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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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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2.12.6 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
허렁허렁 살라는 말씀입니까?
마18:3
지난주에 ‘2012년을 사는 법칙’을 말씀 드리면서 ‘오직’이라거나 ‘절대’라는 정신병적인 삶이거나 신앙 양식 보다는 ‘다양한 삶’즉, 매일 매 순간 새로운 파일을 꺼내는 삶을 사는 자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방식은 이미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가 사용하는 기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여러분이 즐겨보는 영화나 T.V드라마가 그 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설교가 끝나자 누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허렁허렁 살면 되겠네요?”하는 거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가는 상황이라 더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그 ‘허렁허렁’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허렁허렁’이 ‘아무렇게나’와 같은 동의어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다양한 파일로 사시라’는 말씀을 ‘허렁허렁’또는 ‘아무렇게나’로 이해하셨습니까? 그래서 다른 측면에서 2012년의 삶의 방향성을 다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사동에서 만난 분 중에 호를 ‘청구자’라고 하는 민병산 이라는 어른이 계셨습니다. 환갑이 되던 해인 88년에 기관지 천식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그는 인사동에 드나드는 각양의 대한민국 인사들에게 정신적인 맨토 와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러시아 문학, 음악, 철학, 바둑과 같은 것들에 조예가 깊으셨을 뿐 만 아니라, 그분만의 독특한 필체로 쓴 글씨가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일찍이 독신으로 살기를 작정했습니다. 왜 그랬냐 하면, 아버지가 청주의 어마어마한 갑부였는데 부인을 여럿 두었습니다. 거기서 오는 폐단을 목격한 청구자는 아버지가 지은 죄를 대신 갚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지 않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청구자는 자신에게 돌아올 몫의 유산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 한국 기원에 나가 사람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다가, 인사동 귀천이나 누님 손국수에 와서 늦은 점심을 드시고는 저녁이 되어 모여드는 백방의 인사들과 함께 정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게 하루의 일과였고, 평생을 그렇게 고상하게 생각하고 간단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삶을 일컬어 ‘심플 라이프 하이씽킹(Simple Life High thinking)’ 즉 ‘생활은 소박하게 하고 생각은 고상하게’살았던 이 시대의 뛰어난 존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진정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은 무엇엔가 몰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암벽타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암벽을 탈 때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에 사람들은 아무런 잡념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어떻게 그 위로 오르느냐 밖에는 일체 잡념이 없기 때문에 암벽 타고 나면 행복감이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전에 나는 돌에 도장을 팠습니다. 이른바 ‘전각’이라고 하는 것인데요, 사실 전각은 돌에 새긴 도장을 책이나 화선지에 찍었을 때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돌에 별호나 이름을 파려면 여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손을 찍거나 획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집중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그 순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집중 또는 몰입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년 2월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죠. 여러 날을 걷고 걸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그저 하루 종일 걷습니다. 처음 몇 발자국은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지만 하루 종일 걸어 보세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서 내 호흡을 느끼고, 주위 나무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내뿜는 기운들을 마시고, 목이 마르면 목을 축이고, 개울을 만나면 손을 씻기도 하면서 오직 목적지에 다다르는 한 가지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가고 내려갈 때도 기분이 좋지만, 갔다 온 다음에도 뭔가 충족감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오래 전부터 배워왔고 늘 뭔가를 준비하면서 보내는 일이 미덕이라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평생 준비만 하다가 즐기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삶일 것입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이젠 버리고 그날그날을 감격하며 감동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일컬어 ‘HERE and NOW’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어떤 목표를 세우는 데 익숙하고, 사명을 잊지 말자고 합니다. 그건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우리는 늘 무언가 준비하며 살아야 하고, 그러자면 자신이 아직은 행복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삶의 단위가 좀 커집니다. 지난주의 버전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파일만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10년 후, 3년 후, 1년 후... 이런 식으로 하지만 그건 너무 멀죠. 사실 우린 내일까지 존재할지 어떨지를 모르는 존재들 아닙니까? 늘 순간에 충실하면서 사는 것이 순간을 영원으로 살고 결국 죽을 때 후회를 하지 않는 삶이 될 것입니다.
