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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거처인 여호와의 성소

출애굽기 김강호 목사............... 조회 수 1889 추천 수 0 2012.11.27 15:23:23
.........
성경본문 : 출25:1–31 
설교자 : 김강호 목사 
참고 : 은혜와평강교회 http://www.gap.or.kr 


25: 1- 7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릴 예물- 성소의 재료

25: 8- 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25:10-40 성소의 기구들(언약궤와 속죄소,떡상,등대)

26: 1-30 성소를 덮는 장막과, 널판

26:31-27:8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 놋제단

27: 9-20 성막의 뜰
27:20-21 성소의 불을 켜는 기름

28: 1-29: 제사장의 옷과 위임식

30: 1-10 분향할 단
30:11-16 생명의 속전

30:17-21 물두멍

30:22-33 성소와 제사장을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함

30:24-38 증거궤 앞에 두는 향품

31: 1-11 성막을 만드는 직공-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하심

31:12-18 안식일을 지킴-영원한 언약의 표,

        하나님이 친히 쓰신 증거의 돌 판을 주심

 

출25:-31:18 언약의 거처인 여호와의 성소

25: 1- 7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릴 예물- 성소의 재료

25: 8- 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 산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25:-31:은 언약의 식사 후에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같은 자기의 영광으로 모세를 불러들이시고 제 7일 안식일에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를 하늘의 식양대로 짓게 하시고, 그 성소에서 여호와를 봉사할 제사장 제도에 대해서 명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피의 언약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친히 함께 거하시며 그들이 즐겨 드리는 예물을 받으심을 계시한 것이다.  시내산 꼭대기에 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이스라엘 진중에 함께 거하시며 제사장을 백성의 대표로 세우시고 그의 장막에서 섬기게 하신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성소는 하늘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지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요, 휘장으로 가리운 영광이다. 하늘에서 보이신 식양은 성신이 가르치신 식양이며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한 자들로 짓게 하셨다(대상28:12). 이 은혜의 임재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에서 완성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성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소에서 가리움이 없는 영광의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히8:).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신 교회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신령한 성소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즐거이 예물을 드리는 백성으로 구원되었으며, 여호와의 성소는 그들이 즐겨 여호와께 드리는예물로 짓게 하셨다. 이들이 드린 예물은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애굽 백성에게서 받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모든 이방을 정복하게 하시고 안식을 주셨을 때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전을 지을 예물을 준비하였고,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집을 짓도록 언약하신 그 아들에게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명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다윗을 세우시어 이방을 정복하시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려 성소를 짓게 하심으로(대상29:) 이방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전을 짓게 하셨다(대하2:).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성소는 불타고 이방인들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은 진실하여 고레스를 그 종으로 지목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짓게 하시고(스1:2-11, 6:3-10, 7:15-26), 장차는 만국을 진동하여 만국의 보화를 유다 자파 스룹바벨이 지은 전에 모으시겠다고 언약하셨다(학2:5-9).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옛 성전 시대를 끝내시고, 만국의 백성이 그 모든 영광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돌리는 영광스러운 나라를 지으셨다(마2:1-12, 28:16-20).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장차 재림하시어 그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 것이다(계21:24). 만국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즐거이 헌신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짧아도 그 책 전체는 여러 번 부드럽게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분별하면 개별 본문들을 해석하는데 훨신 정확도를 기할 수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 25-31장 까지는 그 앞에 24장 제일 끝에 모세를 하나님이 시내 산으로 부르셨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갔고 그리고 제 칠일 안식일에 하나님의 음성이 모세에게 들렸다. 그런데 그 불은 시내 산 밑에 있는 백성이 봤을 때는 맹열할 불같이 보였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서 십계명에 대한 이야기를 쭉 했다. 그런데 왜 또 부르시는가? 그런 말씀이다. 이 부르심은 언약 체결 식사가 끝난 뒤에 부르셨다. 그렇게 해서 여러번 말씀을 드리지만 동심원적인 물결구조가 있으니까 그것을 잘 분별해라 하는 말이 그 말이다.

 

그전에 한 번 부르셔 놓고 또 다시 부르신다. 그런데 이번 부르실 때는 누구하고 같이 부르시는가? 이제 여호수아도 함께 올라오라 그런데도 나중에는 여호수아 이야기는 안 나오고 모세 이야기만 쭉 나온다. 그런데 이 전에 불렀을 때는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갔어도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구름 가까이 나아갔지 구름 속으로는 들어갔다고 그렇게는 안되어 있다. 그런데 언약 체결을 하기 전에 모세는 너는 내 가까이 나아 오고 아론과 그 아들과 칠십인 장로들은 멀찍이 섰고 그리고 백성들은 아예 산에도 올라오지 말고 이렇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24장에 특별한 은혜는 칠십인 대표자들이 올라가고 아론의 두 아들이 올라가는 것이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대표자를 불렀을 때 하고 다른 상황이다. 백성의 대표자와 함께 또 아론과 함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아론의 두 아들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이 여기서 하나님께서 언약 체결하는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거기서도 간격이 있다. 모세 너는 가까이 나아 오고 아론과 두 아들과 칠십인 장로들은 멀리 섰고 백성은 올라오지도 말고 그렇게 간격이 있었다.

