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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 확신

출애굽기 서정호 목사............... 조회 수 1847 추천 수 0 2012.11.27 14: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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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25:17-22 
설교자 : 서정호 목사 
참고 : 영암교회 http://www.youngahm.or.kr 자료실 http://sjpc7474.com 

영성회복(1) 속죄의 확신

 

회개/순종 /

사람은 죄를 지으면 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또 죄 값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 성공하는 삶, 더 나아가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려면 이에 앞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됩니다.

 

26살 된 한 처녀가 우울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누웠을 때, 3년 동안 대소변을 다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에 그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돌아가실 무렵 어머니는 음식을 제대로 못 드시는 상태여서 귤 하나를 까서 먹여드리고 나갔는데 그만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귤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라고 믿고는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간호를 하면서 때로는 어머니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간병하느라 26살, 젊은 나이에 직장도 못 다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게 여겨져서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가 가졌던 죄스러운 마음이 우울증과 공포에 빠지게 했습니다. ‘나는 어머니한테 죄를 진 자다. 나는 그 죄 값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우울증과 공포의 원인은 바로 ‘죄책감’이었던 것입니다.

 

죄는 인간을 병들게 합니다. 죄의식과 죄책감은 인간의 기쁨을 빼앗아 가고, 마음의 평강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데 이 죄악에 대한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은 마귀가 천국에 올라가려다 천사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사탄은 “저기 저 사람들은 나 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고 나는 딱 한 번 죄를 지었을 뿐인데 왜 천국 못 가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저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지었으나 회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너는 딱 한 번 죄를 지었지만 지금까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개하는 마음, 뉘우치는 마음이 있어야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소설가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죄를 회개한 뒤에야 하나님 앞에 나갈 용기를 얻을 수가 있다.” 회개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했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미국에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생활한 김춘근 장로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이제는 됐다. 성공했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요, 박사요. 내 인생은 이것으로 새 출발하고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만족했습니다. 학생들도 따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나이 37세에 간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진단하기를 ‘당신의 간은 수술할 수 없습니다. 전부 다 망가졌기 때문에 당신은 1년 안에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한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서 그는 그만 절망에 빠졌습니다. 수술할 수도 없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접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국 만리에서 애쓰고 고생하면서 공부해서 박사학위 받고 이제 교수가 되어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왜 나에게 이 비극적인 저주의 병이 생겼습니까? 무슨 죄를 졌습니까?”

 

그는 식이요법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병은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하나님과 담판을 하기 위해서 빅 베어 마운틴이라는 큰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죽든지, 기도해서 낫든지 결판을 내자는 심정으로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내 배운 지식도, 내 경험도, 내 지위도. 하나님 차라리 저를 쓰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를 데려 가지 마십시오. 한 번만 살려주시면 내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종같이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궁지에 몰려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갑자기 그에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네 핏속에 독이 있어서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네 영혼 속의 독 때문에 죽는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간병으로 죽어 가는 줄 알았는데 내 영혼이 병들어 죽어간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나간 모든 죄를 활동사진처럼 보여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 교만했고, 사람 앞에 교만했다. 너의 죄는 바로 교만이다. 네가 남보다 좀 더 똑똑하다고, 공부 잘했다고, 남보다 지식을 쌓았다고 너는 얼마나 인생을 교만하게 살았느냐? 너같이 교만한 사람은 죽어야 된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이 ‘교만’이라는 죄를 졌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교만 죄를 회개합니다. 교만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겸손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그러자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이 밀려 왔습니다. 살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살 수 있습니까? 내가 산다면 삶에 대한 표적을 좀 보여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6시간 동안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안고 등을 두드리면서 세 번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나서 ‘이제 나는 교만 죄를 용서함 받았다. 하나님, 이제 내가 배운 모든 지식과 명예를 통해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충성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식이요법과 기도를 병행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자 2년 동안에 모든 병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알래스카 주립 대학교에 초청을 받아서 교수가 됐습니다. 그는 정치학 박사인데도 주지사의 경제고문을 맡게 되었으며, 그가 펼친 정책이 알래스카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알래스카 주민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정치,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그는 알래스카에서 요새 가장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청년들, 주변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고 아메리카, 카나다의 청교도 신앙을 되찾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회개하면 질병, 저주, 패배, 어떠한 상황에 있다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순종하면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더 크게 사용하시기 원하시며, 하나님 말씀에 기록된 모든 기적을 여러분에게 행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불순종의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민족을 살리고 또 주의 뜻을 완성하며, 한국을 통해서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하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은 ‘순종함’을 통해서 주장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단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하나를 든다면 자신의 허물이나 실수나 잘못한 것에 대해 지적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싫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어린 아이에게 잘못한 것을 말해 보십시오. 철 없는 어린 아이일지라도 그런 소리는 듣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이제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어른에게 허물이나 실수나 잘못한 것을 한 번 지적해 보십시오. 자신 있게 말씀 드리는데 분명히 문제가 일어납니다. 부부 사이라면 부부 싸움이 일어납니다. 교인 사이라면 서먹서먹한 관계가 됩니다. 친구 사이라면 친했던 사이가 소원해 집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약점, 허물, 실수, 잘못 등을 지적하거나 충고할 때 우리는 잘 받아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겸손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지적이나 충고에 대해 보통은 날카롭게 반응합니다. “그래. 난 그렇다. 그래, 넌 얼마나 잘났냐?”라고 하며 싸울 듯이 달려 듭니다. 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닫고 속으로 이를 갑니다. “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래 너 어디 두고 보자.” 큰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흑인들의 검은 피부가 그들의 어두운 부분이듯이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어두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이 들어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만일 들어나게 되면 자신의 추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사람에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범죄한 후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아담을 찾았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 저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자기를 찾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은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교제를 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따먹지 말라는 것을 따먹고 나니 이제는 피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면 자신들의 어두운 부분이 들어나기 때문에 숨은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허물과 약점과 실수와 잘못을 숨기려는 본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나오기를 싫어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자신의 추한 모습이 그대로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어두움 속으로 숨습니다. 이런 사람을 향해 예수님은 외쳤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였다.” 

