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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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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신 목사 |
참고 : | 2005-08-09 01 -http://www.nosuchjesus.com/ |
주기도문(14)-김정일이 예수를 믿었다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복 신앙에 대한 오해
한국교회의 가장 잘못된 신앙 행태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기복(祈福) 신앙이다. 교회에 와서 그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일신상의 안락과 현실적인 형통과 풍요만 간구한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가 그렇다.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간구한 적이 없는 것 같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 증거를 하나 들어보자. 주기도문의 12절의 우리 죄를 사해 달라는 것과 13절 전반의 시험에 들게하지 말아달라는 것과 13절 후반의 악에서 구해 달라는 것의 의미를 각각 구별해서 따져본 적이 있는가? 전부 그저 죄 안 짓고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기도했는가?
하나님 앞에 나와 죄 안 짓고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속 마음의 본 뜻이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해줘도 하나 더 해 주시겠지, 아니면 최소한 불의의 큰 사고는 막아 주시겠지다. 기복 신앙과 다를 것이 하나 없지 않는가?
기복신앙이란 직접적으로 복을 빌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지 않다. 또 자기의 복만 빌지 않고 이웃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기복 신앙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찾는 목적이 내 쪽의 필요와 생각이 우선이라면 기복 신앙이다. 하나님이 세상과 자기 인생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그 뜻을 알기를 소원하고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열심이 먼저 있어야만 한다. 내 필요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 순서가 뒤 바뀌면 예수님이 마6:32에서 지적하신 대로 이방인들의 기도와 같아지며 기복 신앙이 된다.
오해는 하지 마셔야 한다. 복을 빌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복을 빌려면 당당하게 빌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를 괜히 고상하게 치장할 필요 없으며 이웃에 대한 중보를 사족처럼 달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므로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있는 그대로 우리 속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아야 한다. 대신에 돈을 벌고 쓰는 부분에 신자 나름의 정당하고도 절실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 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도자의 확신이 함께 드려져야 한다.
세 가지 죄악
이제 기복신앙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 세가지 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예수님은 왜 12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라 해놓고 또 다시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를 하도록 하셨는가? 간혹 이 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12절의 죄를 사해달라는 것은 이미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회개의 측면이고, 13절 전반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는 것은 죄가 오는 것을 막아 달라는 소극적 방어적 차원으로 이해하고, 13절 후반의 악에서 구하는 것은 현재 죄 속에 빠져 있는 신자를 건져 주는 적극적 공격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전혀 틀린 해석은 아니며 분명히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석하면 동일한 한 신자가 과거에 지은 죄(12절), 현재 짓고 있는 죄(13절 후반), 미래에 지을 죄(13절 전반)를 용서해달라는 간단한 의미밖에 안 된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친 기도다.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으로 하여금 길이 참으시는 중에 우리의 모든 죄를 간과(롬3:25)하게 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실 분이다. 그런데 이 짧은 주기도문의 거의 전부가 이미 구원 얻은 신자더러 시차적으로 죄를 세 단계로 구분해서 회개하고 간구하라는 것으로 그치면 너무 가난한 신앙이지 않겠는가? 신자가 과거, 현재, 미래 죄를 회개하려면 항상 죄만 신경을 써야 하므로 자칫하면 또 다른 멍에를 매게 되지 복음이 복음으로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또 하나님께 용서를 빌 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주님이 따로 안 가르쳐도 된다.
이 세 구절은 신자가 짓는 윤리적 죄의 시차적 구분이 아니라 각각 다른 세 종류의 죄를 말한다. 12절의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은 윤리 도덕적 죄다. 신자가 구원을 얻은 후에도 알게 모르게 죽을 때 까지 죄를 짓는다. 그 때마다 입술로 구체적으로 고백하며 하나님의 사하심을 구하고 회개해야 한다.
13절 전반의 시험은 신자를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려는 세상과 사람과 사탄의 유혹이 내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과 합쳐지는 것이다. 자꾸 신자 된 신분과 자격과 권세를 잊고 하나님은 찾지 않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려는 죄다.
오늘 살펴 보고자 하는 악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Evil(악)이다. 죄(sin), 범죄(crime0, 혹은 유혹(temptation)이 아니다. 우리가 윤리적 죄에 빠지거나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게 만드는 눈에 안 보이는 어떤 거대한 영적 실체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힘에 우리 죄의 본성이 넘어가지 않고 조종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디카우 포로 수용소
최근에 어떤 책에서 한 나이 든 미국 목사님이 주의 종으로 소명을 받게 된 경위를 간증한 것을 읽었다. 이 분은 이차 대전에 사병으로 참전했었는데 전쟁말기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악명 높은 디카우 포로 수용소를 접수하는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화물차 한 칸의 청소를 맡았는데 그 속에는 독가스실에서 화장장으로 옮겨갈 유대인들의 벌거벗은 시체로 가득 차 있었다.