 

이제 언약 체결을 하고 나서 언약 체결은 언약의 법을 책에 쓰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친히 그 피를 양쪽에 뿌려서 한 피로 자기 백성을 묶으셨고 그리고 나서 언약 식사를 했는데 시내 산으로 그 대표자들을 올라오게 해서 잡수셨는데 이제는 빽빽한 구름 같은 것은 없고 청명하더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전에는 올라오지 말라고 간격을 뒀는데 여기는 모세나 아론이나 칠십인 장로나 아무 간격이 없이 함께 공동 식사를 하고 있다. 그것이 언약 체결 식사였다. 그러면 일단 여기서 언약은 완성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언약 체결을 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 식사가 있으니까 일단 한 번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 산으로 부르셨다. 오늘 25장부터 하지만 실은 지난 시간에 시내 산으로 부르신 그 기사가 새로운 문단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시내 산으로 부르셨는데 누구를 부르셨냐면 모세와 여호수아를 들어오도록 했고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는 아론과 훌이 모세 없을 동안에 지도자가 될 것이다. 아론은 대제사장이고 훌은 유다 지파다. 그들이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올라가는 사람을 보니까 모세와 아론을 올라오라 하지 않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올라오라 그랬다. 그러면 이 앞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렀을 때 그 다음 아론 부르고 칠십인 장로를 불렀을 때 야 여호수아는 항상 모세의 비서니까 옆에 따라 다녀라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때는 여호수아 이름은 말도 하지 안았다. 이제 언약 식사가 끝나고 나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을 때 여호수아를 지목하고 함께 올라오도록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언약이 새롭게 되고 있다. 이 앞에 언약 식사하면서 일단 한 번은 끝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 발아래서 먹고 마셨기 때문에 그렇다. 끝났는데 이제 새로운 대표자를 부르는데 보니까 모세와 함께 올라오도록 한 여호수아가 있다.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없을 동안에 백성을 지도하는 것은 아론과 훌이다. 그런데 그 때 모세는 어떻게 올아 왔느냐 하나님이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갔다.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엿새 동안에는 구름이 가리고 있었는데 제 칠일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모세를 불렀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영광의 구름 속으로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는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고 있다. 그 전에는 들어오라고 그랬는데 아직 대면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말씀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전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제 영광의 구름가운데로 들어간 중보자는 모세와 여호수아다. 그래도 아직도 모세가 앞자리고 여호수아는 여전히 종으로 있기 때문에 전면에 나타나지 않아도 들어오라 한 사람은 모세와 여호수아다. 이제는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그전과는 상황이 굉장히 달라져 있다.

 

이전 언약 체결에서는 구름 가운데로 들어갈 수가 없다. 이 구름은 산밑에 있는 백성이 보았을 때는 맹렬한 불 소멸하는 불이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언약을 확증한 이야기가 31장 까지 나온다. 거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 하나님이 자신이 돌판에 쓴 언약의 법을 주셨다. 이전에는 모세가 책에 썼다. 이제는 돌판에 새긴 법을 주신다. 이제는 돌판에 쓴 법하고 무엇이 연결되냐? 돌판에 쓰셨다는 앞에 내용까지가 돌판에 쓰신 법을 주셨다는 내용과 같다 그 말이다. 하나님이 언약의 법을 기록해준 것이 언약 체결 이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성막제도 제사장 제도 이것과 돌판에 써서 주신 이것과 같다 그 말이다. 이제 돌판에 써서 주신 법은 영원한 언약의 법이다. 불변하다. 이 불변한 약속이 어디 있냐? 성막 제도에 있다. 그러니까 한 번 올라갔다 쫓겨 내려오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볼수 있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중에 집을 짓고 게실 것이다. 그리고 모세만 잠깐 올라갔던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아론 그 대표자를 항상 하나님의 방에 두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도록 하실 것이다. 그것이 이 성소 제도라 그 말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이 더 일층 강화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그 다음에가 중요하다. 나중에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그 돌 판을 모세가 깨뜨렸다. 언약이 깨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모세가 올라갔는데 그 전에는 모세가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이 빛났다는 말이 없다. 돌판이 깨뜨려진 후로 올라갔다 온 뒤로는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났다. 왜 글랬냐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봤기 때문에 그렇다. 모세가 간절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등을 보았는데 모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난는데 그 영광을 모세가 가리웠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는 이것을 사라질 영광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세 얼굴에 나타난 그 영광만 보고도 백성들이 견딜수가 없다. 그래서 가리웠다. 왜 가리웠는가는 구약에서는 설명이 안되어 있다.

 

단지 백성이 보기에는 너무 두려원 영광이라 백성들과 이야기할때는 가리우고 있다가 그 다음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갈때는 수건을 벗었다. 이것을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모세가 가리운 것은 사라질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운것이고 그리고 주께로 돌아가면 수건을 벗어지느니라. 바로 모세가 백성이 보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가리웠다가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갈때는 수건을 벗은 기사를 그렇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모세가 언약의 법을 쓰고 그 법을 읽으니까 다 지키겠나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했다. 이제 양쪽에 피를 뿔려서 한 피다. 피의 약정을 세우시고 시내 산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언약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언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대표자를 부르시고 영원히 함께 거하리라는 약속을 주시고 이제는 깨뜨려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을 새겨 주시고 그것이 이 언약이 더 진행된 방식이다.

 

그런데 그 언약도 깨뜨려졌고 이제는 모세 얼굴의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그런 영광으로 언약이 갱신되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우리가 어디서 보냐 하면 예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이 비친다. 거기서 이제는 가리움이 없는 영광을 본다. 그렇게 성경이 연결을 해주고 있다. 그래서 25장부터 31장까지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거처인 여호와의 성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도 무엇과 함께 말씀되고 있냐면 제일 끝에 있는 돌 판에 새긴 증거의 판을 주신 그것과 함께 주어진 것이 언약의 거처에 대한 것이다 그런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집을 떠난 적이 없다. 하나님이 항상 같이 계셨다. 그래서 돌 판에 법을 새긴 것은 불변하는 언약 성경에 돌에 새긴다 또는 요동치 않는 산 그런 것은 하나님의 요동치 임재나 그 권능이나 그런 약속을 말하기 위한 표현법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31장18절에는 보니까 하나님이 친히 쓰신 증거의 두 돌판을 주셨는데 그 표현법을 잘 읽어보면 증거의 판을 주셨다. 두 판을 주셨다 돌판을 주셨다. 친히 쓰신 판을 주셨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짧은 문장에 보면 그 언약이 괴장히 강조 되어 있다. 우리가 보면 모세는 종이에 썼는데 돌에 써서 주셨는가보다 하면 되겠는데 표현법을 읽어보면 증거의 판 두 판 돌판 친히 쓰신 판 그렇게 되어 있어서 짧은 한절에 언약이 굉장히 강조 되어 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거하실 집과 그 집에서 봉사할 제사장의 제도다. 그러니까 항상 처음과 끝을 보라 그 말이다.

