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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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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장우 목사 |
참고 : | 2011. 2. 13늘푸른교회(창원시) http://evergreen17.80port.net |
놋 제단
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오늘은 제단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제단은 제물을 불로 태우는 기구입니다. 길이와 너비가 다섯 규빗이고 높이가 삼 규빗입니다. 한 규빗은 45cm에서 50cm정도이기에 약 2.5미터의 넓이에 높이는 1.5미터정도이고 각 네 모퉁이에는 뿔을 만들어 이어지게 합니다. 가운데는 그물처럼 되어 있어서 불이 올라와 제물을 태울 수 있게 하였고 이동식으로 만들었기에 네 고리를 만들어 메고 다닐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성막의 널판처럼 가운데는 조각목이며 그 가에는 놋으로 입혀서 만들었습니다.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을 옮겨 담는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산에서 보인대로 만들게 하십니다. 모세가 산에서 본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설계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늘에 이런 놋으로 된 제단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의 성소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런 하늘의 성소에 대 제사장으로 들어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이런 모형들과 기구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막과 지성소를 만들게 하시고 그 안의 기구들과 배치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놋 제단이 위치하는 곳은 성막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곳입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네 겹의 천막을 쳤습니다. 이 크기가 약 15미터 5미터입니다. 이 성막의 전체를 막으로 막는 것의 크기는 50미터와 25미터입니다. 이 성막 안에 들어가면 뜰이 있습니다. 이 뜰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보기로 하고 이 뜰에 놋으로 된 제단과 놋으로 된 물두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막 안의 성소에는 기구들이 다 금으로 만들어지는데 성소 밖의 기구들은 다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놋으로 된 제단의 기능이 무엇인지 보려고 합니다.
먼저 놋이라고 하면 성경에서 심판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28:23-24절입니다.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신명기 28장은 복과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은 순종하면 오고 저주는 불순종하면 오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1절과 15절을 보시면 ‘모든’이라는 단어를 간과합니다. 모든 계명을 다 지켜야 복이 옵니다. 한 가지라도 어기면 저주가 옵니다.
경기도지역에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70세가 다되신 분이 왔습니다. 그 연세에 이화여대를 나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경공부 중에 불쑥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10절을 찾아보게 하였더니 ‘이런 말씀도 있었구나!’ 그러는 것입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몇 가지 순종해서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순종하였습니까? 모세오경의 하라와 하지 말라는 말씀만 613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 어겨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심판이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이 철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심판입니다. 이런 심판의 역사가 엘리야 때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엘리사 시대는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 기간은 여호와의 계명을 다 순종하였기에 비가 온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늘 죄를 지었지만 속죄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 때는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가득하였습니다. 성전에서 바른 제사가 없었기에 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고 났을 때에 비가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48:4절입니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 사람의 목이 쇠로 된 힘줄이며 그 이마가 놋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면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철면피(鐵面皮)라는 말입니다. 이런 인생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요한계시록 1:15 절입니다.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나는 주석과 같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놋쇠로 되어 있습니다. 금속의 성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놋이나 주석이란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놋으로 된 제단이란 심판이 집행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놋으로 된 제단을 다른 말로 번제단이라고 합니다.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단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들어가면 성막의 뜰이 나오는데 이 제단에는 항상 불이 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제단에 제물을 불로 태우는 번제가 드려집니다. 그러므로 성막이란 곳에 들어서면 짐승의 울음소리와 피의 냄새와 고기와 기름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입니다. 참으로 끔찍한 현장이 됩니다. 왜 성막에 들어가는 처음 장소에 이런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죄가 처리되지 않고서는 성소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죄의 역할을 제단에서 짐승의 피 흘림과 불에 태워짐으로 통하여 심판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4:24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어기면 소멸하시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심판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만나서 언약을 체결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타는 횃불의 형상으로 지나가지고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가시떨기 나무에서 불이 붙는 모습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단에 희생제물이 불에 살라진다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용납하실 때에 대신 심판당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레위기 9:9-11절입니다. “9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가져오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고 10 그 속죄제물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고 11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니라” 성막이 완성되고 나서 아론이 성막에서 첫 번제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먼저 속죄제를 드리는데 그 피를 제단의 뿔에 바릅니다.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 쏟고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사릅니다. 이것이 속죄제인데 이 속죄의 과정을 마치고 화목제가 드려집니다. 24절을 봅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불이 여호와께로 나왔다고 하는 것은 제사장들이 붙이 불이 아니라 하늘에서 다른 불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두려워 소리 지르면 엎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놋 제단에서 번제가 드려지는 장면을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하여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습니다. 제단의 뿔에 피가 발라졌기에 제단의 뿔을 잡으면 용서가 됩니다. 그런데 고의로 살해한 자가 잡으면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1:14절입니다.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고의로 사람을 살해하고 도피처가 아니라 성소의 제단의 뿔을 잡을 지라도 잡아내려 죽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보게 됩니다.
