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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8: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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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성홍모 목사 |
참고 : | 2011. 5. 4 (수) 영주교회[서울 후암동] http://youngjoo.co.kr/ |
판결흉패, 우림과 둠밈
오늘은 제사장의 의복 중에 판결흉패와 우림과 둠밈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제사장이 입는 옷에는 속옷이 있습니다. 속옷은 성결한 옷이요, 세마포로 된 반포 속옷입니다. 가는 베실-모시로 짜서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종, 제사장이 가장 먼저 입는 옷입니다. 옷은 그의 몸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아름답게 보이고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게 가려주고 있습니다. 속옷은 사람들에게 밖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려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속옷 위에 겉옷을 입었습니다. 이 겉옷을 ‘에봇 받침 겉옷’이라고도 부릅니다. 에봇받침 겉옷은 전부 청색으로 하는데, 어깨 사이에 머리가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는 옷감이 찢어지지 않도록 가장 자리로 돌아가면서 깃을 짜라고 하셨습니다. 오바로크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홀치기 하여, 바느질할 때에 안치기 하여 옷감이 너저분하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겉옷은 마치 통치마와 같은데, 옷자락에는 석류와 금방울을 교대로 달아서 소리가 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겉옷의 두 어깨에는 견대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견대에는 호마노라는 보석을 금테에 물려 매달고 좌우의 견대 위에 단 호마노 위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제사장의 겉옷 위에는 에봇이라는 앞치마와 같고, 긴조끼와 같은 것을 걸치게 하였습니다. 이 에봇은 금 실과 청색 실과 자색 실과 홍색 실을 가늘게 꼰 모시 실로 정교하게 옷감을 짜서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앞판과 뒤판이 있는데, 멜빵을 걸어서 길이를 알맞게 조절하게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속옷을 입고 겉옷을 입고 에봇을 걸쳐 입고 그 위에 허리띠를 띠었습니다. 허리띠도 에봇을 짤 때와 같은 방법으로 금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모시실로 짜서 허리띠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에봇 위에 가슴받이를 만들라는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이 가슴받이를 예전성경에서는 흉패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 ‘호셴’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불분명합니다. 호셴이라는 것이 아람어에서는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고 있는데, 대제사장의 옷 중에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한 뼘 길이와 너비의 정사각형 주머니였습니다.
흉패, 가슴받이를 만들 때에는 에봇을 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주색 실,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모시실로 옷감을 짜고 흉패 곧 가슴받이를 만들었습니다. 가슴받이는 길이와 너비가 같게 하였으니, 정사각형 주머니였습니다. 한 뼘의 길이로 하고 두 겹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슴받이-흉패의 겉에는 네 줄로, 한 줄에는 세 개의 보석을 물리는데, 도합 12개의 보석을 물리게 하였습니다. 보석을 직접 물릴 방법이 없으니, 보석을 금테에 물리고, 금 사슬로 가슴받이에 매어달게 하셨습니다. 가슴받이 곧 흉패를 에봇에 매어다는 금 사슬은 순금으로 하여 노끈처럼 꼬아서 만들고 보석을 물린 금테를 사슬에 매어달았습니다.
가슴받이에 매어다는 보석은 첫째 줄에는 홍보석과 황옥과 녹주옥이었고, 둘째 줄에는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였고, 셋째 줄에는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석의 이름이 정확하냐고 하면 번역본마다 다릅니다. 옛날의 보석이라는 것이 오늘의 보석과 아주 상이하고, 이름이란 것은 변하기 때문에, 우리의 번역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보석이 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2형제가 태어난 순서대로 첫째 줄에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를 상징하였다고 봅니다. 이 보석은 누구를 상징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12지파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였습니다.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석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기는데 마치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보석 위에 어떻게 이름을 새겼는지, 대단한 기술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보석에 물리는 금테에 작은 글씨로 12아들의 이름을 새겼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기술이 있었습니다.
남보석이라는 보석은 NIV성경과 KJV성경, RSV 성경에는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로 번역되었는데, 과연 그런 보석 위에 글씨를 새겨 넣을 수 있었는지, 예전에는 과연 어떤 도구를 써서 정교하게 글씨를 새겨 넣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가슴받이, 판결흉패는 정사각형의 주머니로 흉패는 금사슬로 연결하여 어깨의 견대의 보석과 연결시켰습니다. 대제사장의 어깨에는 겉옷에 견대가 있고, 견대에는 호마노라는 보석을 금테에 물려 매달았는데, 그 호마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연치대로, 순서대로 새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슴받이 곧 판결 흉패에는 네 줄의 12개의 보석이 달려 있는데, 이스라엘 12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 뼘 길이는 약 9인치 23cm 정도였습니다.
