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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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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2.11.25 주일설교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
심령이 가난한 자
마 5:1-12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행복을 찾지만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행복을 찾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팔복을 한 가지씩 상고하면서 행복을 찾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복되고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듣고 즐기는 데서 끝나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온전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말씀대로 살기로 굳게 결단해야 합니다.
행복의 열쇠
예수님께서는 마5:3-12에서 우리가 찾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팔복이라고 부릅니다. 이 팔복은 산상설교의 핵심부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3절은 팔복의 열쇠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다른 모든 말씀의 기초가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절)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 즉 천국시민의 특징입니다. 뒤에 나오는 모든 특징들은 이 한 가지 특징의 결과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의미하며, 나머지 말씀은 그 비워진 마음을 가득 채우는 복들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가난은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된 것을 바르게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타락함으로써 이 하나님의 형상을 거의 상실해버렸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버렸습니다. 뭔가 손을 보고 보완하고 고쳐서는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없도록 완전히 부패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셔야만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우리는 이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의 가난이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가난이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의 가난은 세상적인 처세술과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태도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믿고, 자신의 능력을 맘껏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심령의 가난과 반대되는 태도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요란하게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정반대되는 자세를 천국백성인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소심하거나, 자신이 없고 용기가 부족하고 수줍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개성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린다거나, 내 생업을 포기하고 산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심령의 가난은 어떤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가난을 자각하는 것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영적인 가난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 안에는 심판 받을 죄밖에 없고, 내놓을 만한 의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놓을만한 것도 없고 하나님께 드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기도와 전도, 헌금, 봉사 등이 나의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겸손히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며, 자랑할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영혼은 단순하고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 즉 심령의 가난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깨어진 마음
심령의 가난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무능력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영광과 거룩하심을 보면서 그 앞에서 나의 죄와 비천함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하여 나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그리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 심령의 가난입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모세는 애굽 왕실에서 40년 동안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자신만만하고 전도유망했던 모세는 동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살인하고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전도유망했던 모세는 살인자, 도망자, 실패자가 되어 광야에서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시겠다고 하셨을 때, 그는 자기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고 사양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조국을 사랑했던 젊은 이사야는 성전에 올라갔다가 놀랍게도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6:5)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 나자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갈릴리의 어부였던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더니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놀라운 이적을 경험한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 앞에서 자신은 심판과 진노를 당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5:8) 이처럼 자신이 소망 없는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인정하는 마음이 바로 심령의 가난입니다.
하나님만 의존하는 마음
가난한 마음은 자신의 죄와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날마다 바라보며 사죄의 은총을 감사하며 사는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열망,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순간도 살 수 없겠다는 절박감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렘애3:22-23)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42:1-2)
가난한 마음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철저히 깨달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파탄과 자신의 부족을 느끼는 사람, 자신이 소망 없는 죄인임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와 긍휼을 사모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만심과 자기의존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존전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의식하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철저한 무능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해지면 주님의 은혜를 힘입게 됩니다.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과 그리스도를 이어주는 첫 번째 고리는 나의 선함이 아니라 나의 악함이며, 나의 공로가 아니라 나의 비참함이며, 나의 부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이다.”
예수님의 마음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이야말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조금도 주장하지 않으시고 성부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기의 뜻과 계획을 포기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복종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심령의 가난과 반대되는 마음
심령의 가난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심령의 가난과 정반대되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책망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자기만족과 교만이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라오디게아는 로마 식민지 중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직물 산업으로도 유명했는데, 특별히 검은 양털로 짠 옷과 카펫은 대표적 생산품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에 큰 지진이 났을 때, 그들은 복구를 위한 로마 제국의 원조를 사절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도시는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또 이 도시는 의술이 발달하여 훌륭한 병원이 있었고, 귀와 눈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만하고 영적으로 나태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18,20)
요즘으로 치면, 라오디게아는 산업과 교통이 발달했으며, 훌륭한 병원과 의사들이 많았던 살기 좋은 도시였습니다. 이렇게 부유한 도시에 살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그런 부유한 삶을 살면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족이 교만과 영적인 태만으로 이어져서 주님께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니 오늘 내 모습이 바로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이런 마음으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심령이 가난해지는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주님을 바라볼수록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잘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신을 살펴볼 때 무엇을 느끼십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절실히 깨닫습니까? 나는 추악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것밖에 없는 자임을 정직하게 인정합니까? 우리는 얼마나 구제 불능한 죄인입니까? 전능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절감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나무 소망도 없는 존재임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평소에 무슨 말을 자주 합니까? 혹시 나를 많이 내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진심으로 고백합니까? 나는 죄인임을 겸손히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뜨겁게 감사합니까? 당신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까? 과연 당신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렇게 심령이 가난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을 채워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천국이란 무엇일까요? 천국의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인간의 법, 인간의 이성, 인간의 상식과 인간의 욕구가 지배하는 세상 나라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나라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나라입니다. 천국은 성령 충만함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이 극복된 나라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내세에서 영원히 누리는 축복의 나라인 것만은 아닙니다. 현세에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모든 축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 그 무엇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과 기쁨, 진정한 만족과 참된 안식,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영광 … 등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완전한 평안과 참된 안식과 만족함을 누립니다. 가난이나 질병이나,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이 사람을 불행하게 하거나 흔들지 못합니다. 그는 이미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을 소유함 맘껏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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