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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상

출애굽기 임덕순 목사............... 조회 수 2109 추천 수 0 2012.11.27 14: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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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25:23-30 
설교자 : 임덕순 목사 
참고 : 2007-05-20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떡상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설계도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만나주시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막을 어떤 구조로 만들며 어떤 물건들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디에 배치 할 것인가를 아주 자세히 말씀해 주셨는데, 자재나 치수나 모양이나 색깔 등은 단순히 미적 조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분명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누구신가, 그가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실 것인가를 계시하는 내용입니다.


  성막의 가장 안쪽의 방을 지성소라 했고 거기에는 법궤를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바깥 쪽의 방을 성소라 하는데, 제사장들이 순번대로 날마다 들어가서 분향하는 곳이었습니다. 성소에는 세 가지 기물이 있었는데, 입구에서 들어가서 오른쪽에는 떡을 진열해 놓는 진설병 상이 있고, 왼쪽에는 불을 켜는 등대가 있었으며, 한 가운데로 조금 더 나아가면 향을 사르는 향단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떡 상을 살피면서 이 떡 상을 통해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가 듣도록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에서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그 신이 잡수시기를 바라고 차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는 것은 신이 향내를 맡으시라고 피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먹는 음식을 잡수시는 신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두우면 움직이지 못해서 불을 켜야만 하는 분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성소 안에 떡 상과 등대와 향단을 설치하라고 하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내 음식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진열장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진열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열한 음식은 진짜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입니다. 진짜를 그렇게 진열하면 부패해 버립니다.  진열장의 음식은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음식이고 우리 음식점에는 이런 음식을 판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음식입니다. 


  진설병은 영어로는 ‘show bread’ 라고 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떡이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까요? 답은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5:39)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2) 그 성막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떡을 진설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떡 상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조각목은 지난번에 설명한 대로 쉬띰나무라는 아카시아 과의 사막에서 자라는 못난 나무입니다. 물론 고난 받으실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크기는 법궤보다 조금 작고, 높이는 똑같았습니다. 장이 2규빗,(90) 광이 1규빗(45) 고가 1규빗반(70)이 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언약궤보다 조금 작은 직사각형의 떡을 올려놓는 상입니다.

이 상도 정금으로 완전하게 싸고, 위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러야 했는데, 이것도 역시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졌지만  영원하신 왕권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정금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이용하여 상위에 떡을 올려놓되, 그것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떡은 하늘나라 백성이 먹어야 할 양식이 무엇인가를 말씀하는데, 그 떡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임을 가르쳐 줍니다.  떡 상을 통해서 주신 다섯 가지 특별한 지시가 있었습니다. 


첫째, 상 위에 열 두덩이의 떡을 항상 진설하라.

  이 상위에 진열해 놓는 떡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나로 예언된 분이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분이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2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 하리라.”라고 직접 말씀하신 분입니다.


1) 한 줄에 여섯 덩이씩 열두 덩이를 만들어 진설하라(레24:5-6).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열 두 지파인데, 거기 떡을 열 두 덩이를 진설하라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열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은 내 것이라는 뜻이고, 하나님의 앞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만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떡은 아무나 먹지 못하고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만 생명의 떡인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아무리 많이 팔리고 아무리 쉬운 글자로 인쇄를 해서 싸게 팔아도 택한 백성이 아니라면 읽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사6:10에 보면 하나님은 누구한테는 당신의 진리를 알게 하시지만, 누구에게는 진리에 대하여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고 마음이 둔하게 하셔서,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택하여 은총을 입게 한 백성이 있고, 그 은총에서 제외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반드시 불러내시고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어 믿게 하시고,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분입니다(롬8:30). 행13:48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되어 있습니다.  


2) 떡 한 개의 크기는 에바 십 분지 이가 되게 하라.

 

그들이 광야에서 매일 거두어 먹고 있던 만나는 하루에 한 오멜씩 거두게 하셨는데, 그것은 1인의 1일 양식이었습니다.  출16:36에 의하면, 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설하는 떡이 에바의 십분의 2라면 그 떡 한 개가 두 사람의 하루 양식이고, 열 두 개면 24명의 양식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상위에 올려놓는 음식 치고는 대단히 많은 분량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전 세계인이 다 믿어도 그들 모두를 영생 얻게 할 수 있는 넉넉한 떡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한분의 희생으로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떡의 충분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공로는 세계 모든 백성들 누구라도 믿기만 하면 모두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넉넉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광야에서는 무엇으로 떡을 만들어 올려놓았을까요? 