독일인은 세계에서 제일 과학적이고 치밀한 민족이라 시체를 벽돌 쌓듯이 너무나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머리와 다리를 서로 하나씩 엇갈리게 쌓은 데다 덩치가 큰 사람과 적은 사람을 번갈아 쌓아 정말 빈틈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중에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이 간혹 나왔다. 체력이 특별히 강해 독가스에 중독만 되었지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다. 본인으로선 그 다음에 더 끔찍한 화장장이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아무 의식도 없이 죽은 듯 누워 있지만 분명히 숨은 헐떡이고 살아 있다는 표시로 몸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시체를 치우는 동안 동료 병사는 구역질을 하며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반해 그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손 따로 정신 따로 움직였다. 머리에는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연민, 분노, 수치, 혐오, 두려움 등 더럽고 추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뒤썪인 채 자기를 짓누르고 있어 냄새도 못 맡고 사람 시체가 시체로 여겨지지 않았다.
독일군이 저지른 범행 자체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을 넘어선 알 수 없는 어떤 정체에 대한 분노였다. 인간이 과연 이럴 수 있는가? 인간으로 하여금 이렇게 까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어떤 거대한 흑암의 세력에 대한 증오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 화물차의 유대인 시체를 치우면서 이런 절대적 악이 이 땅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그 악의 세력과 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윤리적 죄 몇 가지 회개하고 고친다고 해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하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일차적인 소명을 받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독일군 친위대 포로 12명을 디카우 수용소에서 조금 떨어진 미군 막사로 호송해야 할 일이 생겨 경비군인을 차출했는데 척이란 자가 자원했다. 그런데 이 척은 자신의 고백대로 군대 들어오기 전에 시카고의 알카포네 밑에서 일했던 마피아로 군대 안에서도 흉폭하기로 소문난 자였다.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도 없고 어떤 사역에도 참가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 일에 자원하고 나선 것이었다.
차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 막사로 가는 숲을 통과할 즈음에 갑자기 요란한 기관단총 소리가 났고 곧장 척이 돌아 왔다. 포로들이 도망가려 해서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은 자는 아무도 없었고 또 전쟁 중이라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했다.
그 목사님이 절대적 악과 평생을 바쳐 싸워야지 결심하자마자 바로 자기 동료가 그 절대적 악에게 완전히 조롱 당하듯이 또 다른 절대적 악을 저지르는 꼴을 목격한 것이다. 이제는 분노가 아니라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악의 세력이 두렵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만약 자기가 호송 책임자였더라도 척처럼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못했을 것이라는 데 있었다. 자기도 얼마든지 그 악에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의감에 사로 잡힌 인간적 결단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 악은 인간의 의지, 지성, 교양, 도덕성, 종교성, 영성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제 3의 파워가 이 땅을 뒤덮고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 속에 꽤 차고 들어와 있었다. 독일군에게만 있어야 할 야수적 본능이 자기에게도 똑 같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의 노예요, 사탄의 종이 되었다. 인류 전체가 이 더러운 세력의 노리개 감이 되어 불쌍하고 처참한 지경에 빠진 희생자다. 독일군이 악마가 아니요 미군이 천사도 아니다. 다 같이 죄악에 눌리고 암흑에 묶인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 흑암의 세력을 끊어 줄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하나님 당신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 아니고는 절대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서 있어야 할 자리
9.11 테러 이후 미국 교회마다 신자가 늘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세상은 갈수록 험악해지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불시에 죽을 수도 있고 인간의 생명이 휴지 조각보다 못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 불안감을 달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려고 교회로 모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 전부 그날 아침 Twin Tower가 무너져 내리고 맨하턴 천지가 시커먼 흙먼지로 뒤덥히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바로 그 목사님이 디카우에서 느꼈던 것과 동일하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희생자들이 너무 안스럽게 느껴졌지만 곧 그 테러범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치밀었고 마지막에는 그 광경을 계속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시커먼 악의 실체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지 않는가?
어떤 사진사가 찍은 사진에 그 검은 흙먼지 구름 속에 사탄의 얼굴이 나타났다고 하는 얘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사진에 찍히고 안 찍히고 간에 분명히 그 뒤에서 사탄이 음흉하고도 조롱하는 비웃음을 웃고 있었을 것은 틀림 없다. 알카에다나 오사마 빈라덴이나 이슬람이나 모두 그 악의 불쌍한 희생자일 뿐이다.
