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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0: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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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2.9.10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복된 성도의 7대 습관 (출애굽기 20장 18-26절)
19세기 말 미국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의 창시자인 앨버트 심슨 목사님은 탁월한 설교가로 신학생 때부터 설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심슨 목사님은 1865년에 22세에 캐나다 녹스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해밀턴 시 녹스 교회의 임시설교자가 되었습니다. 녹스 교회는 당시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을 가진 캐나다의 대표적인 장로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임시설교자가 된지 2달 만에 심슨 목사님은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만장일치로 녹스 교회의 담임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8년 동안 심슨 목사님은 예배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체스트넛 스트릿(Chestnut Street) 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그곳에서도 2년 만에 엄청나게 성장해서 예배당 좌석이 650석밖에 되지 않는 교회에 매주 2천명 이상 몰려왔습니다. 결국 교회건축에 나서면서 대략 2500석의 교회를 건축하자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그때 심슨 목사님은 3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심플하게 짓고, 둘째, 최저 비용으로 짓고, 셋째, 9개월 내의 단기간에 짓자고 제의했습니다. 그 제안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당시 켄터키 주 루이빌의 최대 교회를 이룬 교인 대표들은 미국 최대 교회의 꿈을 품고 많은 비용을 들여 2년 이상 걸리는 화려한 교회건축을 결의했습니다.
그때부터 심슨 목사님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신도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세상 기준으로 말하면 일종의 성공한 종교 리더였기에 성공한 종교 리더의 심리를 잘 아는 상황에서 엄청난 비용을 들인 화려한 초대형 교회 건축은 ‘하나님의 비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내세운 종교 리더의 야망의 표출’임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로서는 초대형 교회인 교회에서 30대 초에 담임목사로 있던 그에게 화려한 교회 건축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은퇴까지 10년 남은 것도 아니고 20년 남은 것도 아니고 장장 30년 이상 남은 상태에서 그가 야망을 가지면 미국 최대 교회의 꿈은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야망에 번민하며 심슨 목사님은 깊이 고뇌했습니다.
오랜 번민 끝에 심슨 목사님은 화려한 초대형 교회 건축은 인간적인 성공은 주겠지만 오히려 명예 추락의 길임을 확신하고 교회를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문서가 건물을 능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초대형 교회건축보다는 문서선교와 선교사 파송을 통한 영혼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선교마인드와 영성이 엄청난 자원과 가능성을 가진 한국 교회에 덧붙여지면 얼마나 복된 한국 교회가 되겠습니까?
< 복된 성도의 7대 습관 >
복된 교회의 복된 성도가 되려면 어떤 습관이 있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복된 성도가 갖춰야 할 7가지 습관을 살펴보겠습니다.
1. 늘 겸손을 잃지 마십시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전할 때 뭇 백성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았습니다(18절). 그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에 백성들이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지 모릅니다(19절).” 그렇게 모세에게 말씀 중개자의 역할을 부탁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직접 대면하면 죽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출 33:20).
그렇게 두려워 떠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20절).” 왜 성도에게 가끔 두려운 일이 펼쳐집니까? 그것은 두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범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을 하고 백성이 멀리 선 상황에서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갔습니다(21절). 왜 하나님이 계신 곳에 흑암이 펼쳐졌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감추어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은밀하게 숨어서 은밀하게 역사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빛 된 존재가 되기에 힘쓰면서도 항상 자신을 감추는 겸손함을 잃지 마십시오.
