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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모세! 제3의 인생을 향한 탈출-누구를 섬깁니까?

출애굽기 김흥규 목사............... 조회 수 1881 추천 수 0 2012.12.03 0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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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1:1-22 
설교자 : 김흥규 목사 
참고 : 2008-02-09 내리교회[기감] http://naeri.org 

가라, 모세! 제3의 인생을 향한 탈출-누구를 섬깁니까?

  

이번 사순절 40일 특별 새벽 예배 동안에는 모세의 일대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20세까지 살았던 모세의 생애는 크게 3등분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궁전에서 생활했던 40년은 힘이 지배했던 시대입니다. 애굽 그 자체가 힘의 상징입니다. 오늘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초강대국이 이었지요. 그러므로 애굽은 교육 문화 군사 경제 등 힘만 있으면 이기는 사회입니다. 애굽 권력의 핵심부인 궁전에서 모세는 힘의 논리를 배웠습니다. 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힘의 논리를 모방한 절정이 애굽인을 주먹으로 때려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쫓겨갔습니다. 애굽인들 뿐만 아니라 도와주려했던 동료 히브리인들조차도 모세를 배척했습니다. 어떤 이데올로기나 선의(善意)가 무력화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인간의 힘이 아무것도 아님을 철저히 깨닫는 제2의 인생기에 돌입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힘의 논리가 모세를 지배하는 한 하나님이 개입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힘을 잃어버린 야인, 외롭고 쓸쓸한 목자가 되어서야 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겸손한 사람으로 깎여지고 다듬어졌습니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냄새나는 짐승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최고의 힘들이 무익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실의와 좌절의 나날들이었습니다. 자기가 휘둘렀던 힘이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서 또 다른 힘에 위협을 받는 힘의 역설과 모순을 경험했던 것이지요.


그러던 모세가 나이 80세 백발의 노인이 되었을 때 출애굽의 영도자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셨을 때 모세는 자기는 도저히 못 한다고 사양했습니다. 제1의 인생기에 힘 하나만 믿고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모습과 너무나 다릅니다. 40년의 광야 생활이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힘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힘을 배우는데 40년, 그 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40년, 장장 80년이 지난 뒤에야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모세는 이 제3의 인생기에서부터는 더 이상 자기 수완과 능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만을 붙들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수동적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제3의 인생기에 수동적 영성을 지닌 채 오로지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했습니다. 바로 그 때 출애굽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사건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에 사로잡혔을 때 모세는 마른 막대기로 홍해를 육지처럼 가를 수 있었고 바윗돌을 내리쳐 샘물이 펑펑 솟게 했던 것이지요.


저는 이번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온 교우들이 모세와 같이 제1, 제2의 인생을 뛰어넘어 제3의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자랑과 자기 힘에 의지했던 모든 과정으로부터 탈출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것은 변증법에서 말하는 정(正, THESE)→반(反, ANTITHESE)→합(合, SYNTHESE)의 논리구조로써도 풀 수 있습니다. 자기 힘만 믿고 날뛰던 애굽 시대→자기 힘이 아무 것도 아님을 발견한 광야 시대→그리고 이 두 극단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뛰어넘는 출애굽 시대로 순서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새벽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은 세상적인 힘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시간이 되어서 막판에 출애굽의 제3시대로 넘어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누구를 섬깁니까?

출 1: 1-22

 

본문은 출애굽기의 무대를 설정합니다. 모세 이야기의 배경이지요. 편의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7절, 8-14절, 그리고 15-22절입니다.


1.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다(1-7절)

첫 단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애굽땅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아주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1-5절을 보면 기근을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간 야곱과 그 후손들이 모두 70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에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들과 동시대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났으며 세력도 강해졌고 애굽 온 땅에 가득 퍼졌습니다.


창세기에서 족장들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약속, 즉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창 1: 28절과 9: 1절의 약속이 애굽에서도 계속된 것이지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2. 바로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8-14절)

출애굽기를 읽을 때 그냥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읽는 것보다 상징적이고 유비적으로 읽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우리는 출애굽의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역사적 사실성만 가지고서는 오늘 우리는 그 어떤 신앙적 교훈도 찾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애굽은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세계, 하나님 없이 자기 힘만 믿고 날뛰는 인간중심의 세상을 상징한다고 풀어야 합니다. 애굽을 탈출해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과정은 불신앙과 우상숭배와 자기 실력만 믿고 살던 세계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신앙적인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애굽을 탈출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결코 간단치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붙은 인습을 하루아침에 청산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광야는 하나님 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가나안 땅의 진정한 시민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신앙학교와 훈련소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굽→홍해→광야→가나안의 도식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가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봐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애굽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 없이 세상 방식대로 막 살아갑니까? 아니면 애굽을 막 탈출해 하나님 없는 세상과 하나님 모신 나라의 경계선인 홍해를 건넜습니까? 아니면 광야에서 모진 시련과 연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듬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늘 하나님과 교통하며 은총과 축복을 누리며 삽니까? 아마 저를 비롯해서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광야에서 훈련받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에 나타나는 요셉과 바로, 애굽인들과 비돔과 라암셋 등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통치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파 라오, 즉 바로가 이스라엘의 눈부신 번영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영이 바로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재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앉은 자요, 자신의 권력과 욕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는 세력의 화신(化身)입니다. 오늘로 말한다면 물질이나 권력이나 향락이나 인기, 등등 인간이 참으로 섬겨야 할 하나님을 떠나 신으로서 섬기고 자유를 잃고 억압당하는 일체의 우상숭배적 세력은 다 바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한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로 상징화되는 사탄의 세력은 생명을 증식시켜나가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죽이려고 발광합니다.


