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5:39 |
---|---|
설교자 : | 황성현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hclogos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기독교는..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종교입니다.
물론 먼저, 나의 자아{自我}의 죽음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순교의 결단이 없이는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고난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순교{純矯}를 두 가지로 나눌 수 가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주의 복음을 들고 타국에 나아가 사명을 감당하다가 순교하는 것이요.
두 번째로는.. 내 안의 '자아의 순교 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 : 1}
구약의 제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제물의 '향기{香氣}를' 받으십니다.{레.1:1-17}
제단의 제물이 온전히 불에 타서 가루가 되어야.. 비로서 하나님께 향을, 드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제단에서 온전히 태워지지 못한 '제물과 같이,' 보기 흉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나의 자아{自我}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서 죽되, 온전히 죽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가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나의 강한 성품이 살아서 주님의 일을 한다면 주의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인격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죽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온전히 죽지 아니하면 뺨은.. 그만두고
남들이 나를 조금만 무시를 해도 혈기를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거듭난 사람의 표징은 날마다.. 자신과 싸우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비록 거듭났으나 여전히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악{惡}과의 싸움을 통해 ' 나는 곤고한 사람,' 이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뺨을 맞아야도 참아야 되고
손해를 봐도 복수{復收}를 해서는 안되며.. 부담스러운 부탁을 해도 거절을 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감당키 위해 오늘도 우리 안에서는 '육신과의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듭난 성도라면 오늘의 말씀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넘어야할 산{山}이라는 것이지요.
인도의 한 작은 왕국에 어린 왕자가 혼자 성 밖으로 나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왕자는 거지들에게 붙잡히어 그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그렇게 소년기를 지나던 중에 왕의 신하들이 왕자를 찾아내어 다시 왕궁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왕자에게 누더기 옷을 벗기고 더러운 몸을 깨끗이 씻기어
화려한 왕복을 입히니 이제 완연한 왕자{王子}의 모습과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왕자의 신분은 찾았으나 평상시에
자신도 모르게 예전 천막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던 습관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태도 행동하는 모습... 그 왕자가 내면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온전한 왕자의 신분을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에 신분은 회복하였지만
옛 세상에서 마귀의 종으로 살아갈 때에 육신의 성품{自我}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야만 이 성품을 변화 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 또는 부부간의 대화 속에서
야기되는 모든 문제들..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추종하며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이러한 말씀을 따르기 어렵고 부담이 되어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십자가는 구체적으로, 내가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이 행함의 단계는..예수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듯이 희생{犧牲}의 댓가를, 치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과 능력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예수님과 함께 고난{苦難}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십자가.. 십자가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믿음으로만,
구원{求原}을 얻는 이신 득의{利信得義} 교리에 의해 실천의 신앙이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남용하고 가르친 나머지 행함이 따르는 '역동적인 신앙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저들의 생활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고 따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만.. 거듭나고, 죽어야 부활{否活}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9 :23}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