우리 모두 그날 아침 도대체 인간이 저럴 수 있는가라고 통분해 했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이라면 저래선 안 된다는 뜻이지 않는가? 인간이 본래 가져야 할 모습과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취해야 할 모습과 정말 인간답게 살아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 있다. 모두가 방황하고 갈급해 있다. 마음에 위로를 얻으려고 교회에도 출석해 보지만 여전하다. 악이 덮어 쒸운 원죄의 멍에 아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을 보라. 수백 만 명이 굶어 죽고 있는데 자기는 매일 황제나 먹을만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그가 얼마나 갈 데까지 갔는가 하면 음식은 맛은 셋째, 향기가 둘째, 모양이 첫째라고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보내 준 식량을 나눌 때 인민은 굶더라도 군대는 절대 굶겨선 안 된다고 명령한 비밀 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김정일만이 문제가 아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 놈은 미친 놈으로 치면 된다. 더 문제는 같은 동포가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도 누가 봐도 죄악이 분명한 짓을 말리지도 않고 독재자에게 빌 붙어 스스로 앞장서 살인하여 호위호식 하려는 수십만의 특권층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굶어 죽는 형제들의 시체에서 단물을 빨아 먹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약과다. 지금 남한의 돌아가는 꼴을 보라. 수십억, 수백억을 꿀꺽하고도 한 사람도 잘못했다고 나서는 자가 없다. 맨 위에서부터 맨 아래까지 똑같다. 감옥에 가 있는 구 정권의 한 실세는 매주 신라 호텔에 두 세번 씩 손님을 만나 점심을 먹으러 오는데 매번 일인당 30만원 하는 식사를 주문했다고 호텔 종업원이 증언했다. 한 번 식사에 보통 2백만원씩 지불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하나도 덜하지 않다.
또 죄송하지만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이 놈도 미친 놈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이 자에게서 떨어지는 떡 고물이라도 집어 먹으려고 식사 값을 지불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온갖 연줄로 엮어진 죄악의 고리는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 규모와 숫자는 이 쪽이 훨씬 더 크고 세밀하다. 북한의 죄는 아직 순진하고 무식한 수준에 있다면 남한의 그것은 더 치사하고 교묘하고 더럽다. 더 배우고 더 가진 사람들이 죄는 더 짓는다.
그 가운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나 모르는 백성들의 죄악이 하나 다를 것이 없다. 한국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다. 전국민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한국이 5천년 역사상 지금만큼 잘 먹고 잘 살은 적이 없고 세계에서도 손 꼽을 만큼 잘 살고 있는데도 그렇다는 말이다.
기도의 완성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가 단순히 우리의 윤리적 죄를 회개하고 죄를 안 지으면 복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상식적으로 이미 누구나 알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엄청난 것이다.
본문은 주기도문에서 간구하는 내용으로는 마지막이다. 기도의 종착점이다. 신자가 기도해야 할 목표요 기도의 완성이다. 신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할 기도다. 세상의 절대적인 악에서 자신을 건지시고 보호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 악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이 이겨내야만 할 뿐 아니라 그 악을 쳐 부수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탄의 머리를 깨부셔야 한다.
하나님을 경배 하지 않고 십자가에 예수가 왜 죽었는가 알려 하지도 않는 세상 사람들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자기 욕심만 채우려다 사단에 다 넘어갔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처음부터 살인한 거짓의 아비 마귀의 자녀요, 형제를 살인한 가인의 후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실체다. 인간이 죄를 짓고 죽어서 불 못에 가야만 지옥이 아니다. 현재 이 땅이 바로 지옥이다.
사람은 절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인간이 참 인간다워진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만이 방황을 멈추고 갈급한 심령이 채워진다. 악의 세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을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와 자비와 권세 앞으로 절대 못 가도록 막는다. 그 더러운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 달라고 기도하셔야 한다.
신자가 싸울 싸움이 얼마나 기도를 뜨겁고 열심히 해서 내 문제 해결 받고 내 식구가 형통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이 아니다. 이 땅을 볼모로 삼아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성령의 전신 갑주를 입고 무시로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김정일이 예수를 믿었다면?
