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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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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장우 목사 |
참고 : | 2011. 1. 23 늘푸른교회(창원시) http://evergreen17.80port.net/ |
출27장 20-21
등불의 기름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오늘말씀은 등불의 기름에 대한 말씀입니다. 등불을 밝히려면 등잔과 기름이 필요합니다. 등잔에 대하여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일곱 등잔이 하나의 금덩이를 쳐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등잔대를 스가랴서에서 보면 좌우의 두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공급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촛대가 교회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등잔대가 교회라면 교회가 빛을 발하는 것은 계속하여 기름공급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교회란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20-21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가져오게 합니다. 감람이란 올리브입니다. 올리브기름은 올리브 열매를 으깨어서 짜냅니다. 이 기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아침과 저녁으로 늘 기름을 공급하도록 합니다. 성막 안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기에 이 등불이 늘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면 등대와 성막이 다 성도라면 성도에게 늘 기름이 공급되어야 밝히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6:22-23절입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몸의 눈의 말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빛이 있느냐 없느냐는 말씀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사람의 몸이 다 어둡게 된다는 것은 양안시력이 상실하게 된 자가 얼마나 불편하며 캄캄한 세상이겠습니까? 그런 사람보다 더한 어두움이 모든 사람에게 다 덮여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결과는 마태복음 6장 19-34절을 보시면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고 있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생명과 호흡을 친히 주시는 분이신데 그 생명의 빛에 차단이 되어 있기에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방식입니다. 이런 사람은 내일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무엇을 빛으로 여기고 사는가 하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이 세상의 지혜라고 할 만한 것들을 추구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어두움에 잡혀있습니다.
이렇게 어두움에 사로잡힌 모습이 세상만 사랑하고 돈만 밝히며 사는 속물적인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을 보십시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도 철저히 하는데 심지어 텃밭에 향신료로 심은 박하와 회향(茴香)과 근채(芹菜)까지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텃밭에 산초나무와 방아와 미나리 심은 것까지 십일조를 드립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율법에 열심인 사람들은 스스로 빛의 아들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는 자들이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참 빛이 이들에게 다가오자 이들이 다 어두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1:1-18절입니다. “봉독”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면 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빛이시며 사람들의 생명입니다.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이 빛이요 생명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빛이라고 여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이 빛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어두움에 사로 잡혀있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빛을 알아보고 나아옵니다.
마태복음 4:12-17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빛의 도시로 알고 있습니다. 성전이 있고 율법이 선포되고 제사가 있고 제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오히려 흑암의 땅이라고 여긴 이방인의 지역이 큰 빛을 보았다고 하셨는데 그 예언의 성취를 예수님께서 이루시기 위하여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빛의 성읍이라고 여긴 예루살렘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마태복음 23:33-37절입니다. “봉독” 예루살렘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죽인 도시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님을 그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죽여 버렸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그들이 어둠에 속하여 빛을 미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절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합니다. 여기서 빛은 예수님이며 어두움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율법을 맡았다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참 빛이 오셨는데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11절을 보시면 자기 땅에 오셨는데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영접을 할 수가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미워하고 싫어하는데 빛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닙니다.
13절을 봅니다. 12절의 말씀을 전도할 때에 많이 사용합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미 어두움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예수님을 증거 하면 반드시 미워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물론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영접한 사람은 그 안에 빛이 비추어집니다. 무엇이 생명이며 무엇이 진리인지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6:26-29,30절입니다.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최후의 만찬입니다. 떡과 잔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됨을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하기 위한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고서 이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어디로 가십니까? 감람산입입니다. 감람나무 동산으로 가십니다.
마태복음 26:36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감람산에 가신다고 하시고서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통이라는 뜻입니다. 감람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감람을 짜는 틀이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종종 기도하셨기에 제자들이 아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가룟유다도 이곳으로 군인들을 몰고 와서 예수님을 잡도록 합니다.
이 감람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다들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깨우셨지만 그래도 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수님 홀로 기도하시는데 어느 정도로 기도하셨는지 누가복음 22:43-44절입니다.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감람산 겟세마네, 올리브 산의 올리브기름을 짜는 바위에서 기름 부으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자신이 으깨어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마지막 모습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어두움에 갇힌 자기 백성들을 속죄하시고 이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기 위하여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 다 이루심으로 부활과 승천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하심을 기름 부으심이라고 합니다.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성도가 계속 빛 가운데 거하며 빛을 보게 됩니다. 기름 부으심이 없다면 곧 캄캄하여 집니다.
요한일서 2:27절을 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18절을 보시면 마지막 때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심이 이미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2천 년 전부터 이미 마지막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누가 나타납니까?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이미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도록 그의 기름 부으심이 모든 것을 참되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 기름 부으심의 가르침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어두움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있을 수 있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께서 지금도 계속하여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기름을 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성소에서 대 제사장이 되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고 계십니다(롬8:26). 또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우리는 처음부터 어두움이었는데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면 그것은 지금도 주님께서 일하고 계시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린도후서 4:3-6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복음이 가려지는 자들은 망하는 자들입니다.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도 그랬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천지 창조를 하실 때에 어두움에 빛이 비취라고 하신 그 창조의 능력보다 더한 십자가로 인한 재창조의 능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5:8-14절입니다. “봉독”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합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시험하여 보라고 합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합니다.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과 빛이라는 것들이 다 어두움입니다. 그 외에 지금도 은밀히 행하는 어두움의 일들도 책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책망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것이 빛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어두움이 드러나는데 빛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자는 자가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고 합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일어납니까? 그리스도께서 비추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니 빛으로 나아갈수록 깨끗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더러움이 더 드러납니다. 그것이 빛이 비추이고 있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런 자들을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불을 준비하되 기름까지 준비하여 기다립니다. 그러면 기름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령이라고 합니다. 기름이 성령이라면 누가 공급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올리브가 으깨어져서 기름이 흘러나오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성령이 부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자는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주님 오시기를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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