 

시내 산에서 부르셨고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셨는데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신 관계가 무엇인가? 이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에 하나님의 제사장이 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기 때문에 돌 판에 새긴 법으로 주셨다. 거기까지가 한 단락을 이룬다 그 말이다. 알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성막 제도를 하나님은 무시무시한 분인데 거기 들어갈려면 큰일난다. 들어가려면 상당히 돈을 많이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무시무시하게 저 안방에서 화 내고 계시고 백성들은 나갈려면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분 좋게 풀고 들어가야 되고 그런 방식으로 피 흘림을 자꾸 설명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고 계시고 예수님은 자기 피를 드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고 그것이 구원처럼 설명을 해 놨다.

 

그러나 성경은 피의 약정은 한 피에 속한다. 한 생명에 속한다는 생명의 연합을 말하는데 강조가 있지 그냥 진노를 풀어 드리고 그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피 흘림 죽음에 대한 문제지 피를 뿌림에 대한 문제는 아니다. 피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이 나타나고 새로운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가 뿌려지는 곳에는 심판이 없다. 그 피는 죽음을 통과한 피다. 죽음을 맛본 피다 그렇게 해서 피의 약정 그렇게 성경이 설명을 하는 것이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친히 너희와 함께 거하겠다는 그 은혜의 확증이다. 이제는 시내 산에 구름으로 가리우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부르신 그 하나님이 친히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언약의 거처, 언약의 동거, 그것이 성소에 대한 문제지 하나님이 성질 내고 계시고 거기 들어가려면 조심해서 살살 들어가야 되고 거기에 강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살겠다 그 말이다. 그 임마누엘이 신약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구약 때는 가리우고 계셨고 옛 언약의 중보자의 얼굴에 비치는 것도 볼 수 없는 두려움이었는데 우리는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보았다. 그 영광으로 우리 중에 함께 계신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역사의 완성이다. 그래서 특별히 마태복음과 요한 복음이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기 까지가 전체적인 내용 설명이다. 그리고 여기 문단을 쭉 나눴다. 그런데 제가 할 때는 문단을 조금 건너뛰었는데 건너 뛴 칸이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어떻게 건너 뛰었냐면 여러분이 이 구조를 쭉 보면 9절에 보면 무릇 내게 네게 보인 데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네게 보이는 데로 즉 하늘에서 보인 데로 그 말이다. 이 말이 거듭거듭 반복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디서 한 번 반복되냐면 25장 제일 끝에 너는 삼가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할지니라. 그렇게 한 번 있고 그 다음에 26장30절을 보면 너는 산에서 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그렇게 되어 있고 27장8절을 보면 산에서 본 식양대로 만들지니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 특별한 말들이 반복되면 거기까지 문단을 나눌 수가 있는지 봐야  된다. 왜냐하면  동일한 말들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 까지가 한 단위라고 이해를 해야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식으로 이해하면 지성소에 있는 것을 한꺼번에 하고 그 성소에 있는 것 그 다음에 뜰에 있는 것 하면 알기가 좋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에 그런 것을 배열하고 설명했을 때는 산에서 본 식양대로 하면서 단위를 묶고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이 묶는 단위가 어떻게 성소 제도를 설명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 설명하면서 문단을 나눴는데 그 간격들이 없어져 버렸다 그 말이다. 그래서 25장1-7절 25장8-9절 거기 까지 하고 한 칸을 띄어라. 왜냐하면 거기 보니까 산에서 본 식양대로 그런 말이 있어서 그것이 서론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26장 제일 끝에 보니까 또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했으니까 25장10절40 26장1-30절 거기서 한 번 띄어야 되겠지요? 그 다음에 26장31-27장20절까지 한 띠어야 한다. 그러니까 둘씩 띠라 그 말이다. 그 다음 27장20부터 30장1-10거기는 세 개다. 세 개를 한 단락으로 한 칸을 띠라. 그 다음에 30장11-16절 그 다음은 30장24-38절 네 개지요? 네 개를 한 단위로 건너 뛰라. 그 다음에 31장1-11절 그 다음 12-18절 그 두 개를 또 한 단락으로 나누라. 그러면 다 나누어 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25장1-7절 25장 8-9절은 오늘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반복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칸을 나누라 그 말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그 본문 구조가 나누고 있는 특정한 문학 형식으로 나누고 있는 그 문학 형식을 따라 전체를 볼 수가 있다 그 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먼저는 성소의 구조에 대한 문제고 그 다음에는 그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에 대한 문제다. 그리고는 성막과 성막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하고 안식일을 지켰다는 문제로 결론을 맺고 있다. 그러니까 성소에 대한 구조 거기서 봉사하는 제사장에 대한 문제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무엇 인가로 나누고 있다.

 

31장 제일 끝에 보면 성막을 만드는 직공을 지명하고 있다. 단 지파 누구 유다 지파 누구 이렇게 지목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여호와의 신이 충만해서 그렇게 나중에 쭉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고 그 다음에 친히 쓴 돌 판을 주셨다 그렇게 함으로 언약 체결을 마무리 짓고 있다.

