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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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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종민 목사 |
참고 : | 2006 여수시민교회 http://www.isimin.com/ |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그들이 가로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출애굽기 2장 11~25절 말씀
애굽 왕궁에서 나와서 광야로 간 모세는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는 그곳에서 이드로라는 사람을 만나 예상치 못한 제 2의 인생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의 딸과 결혼하여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일을 했다. 대권주자로 장차 애굽 역사의 주인공으로 데뷔해야할 그가 광야의 초라한 양치기로 데뷔했다. 왕궁에서 주인처럼 살다가 이제 광야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간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모세를 광야에 40년이나 두셨을까? 민족의 지도자가 되려면 광야의 혹독한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40년의 광야 생활이 나중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힘이 되었다. 훗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하면서 이전에 왜 자신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며 지내야 했는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광야의 한 가운데 서있는 분이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부족해서 육체적으로 살기 어려운 장소다. 그런 곳에다 하나님은 모세를 몰아 넣으셨다. 애굽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장소 대신에 황량한 광야로 보내셨다. 그러나 모세의 위대한 인생의 시작은 광야생활을 시작할 때부터였다. 거친 광야에 서는 바로 그 순간이 그의 위대한 인생의 서막이었다.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외로운 광야 생활을 경험했다. 아브라함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미래가 불확실한 길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광야와 같은 인생 여정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했다. 광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복의장소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강한 바람은 강한 나무를 만드는 것처럼 힘든 광야생활은 강한 사람을 만든다. 요셉이 아버지 품에서만 자랐다면 평범한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편했을지는 몰라도 꿈도 사명도 잃어버린 실패한 인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13년 동안 타국의 노예생활을 통해 강해졌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민족을 살리는 믿음의 거장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산으로 들로 도망 다니면서 하나님만이 산성이시며, 요새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광야 생활을 하셨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난 후 수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광야생활은 철저히 낮아지는 생활이다.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생활이다. 그러기에 광야는 인간의 인격을 겸손한 인격으로 만들어준다. 광야생활을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기 쉽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광야에 서 있는 분이 있는가? 그것이 건강문제의 광야인가? 사람들이 다 떠나버린 외로움의 광야인가? 아니면 생활고에 찌들린 고통과 두려움의 광야인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절호의 기회임을 아시기 바란다. 또한 내 인격이 다듬어지는 소중한 시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광야 길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길이다. 광야 길은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는 길이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장소다. 그러기에 광야가 복인 것이다. 우리는 광야에서 무능한 내가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부족하고 고통스런 광야에 서있을 때도, 현실의 춥고 배고픈 광야에서도 광야에서 인생의 외로운 밤을 보낼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골이 깊다는 것은 봉우리가 높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당하는 고통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들을 키웠기에 양과 같이 우매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인내하며 인도할 수 있었다.
그러면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께 받은 훈련을 한 번 생각해 보자.
1.겸손의 훈련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먼저 겸손의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래서 교만을 깨뜨려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교만은 인간이 범죄 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다. 교만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거친 들판으로 만들어 놓았다. 교만은 바벨탑을 만들게 해서 분열이라는 아픔을 낳았다. 사탄은 지금도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무너뜨리려고 한다. 모세가 왕궁에 있으면서 얼마나 교만했겠는가? 차기 대권주자였기에 눈만 뜨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왕궁에 있었을 때 그는 분명 지도력이 있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행7:22절에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사람을 심판하고자하는 교만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되었고 결국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미디안 광야에 파묻혀 있다. 찾아오는 이 없고, 우러러 보는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다. 그는 이제 들판에 던져진 돌맹이 처럼 초야에 묻혀 사는 초라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가 이제는 잊혀 진 존재가 되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동족이 수없이 생각났지만 그런 자기 민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 그는 교만하려고 해도 그럴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만하려고 해도 형편이 말이 아니다. 주변에 사람이라도 있어야 잘난 척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그에게는 더 이상 교만도 자기주장도 남아있지 않다. 모세는 왕궁에 있을 때 혈기가 왕성했었다.
그래서 자기 생각대로 안 되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교만과 아집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40년 광야 세월 속에 교만과 아집과 고집은 모두 광야의 거친 모래 바람에 쓸리고 깎여 나갔다. 40년 광야생활 동안 오만과 교만과 미움과 원망을 다 버렸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이 수면에 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전의 모세와 온유함이란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광야의 거친 모래 바람 속에서 모세가 그렇게 바뀐 것이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쓰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면 겸손한 자로 만들어서 쓰신다.