 

그러나 감춘다고 아주 감출 수 있습니까? 숨는다고 아주 숨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점잖은 척한다고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당분간은 그렇게 위장하고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백일하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세상 비밀도 시간이 지나면 다 폭로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서 안 드러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감출 수 없고,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내가 귓속으로 속삭였던 말, 본인이 안 듣는 데서 욕한 것, 아무도 안 본 데서 저지른 죄,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말한 것이 녹음 테이프가 돌아가듯이 줄줄 나옵니다. 내가 한 행동이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이 다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지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아주 명백하게 다 드러납니다. 

 

그러니 나중에 어짜피 다 드러날 바에야 지금 드러내는 것이 좋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지금 드러내는 것이 좋습니다. 괴로워도 지금 내 놓으십시오. 그러면 매를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숨겨 두었다가 나중에 드러내면 늦습니다. 지금 드러내면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 드러내면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괜히 숨겨 두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손해를 보지 마시고 빨리 하나님 앞에 내 놓으시기 바랍니다.

 

선악과를 먼저 따 먹은 것이 아담이 아니고 하와였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죄가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이유를 이것으로 설명합니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더 많아 탑니다. 특히 자기 몸을 내 보이는 일에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계십니다만, 여자들이 부끄러움과 수치를 그렇게 타면서도 산부인과 의사 앞에 가서는 다 내 놓습니다.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이고 수치고 뭐고 다 없습니다.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다 내 놓고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다 내 놓아야 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찾지 않으면 죽게 되듯이 죄를 지은 인간도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부분이 있어 내 놓기 싫다 해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정확하기 진단을 받습니다. 그리고 또 살 수 있는 정확한 처방도 받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의사가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그 때에는 무면허 돌팔이 의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돌팔이 의사에게 주사를 잘 못 맞아 죽을 뻔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병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을 받으려면 돌팔이 의사에게 가면 안됩니다. 실력 있는 의사에게 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누가 정말로 실력이 있는 의사인지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실력 없는 의사에게 가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받다가는 오히려 병이 더 악화됩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정말로 실력 있는 의사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아십니까? 그 분은 나를 만드셨습니다. 모태에서 나를 조성하셨습니다. 나의 장부를 지으셨습니다. 내 얼굴과 몸과 팔과 다리를 만드셨습니다. 내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내 머리털이 몇 개인 것까지도 다 아십니다. 나의 오장 육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훤하게 아십니다.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만든 사람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900년 초반기에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주고 차를 샀습니다. 기분 좋게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서 버렸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차가 선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차가 옆에 와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차에서 한 신사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고장난 자기 차로 왔습니다. “내가 한 번 봐 드릴까요?” 낙심하고 있던 차 주인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얼른 대답했습니다. “그럼이고 말고요.”신사는 엔진을 잠시 보더니 어느 한 곳을 만졌습니다. 그랬더니 엔진이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차 주인은 너무 신기해서 “선생은 언제 그런 기술을 익히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신사는 나는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가 만든 차니 얼마나 정확하게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만큼 내 문제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 주십니다. 또 나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죽지 않고 살게 해 주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도 다시 찾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처에게 간다거나, 돌이나 나무로 새겨 놓은 우상에게 간다거나, 귀신에게 가서 굿하고, 점치면, 운세를 보는 것은 돌팔이 의사에게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데 가면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문제를 크게 만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주 팔자를 보거나, 궁합을 보거나, 점을 치거나, 길흉을 택하여 이사를 가거나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귀신에게 내 영혼을 잡수십시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에게 “나는 당신의 것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과 질병과 슬픔과 전쟁과 죽음의 문제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인간이 이렇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당초 그런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 질병, 슬픔, 전쟁, 죽음 등 이런 것은 당초에는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는 이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구조와 체제를 바꾸면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치와 경제를 잘 하면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윤리와 도덕을 잘 지키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 사항입니다. 지금까지 수 천년 간의 인간의 역사를 보십시오. 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 동안 많은 시도와 노력을 하였지만 원점에서 맴돌았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시도와 노력들은 헛수고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드러내야 합니다. 감추인 것을 꺼내야 합니다. 보자기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강퍅하고 교만한 인간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감추고 숨긴 상태로 갈 데 까지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종말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짐짓 모르겠다고 합니다. 공부를 안 하면 시험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안하며 고집을 부리는 학생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나오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병을 고치기 위해 먼저 진단해 주십니다. 