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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3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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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곽선희 목사 |
참고 : | 2005년 01월 23일 |
한 중보자의 기도
여러분은 아마도 그 기도하는 손 그 그림을 다 보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으로 그린 것도 있고 때로는 조각품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두 손을 모은 그런 기도하는 손을 보았을 겁니다. 그 단순히 그저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그런 상징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만 그 유래를 생각하면 더욱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것은 맨 처음에 알버트 듈러하고 하는 화가가 그림 그림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시골서 자라면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가난하고 어려워서 감히 도시에 들어가서 선생님들로부터 또는 학교에 들어가서 미술을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와 함께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도시로 나가서 열심히 벌고 애쓰고 공부해서 한번 성공하도록 하자. 듈러는 미술을 했고 그 친구는 피아노를 쳤습니다. 두 사람이 도시로 들어와서 식당에서 허드레 일을 하면서 이렇게 공부를 하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은 이렇게 하다가는 일도 안 되고 공부도 안 되고 돈도 못 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2년씩 교대하기로…….
한사람이 식당에서 일하는 동안 한사람은 공부를 하고 또 2년 후에 교대를 해서 또 이렇게 한사람이 일하고 공부하고 이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고 서로 양보하면서 네가 먼저 공부하라, 네가 먼저 공부하라 이래 했는데 결국은 듈러가 미술공부를 했고 그 친구는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2년이 지나간 다음에 이제 교대하려고 했는데 벌써 2년 동안 식당에서 이렇게 허드레 일을 했기 때문에 손마디가 이제 굵어져서 피아노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청을 해서 네가 계속 미술공부를 해 달라. 내가 좀더 일을 할게…….
이렇게 해서 그 친구는 계속 일을 하게 되고 듈러는 계속 미술공부를 하게 됩니다. 크게 성공했습니다. 어느 날 하숙집에 돌아오면서 보니까 방안에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틈으로 자세히 보았더니 자기 친구가 그 손마디가 굵어져서 이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버려진 손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나는 이미 이제 손을 버려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내 친구 듈러가 내 몫까지 다해서 훌륭한 미술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고 즉석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것이 유명한 알버트 듈러의 기도하는 손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 손가락 하나가 이렇게 굽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 또 한사람의 희생 그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될 겁니다. 이 거룩한 손 거룩한 희생 거룩한 눈물 그러한 기도가 있어서 오늘 내가 있다는 것을 우린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대로 소돔과 고모라 멸망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중동을 여행하게 되면 사해라고 하는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바다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곳이요 저주받은 땅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분명히 죄 때문에 망했습니다. 죄가 관영해서 그것도 특별한 죕니다. 요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런 죄입니다. 호모섹 스입니다. 결정적인 것이 호모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성적타락으로 인해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자 이제 그러나 한번더 실제적으로 생각하면은 소돔과 고모라가 죄 때문에 망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10명이 없었던겁니다. 의인 10명만 있었더라면 설사 죄가 있어도 다시 기회를 얻을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여러분 우린 나라걱정도 합니다. 세상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몇사람의 의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 몇사람의 의인이 있을때 그땅은 회개의 기회를 받게되고 구원의 길도 얻게 되는것입니다.
마지막 보루는 바로 그 의인 몇사람입니다. 이걸 꼭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보 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옵니다. 출애굽해서 광야에 머무는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 복받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서 그에게 십계명과 모든 율법을 가르칩니다. 말씀을 전수합니다. 그러데 이렇게 모세가 산에 올라가있는 동안 40일 동안 그걸 참지 못해서 백성들이 그 광야에서 우상을 섬깁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축제의 판을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32장 7절에 말합니다. 또 하나있습니다. 9절에서는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패하였도다. 한계를 넘어설만큼 부패하였도다. 또 하나는 목이 곧은 백성이다……. 목을 굽힐줄 모른다 겸손할줄 모른다. 회개할 가능성이 없다. 돌이키지 못하는 백성이다. 목이 곧은 백성이다. 이렇게 심판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진멸하겠다고……. 진노하사 진멸하겠다고…….