 

성막을 만들 당시 광야에는 곡식이 없었는데 어떻게 떡을 만들어 진설병 상에 올려놓았을까요? 광야에서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로 차려 놓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먹는 양식은 만나였습니다. 그 만나는 그들이 농사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만나였습니다.  죽을 사람을 영생하게 하는 참된 양식은 무엇일까요? 어디서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참 구주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하셨습니다.


둘째, 곡식을 빻아 고은 가루를 만들고 불에 구워서 만들어라.

광야에서 그들이 먹은 양식은 가루로 된 만나였기에 빻아 가루를 만들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에는 농사한 곡식을 곱게 빻고 불에 구워서 진설병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통보리나 통밀로는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밀이 빻아져서 고은가루가 되어야 빵을 만들 수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 놓여 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이 극심한 고난에 빻아져서 가루가 되고, 불에 구워지듯 희생을 치러서 커다란 공로를 세우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데 그것을 무교병이라고 합니다. 빵을 만들 때 누룩을 넣지 않으면 부풀지 않아서 딱딱하고 모양도 없습니다.  이것은 고운 모양도 없었지만 온전히 무죄하셨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꽤 잘 살게 되겠지만 그들의 근본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였던 그들을 구원하여 주었고, 죄악과 사망의 노예로 절망하던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이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옷을 입고 거들먹거리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꾸민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진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다가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성소 안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이의 떡이 있었는데, 그것은 색깔이 화려하지도 않고 향이 특별하지도 않고 모양도 그저 그런 떡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떡을 당신 앞에 항상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꾸미고 위장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 진정한 속 모습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입니다. 잔뜩 위장하고, 사람이나 신경 쓰고,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위장한 사람은 하나님이 지옥으로 쫓아 보내십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란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누룩이란 거짓된 것, 변질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빵,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여야지 뭔가 가식이 들어가거나 부풀린 것은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모두가 자기를 멋지게 보이려고 야단입니다. 회사에서 사원을 뽑을 때 이력서를 보면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채용해서 일을 시켜보면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는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자기를 부풀리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지깽이도 못되면서 기둥이 하겠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은 볼품없어서 누가 사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떡을 당신 앞에 늘 진설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 같은 볼품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유명한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볼 때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서 “나 같은 것이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하면서 좌절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화려한 외모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바치는, 누룩 없는 진실한 사람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진실하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십시다. 


그런데 아무리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이라고 하더라도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음식입니다. 단지 부패 속도가 느릴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떡을 일주일마다 새것으로 갈아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패하는 우리의 본성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정기간마다 교체되어야 합니다. 한번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은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한번 회개했다고 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선도를 달아보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한 주일에 한번은 하나님앞에 나와서 마음을 바꾸어야 하고 새 떡을 먹어야 합니다.  매 주일마다 마음을 바꾸고 새 떡을 먹으러 결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모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자기를 부스러뜨리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자기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자기 개성, 고집, 이권추구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짐승제물도 죽여야만 제물이 되었고, 소제도 빻고 불에 태워야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신은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목사와 하나님이 내게 맞추기를 바라십니까?


셋째, 이 떡은 금으로 만든 떡 상 위에 올려놓아라.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이 떡을 진열하도록  떡 상을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교병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 앞에 있게 해 주려고 당신 앞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 앞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보잘것없는 떡을 위해서 만든 상은 금으로 싼, 아주 값 비싼 상입니다. 볼품없는 떡을 위해서 아주 아름답고 귀한 자리를 만들어 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도 아주 귀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자리를 하나님 앞에다 예비하여 두셨다는 것입니다(요14:1). 

순수한 믿음만 가지고 나아가면 자리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약속입니다.


올림픽에서 선수가 메달을 따면 곧 시상식을 하게 되는데, 시상식을 할 때 선수가 올라서는 시상대를 보면 자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금메달을 딴 사람은 제일 가운데, 가장 솟은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은메달은 그보다 조금 낮은 자리, 동메달은 더 낮은 자리에 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준비된 금상위에 올라앉는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고, 승리자가 아니고는 결코 올라설 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앞에 있는 최후 승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는 화려하게 자신을 꾸민 사람이 아니라 소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요, 항상 자신을 새롭게 하여 부패하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위한 금 자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자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남에게 뒤질까봐서 몸부림칠 필요가 있나요?


