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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드리는 제사

시편 김동호 목사............... 조회 수 2802 추천 수 0 2012.09.15 23: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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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50:23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2011.11.20 주일 http://www.godswil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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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드리는 제사.
시 50:23.

저희 외가 집은 모두가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외가 쪽으로 하면 저는 4대 째 예수 믿는 집에서 태어난 셈입니다. 그러나 친가 쪽은 저희 아버지가 처음 이셨습니다. 저희 아버지 사촌 동생이셨던 작은 아버지 댁은 제가 어렸을 때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은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그 집안도 다 예수를 믿고 제 6촌 형제 중에 장로도 나오고 권사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제사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기억으로도 제사는 보통 정성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고 온 가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하였고, 그리고 차려지는 제사 음식은 자신들의 형편에 맞지 않을 정도로 최고로 그리고 정성껏 준비되곤 하였습니다.

제 사무실은 남산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운동 삼아 남산엘 오릅니다. 제가 오르는 남산 길에는 사람들이 무당들과 함께 굿을 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못하도록 철망을 쳐 놓았습니다만, 그래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전에는 다닐 때마다 무당들이 와서 굿을 하고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굿을 할 때도 보면 그 정성과 준비가 보통이 아닙니다.

신을 위하여 차려지는 제사상과 자신들을 위하여 차리는 밥상을 비교해 보면 제사상은 밥상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차려진 밥상을 보고는 ‘누구 제삿날인가?’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제사를 예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보면 예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제사라는 말을 썼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도 요즘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의 제사 못지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일 년에 한 번은 예루살렘을 찾았고, 제사를 드릴 때에 언제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의 예배에서는 그와 같은 제사의 정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요즘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살림살이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살림살이에 대한 정성이 예배에 대한 정성을 훨씬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려서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노래를 곧 잘 불러서 KBS 누가 누가 잘 하나에 나가서 일등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전임 전도사가 되어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전축을 사는 것이었다. 당시 제 월급과 생활수준을 생각하면 전축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니 결국은 전축을 사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13만 원이었는데 65만 원 짜리 전축을 샀었습니다. 어머니가 몇 년 짜리 적금을 탄 돈을 주셨습니다. 전축을 장만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때 큰 아이를 낳았습니다. 큰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을 찍어 주고 싶어서 카메라도 하나 샀습니다.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카메라는 13만 5천 원이었습니다. 카메라도 제 한 달 월급을 넘는 것이니 만만치 않았지만 제 다섯 달 월급을 주고 전축을 산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서울 변두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44평 아파트에서 삽니다. 그 아파트는 제 아파트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격대 낮은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억 원은 족히 나가는 아파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하여 이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는지 계산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계산이 잘 되지 않는 생활을 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하고 삽니다. 요즘도 자기 한 달 정도의 월급을 주어야만 살 수 있는 고가의 물건들을 사람들은 삽니다. 몇 달치 월급을 주어야만 살 수 있는 것도 정말로 욕심을 내면 결국은 돈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것을 모아 삽니다. 아니 요즘은 모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카드로 사고 그것을 갚아 나갑니다.

집을 장만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이 어렵습니다. 계산으로 하면 자기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십 년 이 십 년을 모아야만 살 수 있는 집을 신기하게도 장만하여 삽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제가 말한대로 사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

요즘 우리들의 씀씀이가 많이 커졌습니다. 억대 단위의 호텔 결혼식도 자주 봅니다. 그런 결혼식의 식사 비용은 일 인당 10만 원이 넘는답니다. 호텔에서 사람을 만나 점잖게 식사를 하려면 그것도 1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니 아동복들 중에 소위 명품 아동복은 보통 100만 원이 넘습니다. 어린 아이 코트가 150만 원 유모차가 200만 원을 넘는다는데 그런 옷과 유모차를 우리 주위에서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아니 아주 흔한 일입니다. 아이들 돌 잔치를 위해서도 저로서는 잘 상상이 안 가는 돈을 요즘 젊은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지출합니다.

젊은이들의 지출만 많아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자가용을 탈 때, 물론 교회가 사준 것이지만 그때 자동차 가격은 300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300만 원 짜리 자동차에 기사가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기사를 두고 차를 타는 분들도 300만 원 짜리 자동차를 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가용을 탄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아마 기사를 두고 차를 타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차는 억대를 넘을 겁니다. 일 억 원 짜리 차는 정말 고급차에는 끼지 못할 겁니다. 젊은이들이 구입하는 차들도 보면 아주 검소하고 실용적인 젊은이들만 1,000만 원 정도의 차를 사고 보통은 그 이상의 차를 구입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씀씀이는 옛날과 비교하여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아지고 높아졌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검소하게 규모 있게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자기를 위한 씀씀이가 옛날보다 높아지고 많아졌다는데는 대개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예배비용 다시 말해 제사비용은 그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씀씀이는 억대 자가용을 타는 수준으로 높아졌어도 하나님을 위한 씀씀이는 여전히 300만 원 짜리 차를 타던 옛날 수준에서 별로 크게 높아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제사상과 밥상을 비교하면 우리의 밥상 수준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상 수준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우리와 다릅니다. 저들은 지금도 자기 밥상 보다는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위하여 차리는 제사상 비용이 높고 큽니다.

