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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5: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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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성홍모 목사 |
참고 : | 2011. 1. 26 (수) 영주교회[서울 후암동] http://youngjoo.co.kr/ |
증거궤와 속죄소
오늘은 법궤 즉 증거궤와 속죄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세밀한 설계도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성막의 정확한 설계도를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신 성막에 대한 설계도는 가장 완벽한 설계도였습니다. 성막은 그리 크지 않은 천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막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부분은 성소, 또는 외소라고 했고, 안쪽은 지성소, 내소라고 불렀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하나의 궤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궤는 조각목으로 짜야 하는데, 조각목이라고 하니, 조각 조각난 나무를 이어붙이라는 말이 아니라, 나무의 이름은 싯딤나무라고 했는데, 원문에는 아체싯딤이라고 하였습니다. 조각목은 내구성이 강하고 단단하고 강한 나무여서 다루기는 힘들어도 한번 물건을 만들면 아주 오래 가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강수량이 아주 적은 광야에서도 자랄 만큼 강인한 나무요,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 가뭄에도 빨리 죽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아카시아과에 속하는 나무라고 하는데, 이 나무로 궤를 짜고, 그 안에 증거의 두 돌판, 언약의 돌판, 하나님이 직접 쓰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넣어 보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궤의 이름이 다양한데, 레위기16:2에는 ‘법궤’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16:2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고 했습니다.
언약의 두 돌판을 넣은 궤라고 하여, 언약궤, 증거의 두 돌판을 넣은 것이라고 하여 증거궤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 법궤는 성소의 휘장 안에 있었고, 흔히 법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법궤의 위 뚜껑을 속죄소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바로 속죄소 위에 나타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법궤는 싯딤나무, 조각목으로 만드는데,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나가는 궤였습니다. 한 자라고도 하는데, 한 규빗이라고 하면, 히브리말로는 암마라고 하여, 길이를 재는 단위였습니다. 일 암마, 일 규빗이라고 하면, 45.6cm라고 합니다. 길이는 2.5 규빗이므로, 114cm이며, 너비, 폭이 68.4cm, 높이가 68.4cm입니다.
이제 가로가 114cm, 세로가 68.4cm, 높이가 68.4cm의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상자를 정금으로, 순금으로 쳐서 싸는데, 상자 안팎을 둘러싸야 했습니다. 금덩이를 가지고 상자를 둘러싸도록 치고 늘이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위쪽 가장 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게 하였습니다. 금테는 예쁘고 모양 나게 장식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금이라는 것은 귀하고, 변치 않는 보석으로 여겼습니다. 궤를 순금으로 둘러 덮는 것은 이 상자가 보통 상자가 아니라, 아주 값지고 소중하고 아껴야 하고, 오랫동안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금이란 변치 않는 것이요, 아주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이 궤의 아랫부분, 네 발에 금고리를 넷을 부어 만들어야했습니다. 발이라는 말은 발이라는 뜻도 있지만, 구석, corner라는 뜻이 있어, 아래 모서리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쪽에 두 개, 저쪽에 두 개, 같은 말이지만, 금고리를 부어 다는데 앞 쪽에 둘, 뒤쪽에 둘을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으로 두 개의 채를 만드는데, 채라고 하면 둥근 막대기 장대인데, 그 채도 순금으로 쳐서 싸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채를 법궤의 금고리에 꿰어두고 빼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법궤는 아래쪽으로 고리를 만들고 채를 꿰어둔 채로 지성소에 두어야 하고, 옮기게 될 때에는 그 채를 들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채를 꿰어서 운반하게 하는 것은 법궤가 너무나 거룩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손을 대지 않게 하고, 부정을 입히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법궤는 쉽게 운반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우리의 어깨로 둘러메고 다녀야 합니다. 쉽게 운반하려고 수레에 싣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웃사가 죽은 것이 바로 법궤를 메지 않고 수레에 싣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들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법궤라고 무엇이 다른 것이냐, 다 같은 궤짝이라고 하면서 함부로 취급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항상 궤에는 채가 꿰어져 있어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옮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법궤, 증거궤 안에는 증거의 두 돌판, 십계명의 두 돌판을 넣어두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궤, 증거궤, 언약궤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법궤는 상자이지만, 뚜껑을 만들어 닫아두게 하셨습니다. 이 뚜껑은 나무가 들어가지 않고, 순금으로 만드는데,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였습니다. 법궤의 단면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이 뚜껑이 속죄소였습니다. 이 속죄소, 법궤 뚜껑은 양쪽 끝에 그룹이라는 영물을 조각하는데, 속죄소인 뚜껑의 금과 한 덩어리가 되게 하여, 그룹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아주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금물을 부어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손에 망치를 들고 두들기고 쳐서 그룹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양쪽에 있는 그룹은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어야 하며 그룹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하면서 속죄소를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룹(cherubim)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존재인데, 천사의 일종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선포하고 지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그룹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 기록으로 보아서 날개를 가졌으며,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며, 날개를 가지고 날거나 얼굴을 가리거나 하였습니다. 