어제 한 익명의 독지가가 대전 카이스트에 55억을 인재양성에 써달라고 기부했습니다. 그는 총장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하며 자기 이름이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분입니까? 최상의 헌신을 하면서 자기 이름을 힘써 감추는 사람을 보면 그 겸손함에 사람들은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습니다. 항상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닮아 은밀하게 선의 길을 따라 걷는 겸손한 심령이 되십시오. 겸손을 잃지 않으면 인생의 길도 잃지 않고 행복도 잃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들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은 다른 신의 우상 제작도 금했지만 하나님을 형상화한 우상 제작도 금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정형화하면 아무리 잘 정형화해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신적 속성이 인간의 시각에 의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지식과 체험 등을 통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교리 등으로 규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런 교리와 규정으로는 하나님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교리도 사실은 진리의 근사치인데 그게 전부인양 어떤 교리를 수호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닫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래서 교리를 주장할 때는 늘 마음의 여백을 두어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가 인과응보의 교리로 욥을 정죄했지만 때로는 그 교리 이상의 신비가 펼쳐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실제로 나중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이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욥의 세 친구는 인과응보의 교리란 신상을 만든 것입니다. ‘교리’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참고자료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다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리의 신상화 등을 통해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3. 외형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본문 24절 첫 부분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제단을 흙으로 쌓은 토단 형식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동 중인 그들의 상황에 맞추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돌이나 금속을 사용한 인위적인 이방신의 제단과 구별 짓고 제단의 외형에 치중하다 예배의 참된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화려한 성전건축을 통해 거대한 유형교회를 만들려는 모습을 결코 기뻐하지 않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자기 교회만 너무 커지려고 하면 본의 아니게 한국 교회 전체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는 자기 사명을 다하고 때가 되면 씨앗을 남기고 자신을 소멸시키는 과정에 들어서야 합니다. 죽지 않으면 억지로 죽여서라도 수많은 새싹들을 나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법칙입니다. 그것을 누가 막습니까? 욕심 많은 리더가 막습니다. 그처럼 자기만 커지려는 것은 무엇보다 큰 죄입니다.
왜 암이 생깁니까? 암세포 때문입니다. 몸속의 세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자기소멸 과정이 프로그램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옛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형성되면서 생명이 유지됩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자기소멸에 저항하면서 끊임없이 혼자만 커지다가 결국 전체 생명을 죽입니다. 그처럼 소수의 교회가 너무 커지면 한국 교회가 다 죽습니다. 반면에 스스로를 죽여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면 한국 교회 전체가 살아나고 거룩한 명예도 얻습니다. 그처럼 외형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오히려 영속성과 영향력을 얻습니다.
4. 진실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그 쌓은 토단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24절).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에서 진실한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역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어떤 예배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일까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는 명령에 그 답이 있습니다. 먼저 번제는 짐승의 가죽과 내장만 빼고 몽땅 불살라 바치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을 뜻하는 제사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드리십시오. 기도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할 때도 혼신을 다해 찬송하십시오. 헌금할 때는 드리는 기쁨에 감격하며 헌금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영혼의 체험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화목제를 드릴 때는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전에서 함께 하나님의 식탁에 참여하며 고기를 나눠 먹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린 후에 교우들과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는 것까지 해야 예배가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이루고 교우들과도 함께 삶을 경축하면서 교우들에 대해 외로운 순례 길의 동반자가 되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그들과 최대한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예배를 잘 드린 것입니다. 그처럼 예배에 성공할 때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5. 소박함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단을 흙으로 쌓게 했지만 가끔 돌로 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25절). 다듬은 돌은 애굽의 종살이를 연상시킵니다. 애굽에서 히브리 노예들은 대규모의 신전과 피라미드와 성을 만드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되어 돌을 다듬으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는 말은 소박함과 초심을 잃지 말고 제단 건설의 미명하에 백성들의 피눈물을 짜내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초대형 교회를 화려하게 지으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열어 눈을 빼어 팔아 헌금한 얘기를 들려주며 집을 팔아 헌금하게 합니다. 그때 교회건축 전문 부흥사는 두둑한 사례비를 챙기며 무대 뒤에서 성도들의 등골을 많이 빼먹은 것을 좋아하며 희희낙락합니다.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보는 지나친 표현일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필요 이상의 화려한 건축을 위해서 극단적인 헌신을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부르는 죄라는 점에서 오히려 약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오신다면 화려한 초대형 예배당을 보고 기뻐하실까요? 십자가를 지시기 3일 전에 화려한 헤롯 성전을 보시며 탄식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예수님은 소박해도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밝히려고 땀 흘리는 교회를 기뻐하십니다. 물론 필요할 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실용적인 건축은 축복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 리더의 야망이 담긴 화려한 교회건축은 바벨탑을 쌓는 저주가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짜 부자는 나눌 줄 아는 부자이고 진짜 교회는 나눌 줄 아는 교회입니다. 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이 영국 성공회를 박차고 나왔습니까? 부와 권력을 쥔 그 교회에 소박한 사람들을 위한 여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심슨 목사님도 심플하고 소박한 교회건축을 주장하다가 루이빌 교회를 떠났고, 예수님도 정교한 율법을 따를 수 없는 소박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유대교를 박차고 나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교회를 짓고 정교한 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정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을 가지고 자신을 크게 하는 일’도 힘쓰고 동시에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작게 하는 일’도 힘쓰십시오. 외형에 휩쓸리지 않고 소박함과 순수함과 초심을 잃지 않으면 그 영혼에 반드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의 역사가 주어질 것입니다.