산상보훈의 팔복 중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제사상 가격(?)이 우리의 밥상을 좇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에 대한 욕심이 없거나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과 욕심에는 주리고 목말라하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별로 큰 욕심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13만 원 월급을 받으면서도 13만 5천 원짜리 하나님의 의를 욕심내어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3만원 월급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욕심나서 65만 원 짜리 하나님의 일을 저지르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4평 짜리 하나님 나라가 욕심나서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고 돈을 모아 결국 그것을 장만해 내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꼭 13만 5천 원 짜리 카메라만 좋아하시고, 65만 원짜리 전축을 기뻐하시고, 44평 짜리 아파트를 드려야만 좋아하시느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엽전 두 푼을 귀하게 보시는 분이 아니시냐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은 정말로 그러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시비(?)를 거는 것은 과부의 엽전 두 푼이 아닙니다. 제가 오늘 시비를 거는 것은 부자의 엽전 두 푼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부자의 엽전 두 푼을 귀하다고 말씀하신 곳은 없습니다.

제가 이 비슷한 내용의 글을 얼마 전 페이스 북이라고 하는 인터넷 공간에 올려놓았습니다. 제법 많은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 중에 제 눈을 끄는 댓글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쓰신 것이었습니다.

<그럼 몇 억짜리 아파트 팔고 몇 천 짜리 아파트로 가고 남은 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구제사역에 쓰도록 하면 되겠네요.. 내 가질 것, 내 누릴 것 다하고 어찌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목사님의 그 댓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모두 가 다 몇 천 만 원 짜리 아파트에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그 이유가 자기는 궁궐에서 사는데 우리 하나님의 전은 장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성전건축을 위하여 정말 자신의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지만 그 준비는 다윗이 거의 다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드리고 싶어 했던 다윗의 진심이 아들 솔로몬이 완성했던 예루살렘 성전에 담겨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여전히 궁궐에 살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장막에 거하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듯이 하나님도 다윗이 장막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목사인 제가 몇 억 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하나님은 제가 몇 억 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것도 하나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감사함으로 그것을 누리려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 다윗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섬기자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집에서 살고, 내가 좋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면서 살 때 다윗처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제사처럼 드리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내일 모래 화요일 저녁 저희 재단 이사들이 모여서 모임을 갖습니다. 열매나눔재단, 열매나눔 인터내셔널, 그리고 미래나눔재단의 이사들이 함께 모여 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서로 만나는 자리를 만들려고 준비한 모임입니다.

그 순서 중에 제 마음에 드는 순서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 열매나눔재단에서 아프리카 말라위에 있는 그물리라 라는 마을을 앞으로 5년 동안 섬기려고 작정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 사역을 위하여 이사 중 한 분이 3억 원을 헌금하셨습니다. 물론 3억 원이라고 헌금이 액수가 커서도 감동이 되지만 제가 정말 감동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분이 3억 원을 헌금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이사님의 회사가 올해 50년이 되었는데,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 직원 30명의 이름으로 직원 일인당 천 만원씩을 계산하여 3억 원을 말라위 그물리라 사역을 위하여 헌금을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도 우리 마음에는 솔직히 별다른 감동이 없습니다. 추수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많은 추수의 복을 받는 나라와 사람도 없습니다. 불과 50년, 60년 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돕고 섬기려고 하는 아프리카 말라위 만큼이나 가난하였었는데 지금 우리는 상상도 못할 여건과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상상도 하지 못하는 지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 대해서는 여전히 변변치 못한 제사상을 차려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성경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라는 표현을 하고 계십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제사상은 자기 밥상 보다 더 정성껏 준비합니다. 감사를 제사처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은 그리우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 하나님이 외로우신 것 같습니다. 조금은 섭섭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60이 넘었습니다. 제 남은 생의 구체적인 목표를 저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으로 삼고 싶습니다. 욕심을 하나님께 두고, 지금까지는 내 욕심을 위하여 살아왔다면 남은 여생은 하나님께 욕심을 부리며 하나님께 옥합을 깨 값비싼 향유를 쏟아 부으며 살았던 여인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감사를 제사처럼 드리면 살아가셨으면 좋겟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 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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