9-10절을 보세요.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확실히 바로는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미워합니다. 생명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원하시는데 바로는 생명을 부정합니다.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육과 번성과 충만은 축복이지만 바로와 같은 사탄의 세력들에게 생육과 번성과 충만은 반드시 억제해야 할 골칫거리인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유아들과 여자들을 제외한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했습니다(출 12: 37). 그러니 유아들과 여자들을 합칠 경우 2백만 가까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바로는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과 충만에 위기를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셨는지 알지 못하기에 이스라엘을 탄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아시기에 그 탄압에서 구원하십니다. 모름과 앎은 이와 같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저지하려는 바로의 특단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이집트의 국가적 안전을 위협한다고 생각해서 가혹한 탄압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11절을 보세요. 애굽인들이 공사 감독관들을 두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즉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공사현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동원되어 강제 노역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3-14절을 보면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이나 밭일과 같이 힘든 일을 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얼마나 혹독하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려먹었던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은 참 놀라운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억압을 받을수록 정반대로 더욱 더 번성해갔다는 것입니다! 억압을 하면 억압자에게 더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데 억압자가 싫어하는 일이 오히려 가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용수철의 원리가 생각납니다. 용수철은 억누르면 억누르는 만큼 더 심하게 튀어 오릅니다. 반발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을 저지하기 위하여 강제노역을 통해서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바로로 상징화되는 사탄의 세력이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절대로 방해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이제 이 두 번째 단락에서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를 섬겨야 합니까? 13-14절을 보건대 이스라엘은 명백히 바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바로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댓가가 무엇입니까? 자유를 잃고 억압당하는 노예로 전락한 것입니다. 여기에 출애굽기의 중요한 주제가 있습니다. 출애굽은 바로를 주인으로 섬기며 애굽체제하에서 억압과 수탈을 당하며 신음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한 주인을 찾아 애굽을 탈출하는 기록입니다!


애굽에서 바로를 섬기면 자유를 잃고 종이 됩니다. 탄압과 수탈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애굽을 탈출하면 해방과 자유와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를 주인으로 섬깁니까? 바로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아직 바로를 섬기며 죄와 죽음과 억압과 파멸의 권세 아래 신음하십니까? 빨리 애굽에서 탈출해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참 해방과 자유와 구원이 있습니다!


3. 딸들이 아들들을 구하다(15-22절)

바로는 한편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혹한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히브리 산파들에게 산아제한을 명했습니다. 16절을 보세요.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히브리 여인들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는 것이지요. 산파들로 하여금 남아 살인자들이 되라는 명령이 아닙니까?


바로가 누구입니까? 그 말 한 마디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산천초목도 부르르 떨지 않습니까? 온 애굽이 바로의 말 한 마디에 놀아나는데 노예인 히브리 사람들, 그것도 보잘 것 없는 두 여인, 십브라와 부아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가 시킨 대로 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살려두었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바로가 다그칩니다.


19절을 보세요.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히브리 여인들은 애굽 여인들과 달리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미리 낳아버리기 때문에 손을 쓸 겨를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 말에 세계 최강의 권력을 자랑하던 바로도 입을 다물고 맙니다.


그런데 십브라와 부아가 히브리 남아들을 살려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17절을 보세요.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방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는 죽음과 파멸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생명과 구원을 원하셨기 때문에 바로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 편을 들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출애굽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 노예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는 두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들은 지도자도 아니고 유명 인사나 명문 집안의 여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산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연약하고 무명한 여성들을 통하여 출애굽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드십니다.


20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하나님이 두 산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더 숫자가 불어났고 매우 강성해졌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성 둘을 통하여 위대한 출애굽 구원 사건의 기초를 다져나가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억제하려던 바로의 정책은 무위로 끝났습니다. 이제 최후의 수단을 강구합니다. 22절에 보니까 애굽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갓 태어난 히브리 남아는 강물에 던져 죽게 하고 여아만 살리라는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을 공개적으로 학살하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롯 임금이 베들레헴 지경에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과 일맥상통하지요. 바로로 상징되는 사탄의 세력은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염원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어떻게 해서라도 꺾으려고 최후의 순간까지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4.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첫째,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저지하려는 어떠한 세력의 시도도 기필코 꺾으십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의 생육과 번성과 충만을 두려워했습니다.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수단을 부렸어도 생명의 하나님을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둘째, 출애굽의 영웅 모세는 연약한 여인들로 인해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 산파 둘, 출 2장에 나오는 모세의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바로의 딸 즉 공주, 등 다섯 명의 여인들이었습니다. 연약한 여인들이 출애굽의 숨은 공로자로 부각되지 않습니까? 고전 1: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늘 여러분이 섬기는 주인이 누구인가 생각해보세요. 바로를 섬깁니까? 하나님을 섬깁니까? 바로에게는 무서운 세상적인 힘이 있습니다. 권력과 경제력과 술수와 모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를 섬길수록 자유함이 없습니다. 억압과 수탈과 슬픔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길 때 해방과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앞으로 사십일 동안 여러분은 바로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탈출해나가시길 부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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