 

우리는 항상 서론과 결론을 그 교장 훈시처럼 이해를 해 가지고 그 중요성을 못 본다. 그래서 우리 나라 처음에 인사할 때 예또 하면 한참 지나 가 버리고 그리고 뒤에 가면 소위 죄송하다고 하면 내려가고 이렇게 하고 가운데가 중요하고 그렇게 되는데 논문도 항상 처음과 끝이 중요한 것이고 실은 가운데는 안 봐도 뒤에 읽어보면 아는 것이다. 좋은 글은 처음과 뒤에 보면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성경도 항상 처음과 마지막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언약을 그들이 배반했다는 32장으로 들어가기 전이니까 그 앞에가 언약 체결의 중요한 것이 되겠는데 거기 보니까 성막을 짓는 직공의 문제와 안식일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고 있다.

 

이 성막을 짓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다 지파와 단 지파다. 나중에 솔로몬 성전을 지었을 때는 여호와 신으로 충만한 자가 누구냐? 어디까지 나오냐? 두로와 희랍의 신하들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신이 충만해서 여호와의 기구들을 만들었다. 이방인이 만들고 있다. 나중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성전에 있는 구조는 누가 말하냐? 고레스 왕이 이야기한다. 높이는 얼마 넓이는 얼마 이렇게 지어라. 마치 다윗이 하나님 앞에 성소 구조를 본 것처럼 그렇게 되어 있다.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본 사람은 모세인데 이것을 짓는 사람을 보니까 단순히 재주 있다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케 된 단 지파와 유다 지파 사람들이다. 나중에는 두로와 희랍 왕의 신하들이다. 또 나중에는 고레스 왕이 그런 말을 한다. 그들이 여호와의 성소를 짓는 자들이다.

 

그런데 참으로 여호와의 성소를 짓는 사람들은 누군가? 여호와의 신이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고 그 아들의 영으로 충만한 교회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여호와의 영원한 성소다. 그렇게 연결이 된다. 그러니까 여기 보니까 제도는 분명히 모세에게 보였는데 그것을 짓는 사람은 모세가 아니다. 여호와의 신이 충만한 이스라엘 백성이 짓고 있는데 왕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이 네 대로 나눠져 있다. 제일 끝에는 단 지파 두 지파의 아들들이 짓고 있다. 그리고 거기 안식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러면 이 안식의 약속은 출애굽기의 구조에서는 유월절에 안식해라 약속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해라 그것이 있다. 여기 성소의 구조에 대해서 쭉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을 지켜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성소와 안식일 제도를 함께 주고 있다. 유월절과 안식일이 함께 주어져 있고 하늘에 만나와 안식일 제도가 함께 주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와 안식일 제도가 한꺼번에 주어져 있다. 이것을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해서 아 성소를 지을 때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으니까 예배당 지을 때도 주일날은 쉬라 되겠구나 이런 이야기하라는 그 말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소와 안식이 함께 주어진다. 유월절과 안식 만나와 안식이 하나님의 성소와 안식이 함께 주어져 있다. 그렇게 함으로 언약에 대한 문제가 마무리되어 있다. 그러니 여호와의 성소는 여호와의 안식의 거처다. 그렇게 되어 있다. 예배당 제도를 쭉 말하고 나서 안식일을 쉬라 했으니까 주일날은 공사 못하요 그런 말을 하라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성소 그러면 예배당 짓는 일로 막 돌아서니까 문제인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말이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구조를 빨리 보라는 말이 그 말이다. 그래야 이 성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타난다. 이것은 큰 안식으로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다. 내가 이 성소에서 내 백성의 봉사를 받고 즐거이 쉬리라. 만족하리라 그 문제가 성소에 대한 문제다. 이 사이에 있는 것은 진행하면서 설명을 하겠다. 왜 이런 단락으로 나누고 있는지 왜 산에서 본 식양대로 하는 것을 우리 식으로 지성소 성소 성소 뜰 이렇게 나누면 알기 좋겠는데 지성소 나눈 것은 좋다. 그 다음 성소와 성소 뜰에 있는 것을 한꺼번에 이야기를 한다. 왜 이렇게 섞어져저 나누고 있는지 하는 문제들을 내용상 분석해 보면 좋은 빛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전체는 이만큼 나누고 이제 부분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하겠다. 오늘은 설명할 곳이 25장 처음 부분이다. 1-7절까지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즐거이 예물을 드려라. 그리고 너희들이 드릴 예물을 이러이런 것이니라. 그리고 그것으로 내가 너희들 중에 거할 거처를 지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제일 끝에 그 거처는 산에서 본 식양대로 지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나누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설명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문에는 둘로 나누어져 있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한테 묶어서 해도 좋은 내용인데 일부러 나눴다.

 

25:-31:은 언약의 식사 후에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같은 자기의 영광으로 모세를 불러들이시고 제 7일 안식일에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다. 이것이 25장부터 31장까지 내용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여호와의 영광을 여기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광을 모세가 들어간 영광이고 이제 앞으로 아론이 들어갈 영광이다. 그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자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고 안식일에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면 여기 있는 성소 제도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식하라는 내용이다. 그냥 이해하겠지요?

 

그러면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성소를 하늘의 식양대로 짓게 하시고, 그 성소에서 여호와를 봉사할 제사장 제도에 대해서 명하신 말씀이다. 그것과 무엇이 상응하는가?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가서 제 칠일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실은 상응한 것이다. 이것은 피의 언약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친히 함께 거하시며 그들이 즐겨 드리는 예물을 받으심을 계시한 것이다. 이 앞에 내용들은 피로 약정했다. 우리는 한 피요 한 생명이다. 하는 관계로 약정하신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즐거이 드리고 한 상에서 먹고 마시고 그런 관계로 인치고 있는 것이다.

