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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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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2012.11.30 
최초 ‘처절한 수행’ 뒤 홀연히 사라진 제선 스님 재조명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ㆍ탄생 100년 맞아 구도행적 발굴 ‘석영당 제선선사’ 출간

 

지난 2012.12.27일 대구 북구 읍내동 불광사에서 한국 불교의 전설 속 인물인 제선 선사(1912~?·사진)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제선과 생전 인연을 맺은 조계종 원로 동춘·도성·도일 스님과 제자인 황산(캐나다 밴쿠버 달마사)·일화(대전 관음사)·우성(공주 학림사)·동성(보은 비마라사) 스님 등이 참석했다.

 

제선 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아주 특이한 존재다. 그동안 그의 행적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려서 생사조차 알 길 없다. 하지만 한번 앉으면 바위처럼 꿈쩍 않는 그의 ‘수행력’은 추종을 불허했고, 생애 또한 극적이었다고 한다. 선승들 사이에선 ‘가장 철두철미했던 수행자’로 언급되곤 한다.

 

한국 불교에는 ‘무문관(無門關)’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행처가 있다. 밥이 드나드는 구멍만 남기고 출입문까지 자물쇠로 채워 봉쇄한 방이다. 이 무문관을 처음 만들고, 그곳에서 면벽수행을 한 이가 제선이다. 바로 서울 도봉산 미륵봉 기암 아래 숨어 있는 천축사 무문관이다. 대리석으로 지은 3층 집으로 지금은 시민선방으로 쓰고 있다.

 

제선 스님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일본에 유학했다. 오사카 시내에 사는 삼촌 집에 들르면 늘 반겨주던 개가 있었다. 이 개가 병이 들자 삼촌이 시키는 대로 교외에 내다버렸다. 도쿄 메이지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갑자기 병이 들어 숨을 거뒀다. 절망에 빠진 그는 전국 유람 길에 나섰다. 한 번은 죽기로 작정하고 금강산 봉우리에서 몸을 던졌지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깨어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리산 산청의 토굴에서 21일간 기도를 했다. 그 마지막날 비몽사몽간에 아들과 상봉한다. 너무 반가워서 쫓아갔는데 아들이 개로 변하는 것 아닌가. 일본에서 버린 개였다. 개가 아들로 태어나 온갖 애를 태우고 떠난 것이다. 그는 ‘인과응보’의 도리를 깨닫고 출가를 결심한다.그는 1937년 지리산 칠불암에서 혜천 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스님이 된다. 그와 동갑이었던 혜천 스님은 이미 ‘지리산 도인’으로 유명했다. 제선은 오대산 상원사, 논산 관촉사, 남해 보리암, 도봉산 망월사 등에서 깊은 수행을 했다. 심지어는 ‘실질적으로 얼마나 힘을 갖췄는지 테스트 해보자’며 화장(自火葬)을 시도하기도 했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올라앉았다가 깊은 화상을 입고 만다.

 

제선은 ‘출가 도반’인 천축사 주지 정영 스님을 설득해 무문관을 세운다. 1965년 그는 부처님의 설산고행(雪山苦行)을 좇아, 6년을 작정하고 한 평 방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 폐관정진(閉關精進)에 들어갔다. 제선은 “부처님과 같은 실제 힘을 기르기 전에는 나서지 않겠다”며 스스로 지독한 독방 감옥살이를 했다. 제선과 함께 무문관에 든 수행자는 6명이었다고 한다.

제선 스님은 1971년 5월5일 약속했던 6년을 하루도 어기지 않고 끝마쳤다. 당시 기한을 다 채운 이는 제선과 뒷날 직지사 조실을 지낸 관응 스님(1910~2003)뿐이었다고 한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무문관을 나오자마자 점심 공양을 한 뒤 사제인 혜원 스님의 배웅을 받고 조용히 산을 내려갔다. 조카상좌 일화 스님만 데리고 부산으로 간 제선 스님은 홀로 여수행 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의 도반과 제자들이 전국으로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제선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황산 스님 등 제선문도회가 펴낸 <무문관 수행의 전설, 석영당 제선선사>(비움과소통) 이야기다. 불교신문사 박부영 기자가 여러 증언들을 발굴·취재해 제선의 삶과 구도행각을 재구성했다.무문관 수행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만큼 혹독하다고 한다. 모든 것을 내던져 ‘깨달음’을 얻겠다는 각오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다.

 

1972년 시작된 제2차 천축사 무문관 수행에서도 구암·원공 스님만 6년 기한을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요즘 천축사 수행을 따르려는 또 다른 무문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선과 함께 천축사 무문관을 열었던 정영 스님이 1983년 개설한 공주 갑사 대자암 ‘삼매당’에 이어 1994년 제주 ‘남극선원’, 1998년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 2004년 천성산 조계암, 2005년 경주 감포의 무일선원이 무문관 수행을 시작했다. 요즘은 스님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세상과의 ‘자기 단절’을 통해 ‘참다운 자기’를 찾는 무문관 수행을 들어간다. 이래저래 ‘전설’의 옷을 벗고 새롭게 주목받는 제선 스님이다.