어떤 진단 결과 나옵니까? “너는 죄인이고, 죄의 씨앗이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편51편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움직여서 인간이 죄인인 것을 말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에도 죄를 짖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진단에 얼마나 반발을 합니까? “뭐라고? 내가 죄악 중에 태어났고 내 어머니는 죄 중에서 나를 배었다고? 그래서 죽는다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말아라.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며 씩씩 거립니다. 교회에 왔다가도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파래져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칼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교회에 안 나오겠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자기의 어두운 부분이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숨기려는 본성 때문입니다.  죄를 지적하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현대 교회에서는 가급적이면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설사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매끄럽게 합니다.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용어는 피하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예를 들면 “죄”라는 말 대신에 “인간의 약점”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말 대신에 “허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심판”이라는 말 대신에 “없어지는 것”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 큰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옳거니, 죄가 뭐야, 인간의 약함이지.”,  “죽음이란 말을 싫어. 허무라는 말이 듣기 좋아.”,  “심판은 끔찍해, 없어진다는 말이 더  좋아.”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직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다니고 계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내가 지은 죄를 깊이 깨닫고 안타까워 해 본 적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사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이 예배드리고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혹시 그런 분들이 지금 계시다면 하나님께 도움과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죄인 것을 알게 하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중에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변화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이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고는 있지만 나와 관계가 별로 없는 것같이 느끼고 계신 분들을 안 계십니까? 십자가 앞에서 내가 지은 죄를 인해 애통하며 회개해 본 경험이 없이 교회에 다니고 계신 분들은 안 계십니까? 혹시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십자가 앞에서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 자신의 죄를 놓고 애통해 보지 않은 사람,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과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 나의 문제가 죄 때문인 것을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쳐 보지 않은 사람은 새롭게 변화를 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능력 있는 그리tm도인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 놓고 죄와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 받으십시오. 신앙과 믿음의 문제를 해결 받으십시오. 하나님께 순종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심판과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부디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처방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 들고 나와야 합니다. 왜 하필이면 십자가 앞입니까? 십자가가 나의 죄를 사해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이 말씀 드리자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나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내 죄를 가지고 나와서 통회 자복할 때 그 피로 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그런데 죄가 사함을 받기 위해서 왜 피를 흘려야 했습니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이는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17장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로서 생명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서는 죄를 지었을 때 동물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내가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내가 죽을 수 없으니 대신 동물을 죽였습니다. 동물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여 내 생명이 속함을 받았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동물의 피로 내 생명을 바꾼 것입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이것을 행하면서 장차 오셔서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죽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피는 죄가 있는 사람의 피로서는 되지 않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의 피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그런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여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는 죄를 사하고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죄라도 사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내 마음 속에 믿고 받아드릴 때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능력으로 나타나 내 죄 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걸렸던 영혼의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죽을 내가 죽지 않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을 수 있는 한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는데 대신 예수님을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다 전가시키고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내가 죽지 않고 대신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것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병든 내 영혼의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병균을 몸 속에 잔뜩 가지고 있는데 어찌 병에 걸리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불의와 탐욕과 악의와 시기와 분쟁과 악독과 음란 등의 죄악을 영혼 속에 가득히 가지고 있는데 어찌 영혼이 병들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십자가 앞에서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사람, 자신의 죄를 놓고 애통해 보지 않은 사람,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과 함께 회개의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 나의 문제가 죄 때문인 것을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쳐 보지 않은 사람은 새롭게 변화를 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연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1. 영성 회복의 기회를 가지자

 