 

시내산 꼭대기에 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이스라엘 진중에 함께 거하시며 제사장을 백성의 대표로 세우시고 그의 장막에서 섬기게 하신다. 그것이 지금 25-31장 까지 내용이고 그리고 그 머리는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들어갔떤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제사장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나가는것이고 또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가 이스라엘 중에 지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 안에 사는 것이다. 그전에는 칠십인 대표자들만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하나님이 집을 짓고 한 집에 사신다. 그런데도 보니까 아직도 선이 많다. 이 전에는 올라오면 죽은다는 말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이 내려오셨따. 내려 오셔서 한 집에 사신다. 그리고 그 안에 특별히 더 거룩한 곳으로 제사장을 부르신다. 그 대표자가 나가고 있으면 백성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가 땅에 임해서 자기 백성과 한 장막에 사신다. 그 관계가 모세가 시내 산 영광 중에 들어가서 제 칠인 안식일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것과 상응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사는 백성이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성소는 하늘에서 보이신 식양대로 지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이요, 휘장으로 가리운 영광이다. 하늘에서 보이신 식양은 성신이 가르치신 식양이며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한 자들로 짓게 하셨다.(대상28:12에 보면 다윗이 말을 한다. 하나님이 성신이 내게 보였다. 그것을 모세는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그랬는데 하나님의 성신이 보인 대로 지었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이 은혜의 임재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에서 완성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성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소에서 가리움이 없는 영광의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영원히 함께 하신(히8:). 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신 교회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신령한 성소이다.

 

이제 하나님이 산에서 본 식양대로 이 집을 지어라 그렇게 했다. 그러면 보통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모세가 하늘에서 봤는데 큰집이 있다. 충장로도 있고 금남로도 있고 그런데 그 집은 너무 황홀하고 보석 집이라 지을 수가 없고 그 모형을 따라서 땅에다 조그만 집을 지었다. 그렇게 이해하지 말라 그 말이다. 우리는 아차 하면 그렇게 생각한다. 하늘에는 금집이 있고 보석 집이 있는데 이것은 측량할 수 없고 그것을 따라서 그냥 조그만 축소판으로 땅에다 지었다 이렇게 이해하지 말라 그 말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본 식양은 어디서 해석이 되냐면 항상 구원 역사의 완성 점에서 해석이 된다. 구약 본문만 보면 그렇게 이해 될 것이다. 그러나 구약 본문도 하늘에서 본 식양은 이 산에서 보이신 식양이다.

하나님이 이 산에서 내게 보인 식양대로 그것이 히브리서에서는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이다.

 

그런데 히브리에서는 그 하늘을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이라고 히8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했던 하늘은 소위 우주론적으로 땅과 하늘 그런 구조로 설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구약 본문 자체에서 하늘에서 본 식양은 이 산에서 본 식양이다. 이 산은 시내 산 꼭대기에서 본 식양이다. 그러니까 시내 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 아까 말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 관계를 땅에다 구현하고 있는 것이 모세 성막 제도라 그 말씀이다. 여러분이 출애굽기를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25장9절을 보면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데로 장막을 따라 이렇게 지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또 40절을 보면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그렇게 할라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26장30절도 산에서 본 식양대로 27장8절도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본 식양대로 25장9절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게 네게 보인 대로 그렇게 했으니까 그러니까 부흥사들이 말한것처럼 천당 가니까 집이 있는데 땅에서 헌금 조금 한 사람은 대문이 조그만 하고 땅에서 재료를 보낸대로 하늘에서 집을 지으니까 그래서 그런식으로 설명을 해서는 안된다 그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늘과 땅은 이 출애굽기에서는 내가 네게 보인 식양인데 이 산에서 보인 것이다. 너는 이 산에서 보인 식양을 따라 장막을 지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로 들어간 그 은혜의 관계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휘장을 쳐 놓고 계신 금집에서 교제 관계로 누린다. 그런데 그 성소는 사람이 만든 성소요 썩어질 성소요 땅에 속한 성소요 그림자적인 성소다. 어떻든 시내 산에 계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장막을 짓게 하고 거기 거하셨다.

 

그 은혜의 관계를 하나님이 어떻게 완성하셨냐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셨다. 이제 이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이다. 그 하늘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있는 하늘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이 짓지 아니한 하늘에 속한 성소에 들어가셨다. 사람이 지은 성소는 모세가 지은 성소요 아론이 들어간 성소인데 하나님은 구약 때는 거기 집을 짓고 거기 임재하신 방식으로 가리우고 백성과 교제하셨다. 그런데 솔로몬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내가 지은 이 집에 거하리이까. 하늘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감히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만든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셨다. 모세가 시내 산 영광 가운데 들어간처럼 들어가셨다. 그런데 모세가 들어간 영광은 구름으로 가리운 두려운 영광인데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로 사람이 짓지 아니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지금의 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기 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히8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시내 산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의 영광이다. 그렇게 들어가셨다. 그러니까 우리 대표자가 하나님 앞에 들어간 그 영광의 방식으로 집을 짓는 것이 무슨 집이냐? 이제는 모세가 지은 장막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친히 지은 집이 있는데 하나님의 교회다. 주님과 교회는 그렇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 집은 영으로 충만하신 아들이 지은 집인데 이것은 구약처럼 그렇게 지은 집이 아니다. 주님은 그의 영으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영광은 가리움이 없는 영광이다. 이것이 구약 성소와 신약에서 이 전을 헐라 내가 다시 세우리라. 자기의 몸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영원히 교회에 함께 거하신다. 이제는 사람이 만든 장막을 따라 이러 저런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장막에 짐승의 피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는 간격이 없다. 구약 때는 대표자만 들어갔지만 신약 때는 그의 모든 백성이 주의 상에 앉아 있다. 가리움이 없다. 왜 우리중에 오신 분이 우리 언약의 주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가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것이 교회다. 그러니까 이 건물로 해석하지 말라 그 말이다.