6.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십시오.
왜 하나님은 정으로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고 했습니까? 본문 25절 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정은 파괴적인 행위에 쓰이는 모든 예리한 도구들, 즉 도끼, 칼, 곡괭이 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파괴적인 도구를 사용해 제단을 만들면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이 계명은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품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처럼 성도는 어디에 가든지 사랑과 평화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지도력 부재의 위기입니다. 물론 지도력 부재의 1차 원인은 능력 있는 지도자의 부재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능력 있는 순종자가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리 귀한 비전을 가지고 똑똑하고 도덕성 있는 지도자가 있어도 모두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주장하면 지도력은 통하지 않고 사랑과 평화도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하는 인격만큼 복된 인격은 없습니다.
때로 순종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사람들을 보면 줏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저렇게 형편과 처지가 어려워도 최선을 다해 순종하려고 하는구나!” 그때 리더도 힘을 얻고 자신도 은혜를 입습니다. 그처럼 순종의 영성을 가지면 사랑과 평화가 뒤따르고 동시에 은혜의 문도 활짝 열릴 것입니다. 사랑과 평화를 위한 순종은 가장 소중한 축복의 원천이자 열매입니다.
7.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십시오
하나님은 제단을 계단이 필요할 정도로 높은 곳에 세우지 않게 했습니다. 그것은 화려한 제단을 금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제단에 오르내릴 때 하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26절).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하체를 가리게 했습니다(출 28:42). 그런 계명들은 당시 이방 종교에서 수시로 행해지던 나체 종교의식을 배격하고 정결한 삶을 강조한 계명들입니다.
특별히 이 계명은 옷차림의 중요성을 교훈합니다. 사람됨과 옷차림은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단정한 옷차림은 대개 단정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너무 야한 옷, 튀는 옷,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십시오. 옷에 대한 지나친 율법적인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문제를 너무 무시해도 안 됩니다.
옷차림을 위한 중요한 3가지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단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튀는 옷과 노출된 옷을 삼가서 옷차림으로 성적 자극이나 거부감을 주지 마십시오. 둘째, 편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실용성도 없이 멋만 추구하거나 옷차림에 너무 마음이 뺏기면 안 됩니다. 셋째, 경제성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비싼 옷도 살 수 있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옷은 피하십시오. 명품 인생은 그 사람이 걸친 사치품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열심히 나눔을 실천하십시오 >
옷차림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입어야 할 더욱 중요한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생각의 옷’입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간단하게 말하면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고 칭찬 받는 것들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고 칭찬 받는 6가지 생각을 다 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생각을 잘하고 그 생각대로 살면 일석삼조의 삶보다 더한 1석 6조의 삶이 가능합니다. 그 생각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눔’입니다.
