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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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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93) 중심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출애굽기 32장 1-6절)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길어지니까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뭔가 안전보장 장치로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신을 만들자!”고 할 때 아론도 동요하고 결국 백성들의 소리에 굴복했습니다. 그래서 금으로 만든 금송아지 종교, 오늘날로 말하면 돈과 기복주의가 섞인 아론의 종교가 탄생했습니다. 아론의 종교에는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뭔가에 취해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기에 항상 뭔가 일을 만들고 고요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일상적인 삶의 경험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화려하고 기적적인 것만 찾습니다.
2)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하지만 아론의 종교는 보이는 것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교인 수와 재정 규모를 가지고 자랑하고, 크고 화려한 교회를 짓고 싶어 합니다.
3) 욕심을 채우는 것이 신앙인 줄 압니다. 그러나 채우려고 할 때보다 비우려고 할 때 더욱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행복과 보람의 크기도 커집니다. 욕심이 커지면 죄를 낳고, 죄가 저키면 반드시 사망을 낳습니다.
4)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말은 많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흘려야 할 피와 땀과 눈물은 싫어합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그 현실을 바꾸려고 일어서지는 않습니다.
아론의 종교는 가짜 신앙입니다. 그런 가짜 신앙은 작은 고난에도 무너지고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쉽게 실망합니다. 그러나 참 신앙인은 값싼 위안을 구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인은 육신의 욕망이 충족되기보다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편이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자기가 없어야 신앙은 진실해집니다.
< 중심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
아론이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출애굽의 영웅은 누가 뭐래도 모세이지만 공동체를 하나로 묶은 사람은 대제사장 아론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빛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출애굽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입니다. 모세가 부름 받기 전에 아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세가 말을 못한다고 소명을 회피하자 하나님은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고 하시며 아론을 등장시킵니다. 그때부터 아론은 모세의 조력자가 되고 나중에 대세사장이 되어 출애굽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신비합니다. 성격이 다른 사람을 팀으로 엮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십니다. 모세와 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불이라면 아론은 물입니다. 모세는 화를 내고 책망하면서 백성들과 싸우고 심지어는 하나님께도 대듭니다. 하지만 아론은 다투거나 꾸짖기보다는 물처럼 사람들을 받아들입니다. 모세가 수시로 변하는 감정에 종속되어 있다면 아론은 좀 더 안정적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의 수행을 중시했고 아론은 평화를 중시했습니다.
모세가 진리의 수호자라면 아론은 공동체의 수호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늘 하나님과 가까이 서있는 편이고 아론은 백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편입니다. 모세는 늘 소리를 높여 명령하고 지시하지만 아론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위로합니다. 모세가 교감신경이라면 아론은 부교감신경으로서 깨진 관계를 복원하고 회복시키는데 헌신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창조적 균형을 유지하며 출애굽 공동체를 지탱해낸 두 기둥이었습니다.
그처럼 아론의 캐릭터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기본 중심까지 흔들리면 안 됩니다. 백성들이 “우리를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해도 굳은 중심을 가지고 그 요구를 거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부적절한 처신이었고 큰 잘못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도 기본 도리를 저버리는 길로 가면 결코 복된 결말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믿음을 위해서였습니다. 기적만 준다면 무당도 좋고, 이단도 좋다는 것입니다. 병만 낫게 해 주고 부자로 만들어 준다면 좋다고 생각하며 그런 곳으로 몰려가면 결국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하는 것을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12:39). 환경이 불안해지고 경제가 나빠지면 눈에 보이는 표적 추구의 본능이 강해지지만 그때도 보지 못해도 믿는 것이 복되다는 주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의 기본 중심만은 흔들리지 마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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