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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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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세령 목사 |
참고 : | 2012.2.19 로테르담 사랑의 교회 |
출1장 1-14, 요11장 45-53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번성과 많음에 대한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차이는?
그리스도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과 신약 본문으로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는 왕따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가 여러모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학교 혹은 공교육은 사교육에 의해서 치이고 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성적순으로 한 줄을 세우는 학교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교육이 엄청난 규모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경쟁이 아이들을 너무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쟁 사회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입니다.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자녀들의 삶과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정서적인 일탈 행위의 한 모습으로 학교 폭력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떤 교육자는 이렇게 상황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현상에 따른 한 줄 세우기 무한경쟁 교육체제 속에서 교육이 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든 아이들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찾아가는 교육이 사라지고 성적 경쟁만 남은 상황에서는 공부를 못 하는 아이는 열등감과 절망감에 짓눌리고, 잘 하는 아이는 계속해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짓눌린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출구로 나타나는 것이 집단 따돌림과 폭행 현상이다. 그리고 교정해줄 수 있는 교육적 힘이 없는 상황에서 이 현상은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지혜를 가르치는 현장인데, 이렇게 지혜가 무너지는 현장이 따로 없습니다.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의 사회분위기가 이제 학교마저도 집단적인 힘을 이용해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삽니다. 거기서 번성하게 됩니다. 이 백성들은 야곱의 자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번성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번성했습니다. 창세기의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번성하자, 여기에 불안을 느낀 애굽의 왕이 있습니다. 이 바로는 9절에서 말합니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애굽과 동화되지 않고 가축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이유는 언제든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번성하여 많아졌기에 이제 그 힘을 이용해서 적의 편에 서서 우리를 치고 자기들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갈 것에 대해서 상황 분석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의 지혜입니다.
8절에서 이런 바로가 요셉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요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7년 흉년 속에서 애굽과 근동의 백성들을 먹여 살려 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많은 백성들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바로는 이런 요셉과는 다른 종류입니다. 자신의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 통치권의 한 백성을 압제합니다. "많다"는 것이 힘이 된다는 사회적 속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억압과 착취를 하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더 강하고 많기 전에 강한 자신의 힘으로 억압하자는 것입니다.
애굽의 지혜의 본질은 그렇습니다. 힘의 논리이며, 강자의 논리이며, 많음으로 적음을 비웃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의 제국이던 애굽이 가진 지혜이며 가치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산파가 등장합니다. 이 산파들은 애굽의 바로에게부터 명령을 받습니다. 십브라와 부아라는 여인은 히브리 여인들의 해산을 도울 때 남자 아이이면 죽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산파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기에(17), 그들은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왜 살려두었느냐는 심문에 대해서 답변을 합니다.
히브리 여인들이 애굽 애인들과 달리 건강하기에 산파가 이르기전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히브리 산파들의 지혜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권리와 힘을 통해서 약한 사람들을 살려내는 지혜입니다. 이것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라고 합니다. 요셉에게 있었던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가 히브리 산파들에게도 있습니다.
이제 신약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예수님의 대적인 바리새인에게 고자질합니다.
결국 산헤드린 공회가 모입니다. 로마의 억압아래 놓인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통치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회가 의논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니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가? 왜 표적을 행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추앙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그 시대의 소망은 분명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요6:15). 로마가 인정하지 않은 왕을 세우는 것은 곧 로마에 대한 반역입니다. 이것은 로마가 가장 싫어하는 일, 즉 로마의 평화를 배반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는 엄청난 군단을 동원해서 정벌에 나서고 비참한 종결을 짓게 됩니다. 로마는 그렇게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간다. 아직은 자치를 허락하지만 반역을 일으키면 황제의 직속령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더 힘든 세월을 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가진 사고와 인식의 방식입니다. 많은 표적과 많은 유대인이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믿게 됩니다.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 가지고 오는 파국을 우려합니다.
많은 것이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듯이 작은 것도 많이 모이면 크게 됩니다. 힘이 됩니다. 통계 자료의 힘이 그런 것입니다. 한해 두해 자료를 모으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수십 수백년의 자료를 모으면 엄청난 힘이 됩니다. 많다는 것이 가지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많음을 통해서 항상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이고 힘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만을 보아온 공회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기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세속적입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많은 돈, 많은 인기, 많은 권력을 가지고 항상 세속적인 이익과 통치의 수단으로 삼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분 중에 하나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많은 표적과 따르는 무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렇게 많음을 통해서 섬김과 잃어버림 그리고 낮아짐의 길을 가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18:36절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께서 칼을 들어 제사장의 종을 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마26:53절입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공회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종교적인 집단체이지만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인 안목만이 있습니다. 많음을 추구하는 세상의 권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많음을 통해서 낮아짐과 잃어버림과 섬김을 이루려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와 다른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애굽의 지혜를 이기는 힘은 하나님이 주신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믿는 히브리 산파들의 지혜와 믿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공회의 세속적 판단을 뒤집는 힘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는 유대인들을 넘어서 이방인들까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복음입니다.
복음이 우리의 삶을 세우는 힘입니다. 아무리 경쟁이 많고,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진다는 사회적 신화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주신 힘과 은혜를 따라서 서로를 위로하고 섬기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낮아지고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복음의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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