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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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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선기 목사 |
참고 : | 2005,05,01,주일저녁영월순복음사랑의교회 http://www.e-lovechurch.org |
번제단의 뿔과 고리와 채(성막론5)
지난주에는 번제단의 재료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번제단의 재료는 조각목과 놋이었습니다. 조각목은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자라는 싯딤나무(아카시아나무)로 광야의 기후에 특성인 가뭄과 강한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이기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조각목을 영적으로 해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고. 또 죄로 인하여 버림받은 인간으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놋은 심판의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하고, 또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과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번제단의 뿔과 고리와 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번제단의 뿔입니다.
번제단의 뿔은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달려 있는 뿔입니다. 이 뿔은 번제단에 연결되어 겉이 놋으로 쌓여졌습니다.
1). 번제단 뿔의 용도의 하나는, 제물로 드려진 짐승을 번제단에 매어두기 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뿔은 소나 염소나 양들을 매어 두기에 충분한 견고성을 지니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뿔은 그래서 힘과 능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시편기자는 118편 27절에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말씀하였습니다.
2). 번제단 뿔에는 속죄의 짐승에 피를 바르기도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9장11,12절 말씀에서 “너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을지며”라고 하십니다. 이 피는 죄사함을 위한 피입니다. 그래서 이 뿔은 구원과 생명을 상징하기도합니다.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샤가랴는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 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에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8, 69)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시편 18편 2절에서 “여호와는 …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장 말씀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자, 그는 반역자가 되어 죽을 위기를 맡게 되자, 하나님 전에 가서 번제단의 뿔을 잡고 살려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주었습니다. 죽어야 마땅한 반역죄인이 이 뿔을 잡고 구원을 요구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뿔은 그러므로 생명의 뿔인 것입니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능력의 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뿔은 복음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복음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하여 심판받아 죽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붙잡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도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3). 뿔은 번제단 네 모퉁이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쪽에서든지 번제단의 뿔은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복음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건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복음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아멘.
그래서 성도는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고 하였던 것입니다.
빙산을 만나 파선한 타이태닉호를 타고 있던 한 청년이 이런 간증을 하였답니다. 이 배에는 유명한 설교가인 존 하퍼가 타고 있었는데, 그도 배가 파선 되는 바람에 바닷물속에 빠지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다하여 헤엄치다가 널빤지 조각을 붙잡고 있는 이 젊은이를 향하여, “젊은이,하나님께 구원을 받았습니까?”소리를 치더랍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때 파도가 치는 바람에 하퍼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떠올랐는데, 다시 이 청년을 향하여 “하나님과 화해했습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대답하는데, 큰 파도가 밀려와서 죤 하퍼를 삼키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이 젊은이는 널빤지 덕분에 구조대에 의해 목숨을 건졌답니다.
그로부터 2주일 후 이 젊은이가 뉴욕에서 열린 기독청년집회에 참석해 이 간증을 하며, “여러분, 저는 존 하퍼에 의해 마지막으로 전도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외치던 그 말이 저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하더랍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친 사람들의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스데반 집사와 같은 분이십니다. 전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시면서도 우편에 강도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2. 번제단의 고리와 채입니다(출27:4~7절).
성막은 이동할 수 있도록 천막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에 성막이 앞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도 제사장들에 의하여 메어져서 옮겨지었습니다. 그래서 번제단에는 이동할 때에 메는 채를 꿸 수 있게 끔, 놋으로 만든 둥근 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번제단을 메는 채는 조각 목을 곧게 다듬어서, 그 위를 놋으로 쌓습니다. 번제단의 고리에, 이 긴 채를 꿰어서, 사방에서 제사장들이 메고 이동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가마를 메듯 제사장들이 메고 옮겼습니다.
1). 번제단의 고리는 놋으로 만든 둥근 원형이었습니다.
놋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둥근 원은 영원을 상징하고, 또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참된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과 무관한 교회인 것입니다. 참된 교회는 사랑의 연결고리에 의하여 서로 서로가 하나 되어서 화합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한 지체 지체가 서로 공존하고 협력할 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는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내 주장이 강하면 주님은 뒷전으로 물러서라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된 성도는 자기는 주어진 십자가를 담당하며, 희생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둥근 원형의 고리처럼 모나서도 안 되고 중단되어서도 안 되며,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4절에서 7절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찾아서 읽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아멘
2). 번제단을 메는 채는 두개로, 거칠고 구부러진 싯딤나무(아카시아)을 곧게 다듬어서, 그 위를 놋으로 싸서, 번제단을 메어도 부러지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어 졌습니다. 이 두개의 채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면으로, 삐뚤어진 인생이 바르게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깎아지고 다듬어져야 함을 나타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혀야 합니다. 이 진리를 상징하는 채가 사랑을 상징하는 고리에 끼워져서, 심판을 상징하는 번제단을 메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진리와 긍휼이 만나는 곳입니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진리를 사랑으로 완성시킨 장소입니다. 이 십자가는 번제단이 동그란 놋 고리에 채를 꿰어 메어지듯이, 진리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의 말씀에서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서 세운 교회이기에 진리와 사랑이 공존하여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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