 그런 사람과 집회를 쫓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러면 영혼이 침탈되고 물질을 뺏기고 가족과 인간관계를 다 잃고 비참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위해 먹는 것도 절제하고 훈련해서 마침내 금메달을 따듯이 세상 욕망을 버리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만 바라보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데 왜 사람을 쫓아다닙니까?

 요새 유행하는 ‘축복 신학’의 메시지는 달콤합니다. ‘축복 신학’은 하나님은 성도의 축복을 원한다는 약속에 근거를 둡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축복만 강조해서 성도의 삶에 슬픔과 고통도 있고, 심지어는 죽음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참된 복음은 삶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문제와 고통이 있으면 기분은 좋지 않지만 문제와 고통도 나름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찾으면 고통과 문제는 선한 변화의 원천이 됩니다.

 요새 탈진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지나치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탈진하면 외부충격에 대한 흡수력이 약해져서 세상을 적대적으로 보게 되고 반사 신경도 둔해지면서 하나님과 이웃의 요청에 둔감해집니다. 또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켜서 사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변화를 불안해하면서 세상 변화에 맞추느라 허둥대게 만듭니다.

 결국 탈진할 정도로 피로에 빠지는 것은 자신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운동이나 봉사나 과제 완수 후에 느끼는 좋은 피로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회피하게 하는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나쁜 피로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처럼 지나친 피로는 욕망을 따라 자기를 지나치게 혹사한 표시입니다.

 이제 장밋빛 쇠사슬인 욕망에 따라 살지 마십시오. 돈만 있으면 몸을 혹사해도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나친 경쟁 심리도 버리십시오. 지나치게 경쟁하면 행복과 건강을 빼앗기다가 큰 문제가 닥치면 퇴로가 막힌 채 깊은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땀을 중시하되 땀을 믿지는 마십시오. 자기 의지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기운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종말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십니다(30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거나 멸하지 않고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않는 자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31절). 결국 믿는 성도는 최종적으로 역전승을 거둡니다. 성도는 잠시 망해도 끝까지 망하지는 않고 잠시 외면당해도 끝까지 외면당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잠시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은 언제나 성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 자비하신 하나님 >

 하나님은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고 구하는 자에게 귀한 것을 주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떠올리면 입으로 갔던 신경이 귀로 향하면서 어느새 입에서 나오던 불평과 원망은 사라지고 귀에서는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무개야! 너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내가 오늘날 너를 위해 행하는 구원을 보라(출14:13).”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조치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조치를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어려움 속에서 원망하고 절망하고 분노하던 자아를 죽이고 그때 하나님의 형상을 마음에 떠올리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차선이 아닌 최선을 허락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록 상처가 많아도 현재 살아있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살면서 눈물겹고 힘든 순간을 만나면 혼자란 느낌도 들지만 사실은 그때도 혼자가 아니라 자비하신 하나님이 동행해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고 슬픔은 반이 되었으며 넘어진 자리에서 툭툭 털고 새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결코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미국의 유명한 방송설교가인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에게 앤디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앤디가 청소년 때 예배시간에 슬쩍 예배당을 나와 근처의 도넛 가게로 가서 그곳의 TV를 아버지 설교채널로 바꾸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철없는 모습입니까? 아빠는 그 사실도 모르고 가끔 물었습니다. “앤디! 오늘 아빠 설교 어땠니?” 그러면 아들이 아빠 설교가 어떻다고 척척 대답해서 아빠는 아들이 그렇게 예배를 드리는지 몰랐습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앤디의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스탠리 목사님에게 와서 따졌습니다. “목사님! 앤디가 예배를 빠지고 그 시간에 도넛 가게에 있습니다.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해주세요. 목사님 아들이 그러면 본이 안 됩니다.” 그때 스탠리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성도님! 목사와 목사 아들은 다른 인격체입니다. 그 문제는 제게 맡겨주세요. 성도님이 하나님 안에서 자녀를 잘 기르려고 하듯이 저도 하나님 안에서 자녀를 잘 기르려고 하고 있어요.”

 자녀는 그의 부모가 제일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남이 왈가왈부하면 월권이 되고 상황은 더 나빠지고 그것은 ‘차선의 사랑’으로 ‘최선의 사랑’을 넘으려는 것입니다. 그때는 제일 아픈 마음과 가슴으로 사랑하는 부모에게 그 문제를 맡기고 기도만 해주어야 합니다. 많은 말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뒤 스탠리 목사님은 더욱 자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그 아이가 철이 들었습니다. 그가 지금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의 목사이고 매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 중의 하나로 꼽히는 앤디 스탠리 목사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보실 때 그 모습이 얼마나 부족해 보이겠습니까? 실수도 많고 잘못도 많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정죄하고 야단치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자녀도 지극한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물론 그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멋대로 하도록 그냥 놔두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상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부족한 부분이 있고 모두 서로를 정죄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부터 죄책감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처럼 수많은 정죄와 죄책감의 소리가 난무할 때도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잘못했어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란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족한 모습으로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먼저 가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먼저 축복받았는데 그 축복을 담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서 먼저 정상에 섰다가 먼저 추락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회자 중에서도 ‘언(言)’은 있어서 먼저 크게 떴다가 ‘행(行)’은 없어서 먼저 무섭게 추락하는 목회자들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나중에 가는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면 저렇게 비참하게 무너지는구나!” 하고 그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의하니까 추락의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그래서 성공도 조금 늦게 하는 것이 더 축복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살면서 실패가 있고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의 자비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역전승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자비하신 하나님의 손을 끝까지 붙들고 비전을 따라 살면 언젠가 반드시 극적인 역전승이 펼쳐질 것입니다. 항상 자비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고 붙잡아 최후 승리를 얻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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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6 민수기 왕과 그 백성 민24:1-25  이정원 목사  2012-09-06 2162
7285 에배소서 만물의 완성과 예수 엡4:1-16  정용섭 목사  2012-09-06 2505
7284 예레미야 동행하는 삶 렘10:1-16  최장환 목사  2012-09-05 5807
7283 이사야 조금만 기다리자 사13:1-22  최장환 목사  2012-09-05 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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