열왕기 상 1:50-51절입니다. “50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51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다윗이 늙었는데도 왕의 후사를 정하지 않았을 때에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할 때에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니 아도니야가 반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들어가 제단의 뿔을 잡고 살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살려줍니다. 이 사건을 보면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 용서를 구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로 살해한 자는 제단에서 끌어내어 죽이라고 한 출애굽기의 말씀에 해당 된 사람은 요압장군입니다. 열왕기상 2:28-35절을 보시면 요압이 아도니야의 반역에 군대장관으로 참여하였다가 실패하자 역시 제단 뿔을 잡았지만 솔로몬은 그를 끌어내어 죽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반역에 참여했다는 것이 아니라 까닭 없이 피를 흘린 죄로 인한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군대장관 아브넬이 다윗과 화친하러 왔을 때에 죽인 일과 유대군 사령관 아마사를 고의로 죽였기에 제단 뿔에서도 잡아내어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를 이야기 하지만 자신이 정말 놋 제단에서 불로 태워지는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니 말로는 십자가를 이야기하지만 마치 요압과 같은 모습이라고 봅니다. 자신은 고의로 살해를 두 사람이나 해 놓고서도 단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제단의 뿔만 잡으면 살줄로 알고 있습니다. 전에 이런 예화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인지 소설인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 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무기 징역을 받고 있는 중인데도 단지 감옥생활이 따분하다고 사람을 살해한 것입니다. 용서를 이용하는 정도가 악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놋 제단에서 불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이런 행위를 할 것입니다. 정말 자신의 심판을 알고 그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하였다는 사실을 성령을 통하여 알게 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가 터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 탄식하면서 주를 바라볼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바울사도가 말하니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러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 지어야 하겠다고 한 사람들은 성령이 임하지 않은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대속을 더 자세히 봅니다.
레위기 9:11절을 봅니다.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니라” 속죄 제물의 피를 제단의 뿔에 바르고그 기름은 제단에서 불살라지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영 밖에서 불살라집니다. 왜 이런 일을 처음 제사를 드릴 때에 했을까요? 히브리서 13:11-12절입니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영문 밖에 불살라진 그 희생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놋 제단의 희생물이 되심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놋 제단의 심판을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희생의 피가 뿌려진 성도라면 자기 죄를 알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것은 그의 피 뿌림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2절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렇게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은 이제 은혜와 평강이 그 사람을 다스립니다. 더 이상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책망을 받지 않고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있습니다. 그 길이 히브리서 13:13절 이하에 나옵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오늘날 사람들은 영문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서울 같으면 사대문 안에 살기를 원하고 작은 소읍들은 성안에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 성안에 가난한 자들은 살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성문으로 여기는 것들을 쌓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마치 가인처럼 자기의 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은 여기에 영구한 도성이 없는 줄로 압니다. 장차 올 것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원한 나라에 함께 가는 사람이라면 서로 격려하고 선행과 나눔과 기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그 피의 능력을 더욱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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