7-8월이 되면 각급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고 이에 맞추어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갑니다. 피서란 더위를 피하여가는 여행인데 사실 더 더운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피서 행렬로 인하여 길에서 받는 스트레스, 피서지에 가서 덮어씌우는 바가지 요금, 민물이 부족해서 제대로 씻지 못하여 격는 불쾌감 등등 갈 때마다 대체로 후회하고 돌아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학교나 직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사람들이 한동안 휴가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이 많습니다.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지고 공부에 집착되지 않아서 애를 먹는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휴가의 의미대로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이기보다는 그냥 놀러간다는 식으로 휴가를 보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들의 심신을 쉬어주며 재충전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면서 재충전하는 것이 계속 달음박질하는 사람보다는 더 지혜롭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깨 농사를 짓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깨를 늘 날것으로 싶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 갔다가 우연히 볶은 깨를 먹어 보게 되었습니다. 단연히 고소하고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볶으면 이렇게 맛이 있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그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아예 깨를 볶아서 심으면 힘들이지 않고 고소한 깨를 수확할 수 있겠구나' 이 어리석은 농부는 그 다음해에 그렇게 해서 볶은 깨를 밭에 뿌렸습니다. 그 해 아무리 기다려도 깻잎은 올라오지 않았고 한 톨도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과정을 무시하고 급하게 욕심을 가지고 살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심신이 휴식하며 재충전을 해야 하듯이 우리의 영성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성을 재충전하지 않고 세상을 살며 교회 봉사하기에만 급급하면 우리의 영성이 파리하게 시들어 가게 됩니다. 자칫 영력을 상실할 위험 있습니다. 영성 회복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2. 회복해야 할 기초 영성

 

실제로 영성이 부족하여 신앙생활 하는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드나듭니다. 봉사 생활을 합니다. 그 중 무척 힘들게 신앙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듯이 목사도 여러분의 영성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한의사가 손목을 만져 진맥을 합니다. 그 손목에서 병의 상태를 거의 진단합니다. 못지 않게 목사도 여러분의 눈빛이나 말투를 듣고서 여러분의 영성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보이는 영적 질병이 "하나님 은혜에 대한 무감각증"입니다. 이 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불신"입니다. 이 것 때문에 사도 바울이 통탄해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신앙생활을 오래하는 중에 하나님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는 하되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무감각해지는 영적 현상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하며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는데 그 마음엔 주께서 주시는 은혜에 대하여 기쁨도 감동도 없는 상태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너무도 병이 깊은 상태인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아마도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저는 어떤데요?"하고 물으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 모든 성도들에게 공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개개인들을 진단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진단 할 수 있는 자가 진찰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분이 와서 묻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일평생 죄를 짓고 살다가도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찾아도 구원받는다면서요?" 그랬더니 목사님은 씩 웃으시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또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람이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죄가 되어 그는 지옥에 간다면서요?" 역시 목사님은 씩 웃기만 하시더니, 되물으셨습니다. "작은 돌맹이가 배 없이 바다 위에 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그럼 큰 돌맹이를 실은 배는 바다에 가라앉겠습니까? 아니면 뜨겠습니까?" "뜨지요!" 그렇습니다. 여기서 큰 돌맹이든 작은 돌맹이든 바다 위에 뜰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배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생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의 경중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즉 우리들의 영성을 진찰할 수 있는 기초법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며 살 고 있는냐?" 하는 질문입니다. 3. 속죄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은혜는 곧 속죄의 은혜입니다. 즉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인데 그 죄를 용서 해주심은 곧 우리를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오늘 출애굽기 본문은 성막 설계도 중의 일부입니다. 성막은 출애굽을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였는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 건축 설계도를 친히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성막의 가장 중앙이 곧 지성소인데 그 지성소에 둘 성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성소엔 언약궤를 두도록 했습니다. 언약궤란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돌비를 넣어둔 상자입니다. 그리곤 그 상자의 뚜껑을 만들어 덮게 했는데 그 뚜껑을 속죄소라 불렀습니다. 이것은 매우 깊은 영적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돌비를 보려면 속죄소 뚜껑을 열어야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죄인은 자기의 죄를 속죄함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죄함"은 곧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속죄함 받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속죄소 뚜껑을 정금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속죄(소)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속죄소 뚜껑 위에 스랍(천사) 둘을 세워두어 그 뚜껑을 지키게 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론 열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오직 그 뚜껑을 열 수 있는 분은 예수님이심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분문 마지막 절인 22절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여러분! 속죄함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속죄의 은혜 안에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하면서 그 동안 속죄소를 떠나서 다른 곳에서 많이 살았던 우리의 걸음을 이제 속죄소로 옮겨 영적 피서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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