성경에 정확하지 않은 것은 추정할 뿐이지 정확하게 말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거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곳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한 영물들이었습니다. 그룹을 만드는데, 하나가 아니라, 둘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둘은 증거의 숫자요, 힘을 합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키는 영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법궤는 하나의 상자요, 율법의 두 돌판을 담아놓는 궤짝이었습니다. 그런데 속죄소는 이런 율법의 두 돌판이 보이지 않게 덮어두는 뚜껑입니다.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덮어두는 뚜껑이었습니다. 법궤의 상자를 돌아가면서 가장 자리로 돌아가면서 금테를 둘렀는데, 뚜껑이 닫혀질 수 있게 하였을 것입니다. 상자의 윗부분에 둘려있는 금테가 뚜껑이 잘 닫히는 작용을 해주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는 장소요, 죄를 사해주시는 곳이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시온소였습니다. 이 법궤 뚜껑 속죄소는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백성의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을 위하여 속죄소에 피를 뿌리면서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속죄소라는 말은 ‘덮는다’는 말인데, 용서하다는 말입니다. 이 속죄소는 율법의 말씀을 덮어둔다는 뜻으로, 모든 죄가 제거된 것처럼 죄를 용서하시는 장소입니다.
이 자리를 자비의 자리,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자리요, 초월적인 하나님,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당신의 발을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이곳은 은혜를 베푸는 곳이라 하여 시은소입니다. 안에는 공의의 상징인 율법의 두 돌판이 들어 있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상징인 속죄소에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달아 알라고 하십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용서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있습니다.
모세는 성막,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민수기7:89입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에서 법궤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 법궤와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0:33-34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을 할 때 언약궤와 함께 움직이고 그들이 진을 칠 때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장막을 세웠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임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시면 그들은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이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긴 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나라를 지리멸멸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의 현상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언약궤를 짊어지고 요단강을 건너갔으며,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제사장들이 이 언약궤를 짊어지고 성을 돌았습니다. 그 때에 그 성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법궤는 편리하게 수레에 싣고 가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짊어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시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레 16:14절에는 속죄소는 난하주에 ‘시은좌 곧 은혜의 자리’라고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이스라엘과 만나기를 약속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할 모든 것을 이르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속죄소란 바로 이스라엘의 자녀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속량하는 처소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처소로 지정된 곳입니다. 영문 번역에서는 흔히 이것을 ‘mercy-seat’‘은혜의 의자’라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심히 연약하고 부족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십계며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셨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사람답게 살게 하시고, 그래도 부조하고 연약하기에 죄를 지으면, 속죄소에 나와 죄를 용서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에 임재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지시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아주시고, 있었습니다.
성막, 회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에는 법궤, 증거궤를 안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성막이 멋지다고 하여도 이 법궤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 법궤는 율법의 두 돌판을 보관하면서 죄를 속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율법의 두 돌판이 자리잡아야 하고, 그 위에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를 덮어주어야 합니다. 속죄소에는 일년에 단 한번 속죄제를 지내면서 피를 뿌리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그 모든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주어지는 법궤, 증거궤는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법궤와 속죄소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법궤와 속죄소는 우리의 신앙의 핵심인 말씀과 용서를 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용서받은 감격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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