 

그러면 왜 신앙이 있으면 건물 짓는데 돈을 많이 낸다 그 말인가? 그것은 당연한 상식적인 이야기지 성경에 믿음의 원리가 연결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함께 모이고 또 여기를 중심해서 활동을 하고 우리가 여기서 교회가 함께 모여서 성찬식을 하고 하니까 이 일에 많은 투자를 하겠지요? 그러나 예배당 봉사가 구약 성경과 연결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 그 말이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신약 교회 건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집을 어떻게 짓는가? 보자.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즐거이 예물을 드리는 백성으로 구원되었으며, 여호와의 성소는 그들이 즐겨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로 짓게 하셨다. 이들이 드린 예물은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애굽 백성에게서 받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모든 이방을 정복하게 하시고 안식을 주셨을 때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전을 지을 예물을 준비하였고,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집을 짓도록 언약하신 그 아들에게 힘을 다하여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명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다윗을 세우시어 이방을 정복하시고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즐거이 드려 성소를 짓게 하심으로(대상29:) 이방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전을 짓게 하셨다(대하2:).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성소는 불타고 이방인들이 그들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은 진실하여 고레스를 그 종으로 지목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짓게 하시고(스1:2-11, 6:3-10, 7:15-26), 장차는 만국을 진동하여 만국의 보화를 유다 자파 스룹바벨이 지은 전에 모으시겠다고 언약하셨다(학2:5-9).

 

지금 성소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완성된 역사를 봤을 때 처음 역사가 해석되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 성소를 짓는 것과 후에 여호와의 구원 역사에서 성소를 짓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보면 성소 짓는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이다. 여기 보니까 너희들이 나한테 예물을 즐거이 드려라. 드리려면 이런저런 예물을 가져와라. 그것으로 내가 거할 집을 지어라 그렇게 되어 있다. 이 집은 이스라엘 백성이 즐거이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집이다. 그러니까 출24장 언약 체결과 잘 연결이 된다. 백성들이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성소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집이다. 즉 하나님이 자기 집에서 잡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전은 여기서는 잘 해석이 안된다. 즐거이 예물을 드리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종살이했는데 예물이 뭐가 있어요. 실은 이 예물을 하나님이 애굽 백성을 쳤을 때 그들의 장자를 쳤을 때 그들이 죽게 되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을 종으로 붙들고 있다가는 망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돈줘서 내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면 어서 가지라고 줬다. 그 때 하나님의 모든 영광은 여호와의 것인데 여호와의 장자인 이스라엘의 소유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언약 체결에서 보니까 여호와께 즐거이 드리는 백성 여호와의 단에서 즐거이 봉사하는 백성으로 구원하셨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본질이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거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즐거이 헌신하고 이제는 바로를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봉사하는 백성으로 구원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즐거이 예물을 드리고 그 즐거이 드리는 예물로 내가 거할 집을 지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뒤에 역사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가 있다. 뒤에 역사를 보면 나중에 성전을 짓는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이 성전에 대한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 역대상29장이다. 이 장은 역대상을 끝내는 장이다. 거기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하고 솔로몬한테 유언하는 것이 대상29장이다. 다윗의 생을 마무리하고 있는 장이다.

 

거기 보면 다윗이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이 원수를 치셨다. 그리고 모든 제물을 다윗의 손에 주셨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즐거이 봉사했고 하나님 앞에 집을 짓기를 소원해서 많은 것을 모았다. 그리고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백성들도 즐거이 드렸다. 힘에 겨웁도록 드렸다. 그리고 다윗이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누가 여호와의 손에 채워서 드리겠는가? 그렇게 말하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내게 주셨으니 너도 힘써서 여호와의 집을 짓도록 해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 내 아들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렇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윗의 모든 생의 목표는 성전 짓는 것처럼 되어 있다. 다윗의 모든 생애는 하나님의 성전 짓는 제물을 모으는 것처럼 되어 있고 백성도 다윗과 함께 즐거이 모든 것을 드렸다. 다윗의 유언이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아들에게 유언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그것이다. 왜 하나님 앞에 집을 짓고 그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천막을 짓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 않는 집을 짓는 것이다.

 

만일에 하나님의 집이 거기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우리 식으로 단순히 예배당 짓자 그 말이 아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왕이냐면 하나님의 대리 왕이다. 다윗 때 가나안 땅에 모든 원수들이 정복되었고 이방의 권세가 완전히 복종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 왕으로서 첫 왕인 다윗 왕에게서 하나님 나라 특성이 잘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구약 때는 칼의 권세로 싸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너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안되겠고 네 아들 때 내 집을 짓도록 하겠다. 그래서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 왕에게서 하나님의 집을 짓는 왕을 주시고 그 왕은 내 아들이 되리라 하는 것이 오늘 오전에 설교했던 설교의 핵심이다. 삼하7장에 있는 것이다.

 

어떻든 다윗이 정복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이 정복하신 것이다. 모세가 이기는 것은 하나님이 이기는 것이고 다윗이 이긴 것은 하나님이 이긴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그 장자에게 물려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을 다윗과 그 왕국 백성들이 함께 누리도록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의 모든 승리는 하나님의 전으로 모아들인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모든 세상의 영광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 집을 다 지어 버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라구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왕의 모든 승리는 거기 집 앞에 있다. 그러면 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영접했던 왕은 아이고 재앙을 만나 쫓아냈는데 그는 강제로 하나님의 전을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왜 백성이 갔다 지었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다윗 때는 조금 다르다. 이 때는 그들이 다윗에게 복종하고 다윗에게 바침으로 다윗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되어 있다. 그들이 다윗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그것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위치다. 그들이 제사장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것이 더 진행됐을 때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하나님의 성소를 불질러 버렸다.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다고 에스겔서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영광이 바벨론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성전을 짓도록 했을 때 이 성전은 누가 짓느냐 하면 에스라서 1장을 보면 고레스가 짓는다. 에스라서 1장 2절을 보면 나 고레스는 여호와의 종으로 지목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나로 그 전을 지으라고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라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짓는 여호와의 종인데 이방 왕이다.