내가 하나님말씀에 관심 갖고, 날마다 새로워지려고 애쓰는 사이에 사람들이 나 대신 모든 것을 다 차지해 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지 못합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면 그만큼 시간이 모자라서 불신학생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주일 예배도 참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답니다.

 

불안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진실하게 살고 자기를 새롭게 하는 사람을 위하여 이미 승리자의 자리를 준비하여 놓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준비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자리 하나 준비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다니엘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포로였지만 당대 세계최강국에서 평생을 총리 했습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천국의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인생의 승리를 하였습니다.  느긋하게 살아갑시다.


넷째, 그 떡은 제사장이 만들어  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교체하라.

  이 떡은 오늘날 목사가 준비하는 설교와 같습니다. 제사장이 떡을 만들듯, 목사는 말씀의 떡을 장만하는 게 임무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주일날 목사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도들이 살아갈 것을 계시한 것입니다.


목사는 한손에 성경을 들고 한손에 신문을 보고 이 시대를 분별하여 이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요리하여 주일마다 여러분의 영적 식탁에 올려놓는 사람입니다. 고민 고민 하면서 기도하면서 만들어 내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주일날 결석하면 매우 중요한 생명양식을 공급받지 못하는 것이며,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져서 일은 고사하고 생명도 부지하기 힘들게 되는 것처럼 설교를 듣지 않으면 봉사도 무용한 것이며 무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밥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에는 영혼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요 4:34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고, 요6:27에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과 바른 삶을 위한 참된 양식입니다. 말씀을 사모합시다. 


성도는 주일마다 말씀을 먹으러 교회에 와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만나러 교회에 와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의 양식으로 채워 넣기 위해서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그분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분이고, 그가 무엇을 이루셨으며, 그가 무엇을 기뻐하시고, 그가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를 통해서 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와서도 설교를 듣지 않으면 예배드린 것이 아닙니다.  교사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이나 권사님들이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작은 것을 위해서 큰 것을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주의 날마다  새것으로 교체되는 새 떡을 먹으러 열심히 모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떡 상은 성소에 들어가서  맨 앞에 두라.

  성소 앞에는 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제물을 태워 바치는 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는 손을 씻고 얼굴을 비춰 보는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떡 상이 있고 왼쪽에 등대가 있으며, 안쪽 중앙에 향단이 있고, 그 앞은 휘장으로 가로막혀 있고, 휘장 안이 바로 두려움의 장소인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배치하라 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성막을 들어가기 전에 놋으로 만든 제단을 거쳐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신앙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이고, 다음에 물두멍이 있는 것은,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씻어내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막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떡 상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은 사람은 말씀 양식을 먹고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씀을 먹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말씀 읽지도 않고 설교시간 졸면서 교회일은 자기가 혼자 다 하려는 사람은 근본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 있고 아무리 유식하다고 해도, 말씀에 관심이 없고 말씀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는 아무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남의 가슴을 찢는 사람입니다.  유다서 10절에 “알지도 못하는 일을 비방하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 살다 망할 사람인데, 불의한 삯을 위하여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이고,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요란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교회의 암초가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떡 상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 자기 유익 등 다른 것에 주목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허망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면 결국 구원과도 거리가 멀고 교회의 암초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때문에 교회에 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 주일마다 떡 상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놀러 가더라도, 교회에 누구 미운 사람이 있어서 보기 싫더라도, 누가 등을 떠밀어 내쫓으려 할지라도,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으매 내가 어디로 가랴” 하면서 말씀 앞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주일마다 하나님앞으로 모여 생명양식으로 영혼을 배불리고 새 힘을 얻어서 세상에 나가서 승리하고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천국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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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1 출애굽기 진설병상 만들라 출25:23-30  성홍모 목사  2012-11-27 2889
7650 출애굽기 증거궤와 속죄소 [2] 출25:10-22  성홍모 목사  2012-11-27 4722
7649 출애굽기 순금 등대 출25:31-40  임덕순 목사  2012-11-27 2309
7648 출애굽기 법궤를 만들라 출25:10-22  임덕순 목사  2012-11-27 2815
» 출애굽기 떡상 출25:23-30  임덕순 목사  2012-11-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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