등산할 때 1년 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순간에 발을 옮기는 데 충실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린 등산 후 산에서 내려와서 어디 가서 시원한 국수 한 그릇 먹는 걸 또 다음의 즐거움으로 여겨 그 맛도 즐겨야 합니다. 오다가 사려던 등산복 바지를 하나 사는 것도 좋습니다. 집에까지 오는 운전이 30분이라면 그 순간도 즐겨야 합니다. 써야 할 글이 있다면 오늘의 몫을 쓰는 데 집중하고 그래서 한 두 주 후에는 한 편이 완성된다면 크나큰 기쁨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전부터 내려던 책 원고가 거의 다 되어 있는데, 마무리하는 일을 한 달 정도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저는 원고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과제 단위로, 기쁨의 단위로, 너무 길지 않게, 몇 시간 단위로, 때로는 몇 십 분 단위로 잘라서 즐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너무 호모 사피엔스-인류의 진화단계를 원인(猿人)·원인(原人)·구인(舊人)·신인으로 구분했을 때 가장 진화한 단계가 호모사피엔스(지혜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4만∼5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널리 분포되어, 후기 석기문화(石器文化)를 가지며 농경·목축이라는 혁명적 생산수단을 발명하여 마침내 문명의 꽃을 피웠다.-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무한한 뇌의 기능을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하는 데 다 소진해버리고 늘 힘들어 합니다. 단세포 동물처럼 살아야합니다. 동서양애서 가르치는 오늘날 명상의 대부분은 이런 경우를 ‘배고프면 먹고 졸리 우면 자라’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움직이는 걸 봅니다. 아차 하면 밟을 뻔 했는데 밟지 않으려고 걸음을 크게 띕니다. 그 때 그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집에 가는 생각일까요? 먹이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일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참 열심히 움직입니다. 지금도 바다 속에서는 수억 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그저 열심히 움직이며 바다의 향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땅 속에선 박테리아들도 즐겁게 유기물질을 분해하면서 제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만약에 인간처럼 고민을 하고 회의를 하여 하던 일을 중단하기라도 한다면 이 지구는 금세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것들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눈앞에 주어진 먹이를 먹고 싸는 일을 열심히 하는데 그게 땅을 이롭게 하고 지구를 먹여 살리고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닙니까?
나도 좀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길지도 않은 생을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고민만 하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죄송한 일이겠어요.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께 진정으로 감사하고 그를 찬양하는 길은 이생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저의 신학적인 사고는 이미 십 수 년 전에 ‘삶은 금식이 아니라 축제입니다’라는 책에서 끄집어 내 보여 드렸습니다. 이렇게 순간순간에 몰입하고, 이따가 벗들과 막국수 먹을 생각에 즐거워하고, 주말 T.V드라마에 울고 웃고, 작은 일에 어린아이처럼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것 그게 행복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신 데는 이런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저들의 행복은 얼마나 사소하며, 그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에 얼마나 몰입을 합니까?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세상살이가 재미없다고 푸념을 합니다. 사소한 일에의 몰입 보다는 생각과 목표가 너무 멀고 거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없는 우울증, 신경증, 자살과 같은 중병을 앓는 것입니다.
오늘도 TV에 나온 유명한 사람, 아니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은 성공을 하려면 어려서부터 오락 안하고 TV 안보고 그래야 한다합니다. 그 대신 기도하고 공부하고 성경 읽고 남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하바드 가고 유명한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유비무환식 교육이 이젠 좀 한계에 이른 듯합니다. 이젠 좀 더 행복해지도록, 순간을 영원으로 살도록, 유명해지지 않고, 하바드를 안 가도 행복해지고, 그저 존재함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교육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가야 합니다.
성석제의 소설 <몰두>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있다. 미친 듯이 제 몸을 긁어대는 개를 붙잡아서 털 속을 헤쳐 보라. 진드기는 머리를 개의 연한 살에 박고 피를 빨아먹고 산다. 머리와 가슴이 붙어 있는데 어디까지가 배인지 꼬리인지도 분명치 않다. 수컷의 몸길이는 2.5mm, 암컷은 7.5mm쯤으로 핀셋으로 살살 집어내지 않으면 몸이 끊어져버린다. 한번 박은 진드기의 머리는 돌아 나올 줄 모른다. 죽어도 안으로 파고들다가 죽는다. 나는 그 광경을 ‘몰두’라고 부르려 한다.”
몰입하는 삶과 몰두하는 생활은 거의 같은 뜻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의 파일’로만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허렁허렁 되는 대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집중하고 몰입하되 ‘HERE’하고 ‘NOW’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방식이 곧 ‘어린아이처럼 되기’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천국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과, 천지에 사고팔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바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어른 되기입니다.
다양한 파일을 가지고 살되 몰입하고 집중하여서 어린아이처럼 살기,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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