 

그리고 에스라서 6장을 보면 그 성전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누가 말하냐면 마치 다윗이 성전 구조를 본 것처럼 이방왕이 이야기를 한다. 높이는 60척 넓이도 60척으로 짓고 그리고 한 돌판으로 짓고 나무겨로 두 겹으로 해라 이런 식으로 해서 구졸들을 쭉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성전을 금으로 지으라는 말은 없다. 금은 기명은 다 가져가는데 금으로 지으라는 말은 없다. 솔로몬 성전은 완전히 금이다. 금이고 떡상도 금상이 열 개고 등대로 금 등대가 열 개고 굉장히 많다. 그런데 고레스가 지은 성전은 그렇게 되어있지는 않다. 돌과 나무로 지어져 있다. 그리고 에스겔 성전을 보아도 그것은 금으로 되어 있지는 않는다. 돌과 나무로 지어져 있다. 어떻게 봐서는 솔로몬 영광보다 더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규모도 작다. 그러면 고레스가 세상에 부자다. 여러분이 에스라서에 인용된 구절을 찾아보면 그렇게 말한다. 내가 여호와의 전을 짓도록 부르심을 입었고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들이 돌아가서 즐거이 여호와의 집을 짓고 그리고 너희들 이방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금은 보화를 주어라. 그리고 만일 그것도 부족하면 내 창고에서 얼마든지 내어다가 써라. 그리고 집만 지은 것이 아니라 에스라 너는 강 서편 모든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네가 가르쳐라. 그리고 백성들은 세금도 내지 말아라. 그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 받는 사람은 누굴까요?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본래 아들은 세금을 안 내고 종은 세금을 낸다고 그렇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의 전을 지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요 학사인 에스라는 여호와의 언약을 새롭게 체결한 사람이 에스라다. 포로 후에 돌아와서 율법을 쭉 읽고 우리가 지키겠나이다 맹세하고 울고 그렇게 해서 언약을 확증한 사람이 에스라인데 그는 제사장이요 학사다. 네가 재판관을 세워서 강 서편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지배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레스 임금은 그 당시 세계를 정복한 이방 왕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이방왕은 완전히 원수인데 이방왕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면 되냐? 그러니까 교리적으로 해석해 들어가서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을 받아 들이지 않을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방인인이냐 유대인이냐 그런 말이 아니라 천하 만국을지재하는 왕이다. 그런데 이 성전을 보니까 천하만국의 보화가 모아들고 있다. 그것도 자원해서 드리고 있다. 바로처럼 할수 없어서 드린것도 아니고 다윗 때 처럼 정복을 당해서 내 놓은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드렸다. 그들은 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백성인데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레스는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종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고 70년 동안 종으로 삼았던 그런 나라가 아니고 그 나라를 멸망시킨 이방의 왕이다. 이처럼 포로 후 시대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은 온 인류를 포함한 그런 구조로 확대되어 있다. 그 때 지은 성전은 이방의 임금이 자원해서 즐거이 그리고 만국의 보화를 가져다가 짓도록 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소를 짓는 것이다. 그것도 즐거이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광은 그전 영광보다 작다고 그랬다. 돌아와서 성전을 지은 백성이 이전과 같은 똑 같은 죄를 지어서 원수가 많이 방해를 했다. 학개 선지자를 보내서 낙심하지 말아라. 너희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영광은 불변하다. 하나님이 성소가 되시려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 언약은 불변하다. 지금 이방인들이 학대하는 것이 아니다. 만국을 진동 하사 만국의 보화를 다 내게로 불러들이겠다.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라. 이것을 예배당 짓는데 헌금 종목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 그래가지고 예배당 짓자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그 말은 세상의 모든 것은 내것인데 이제는 고레스를 통해서 진동한 정도가 아니라 천하만국을 진동해서 모든 보화를 내게 모아들이게 하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고 하는 말씀이 이 전의 영광이 그전 영광보다 더하리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국의 보화가 모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솔로몬의 영광은 그 영광이 작다. 다윗이 정복했던 영광은 가나안과 가나안 주변 국가 얼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짓고 있는 전은 비록 그들이 독립적인 왕국은 아니고 여전히 이방인이 지배하고 있어도 그 영광이 더 큰 것은 천하만국의 보화가 모아 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도 이 영광은 원수의 방해 때문에 지지부진하고 있다. 바로 이 영광으로 자기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만국을 진동하고 천하만국의 보화를 그 전으로 불러 우주적인 구원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천하 만민이 예수께 복종하고 그에게 경배드리러 온다. 이것은 즐거이 자원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다. 전체로 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예수님의 영광은 가리워져 있고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영광 중에 나타나시면 그 때는 노아 홍수가 문제가 아니고 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했을 때 땅을 진동했던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하늘도 녹아지고 땅의 체질도 녹아지고 이제는 영원히 요동치 않을 나라를 세울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니까 요동치 않는다. 이제는 하늘과 땅의 간격이 없다. 왜 죄가 온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우주적인 나라로 완성하실 것이다. 그것이 우주적인 성전인데 계시록을 보면 그 때는 성소도 보통 성소가 아니라 전부 지성소다. 가로 세로 높이가 일만 이천 스다디온 그리고 예루살렘 성도 따로 없다. 전부 지성소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성소에 비쳤다. 그리고 지성소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린양이 친히 빛이 되니까 다른 빛이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우주적인 성소가 된다. 그 때는 만국의 임금들이 그 영광의 빛가운데 다니고 만국의 보화가 그 영광으로 들어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주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이 오늘 우리 형제가 부른 36장이다.

