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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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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연재선 목사 |
참고 : | [2009년8월2일] 새생명교회 http://nlc1.cafe4.com/ |
전능하신 하나님
20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한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을 보면 정말로 전능하신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과연 어디서 전능하심을 볼 수 있는가? 신자들의 삶 역시 비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렵기만 하고, 또 기도를 해도 무슨 일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전능하심을 찾을 수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거짓말 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심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고 있는가?
출애굽이란 애굽을 떠난다는 뜻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게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대사회에서는 전쟁을 하여 승리하게 되면 그 지역에서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살도록 하지 않으셨다. 물론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남아 있었으면 더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편하게 살도록 하실 계획이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셨을 것이다. 굳이 광야로 내보내서 고생시키실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애굽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버리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게 하셨으면 되었을 것이다. 가끔씩 사람들이 지루해 하면 기적을 하나씩 베풀어 주시면서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면 삶에 기대감이 있고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에서 떠나게 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게 하셨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5)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7)
이런 기록은 창세기 46장 27절의 내용의 확인이다. 이처럼 야곱 일행은 단지 70명만이 애굽으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이스라엘의 인구가 점점 불어나게 되자 애굽의 바로 왕이 두려워했다. 혹시 적이 쳐들어오게 되면 이스라엘이 그 적들과 연합하여 자기들을 대적하여 오히려 자기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했다. 생각 끝에 바로는 감독들을 세워서 이스라엘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다. 바로는 자기의 곡식을 저장해 둘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국고성을 세우도록 했다.
중노동을 시키면 죽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기력이 쇠하여 자녀를 생산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바로는 강제노동을 시켜 이스라엘을 혹사하여 민족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12)
그런데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어떤 일이 있게 될 것임을 예견하는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은 이미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일이 있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괴롭힐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들을 징벌하시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이 큰 재물을 이끌고 탈출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400년 동안 종으로 살게 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붙들려 인도된 삶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복의 근원이 된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자들로서 살아가는 것이 이스라엘이었다.
하나님의 전능(全能)하심은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한 자리에 눌러 앉아 편하게 살도록 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약속하신 목표를 향하여 떠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갖도록 해주신 결과로 여기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떠나게 하신다. 우리나라 사람이 환경이 좋은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그곳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좋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좋은 여건이 주어지면 자꾸 주저앉으려고만 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편안하게 눌러 사는 것이 아니라 떠나게 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땅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도 신자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를 사모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삶은 ‘~~로부터 떠나 ~~로 향하는’ 삶이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삶이었다. 우리의 구원 역시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죄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로 향하는’ 삶인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점까지 이끌어 가시고야 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원해서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비가 올지라도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불치병을 낫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병이 낫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이 세상은 종착역이 아니라 다만 간이역일 뿐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자로 만들어가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세상과 다르게 나타난다. 세상과 다르다는 것은 생활풍습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겉으로 신자의 티를 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과는 다른 삶의 목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삶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땅의 것이 자기들이 힘이고 소망이기 때문에 모든 근심과 걱정이 땅의 것으로부터 발생되지만 신자는 위의 것을 사모하는 자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골 3:2).
앞으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시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란 한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 어떤가를 보여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어떻게 이루어나가시는지도 보여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신실하게 일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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