 

 

본문 중에서…

 

 ◇… “1942년 늦가을. 백련암에 안거하며 정진했던 제선스님은 공무로 관청에 갔다가 밤늦게 백련암으로 귀사(歸寺)하던 길에 큰 호랑이가 자신의 갈 길을 막고 있었다. 잠시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는 대호(大虎)와는 불과 한 칸을 사이로 마주앉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가야산 주인이 너인가, 나인가!’ 좌선삼매에 몰입하였다. 한참 뒤 살펴보니 앞다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잡아먹을 듯 무섭게 앉았던 대호가 참회하듯 앞 다리를 꾸부리고 꿇어 앉아 있었다. 스님의 수행력에 축생의 사나운 짐승도 감화되어 심성이 맑아진 것일까! 대호의 선근을 확인한 스님은 가까이 가서 대호의 등을 어루만지며 ‘발보리심(發菩提心) 하라.’는 설법을 하고는 유유히 백련암에 도착하였다.” -〈해인사지(海印寺誌)〉 (7p)

 

◇… 동네 사람들이 부친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주었다. 부친은 ‘일본에 있는 기부를 보기 전에는 절대 갈 수가 없다’고 해서 염(殮)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병풍 뒤에 시신을 모셔놓고 있던 차였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기부는 병풍을 제치며 “아버지 기부가 돌아 왔습니다” 하며 울면서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병풍 뒤에 누워 있던 부친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아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잘 왔다. 지금 내 머리 위에 두 사자가 와서 빨리 가자는 것을 자식 보고 가겠다며 내가 통 사정을 해서 이렇게 버티고 있었다” 하니, 기부는 “어떤 놈이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려 왔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기부를 본 아버지는 “이제 나는 여한이 없다” 하며 편안히 눕고는 세상을 떠났다. 이 일화는 부친의 자식에 대한 사랑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초인적인 정신력을 보여준다. (21p)

 

◇… 남들은 그토록 집착하는 생(生)을 미련 없이 던져버렸는데, 그것도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떨어졌는데, 적어도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어딘가 깨지고 부러져 제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해야 하는데, 띠끌만큼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웃는 수 밖에…. 새롭게 놓인 삶을 마주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웃음 밖에 없는지 모른다.

‘아, 이런 운명을 갖고 태어났구나. 이왕 살려고 나왔으니 멋지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갖고 기부는 몇 시간이 걸려 산을 내려왔다. (32p)

 

◇… 마지막 날이었다. 사시(巳時)에 회향하는데 그 날 아침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사시마지를 올리고 염불을 하면서 앉아있는데 잠깐 사이 비몽사몽(非夢似夢)의 경지에 젖어들었다. 광야를 걷고 있는데 아주 위험한 바위굴이 나타났다. 어떤 동자가 한 명 구름 속에서 나타났다. 분명 아들이었다.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갔다. 하지만 달려가면 그 만큼 물러나고 더 빨리 가면 또 더 빨리 물러나기를 거듭하다 결국 굴에 다다랐다. 아들의 모양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듯 하더니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뒷모양이 변하더니 개꼬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버렸던 그 개다. 홀연히 사라졌다. 그랬다 개가 원귀(寃鬼)가 되어 아들로 환생해서는 온갖 애를 태우고는 간 것이다.

이 무슨 인연인가. 기부가 일본 유학 때 삼촌의 명으로 그가 버렸던 개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로 인연을 맺어 가슴에 대못을 박고는 떠났다 한다. (37p)

 

◇… 윤치영이 비서실장 시절 이승만 대통령에게 산중에서 생활하는 조카가 있는데 범상치 않다며 슬쩍 면담을 권한다. 그렇게 해서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난다. 포산은 이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주머니가 큰 조끼를 입고 갔다. 이 대통령이 젊은이가 무슨 큰 조끼를 입고 있는가 의아해 하자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이 주머니에 역대 조사와 삼세제불을 다 집어 넣고 한 주머니에는 천하 영웅을 넣었는데 각하도 내 주머니에 있습니다” 하고 일갈한다. 그러자 이 대통령의 안색이 싹 변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헤어지고 나오면서 포산은 “아이구 이승만도 안되겠다”며 실망했다고 한다. (44p)

 

◇… 제선선사는 생각했다. ‘법상에 앉아 천하를 호령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얼마나 힘을 갖췄는지 테스트 해보자.’ 그러고는 쌓아놓은 나무위에 올라가 자화장(自火葬)을 했다. 불은 맹렬이 타올랐지만 선사를 태우지는 못했다. 그가 생각한 대로 물에 들어가도 물에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그런 경지를 보였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어떻게 불에 타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마음이 열리고 말았다. 불현듯 ‘아, 내가 불구덩이 위에 앉아 있는데 왜 뜨겁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바로 그 순간 마음이 열렸다. 일심삼매(一心三昧)로 앉아 있어야하는데 생각이 열리면서 곧바로 불길이 휘감은 것이다. (64p)

 

◇… “중국에 사관(死關)이라는 데가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거기서 견성을 해서 나오든지 죽든지 자기 관을 만들어 놓고 정진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그런 곳이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효봉스님도 금강산 신계사 미륵암에다 못을 쳐놓고 출입을 안 하고 3년동안 수행하셨고 경허스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고 영원 조사도 상좌를 제도하려고 금강산 영원암에 가둬놓고 밥을 갖다 주고 그리했다는 말이 있거든요. 그런 것으로 보아서 스님들이 그런 곳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더러 해요. 누가 그런 곳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있다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구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중국의 사관 같이는 할 수 없고 우리는 부처님의 6년 고행과 같이 6년을 수행하자 했죠.” (88p)

 

◇… “근세 선지식이 법상에 앉아 타불(打佛) 타조(打祖)하는데 실제의 힘이 있어야지 말로는 누가 못하나. 중생이 궁금해하는 것을 부처님은 다 보여주셨다. 극락이 있는가 물으면 있다 하며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극락을 보라 하셨다. 지옥이 있느냐 하면 지옥을 가리키며 지옥고를 받는 중생을 보여주셨다.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을 느끼니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부처님의 힘이다. 부처님과 같은 실제 힘을 기르기 전에는 중생에게 나서지 않겠다. 이것을 왜곡한 이는 (부처님께서) 신통과 조화를 부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부처님 제자이다. 그 힘을 기르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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