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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6: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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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선기 목사 |
참고 : | 2005,07,24,주일저녁 영월순복음사랑의교회 http://www.e-lovechurch.org/ |
출26장 15-30
성막론(17) 성막의구조(성막의 널판②)
어느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따라 목사님의 설교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모든 성도들은 회개하며 감격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 사람만은 아무런 감동도 없이, 멋 적다는 듯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던 집사님이 물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으세요?" 그러자 이 사람은 침착하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교회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는데, 소속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 사람을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성막의 뼈대인 널판에 대하여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는 성막 뼈대가 되는 널판의 재료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고, 금으로 위를 싸서 만들었습니다.
조각목은 싯딤나무 즉 아카시아 나무로 가시가 나있고, 거친 껍질을 가진 나무입니다. 그래서 부딪히면 찔리고 상처받게 되는 나무입니다. 이런 나무를 잘 다듬어서 널판을 만들어 금으로 싸서 하나님의 처소인 성막의 벽으로 썼습니다.
이 아카시아 나무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거친 세파에 시달리며 사는 인생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거칠어지고 가시가 돋쳐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 아픔주고 상처를 주며 사는 인생을, 주님이 부르시어 깎아내고 다듬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구성하여, 하나님이 거할 처소를 만드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금은 믿음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금은 아름다운 빛이 나는 금속이기에 다른 금속보다 값이 나가듯이, 하나님을 믿는 참 된 믿음은 아름답게 보이고 값지게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귀하게 쓰시고 높이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1. 널판의 규격입니다. 널판의 규격은 장이 십 규빗(약 4미터50센티), 광이 일 규빗 반(약68㎝)이었습니다(16절).
널판의 규격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이 땅에서는 널판의 좁은 광처럼, 33년이란 짧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긴 널판의 광처럼 영원히 계신 분이십니다. 계시록 22장 13절의말씀에서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벽에 높이는 4미터 50센치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벽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천정은 높아서 황홀하면서도 시원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2. 성막용 널판의 수는 총 48개였습니다.
남편의벽 쪽용으로 20개, 북쪽의벽 쪽용으로 20개, 서쪽의벽 쪽용으로 6개, 남과 북쪽 벽과 만나는 모퉁이의 2개 충 48개의 널판을 만들었습니다. 48이란 수는 완전 축복의 수인 12의 네배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흠이나 점이 없는 온전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누가 생각납니까? 흠과 점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나라는 흠과 점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나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1-3절까지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온전한 곳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서 48이란 수가 나오는 곳이 몇 곳이 있습니다. 민수기 35장7절에서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사십팔 성읍을 주고 그들도 함께 주되”라고 하십니다. 또 여호수아서 21장41절에서 “레위 사람의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얻은 성읍이 모두 사십팔 성읍이요 또 그 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레위인들이 받은 성읍의 수가 48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을 전념해야 하는 사람들로 기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을 하였지, 개인적으로 다른 기업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곳에 전념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레위인들에게 다른 기업이 주어졌다면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첫 열매 등의 예물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 영적으로 타락할 때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와 첫 열매의 예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아, 레위 인들이 생활하기가 힘들어져서 다른 기업을 가질 때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등한시 하게 되고 신앙이 흔들리게 되고, 그 영향이 온 이스라엘에게 미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하 29장의 말씀에서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 백서에 신앙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역대하 29:2-11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편 광장에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이때 레위 인들은 오늘 날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 그리고 유급으로 일하는 장로님이나 집사님들로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목회자는 다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단 헌법에도 이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전적으로 생활을 책임져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영적으로 타격을 받게 됩니다.
3. 널판마다 두 개의 촉(돌기)을 만들었습니다. 이 촉은 받침대에 끼워서 고정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한 개의 널판은, 은 일 달란트(약 34킬로그램)로 만든 두개의 은 받침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널판을 받치는 은 받침은 총96개였습니다. 널판의 돌기는 이 은 받침대위에 고정을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널판 밑을 바치는 은 받침에는 널판의 돌기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구멍에 널판의 돌기를 끼워서 세웠던 것입니다.
널판을 바치는 은 받침을 만든 은(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전으로 드린 은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속죄의 은으로 널판 밑받침을 만들어 성소와 지성소를 세우는데 받침으로 썼던 것입니다. 받침대를 만드는데 쓴 속전으로 드린 은은 속죄의 제물로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신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 피값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이루는 터전 곧 기초이십니다. 그 기초위에 피 값으로 산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아멘
4.모퉁이의 널판은 특별하게 다른 널판의 두 겹 두께로 하였고 ㄱ자 앵글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벽과 벽을 지탱하기 위하여 튼튼히 만들었습니다.
모퉁이에 쓰이는 두 널판은 성막의 널판으로 만든 벽이 서로 만나는 모퉁이에 쓰이는 널판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양쪽의 벽을 지탱하도록 붙잡는 역할을 하는 널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널판들보다는 힘이 많이 실립니다. 그래서 두겹 두께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11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과 그 문중들앞에서 증거하기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에 방주인 교회의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심을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2장20절에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고 예수님이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에서는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교회의 지체가 된 성도는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넘어지고 거치는 분이되십니다.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널판을 서로 견고히 지탱케 하기 위하여, 띠를 다섯 개를 둘렀습니다. 이 널판의 띠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쌌습니다. 그리고 이 띠를 꿰기 위하여 널판에 원형의 금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뼈대가 되는 금으로 싼 널판은, 이 띠를 통하여 서로 연결이 되어 하나처럼 단단한 벽을 이루고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통일과 연합을 의미합니다. 띠는 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널판을 관통하고 있는 띠는 성도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고전3:16). 성도가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아 힘이 있습니다(행 1:8).
그리고 널판의 띠는 길게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널판의 띠로 하나로 만든 것과 같이, 교회의 지체가 되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으로 연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12절의 말씀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도는 성령으로 하나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은사가 다르고 직임이 달라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교회가 역사가 일어나고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초대 안디옥 교회가 이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를 세워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떠하든 우리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아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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