모세 율법에는 248개의 “하라!”는 율법과 365개의 “하지 말라!”는 율법, 총 613개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신약성경에서 하나로 압축한 율법이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즉 “남을 대접하라!”는 한 가지 율법만이라도 철저히 지키면 1석 613조의 삶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남을 대접하라!”는 말과 “나누라!”는 말과 “선교마인드를 가지라!”는 말은 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나눔이 중요합니다.
얼마 전 삼성과 애플의 미국 소송에서 삼성이 터무니없이 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삼성을 옹호하는 분위기인데 한국 인터넷을 보면 애플을 옹호하는 글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지금 삼성이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국민들 중에 삼성 안티가 너무 많습니다. 결국 지금 현재 모습으로는 삼성은 ‘성공했지만 실패한 기업’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그 놀라운 성공과 재물로 혁신을 선도하고, 첨단 분야를 선도하고, 게다나 나눔까지 선도하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위대한 기업과 기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니 구원과 천국 문제를 떠나서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삼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10위 안에 있는 재벌기업 회장 한 명만이라도 편법 재산승계의 도구로 재단을 세우는 것이 아닌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면 나라 전체에 주는 감동이 대단할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드라마 <추적자>를 보면 한오그룹 서 회장의 둘째 딸이 말합니다. “아빠! 난 하루에도 열 번씩 아빠 욕을 들어요.” 그리고 독백하듯이 말합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서 회장은 둘째 딸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둘째 딸도 아빠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빠의 세상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독백을 한 것입니다.
그때 서 회장이 말했습니다. “지원아! 손가락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나를 손가락질 하고 한오그룹이 악덕 기업이라고 하지. 그런데 자기 아들이 한오그룹에 입사하면 사방으로 자랑하고 다닌다.” 실제로 삼성에 손가락질하던 사람도 자기 아들이 삼성에 입사하면 얼마나 자랑하고 다닙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을 하는 서 회장의 표정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존경이 없이 겉으로만 존경하는 척 하는 것이 더욱 비참한 일임을 본인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경쟁의 승리’만 알고 ‘나눔의 기쁨’을 모르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몽골로 선교지 지도자 특강을 가는 김 목사님은 저희 선교연맹 신학대학원에서 유일한 한국인 정교수로 있다가 목회하고 싶다고 교수직을 사임하고 목회하다가 어려움을 겪고 결국 목회를 포기했습니다. 갑자기 살 길이 막막해졌고 의료보험도 못 들었습니다. 노인의료 혜택인 메디케어 대상이 되려면 65세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4년 남았습니다.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생각할 때 지금은 병들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비로 몽골 선교 특강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여비를 보태드리긴 했지만 넉넉하게는 드리지 못했습니다. 좋은 일 하러 가는데 많이 보태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희 제단이 나눌 줄 아는 ‘큰 손 제단’이 되게 하시고, 저희 제단에서 나눌 줄 아는 ‘큰 손 성도들’이 많이 배출되게 하소서!”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 성공해야 합니까? 나누려고 성공해야 합니다. 왜 교회도 성장해야 합니까? 역시 나누려고 성장해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여러 선교사님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중에 나눔에 대한 부담이 밀려왔습니다. 그런 부담들을 기쁘게 질 목적으로 성공을 추구하십시오. 제가 네트영어의 비전을 가진 이유도 ‘인물 양성’과 더불어 ‘나눔을 향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네트영어를 후원할 거룩한 커넥션도 생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그처럼 나누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을 통해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고 칭찬 받는 6가지 생각이 다 나올 것입니다.
이제 또 한 주간이 펼쳐집니다. 이번 주간에도 “남을 대접하라!”는 최대의 황금률을 마음에 품고 사십시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누가 확 끼어들면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기쁘게 양보하십시오. 또한 그런 수많은 유사한 일들을 당할 때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이번 한 주간만이라도 남을 대접하는 특별 훈련 주간을 삼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살면 구약에 나오는 613개의 율법을 다 지키는 1석 613조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처럼 대접하고 나누면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엮어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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