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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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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동춘 목사 |
참고 : | 2009-02-15 비전교회 http://www.vision21com.com/ |
이 땅도 아니네 애굽은 애굽일 뿐이다
세계를 정복하는 꿈을 가졌던 나폴레옹의 일화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을 때의 일입니다. 지친 부하들을 독려하며 눈 덮인 어느 봉우리에 올랐는데 나폴레옹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여기가 아닌가벼!” 별 수 없이 힘겹게 오른 봉우리를 내려가 천신만고 끝에 다른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까무라칠 말을 하는 겁니다. “아까 거기가 맞는가벼!” 해서 기진맥진한 병사들이 모두 까무라쳤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느 일에 이것이다 싶어 전심전력을 다 할 때가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더욱이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다 이루어지고 나면 ‘이게 전부인가, 이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에 빠집니다. 이런 의구심 끝에 ‘이게 아닌가봐’ 하며 방향이나 진로를 수정합니다. 그리고는 지난 번 처럼 전심전력을 쏟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다 이루고 나선 ‘이것도 아닌가봐’ 하며 허탈해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늘 만나게 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땅,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약속된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땅은 천국입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싶어 목매어 살지만, 이 세상은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사는 것에 만족이 있을리 없는 겁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게 된 것은 순전히 요셉 때문이었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요셉 덕분에 당시 최강국인 애굽에서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이 애굽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물론 요셉이 애굽의 총리를 목표로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요셉은 애굽 편에서는 이방인인데 감히 꿈꿀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더욱이 요셉이 애굽에 오게 된 것은 형들의 질투에 의해 종으로 팔려 온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하나님의 작업이셨던 겁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이스라엘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을 포함해 전 세계가 여러 해 동안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진작에 애굽 왕 바로가 꿈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는 꿈을 꾸고, 그 해석은 하나님의 지혜로 요셉이 해석을 했습니다. 이런 관계로 바로는 요셉을 신임하게 되었고, 대 재앙인 가뭄에 대비하는 지혜를 내는 요셉을 보면서 더욱 신임하게 되었던 겁니다. 결국 요셉이 애굽을 세계 최강의 부국으로 만들어 내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겁니다.
그러니 이런 일등공신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해 오는 것을 바로가 마다할리 없었던 겁니다. 대 환영했고,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창 47:5-6)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애굽에 들어와 살게 된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초기 멤버들은 죽고, 새로운 멤버가 각 공동체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6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8절)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아는 왕이 죽자 요셉으로 인하여 맺어진 관계가 그만 단절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환대받으며 들어왔던 이스라엘이 이제부터는 학대를 받기 시작하는 겁니다.
성경은 환대에서 학대로 돌아서게 된 배경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등장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의 강한 번식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7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데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8-11절)
우리는 애굽의 새 왕이 두려움을 가질 만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올 때 숫자는 고작 70명이었습니다.(창 46:27) 그리고 그들이 정착하여 산 땅은 애굽의 일부인 고센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400년이 지난 지금은 대략 250만명이 되었고, 애굽의 온 땅에 살게 되었던 겁니다. 그러니 애굽의 인구보다도 많게 된 이스라엘을 새 왕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더욱이 신체적으로도 강했다고 하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새 왕이 낸 아이디어가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는 학대”였던 겁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12절) 그래서 더욱 더 어려운 노동으로 괴롭힙니다.(13-14절) 그리고 아예 출산제한을 시킵니다. 애굽의 새 왕은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브아에게 히브리 여인의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이 태어나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15-16절) 그러나 이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질 않습니다. 왕이 노발대발해도 지혜롭게 대답을 하면서 생명을 해하질 않습니다. 이처럼 학대를 받아도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17-20절)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번성하고 강해지니 이제는 아예 애굽 전 국민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이스라엘에)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 거든 살려두라!”(22절)
결국 학대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왕이 원하는 대로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와 학대의 관계, 우리와 번성의 관계를 통해 천국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는 학대로서의 고난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의 번식과 강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세상을 현혹시켜 주인 행세를 하는 겁니다. 거짓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의 번식과 강함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마귀는 발악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학대(핍박)하는 겁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서 학대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요 16:2) 그들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워하고 학대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합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 15:19-20)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미움과 박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 박해는 날이 갈수록 더 할 것이고, 더욱 교묘해지고 정교해질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그래서 이 현실에 안타까움을 보이신 주님이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두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바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함이라.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사랑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함이라. /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축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려함이라.』
그렇습니다. 마귀는 양의 가죽을 쓰고 집요하고도 교묘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수없는 박해를 자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하십시오. 우리는 박해를 받을수록 더 번성하고 강해집니다.
작가 박범신씨가 자신의 딸 아름이에게 들려준 <어떤 뱀장어 이야기>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이 아프리카에 가서 밀림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을 보고 있다가,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떼를 지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습니다. ‘옳다, 저 놈들을 잡아다가 뉴욕에 팔면 떼돈을 벌겠구나.’ 마침내 그는 대형 상선을 빌리고, 값싼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이용해 열대어를 대량으로 잡았습니다. 상선 안에 거대한 수족관을 만들고, 거기에 계곡의 물과 수초들을 채우고, 산소까지 충분히 공급해주면서 두 달간의 항해를 끝내고 뉴욕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제 일확천금의 부푼 꿈을 안고 수족관을 열었는데 그만 아연실색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열대어의 반 이상이 죽어있었고, 살아있다는 것들도 가사 상태로, 단 한 마리도 제 값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는 빈털터리가 된 겁니다.
그는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는 그 물가에서 자신의 머리칼을 움켜잡습니다. ‘도대체 왜 열대어가 죽었을까?’ 그가 깊은 상념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물속의 열대어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고요히 헤엄치던 열대어들이 무엇엔가 놀란 듯 기민해지고, 생동감이 넘치고,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때 계곡의 아래쪽에서 느릿느릿 뱀장어 한 마리가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고, 열대어들은 그 놈에게 잡아먹힐까 봐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아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비로소 실패원인을 알아차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마침내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화 끝에 박범신씨는 그의 딸에게 ‘너에게 뱀장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의 긴장 속에 살아가야 하는 딸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사랑하는 딸 옆에도 뱀장어가 있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 교훈이요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박해는 무엇입니까?’ 기억하십시오 박해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를 강하게 하는 훈련 센터입니다.
그러나 박해가 주는 유익에는 이것 말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박해는 ‘애굽은 애굽일 뿐’임을 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살아야 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간을 살면서 서서히 애굽의 우상문화에 익숙해진 겁니다. 죄가 주는 쾌락에 취해버린 겁니다. 그래서 애굽이 너무 좋아진 겁니다. 애굽을 약속의 땅으로 착각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의 새 왕의 박해를 통해 ‘애굽은 애굽일 뿐, 착각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박해를 받고, 그 박해의 강도가 세지니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가 약속의 땅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7-8)
우리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빌 3:20) 이 땅의 시민권은 일시적인 것일 뿐 천국의 시민권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곳이 목적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애굽은 애굽일 뿐이니 착각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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