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출27:9-19 |
---|---|
설교자 : | 민선기 목사 |
참고 : | 2005,04,10,주일저녁 영월순복음사랑의교회 http://www.e-lovechurch.org/ |
성막 울타리 (성막론 ②
지난주일 저녁에는 성막론 첫 시간으로 성막의 평면도와 성막의 명칭이 가진 의미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어서 성막의 울타리를 공부하고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공부하면 지루한 생각이 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도 마찬가지 인가 봅니다. 혜경이가 하는 피아노 교습소에 어떤 아이는 보통 때는 애교도 떨고, 이야기도 잘하다가 공부만 시작하면 골이 아프니 졸리니 한답니다. 앞으로 최소 20년은 공부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그런 분이 없으실 줄 믿습니다. 생명에 말씀인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기에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기에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성막 울타리는 성막의 본체를 사방으로 둘러쳐 있는 세마포의 울타리였습니다. 이 성막 울타리는 남쪽과 북쪽이 각각 100규빗씩, 동쪽과 서쪽이 각각 50규빗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크기는 약310평 정도였습니다.
1.울타리에 역할이 무엇입니까?
1).이쪽과 저쪽을 구별 짓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와 같이 성막 울타리를 경계로, 안쪽은 성막 뜰이고, 바깥쪽은 일반적인 지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면 동쪽에만 나 있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성막 울타리 안은 거룩한 성역이고, 성막 울타리 밖에는 세속적인 곳이었습니다.
2). 보호에 역할을 합니다.
성막 울타리는 이방인이나 짐승을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또 성막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성막 울타리의 둘러친 천은 흰 세마포였습니다
이 흰 세마포는 의와 거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울타리 안은 의와 거룩성이 지켜져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울타리를 친 흰 세마포는 밖에서 보기에는 화려하지 않고 허름한 모습의 천에 불과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잘 것 없는 분으로 보기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성막 울타리의 높이는 울타리는 높이는 5규빗(2미터 25센치)으로 성막의 밖에서는 성막의 안 뜰을 볼 수가 없었고, 성막의 윗부분의 일부는 볼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 밖에서는 교회의 참 모습이나 주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그들이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예수님과 교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4. 울타리는 높이는 5규빗이나 되는 놋 기둥을 만들어 남쪽과 북쪽은(100규빗) 각각 20개씩,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는(50규빗) 각각 10개씩, 총 60개의 놋 기둥을, 60개의 놋으로 만든 밑받침위에 세우고, 흰 세마포를 은으로 만든 고리에 갈고리로 매달아 둘러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성막 울타리의 기둥과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는데,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놋은 불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또 60은 인간의 숫자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서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하십니다. 이 60개의 놋 받침과 놋 기둥은 인간 모두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법칙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울타리 세마포를 놋 기둥에 거는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시편 12편6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편 66편10절에서는“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銀)은 순결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합니다. 이 은으로 만든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그 아픔과 고초를 끝까지 참으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목 박히셨을 때에, 얼만 힘들었으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절규를 하셨겠습니까? (마 27:46)(막 15:34)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내가 나쁜 놈이예요? 조금만 힘들어도 몸부림쳤던 내가 나쁜 놈이예요?’하고 주님께 고백하였습니다.
6. 울타리에 세마포를 밖으로 치므로 놋 받침의 일부는 밖에서 볼 수 있었지만, 놋 기둥은 안에서만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죄인과 악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잘못하면, 너! 그러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에, 양심에 의하여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울타리의 기둥에 바친 놋 받침이 밖에서 보이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죄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울타리의 놋 기둥은 성막 울타리 안에서 만이 볼 수 있었습니다. 놋 기둥은 심판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울타리 안에 들어와야만 그 심판의 강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예수 안에 들어 와야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몸 된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 십자가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도 알고 지옥과 천국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울타리를 친 세마포에 가린 놋 기둥을 밖에서 보듯이 그럴 것이다 하고, 희미하게 그려질 뿐입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와 믿고 난 후에 십자가의 심판에 대하여 달리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놋 바침과 놋 기둥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하여 심판 받으실 십자가의 그림자입니다.
민수기 21장4~9절의 말씀을 찾아서 다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장대위에 달린 놋 뱀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게 되면,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14~18절의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아멘
교회 안에 들어와서 나에 죄를 사하기 위하여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 그래서 놀라운 축복입니다.
7. 울타리의 동쪽에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이문은 폭이 20규빗이고 고(高)가 5규빗이나 되는 넓고 높은 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넓이가 약 9미터 높이가 2미터 20센티나 되는 문이 있었습니다. 이쪽 울타리가 50규빗이니까 거의 반이나 되는 넓은 문이었습니다. 이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으로 가리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문은 예수님께 나와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문의 그림자입니다. 이 문은 지금도 넓게 열려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7-9절까지의 말씀에서 주님은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1장28-30절의 말씀에서 주님이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께 나올 수 있는 문은 이렇게 항상 열려 있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 10장9~1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들어오는 것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으로 된 문처럼 화려한 인생의 시작입니다. 참으로 기쁘고 복된 일입니다.
8. 동쪽에 나 있는 문을 통하여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성막 뜰입니다.
성막 뜰에는 번제를 드리기 위한 놋 제단과 물두멍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 뜰에는 이스라엘백성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뜰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마구 밟고 다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막 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는 무시당하고 짓밟힌 생애이십니다. 그것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짓밟고 무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①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② 장로
③ 공회원
④ 바리새인과 서기관
⑤ 이스라엘 백성들
로마 총독인 빌라도와 병정들
예수님의 제자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희 스승 목사님이 삼각산에서 기도하다가 본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임의 환상과 음성을 듣고 마음이 아파서 하산을 하는데, 길거리에 내붙은 부흥회 현수막)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어서, 사랑도 받고, 능력도 받고, 응답도 받고, 축복도 받는 성도님들이 됩시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