여 러분 인간적으로 한번 판단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얼마나 큰 이적을 경험했습니까? 영원히 노예로 끝날 민족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서 10가지 재앙을 보여서 이제 그들을 홍해를 건너 광야로 오게 했습니다. 이 큰 구원의 역사를 경험한 백성입니다. 큰 구원의 역사 그 능력 속에 사는 백성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긴단 말입니까? 특별히 이스라엘의 범죄는 여기에 있습니다. “자 이제 모세도 안보이고 하나님도 안보이니까 아 그저 우상이나 섬깁시다.” 그랬더라면 오히려 어쨌을까 생각합니다.
결정적인 죄는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범죄의 신학적 의미는 여기 있습니다. 그 우상을 만들어놓고 저들이 하는 말이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상화한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니 금송아지 하나 만들어놓고…….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여 러분 이 신앙생활도요 눈치가 빨라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요기까지는 봐 줍니다. 요건 안 됩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우상을 섬겨도 도덕적으로 타락해도 다 참아주었습니다. 왜? 다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에 하나님의 권능의 그 오묘하신 존재에 도전하면 그건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좀 미안한 얘깁니다만 여기에 비교할 것은 안 되는데 그래도 조금 관계가 있어서 이렇게 한번 비유해서 생각해봅니다. 집사님 한분가운이 여집사님이 참 착하고 진실해요. 남편이 참 못됐어요. 남편으로 못된 짓은 다 해요. 그렇게 알면 되요. 별짓을 다해요. 못된 짓 다해도 그 부인은 그렇게 착해요. 잘 참고 견디는 거예요. 잘 참는 줄 알았더니 어떤 날 내게 와서 이제는 못 참습니다. 이혼하겠다고 해요. 아니 잘 참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는 친구들이 너는 여자의 명예를 다 더럽히는 사람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로 참았는데 왜 못 참소? 왜 참던 바에 좀더 참지…….
했더니 아니래요. 왜 못 참았냐고요? 어느 날 술이 만취되어 들어왔어요. 아 술 취한 남편을 잘 이렇게 해서 깨끗이 씻겨서 잠들게 했는데 잠꼬대 하면서 자기 아내를 끌어안으면서 미스 김 그랬어요. 이건 못 참는다 이거예요. 자 여러분 이게 의미가 있는 겁니다. 나를 버리고 딴 여자에게 가는 것도 참겠다 이거예요. 나를 창녀취급 하는 건 못 참아……. 이제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다 그것까지도 참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우상화하는 것 우상섬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 그건 안 됩니다. 이걸 아셔야 돼요.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크게 진노하사 이 백성을 진멸하겠다 그랬어요. 그 다음말씀이 특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너로 큰 나라로 되게 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겠다. 이 뭡니까? 이 쉽게 말하면 저들은 다 진멸하고 너만은 살려주마. 너와 네 후손은 다시 번창케 해가지고 이스라엘이름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해주마. 이랬습니다. 다 진멸하고 너만은, 너와 네 후손은 살려주마…….
어떻습니까? 이런 경우라면 보통은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야 되잖아요? 모세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게 바로 중보자 된 모세의 특별한 모습입니다. 그래 하나님 앞에 나가서 중보자로서 기도합니다. 11절에 보면 어찌하여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원하신 이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예?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차피 애굽에서 우상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큰 권능으로 구원해놓고 어찌하여 진노하시나이까? 일이 이렇게 되면 어차피 하나님의 일인데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김구선생님이 옛날에 상하이에 계실 때 임시정부 주석으로 있을때 말입니다. 참 어려웠답니다. 생활이……. 어느 날 밖에서 돌아왔는데 저녁때인데 식사할만한 그런 먹을거리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노모 그 어머니께서 시래기 국을 끓여놨어요. 그래서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야,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내버린 거 줒어다가 씻어서 끓였다. 그런데 그때 김구선생님이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돈을 잘 못 벌긴 하지만 그래도 임시정부의 주석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인데 아니 대통령의 어머니가 나가서 시장에서 그 내버린 시래기를 줒어와야 되겠습니까? 어머니 어떻게 그렇게 체면 없는 짓을 하셨습니까?” 그랬더니 어머니가 무서웠답니다. “일어서, 너 언제부터 그렇게 건방졌냐? 회초리 가져와라.” 그리고 때리는 거예요. 김구선생님을 내치는 겁니다. 김구선생님이 울었어요. 우니깐 너 왜 우냐? 아파서 우냐? 김구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작년에 때릴 때보다 어머니 팔에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여러분 맞는 나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때리는 어머니를 생각했어요. 이제 나이 들어 힘이 없어요.