이 판결의 가슴받이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을 넣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은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림이란 우르의 복수형인데, 복수형으로만 나오고 있습니다. 우림이란 불꽃, 빛, 조명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둠밈이란 불가침성, 정의, 완전이란 뜻이 있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빛과 완전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명칭들, 우림은 히브리어의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로 시작되고, 둠밈은 마지막 22번째인 타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시작과 마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요 예와 아니오가 되십니다.
우림과 둠밈이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드리고 선택할 때에, 신탁을 받는 주사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림을 뽑으면 Yes요 둠밈을 뽑으면 No라고 정해놓고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맡기고 뽑았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사후에 여호수아를 세워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민27:21입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그의 머리에 안수하고 위탁하여 이스라엘 최고지도자로 세워 모세를 이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저것이 하나님의 뜻이냐를 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에게 나아갈 것이며, 대제사장은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림의 판결이란 둘 중의 하나로 판결할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옛날 사울 왕 때에 온 백성과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불레셋 사람들과 전쟁하면서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기진맥진하면서 전쟁하고 있는데, 사울이 하나님께 맹세시키면서 경계하기를 “저녁때까지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상14:24) 모든 백성이 그 날에 음식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전쟁하였는데, 수풀에 들어가 보니 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였으니 먹지 않았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아버지가 하신 일을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벌집을 따서 그 꿀을 먹었더니 눈이 밝아지면서 기운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백성 중에 한 사람이 사울왕이 맹세하게 하였기에 먹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요나단이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래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는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육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날 전쟁을 끝내면서 온 백성들이 적에게 빼앗은 소를 잡아 구워먹는데 피를 빼지 않고 먹었습니다. 사울이 이 사실을 알고 대노하였습니다. 다음 날 사울이 하나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전쟁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가 범죄하였는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반대편에 서고 백성과 마주대하고 사울과 요나단이 섰습니다. 백성이라는 돌과 사울이라는 돌을 넣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뽑히면 죄가 있고, 뽑히지 않으면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날 사울과 요나단이 죄가 있다고 뽑았습니다. 다시 사울과 요나단을 놓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 때에 요나단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요나단의 공로를 생각하여 선처를 바람에 요나단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울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에 두고 번민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무엘 선지자도 죽었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28:6-7)라고 했습니다.
우림으로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우림으로 말씀하지 않았다는 말은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판결의 흉패를 아비아달이라는 제사장이 가지고 다윗에게로 도망갔기 때문에 사울이 우림으로도 가부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어떤 사건을 놓고 양자택일할 때에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둘 중에 우림이 뽑히면, 누구를 지목하는 것이라고 정하였습니다. 보이지 않게 판결의 흉패 주머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두고는 우림을 꺼내면 긍정이요, 허락한다는 뜻으로, 둠밈을 꺼내면, 부정으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신탁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판결의 흉패 속에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어떤 중대한 문제라도 하나님께서 재판하시고 하나님이 가려주시고, 판결하신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대제사장은 그의 가슴에 이스라엘 12지파를 품고, 그리고 판결의 흉패 속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성전에 들어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9-30절 말씀에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여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을 것이니라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아론이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에는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이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가슴에 안고, 들어가며, 우림과 둠밈을 넣어가지고 들어가므로 여호와 앞에 영원한 기념을 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판결은 완전하시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어깨의 견대 위에 12지파의 이름을 새겨놓은 보석을 달았습니다. 가슴에는 판결흉패에 12개의 보석에 12지파의 이름을 새겨넣었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두밈을 주머니 안에 넣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책임지시고, 먹이시고, 판결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에 대하여 구약성경에 자세히 말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주석이나 강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런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그 어떤 것도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학자는 나무와 쇠로 만든 판에 히브리어의 알파벳을 새겨 넣었을 것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우림과 둠밈에 대하여 어떤 모양이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제사장의 역할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소의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베풀고, 하나님 앞에 백성을 대표하여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교훈을 베풀고, 그의 옷의 여러 상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드러내고, 백성을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단순한 방법은 유일하고 합리적인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기계적인 방법은 차차 사라지고 선지자들의 경고의 말씀으로 선택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판단되어 결단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식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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