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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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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경수 목사 |
참고 : | 2003 형제감리교회 http://brotherch.com/ |
성막을 만들라
서 론
우리 교회는 2015년 선교센터 세우기를 목적하고 있다. 그 일의 시작으로 2003년, 성전을 건축하기로 하였다. 15년 전, 월세교회로 시작되어 이제 겨우 형제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호사다마이다. 기분 좋게 2003년을 시작하였는데,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건물을 주저앉히기만 하였을 뿐 전혀 건축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차문제와 소음문제란다. 실제적인 이유는 집값 하락이란다. 그러니 우리보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지, 아니면 상가를 지어 분양하고 돈을 벌어 다른 곳에 교회를 세우란다. 이 과정 속에서 생긴 4천여만원의 빚은 우리가 실수했으니 그냥 다 떠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업자도 시기를 마냥 늦출 수는 없다며 압력이 아닌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일까? 교회 건물이 없는 교회도 물론 있다. 체육관이나 시설을 빌려서 예배를 드린다. 아예 자가 교회를 세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교회도 있다. 우리는 고민해야 할 때이다. 여러 방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기도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을 했으면, 기도했으면 그것을 위해 전력 투구해야 할 것이다.
본 론
구약에서 교회는 카할에 대한 번역이다. "만남" "모임"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지금 우리가 읽은 본문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용된다. 신약에서 교회는
첫 번째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불림 받은 사람들의 집회를 일컫는다.
두 번째로 특정 지역의 거주민들로부터 모여진 신도의 공동체를 말한다. 지금 우리 교회처럼 특정한 장소에 모인 경우를 말한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인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시작이고,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것이다.
교회를 지칭하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단어가 있다. "선택한다"라는 동사와 그리고 "선택된 자들" "뽑힌 자들이라는 명사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뽑으셨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뽑으셨다는 말이다.교회를 가리키는 희랍어 중 큐리아콘이 있다. "주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라틴어와 독일어를 거치면서 영어의 church가 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결코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자기 돈을 1억원이나 헌금으로 드렸다고 해서, 혹 100억원을 헌금으로 드렸다고 해서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미 그곳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질 수가 없다. 교회의 시작은 철저하게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사 5:2 a) 이 말씀은 좋은 포도나무를 얻기 위하여 고르고 골랐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 교회에 아무나 데려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교회를 채우기 위하여 가장 뛰어난 극상품 포도나무 된 사람들을 골라서 채우셨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곱씹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선택하셨고, 내가 그 선택에 응답하였기 때문에 지금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나"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선택은 참으로 탁월한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요, 이렇게 고백하는 장소가 교회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째 노예로 살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복을 받고 살아야 하는 백성이, 잘되고 잘되어야 하는 백성이 저렇게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저 이스라엘은 노예로 살 사람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 사람들인가?
모세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또 너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이집트의 임금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이제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하고요구하여라."(출 3:18) 출애굽을 하여야 하는 이유, 구원받아야 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예배인 것이다. 예배를 드리기 위함인 것이다. 노예로 살면 아무래도 예배 드리기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가 이야기를 했다. "그 때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부탁하였다. "너희는 주께 기도하여, 개구리들이 나와 나의 백성에게서 물러가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 백성이 주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너희를 보내 주겠다.""(출 8:8)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어보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지적하는데,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출애굽의 기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배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그래서 거짓 예배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만나주시게 되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면,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가? 그곳은 교회이다. 선택받은 사람들이 선택받은 장소로 모여드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예배는 하나님이 자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면서 생긴 이름이다. 다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난다는 중요하다. 의미가 있다. 이것이 본문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출 25: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나를 만나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왜 창조하셨는지 살펴보면 그 이유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찬송이,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라고 한다면,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는 교회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시작한 성전 건축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쉽게 도와주는, 하나님께서 거하시겠다고 하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의 가장 거룩한 행위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간다. 이때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을 인도한 신이라며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그 금송아지를 향하여 예배하는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며 예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예배 받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모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우습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원한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확실하다고 하고, 믿지 못하겠다고 하고, 거절한다. 그리고 자기 눈에 보이면 믿을 수가 있다고 하고, 확실하다고 이야기를 한다.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신 모세가 눈에 보였다. 눈에 보이는 그 무엇, 지금은 그 무엇이 모세이다. 모세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사라지게 되자 하나님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고 나섰다.
불쌍하다. 모세를 통하여 보여지는 하나님은 아주 작다. 모세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어떻게 모세가 하나님의 전부를 보여주고, 나타내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무지한 사람들은 모세를 통하여 보여지는 하나님만이 전부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무지하다.
약하면 약할수록 눈에 보이는 것을 원한다.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설명하려고 할 때 추상적인 것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학교에서 설교를 할 때에는 반드시 아이들 눈에 보여지는 그 무엇을 들고 설교를 했다. 그때 비로소 아이들을 이해를 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장성하지만, 3백만을 훨씬 넘는 많은 숫자이지만, 신앙적으로는 아주 미숙한 어린아이이다. 눈에 보여지는 하나님을 믿기란 그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러기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단 40일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 것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안다. 오죽하면 집을 지키는 신, 부엌을 지키는 신, 화장실을 지키는 신, 빗자루를 지키는 신.... 온갖 것에다 그렇게 신의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을까? 그만큼 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연약하다는 증거이다.
그걸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먼저 말씀하신다. 모세가, 이스라엘이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 눈에 보여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여지는 그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성막은 무엇으로 만드는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나에게 예물을 바치게 하여라. 누가 바치든지,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에게 바치는 예물이면 받아라."(출 25:2) 이스라엘이 가진 것들 중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면 예물이 된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동일하게 말씀한다. "각자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고후 9:7)성막은 그 밑에 기록되어 있는 금이나 은과 같은 보물로 만들어지지, 세워지지 않는다. 성막은 바로 성도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가 정말 어렵게 성전 건축을 진행하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났다.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집을 팔 때에 집값이 떨어진다면, 그 떨어진 것만큼의 차액을 보상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교회 주변의 집들이 교회에 집을 팔 때 손해를 보면서 판 경우가 지금껏 한 번도 없다. 평당 30만원 이상을 더 받으면 받았지, 덜 받고 판 역사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참 어거지를 쓰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7)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말고는 여러분에게 덮친 시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고전 10:13)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 5:11~12)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나의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져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입니다."(히 10:38~39)
"모든 훈련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생각되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연단 받은 사람들에게는 의로움이 깃든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꼿꼿이 세워서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저는 다리를 삐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 12:11~13)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히 12:4)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사람이다. 악의 세력이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을 말한다. 악이 승리하도록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수고해야 할 때 수고하지 않고,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할 때 맞서 싸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악이 이기도록 하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하다면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악의 세력이 이기는데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세력이 이기도록 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당장 기도하는 일부터 시작하라.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싸울 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했으면 기도한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당장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 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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