여러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망해 없어지는 걸 생각한 게 아네요. 그야 그렇죠. 제제로 망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 위상이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이백성이 망하던 말든 그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이렇게 큰 권능으로 구원해놓고 당신의 백성을 당신이 진멸하면 되겠습니까? 그뿐이고 12절에 가서 보면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그리하여 애굽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진멸하려고 이스라엘백성을 광야로 끌어냈다라고 하시려나이까? 왜 그런 말하게 하려고 합니까? 왜 비난을 받게 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집니다. 광야에 끌어내서 진멸하려고 구원했다고 하려 하시나이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만 생각합니다. 이 백성이야 제제로 망하는 것 어떻게 됐던 상관없습니다. 단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 그것이 이렇게 퇴색되고 추락 되서야 되겠습니까?
13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십시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33절에 절정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정히 그러시려거든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세요.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소서. 아주 눈물겨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백성이 망한다고 할 때는 나도 함께 망하겠습니다. 나만은 구원하신다는 말 반갑지 않습니다. 내 백성 망하는 것을 보면서 나만 평안하고 살아남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고 그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세요. 쉽게 말하면 죽여주세요. 이 백성과 함께 죽게 해주세요. 그런 기돕니다.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합니다. 백성과 함께하겠다고 이렇게 애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백성이 타락한데 대한 책임을 내가 지겠습니다. 책임을 지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마음입니다.
2차대전 때에 있었던 얘기입니다. 신임중대장 비행장 중대장이 하나왔는데 비행단장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자네 어젯밤에 장교식당에 가서 술을 많이 마셨다며?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사실은 간일도 없습니다. 마신일도 없고…….
그러나 구구하게 뭔가 잘못된 줄 알고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비행단장이 하는 말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알았습니다. 며칠 있다가 또 전화가 왔습니다. “간밤에 장교식당에서 또 자네 술을 먹었다며?” 아 이건 안 되겠다 생각을 해서 비행단장을 찾아갔습니다. 죄송하지만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술을 할줄 모릅니다. 술은 마신일이 없습니다. 비행단장이 말했습니다. “나도 알아. 자네 부하가 마신 건 자네가 마신거야. 알았나?” “잘 알았습니다. 제가 마셨습니다.”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여러분 지도자가 누굽니까? 그 휘하에 있는 사람이 실수한건 지도자 자신의 실수입니다. 어떻게 내가 예외입니까? 이 백성이 타락했으면 모세의 타락입니다. 모세 한사람 나는 예외라고? 아니올시다.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충성진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어떤 날 왕이 백성들을 앞에 놓고 이런 질문을 합니다. 홍수가 났는데 너희 아버지가 떠내려가고 왕인 내가 떠내려가는데 한사람밖에 건질 수 없다면 너는 누구를 건지겠느냐? 신하들이 하나같이 아첨하면서 “그야 물론 임금님을 건져야죠. 무슨소리 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임금님을 건져야죠.” 그러는데 정말로 충성된 신하 한사람은 말이 없어요. 자넨 어떻게 말이 없나? “저는 아버지를 건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서 임금님과 같이 죽겠습니다.” 이게 충성진명이란 겁니다.
충성이란 뭐 굉장한 일을 한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죽는다는 겁니다. 생명을 함께한다는 겁니다. 자 오늘도 이러한 지도자를 원하십니다. 너무 이기적입니다. 너무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 하나만 살자고 자기 자녀만 위해서…….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중보자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중보적 지도를 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중보자가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그 민족을 사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모세 생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를 하는 이 거룩한 사람 이 한사람이 있으므로 이 백성은 다시, 다시살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 레미야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예루살렘거리로 왕래하며 여호와를 찾는 사람 한사람을 만나라. 한사람만 있어도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온 백성이 잘되고 온 집안이 잘되고 모두가 다 의로워지는 그런 세상을 원합니다. 물론 그러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돌아가서 우리는 나 한사람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나 한사람이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하는 중보적 존재가 될 때 분명 하나님께서 이 민족 앞에 다시 큰 은혜를 베푸실 줄 압니다.
- 기도-
하 나님아버지, 어디를 보아도 소망이 없는듯하고 무슨 일을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하오나 절박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섰던 모세를 생각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믿음을 주셔서 모세와 같은 중보적 존재 중보적 신앙 중보적 기도가 있게 하셔서 이 백성을 구원하며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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