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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2:2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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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2.9.11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60) 소외된 사람들을 살펴주십시오 (출 22장 21-27절)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 자신도 애굽 땅에서 이방인으로서 설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21절).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변방인에서 중심인이 되게 하셨다면 그 은혜를 기억하고 변방인들과 이방인들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족적인 자부심’은 가지되 어떤 경우에도 ‘민족적인 교만’은 없어야 합니다. 이방인을 멸시하는 교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부릅니다.
최근에 노르웨이에서 템플 기사단의 일원임을 자처한 브레이비크에 의해 수많은 청소년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는 무슬림들이 증가하면서 다문화사회로 가는 것에 경종을 울리려고 그런 행동을 했는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극우 민족주의의 파괴성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는 ‘순수한 아리안의 나라’를 꿈꿨던 히틀러처럼 행동했지만 그의 ‘순수성’은 비참하게 왜곡된 순수성입니다.
무지한 순수나 왜곡된 순수는 심각한 폭력을 낳습니다. 순수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라 자기만 순수하다는 착각에서 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다양성에 기초합니다. 인종, 피부색, 출신지, 국적, 그리고 종교의 차이를 넘어 서로를 소중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극우 민족주의가 기생하는 터전이 있습니다.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여기고 자신을 삼등시민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좌절감입니다. 그 좌절감은 편견의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래서 편견으로 자신의 좌절감을 일시적으로 누르는 정신적인 환락상태를 체험합니다. 결국 이방인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과 배타와 독설은 자신이 지지리도 못난 좌절감에 빠진 인생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기한 일은 제일 편견이 없어야 할 선교사 중에도 인종과 지역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거짓 선교사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만이 위험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때로는 이방인이 위험을 초래하기보다는 미지의 선물을 가져올 때도 많습니다. 낯선 경험이 영혼을 새롭게 할 때도 많듯이 이방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잘 대해주십시오. 나그네를 영접했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한 축복이 그런 대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 어려운 이웃을 위해주십시오 >
하나님은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3절). 만약 그들을 해롭게 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반드시 듣겠다고 했습니다(23절). 성경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을 참된 경건의 표식으로 보았고(약 1:17), 그들을 학대하는 것을 가장 잔인한 범죄로 여겨서 하나님의 심판도 어떤 심판보다 컸습니다(24절). 또한 하나님은 가난한 빚진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이자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25절). 하나님은 이자놀이를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당시 채무자는 종종 자기 겉옷을 담보물로 맡겼는데 하나님은 해지기 전에 그 담보물을 즉시 돌려주라고 했습니다(26절). 가난한 사람들은 모포도 없어서 옷을 모포로 사용할 때가 많았는데 해지기까지 전당잡힌 옷을 도로 찾지 못하면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해지기 전에 가난한 자들의 옷을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입니까?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닮아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유고에 18세의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수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자기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손을 놓지 말라.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손이 되어 살거라.” 그 후 그녀는 그 어머님의 음성을 평생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예수님의 손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녀가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입니다.
줄 것이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테레사 수녀님은 작은 체구로 줄 것이 별로 없었지만 한 손으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또 한 손으로는 가난한 인도 영혼을 붙잡아 일생을 아름답게 살아갔습니다. 작은 불이 큰불을 일으킬 수 있고 작은 숫자가 큰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숫자를 통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두운데 맑은 샘물을 흘리는 사람이 적다고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세상이 어둡고 의로운 사람이 적을수록 어려운 이웃을 살피며 바른 길에 들어설 때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은 커질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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