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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왕권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135 추천 수 0 2012.12.06 12: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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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8:33-3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11.25주일설교 http://dabia.net/xe/625474 
jys.jpg 정용섭 목사

예수의 왕권

요한복음 18:33-38, 창조절 열셋째 주일, 2012년 11월25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일대기는 크게 다섯 대목입니다. 첫째는 출생과 유년기 이야기, 둘째는 갈릴리에서의 활동, 셋째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는 이야기, 넷째는 예루살렘 안에서의 활동, 다섯째는 수난과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입니다. 다섯 대목이 네 복음서에 똑같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부분적으로 일치하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대목만큼은 네 복음서가 거의 똑같이 전합니다. 이것이 복음서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요 18:33-38절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로마 체제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당시 대제사장들의 고발에 있습니다. 고발한 근거를 대라는 빌라도의 요구에 대제사장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8:30) 빌라도는 이 고발을 접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그들은 자신들에게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다고 대구했습니다. 말하자면 빌라도를 향해서 총독의 사법권을 행사하라는 압력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이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몰려든 유대 민중들과의 충돌만은 피해야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이제 재판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빌라도의 이 멘트는 중요한 탓인지 네 복음서가 축자적으로 똑같이 전합니다(눅 23:3, 막 15:2, 마 27:11). 대제사장들의 고발장에 이 내용이 실제로 들어 있는지는 우리가 아는 게 없습니다. 빌라도의 재판보다 앞서 있었던 산헤드린의 종교재판에서 다뤄졌던 문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런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 없어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핑계를 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을 자처했다면 당연히 로마법의 처벌 대상이 됩니다. 빌라도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질문한 것일까요? 그것만 확인되면 무조건 사형 판결을 내리려고 한 것일까요?

 

빌라도는 그렇게 어수룩하거나 단순히 관료주의에 물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진술합니다. 가능하면 예수님을 훈방하거나, 아니면 체벌 형으로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세뇌당한 유대 민중들에 의해서 빌라도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수 에이 호 바실류스 톤 유다이온) 하는 빌라도의 질문은 단순한 사실 심문이라기보다는 신학적으로 훨씬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분명합니다.

 

이 질문에서 ‘수’(너)라는 인칭 대명사를 주목하십시오. 예수를 가리킵니다. 그 예수는 지금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유대의 모든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사이비 이단의 괴수로 정죄 당했습니다. 한때 잘 나갈 때는 수천 명의 추종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의 제자들마저 신상의 위기를 느끼고 예수님을 배신하거나 몸을 숨겼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들이 얼마나 비굴했는지, 얼마나 얍삽했는지, 얼마나 비열했는지를 숨김없이 지적합니다. 오히려 여성들이 제자의 본을 보였습니다. 어쨌든지 지금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예수님은 모든 이들에게서 소외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사람인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묻는 겁니다.

 

빌라도의 이 질문은 재판 받는 순간만이 아니라 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 가문이 아니라 노동자 출신입니다. 그런 인물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중에 일어난 축귀, 치병과 같은 사건들도 그 사실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당시에 웬만한 종교 지도들도 그런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했으면, 때로는 살해당할 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이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지난 2천년동안 주변으로부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증거를, 곧 인류 구원자라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받았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일종의 거부감, 조롱, 또는 연민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나라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어떻게 대답하셨는지를 보십시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6절에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충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싸웠을 겁니다. 요즘 대통령 선거에 즈음에서 지지자들이 서로 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이 한창 잘 나갈 때에 민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고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시도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을 개혁해서 깨끗하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즉 절대적인 생명의 나라는 지상 천국이 아닙니다. 요즘 식으로 말해서 복지국가를 세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복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분명히 이 세상에서는 최선의 나라입니다. 정치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교육, 직업, 의료, 노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복지 국가가 기독교의 궁극적인 미래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도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복지 국가를 건설해도 인간은 여전히 죄를 짓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습니다. 복지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은 유토피아(이상향)입니다. 유토피아는 라틴어 우(없는)와 토포스(장소)가 결합된 단어로 ‘없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런 세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나라는 그런 식으로 달성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권력 잡고 싶어 하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해했습니다. 그 오해로 인해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게 되었고 결국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심문하는 총독 빌라도만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도 똑같이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종교 체제를 파괴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율법을 해체한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상대화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상대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율법을 부정하거나 해체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상대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짚었을 뿐입니다. 상대적이고 제한적인 것을 절대적 이데올로기로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세력과 싸운 것입니다. 그런 싸움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 정치가 세상에 참된 평화를 제공할 수 없듯이 유대교의 율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도 로마 정치처럼 세상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나라는 어디에 속한 것일까요? 그것에 대해서 오늘 설교 본문이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신약성서 전체를 통해서 간접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입니다. 예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위는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 근거합니다. 천국을 비유로 가르치셨고, 사람들에게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왔을 때 일어나야 할 생명 사건들을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하셨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 앞에서 지상의 인간적인 나라는 포기되어야 합니다.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요? 오늘 밤에 지름 10km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고 예상해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포기되어야 합니다. 모든 종교적 전통과 정치적 권위가 의미를 상실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맡겼습니다. 그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예수의 나라가 무엇인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지시나요?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바로 예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우리는 실증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능력이며, 부활능력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 전체의 비밀을 인간이 풀 수 없고, 또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태평양 하와이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어떻게 태풍을 일으켜 한반도에 큰 피해를 주게 되는지의 기상학적 원리를 인간이 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의 율법이나 로마의 실정법으로도 규정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에 속한 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요 18:37). 빌라도의 이 질문은 논리적으로 옳습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이 세상과 상관없다면 왕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예상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요 18:37) 이게 바로 기독교가 로마를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예수는 왕이다.’라고 말입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왕권과 우리가 생각하는 왕권은 다르다고, 당신들은 이전투구와 권모술수를 통해서 당신들이 원하는 질서를 세우려고 하지만, 그래서 왕과 장군과 귀족들과 막강한 군사력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기다린다고, 그래서 로마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황제의 왕권은 끊임없는 권력투쟁이지만 예수의 왕권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로마와 공연하게 경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왕권이 부정당할 때는 순교를 불사하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 체제 아래서 ‘예수가 왕이다.’고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 고유한 왕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있습니까? 당근과 채찍을 통해서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이 경쟁만능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습니까? 생산과 소비의 악순환으로 우리를 몰아넣는 우상숭배적인 시대정신과 싸울 수 있습니까?

 

예수의 왕권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종교 권력에 사로잡혔던 대제사장들도 이해하지 못했고, 로마 황제 체제에 갇혀 있던 빌라도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는 말이냐?’ 하고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b). 그걸 억지로 알게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리에 속해야만 그게 가능한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당장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지성으로 해결되지도 않고 인격으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창동 감독의 <시>라는 영화에서 윤정희 씨가 연기한 여주인공 미자는 시를 배우는 문화교실에 엑스트라 강사로 나온 김용택 시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시를 쓸 수 있나요?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르디의 <레퀴엠>에서 인간에게 참된 위로가 무엇인지를 억지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비밀스럽습니다. 예수의 왕권도 진리에 속해야만 보고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고유한 왕권을 인정하십니까? 그의 부활생명이 우리 운명의 미래라는 사실을 온 영혼으로 경험하십니까?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나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삽니까? 그것을 증명해보십시오. 대제사장들로 대표되는 율법적인 왕권과 빌라도로 대표되는 정치적인 왕권으로부터 여러분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율법과 정치를 폐기처분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형식들입니다. 형식은 형식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참된 생명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충만한지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 집중하십시오.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의 참된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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