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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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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2.11.18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마5:1-12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 Carl Busse는 이것을 그의 시에 담았습니다.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남 따라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
산 너머 고개 너머 더욱 더 멀리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을 찾았다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단지 더 먼 곳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복을 찾으려고 더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떨까요?
최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국민행복점수가 61.4로 나왔다고 합니다. 또 국민들 중 절반은 치료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조사한 결과는 68.1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얼마 전 온 국민이 좋아하던 한 배우가 자살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배우였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근래에 이런 일을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는 애석함과 허무함을 느낍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한 유명한 영화배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돈도 있고, 미모도 있고, 매력도 있고, 인기도 있습니다. 나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외로움과 절망에 빠진 비참한 사람입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의사는 그에게 서커스 장에 가서 깊은 절망에 빠진 관객도 웃게 만드는 유명한 광대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그 광대입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유
사람들은 맹렬히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을 찾은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열심히 행복을 찾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행복을 찾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할 때 대개 불행을 가져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죄와 사탄에게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같으나 마침내 비참과 불행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건강하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쾌락을 즐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행복과 안전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55:1-2)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양식 아닌 것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행복을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여 절망하는 인류에게 예수님께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이 바로 여기 팔복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명쾌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훈의 말씀을 찬찬히, 그리고 진지하게 상고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덟 가지를 팔복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강해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즈 목사는 팔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팔복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교훈들
1.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 리스도인들 개개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이나 어거스틴, 루터, 주기철 목사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 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2.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모든 특징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 중에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전체가 동 시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각 개인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함께 나타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 지입니다.
3.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이 팔복 중 한 가지라도 타고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성 령의 사역에 의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특성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출신이든, 어떤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들로서 이렇게 되도록 작정된 사람들입니다(중생).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힘입 어 성화되어 가는데,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영광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답 게 변화시킵니다.
4. 팔복은 신자와 불신자 간의 근본적이며 절대적인 차이를 나타냅니다. 성도들과 불신자들은 섬기는 대상 과 추구하는 것과 행동이 다릅니다. 요즘 교회가 많이 세속화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와 그리 스도인들은 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만일 당신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이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신자와 불신자 간의 차이가 분명했던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 때야말로 교회 역 사상 가장 위대했던 시기였습니다(초대교회, 종교개혁시대, 청교도들, 부흥운동기…). 교회가 세상과 절대적인 차이를 분명히 나타낼 때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요 영광 입니다.
5. 신자와 불신자는 두개의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팔복의 축복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상급과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자가 진단법
당신이 팔복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를 보면 당신의 현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 속에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의 시민임에 틀림없습니다.
팔복을 읽으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낍니까? 그렇게 되고 싶은 소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제 이 팔복을 기억하고, 그렇게 살기를 사모하며 힘쓸 때 당신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그 행복은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절대적인 행복이 될 것입니다.
“무리를 보시고”
4:24에 보면 예수님께서 병 고치시는 이적을 행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진리를 사모하여 몰려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기 위해서 몰려 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의 인기와 환호는 물리치셨고 피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오는지라”
주님께서는 이 무리를 떠나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산에까지 따라온 제자들에게 이 복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오는지라”(1절)예수님께서는 대중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축복된 말씀을 차근차근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사실 팔복은 불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앉아 가르치셨다는 것은 천국의 진리를 자세히 가르치신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전통에 의하면 중요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선포할 때는 언제나 앉아서 했습니다.)
천국의 기준
산상설교는 듣기만 하고 즐기는 것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 천국의 기준으로서 주신 것입니다. 팔복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는 보여줍니다. 성도가 이렇게 살 때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여호수아 5:1에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마음이 녹았다”고 했습니다.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지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우리가 천국백성답게 살면 이렇게 능력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반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보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마어마한 힘, 조직, 권력, 과학, 유혹 앞에서 우리는 겁을 집어먹고 깜짝 놀라 교회로 도망하여 문을 닫아버립니다. 교회에서만 ‘할렐루야’ ‘아멘’ ‘천국’ 등을 부르며 위로를 받고, 세상에 나가면 벌벌 떨면서 삽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천국의 기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천국의 이 기준을 버리거나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지키기 어렵다고 기준을 낮추거나 세상의 기준에 맞추는 것을 ‘타협’ 또는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타락하면 능력을 상실합니다. 이 산상설교는 우리가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의 기준입니다.
포기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신다.
우리가 이 천국의 기준대로 살려고 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행복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을 찾기 원한다면 이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의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것을 주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오늘 우리는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의 기준대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백성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팔복의 말씀을 상고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이 충만하게 체험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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