 

그러니까 여기 보니까 즐거이 내게 드려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즐거이 내게 드리면 내가 너희 중에 집을 짓고 거기 있겠고 너희들이 즐거이 내게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라. 우리 한 집에 살자. 세상에 모든 것은 내것이 아니냐? 그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은 만국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즐거이 봉사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구원된 것이다. 모든 것은 만물을 창조하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왜 그가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분이 구약 역사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분이요 때가 되매 친히 오셔서 자기 영광에로 구원하신 분이다. 그분이 영원히 우리의 성소여서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고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영으로 거하심으로 교회는 신령한 그의 거처가 되었다. 교회는 주님 앞에 즐거이 헌신하는 즐겨 드리는 백성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것은 헌금하라는 정도를 넘어선 이야기다. 이것을 교회 헌금하라고 붙여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구약 때는 대표자가 드리고 일부를 드리는데 지금은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의 영역이 거룩한 성소다. 이제는 거룩하고 그렇지 않는 영역이 없다. 모든 일을 주님께 드려야 되고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드려야 한다. 만일에 우리가 모든 것을 주의 이름으로 받고 주의 이름으로 드리지 못하면 주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상의 큰 생명의 복음을 헌금 드리는데 강조 해 가지고 그것을 많이 내면 신앙이 좋고 적게 내면 신앙이 적고 그런 식으로 분별하면 안된다. 그런데 그것을 거꾸로 해석을 해 가지고 헌금 적게 낸다고 신앙이 없냐? 하고는 자기 주머니에 다 넣고 자기 마음대로 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아는 것이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주님의 구원을 증거한 것이 복된 일이지만 주님의 교회가 모이고 함께 기뻐하고 또 주의 백성들을 구제하고 복음 선교를 위해서는 마땅히 헌신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금도 교인들 주머니에 있는 것은 부정한 돈이고 그리고 이제 교회가 내 놓은 것은 거룩한 돈이고 항상 교인들은 불량하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고 주의 영으로 지어진 신령한 거처다. 여러분은 즐거 드리는 백성으로 구원됐다.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여기 있는 요절들을 찾아서 읽어보시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옛 성전 시대를 끝내시고, 만국의 백성이 그 모든 영광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돌리는 영광스러운 나라를 지으셨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대로 하면 이방인들이 와서 값진 보화를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를 경배하러 왔노라.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28장에서도 천하 만민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르쳐 지키는 것은 경배다. 즐거이 헌신하는 것이다. (마2:1-12, 28:16-20).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 장차 재림하시어 그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 것이다(계21:24). 우리 주보에 있는 말씀이다. 그리고 주보에 있는 그림이 성전 이야기다. 왜냐하면 정육면체 하는 것은 온 세상을 포괄한 개념인데 그 확대를 위해서 사선으로 빛을 그어 났다. 점점 커져야 하니까 그렇게 해서 우주적인 성소를 목표로 해서 커지는 것이다.  만국이 그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왜 주님만 만왕의 왕이고 그가 만물을 지으셨고 그만 우리의 생명이시니 모든 영광은 그분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영광이고 생명이다. 만국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즐거이 헌신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결혼만 해도 못 줘서 답답하다. 줘서 손해 난 것이 아니라 못 줘서 답답한 것이고 한 주면 살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오직 하겠는가? 왜 부부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주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분은 참으로 만왕의 왕이시오 모든 것은 그분의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전 생을 그분에게 헌신하는 것은 너무도 복된 일이다. 그리고 즐거이 헌신하고 즐거이 복종하고 그것이 출애굽기에서는 방금 이런 언약 체결 구조 하나님의 전을 짓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간격이 많다. 그전에는 올라오지 말라 했는데 이제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다.

 

이제는 집을 짓고 레위 지파가 즉 장자가 진치고 있고 차자는 못 들어간다. 그리고 그 중에 제사장은 성소 까지 들어가고 대제사장은 지성소까지 들어간다. 간격이 많다. 그 간격을 넘으면 죽는다. 그런데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간격은 없어졌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는 우리의 영원한 성소요 그분이 친히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분의 거처로 지어졌다. 그것이 하늘에서 본 식양대로 그런 말이다.

 

그리고 영으로 충만한 자가 전을 지었다. 그것은 기술 좋은 에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신약에 와서는 영으로 충만한 아들이 그의 교회를 지었고 그리고 그의 영으로 충만한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교회가 그렇다. 그렇게 출애굽기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언약 체결에 대한 문제가 강조다. 구약 요절들을 꼭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그런데 그전에는 이 은혜로운 성소를 공포의 집처럼 배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에 안 계신 적이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렇게 가까이 와서 계신 적이 없다. 그들이 장자다. 그런데 장자밖에 다른 아들이 있다. 그밖에 이방인들이 있다. 그것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대하시는 방식이다. 이제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 유대인 간격이 없다. 왜 그 구원이 완성됐기 때문에 이 모든 완성을 누린다. 그 완성 때문에 이방인 유대인 간격이 없어지고 제사장과 백성의 간격도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예배당 지을 목사들이 이 본문을 보면 전부 예배당으로 읽어 진다. 그전에 그렇게 보지 않는 분이 예배당 지으려고 그러면 전화를 한다. 이 성경하고 예배당 짓는 것하고 어떻게 연결이 되냐고 물어온다.

그것은 관계가 잇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예배당만 짓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주의 일을 위해서 헌신을 했으니까 교회가 주의 영으로 신령한 성소로 지어졌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다. 구약 때 어느 훌륭한 사람도 우리 같은 영광 중에 하나님을 뵙고 산 사람이 없다. 그것이 교회다.

 

제일 이 성소에 대한 것을 가지고 부흥사들이 마음대로 집을 짓는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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