그 미국 목사를 인터뷰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그에게 했다. “그런 절대적인 악과 싸우는데 교회에서 예배 보고 찬양 부르고 성경 공부하며 어려운 사람들 몇을 상담해 준다고 그 악이 없어지겠는가? 지금 목사님은 그 악을 없애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그 목사님이 “악 자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악이 준동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제대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불우한 성장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왜곡된 정서로 인해 방황하고 있을 히틀러의 청년 시절에 누군가 그를 붙들고 제대로 상담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한 사람의 미친 사람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개스 실로 간 육백만의 유대인과 수천만의 이차대전 희생자들이 없었을 것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만약 김정일 혼자라도 예수를 믿었다면 북한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앞으로 이 땅에 갈수록 악(Evil)이 더 설칠 것이다. 지구의 역사는 시작이 있었기에 반드시 끝이 있다. 과학적으로 봐도 수명이 다된 별들을 블랙 홀이 집어 삼킨다. 태양도 언젠가는 식게 마련이다. 금주에 태양 표면에 지금까지 관측한 이래 가장 큰 폭발이 있었다.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태양계의 운명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자기들의 마지막 때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끝이 다가오면 더 설칠 것이다. 절대 9.11테러가 끝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에 앞서 누구를 이 땅에 보냈는가? 아무 이름과 빛도 없는 바로 여러분과 같은 아주 평범한 신자들이다. 무엇을 들려서 보냈는가? 오직 기도라는 무기 하나 달랑 들려 보냈다. 바로 오늘의 본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다.
그렇지만 그 무기로 얼마든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때문이다. 그리스도 그 분이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권세로 세상 땅끝까지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신자의 기도만이 이 세상을 악에서 구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여러분이 주일 날 교회에 나와 예배 본다는 것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아라. 신자만이 제 정신을 갖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 형통하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그들 모두 사탄에 조종당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인생만큼 비참한 자가 없다. 그들은 곡예사가 줄 타는 것처럼 인생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한탕 대박을 터뜨리느냐 아니면 감옥에 가느냐의 줄타기가 아니다. 자기의 전 인생, 전 존재, 영원한 운명을 사탄에게 맡기느냐, 하나님에게 맡기느냐 천길 벼랑 위에서 줄타기 하고 있다. 한 쪽은 영생이요 다른 한 쪽은 영원한 형벌이다.
그러나 사실은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다 사탄의 쇠사슬에 묶여 지옥불로 향하고 있다. 향방 없는 달음박질을 하고 있고 허공을 치는 듯한 삶을 살고 있다. 히틀러, 김정일, 오사마 빈라덴 보다 별다를 것 없다. 악이 겉으로 드러난 정도만 다를 뿐이다.
신자가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주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평소때 무관심하게 대하고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싸매주기 귀찮아 외면한 사람 중에 히틀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여러 분의 자녀가 그 악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에 이민 와서 열심히 돈만 벌다 보니 자녀는 마약과 갱들에게 사로 잡혀버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독일군이나, 미군 척 병사나, 절대적 악의 존재를 발견하고 목사가 된 분이나, 우리 자신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똑같이 처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정말 멀쩡하게 상식과 교양과 인격을 갖추고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자의 사는 모습에도 진정한 생명과 의는 없다. 잘해야 남에게 피해 안 주는 정도다. 절대적 악과 싸우기는커녕 그 존재가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인줄 안다.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다. 자신이 얼마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예 전설과 동화로 치부해 버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곳에는 사탄만 설친다. 아니 사탄이 이미 사냥을 끝냈기에 하나님의 빛과 냄새라고는 그곳에 없다. 십자가를 보지 못한다. 세상의 학문, 사상, 철학, 윤리, 도덕, 종교 그 어느 것도 이 절대적 악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뿐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에 관해 정말 귀하게 여기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신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자는 신자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그 이름을 귀하게 여길수록 더욱 사탄이 악랄하게 우리에게 덤빌 수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이미 다 이기시고 이루셨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악에서 구해달라고 또 주위에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흑암의 세력이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매일 기도해야 한다. 기도해서 자식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이 신자가 할 바가 아니다. 자식이 악과 맞서 싸우게 해야 한다. 여러분의 자녀가 십자가 군병이 되어 악을 물리치는 일에 직접 나서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 믿는 일은 부모가 대신해 주고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나 잘 시켜 일류대학 보내라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교회로 불러 모으지 않았다.
아직도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속 마음으로는 반쯤 부러워 하면서 주기도문만 외우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그런 마음으로 기도한들 응답이 있겠는가?
예수를 모르는 세상 사람은 아무리 형통해도 그럴수록 그만큼 불쌍해진다. 지옥으로 가는 고속 급행 열차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서 또 그런 자들을 뒤에서 교묘히 조종하고 있는 악을 쳐 부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여 이 세상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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