사울 왕 - 그의 실패는 전쟁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성품의 실패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품의 실패로 무너진다. 그래서 우리는 높은 위치에 오르려고 하기보다 먼저 겸손한 성품을 가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받아야 할 훈련이 많지만 가장 먼저 겸손의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영광스런 하나님의 동역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겸손의 훈련을 받으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쓰시려고 광야의 외로움과 거친 모래 바람으로 40년 동안 겸손의 훈련을 시켰다.
그래서 모든 상황가운데서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만들었다. 광야40년 동안 겸손의 훈련이 있었기에 모세는 수많은 위기에서도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므로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겸손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돈이나 건강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성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말고 성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즉, 성품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면 자연히 쓰임 받게 되고, 위대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2.홀로 서는 훈련이다.
모세는 왕궁에 있을 때 수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광야에서 주로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휑하니 찬바람만 불어올 뿐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곳에 모세를 두셨는가? 지도자의 자리는 외롭기 때문에 홀로 있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홀로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홀로 있는 훈련을 40년이나 했기 때문에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를 향해 비난과 원망을 퍼부을 때에도 혼자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므로 정상에 서는 사람은 정상에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말에 쉽게 마음이 무너지고 쉽게 절망하는 사람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강하게 하기 위해 그가 홀로 서는 훈련을 시킨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나 혼자 서 있다고 느끼는 분이 있는가? 고독이 밀려오는가? 사업에 실패했는가? 친구들이 떠나 버렸는가? 육신에 질병이 찾아왔는가? 그러나 홀로 광야의 시간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 시간은 바로 자신을 진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위대한 시간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복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오히려 즐기시기를 축원한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차가운 밤과 뜨거운 낮을 보내셨다. 틈만 나면 군중을 떠나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님은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외로움의 훈련을 잘 받으셨기에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들의 차디찬 배신에도 견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대신 지거나 함께 갈 수 없는 외롭고 고통스런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이처럼 광야는 외로움을 이기게 하는 장소다.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장소다. 그러므로 광야의 훈련시간을 기꺼이 환영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없다. 홀로 있는 시간이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홀로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도, 고통의 시간도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복의 시간이다. 나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감동한다. 범죄 한 인간이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감격하게 된다. 인생의 무거운 짐에 눌린 인간이 안식의 하나님을 만나면 자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만남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혼자이기에 외롭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인생에 최고의 만남이요 행복인 하나님과 만날 수 있기를 축원한다.
3.부족함을 극복하는 훈련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는 광야의 부족함을 극복하는 훈련을 받았다. 애굽의 왕궁에 있을 때는 입을 옷도 많고, 잠자리도 편했고, 먹을 것도 많았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자리도 불편했다. 광야 생활엔 무엇 하나 넉넉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모든 것이 부족하다. 모세는 이 부족하고 불편한 생활을 40년이나 했다. 그러나 그의 부족함과 불편함이 불행은 아니었다. 부족하면 좀 불편할 뿐이지 그것이 곧 불행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그것을 불행으로 여기면 불행이지만 즐기면 오히려 기쁨이 되고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부족함과 불편함을 오히려 즐기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풍성할 때보다 무엇인가 좀 부족하고 불편해야 하나님을 찾는다. 그래서 현재의 부족함과 불편함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다면 그 부족함과 불편함이야말로 나에게 큰 복인 것이다. 죄는 무엇이 부족할 때보다 풍성할 때 찾아온다. 다윗은 나라가 부강하고 영토가 확장될 때 죄를 지었다. 삼손은 젊고 힘이 있을 때 죄에 빠져 인생을 망쳤다. 반대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부족함이라는 수업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결과 그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나타내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부족함과 불편함이라는 수업을 통해서 우리를 낮추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생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신나고 즐겁고 복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길에 때때로 광야 같이 거칠고 부족한 환경을 만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란다. 오히려 인생의 광야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한다.
광야에 머무는 시간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광야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데려다 주는 안내자다. 그러므로 광야는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적이 아니라 우리의 좋은 친구다. 광야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사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불편한 광야를 여러분의 좋은 친구로 삼아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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