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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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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임덕순 목사 |
참고 : | 2005-08-14 한가람교회 http://www.hankaram.or.kr/ |
스스로 있는 자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이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서, ‘너희 조상들이 믿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왔다’고 말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않을 것이니 하나님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어떤 하나님을 만났다고 소개해야 할까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을 소개해 주셨고, 모세는 확실히 알고 나서 능력의 사람이 되어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라고 한다 해서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하나님인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바르고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합니다. 신학교라고 해서 다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어줍잖은 학설을 가르치는 신학교가 많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다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이단도 수다하게 많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믿고 섬길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르는 집단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참된 신앙, 참된 교회를 분별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귀신도 가미사마, 여호와 하나님도 가미사마이며, 한국에선 무당들이 섬기는 천지신도 하느님이고 천주교가 섬기는 신도 하느님이라 부릅니다. 통일교가 믿는 문선명이도 자칭 하나님입니다. 봉천동에 가면 자칭 하나님 어머니도 있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아, 나와 신앙이 같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를 빙자하여 사리사욕을 차리는 사기 집단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인조 신을 섬기는 종교들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일컬어 혼돈된 신학, 또는 혼돈된 신앙의 시대라고 합니다. 인간은 부패했기 때문에 사람의 지식으로 찾아낸 신이나 사람이 자기 필요에 따라 만든 신은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또 그분의 이름이 누구신지를 모세처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체험이 가능하고 확인이 가능합니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절대자 하나님 - 객관적으로.
바위틈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비틀어진 나무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자라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것들은 최소한의 흙과 물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사람의 몸도 음식과 환경에 의존하여 사는 존재이고,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에 의존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분이 아니고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의존적 존재가 아니고 스스로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영원히 존재 하실 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하나님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풍성한 물질과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일도 없었고, 제물도 바친 일도 없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섬기는 조상신처럼 자손에게 제사를 얻어 잡숴야만 사는 신이었다면, 하나님은 벌써 굶어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고, 도리어 배반한 그들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에게 의존해 계신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음식과 환경에 의존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늙고 병들고 죽으며, 그 마음도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믿을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순수한 분이시고, 순수한 존재는 변하지 않는 법이며, 변하지 않기에 믿을 만한 분이라는 사실을 지난 주일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에 대답하여 당신을 계시하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스스로 있는 여호와가 너를 보냈다 하라." 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란, 한문으로는 自存者라는 말인데,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이십니다. 우주의 만물은 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이지만, 하나님 자신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창조자시요, 그분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만물의 제 1원인이시요, 그분이 바로 만물을 돌아가게 하시면서 당신은 그것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不動의 動者이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영어로는 "I am who I am" 이라고 하는데,
“나는 곧 나다.” “나는 있으니까 있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에ㅎ 예흐, 아셀 에ㅎ 예흐" 로 되어있습니다.
그 뜻은 “나는 내 스스로 존재하여 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 한 마디는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영원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과 절대적 신분을 잘 나타내는 말입니다.
계시록1:4와 8절, 2:8에 보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오실이” 라고 하셨고,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셨고 또 현재도 계시고, 미래에도 영원토록 계시는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문은 성경전체 중에서, 하나님께서 자기가 누구신가를 직접 자세하게 설명하신 구절입니다. 이 부분 외에 모든 부분은 하나님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하고, 그의 존재를 믿는 신앙을 근거로 하여 모든 진리가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을 계시하여주신 이 말씀 외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알아낼 다른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는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때로는 하나님을 상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 부른 경우들이 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드리려다가 수양을 허락받은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이레 라고 하였는데(창22:14), 하나님은 준비 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출17:15에 보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아론과 훌의 부축을 받으며 기도해서 아말렉을 이긴 모세는 “여호와 닛시" 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나의 승리의 깃발’ 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사사기 6:24에선 기드온이 여호와를 만나고도 죽지 아니한 기쁨을 고백하기를 ‘여호와 샬롬’ 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평안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2. 백지수표가 되시는 하나님 - 주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무엇이든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절대적 신분과 절대적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그래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이 고백했던 것 같이 사람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씀은 영어로 하면 I am that I am. 인데, “나는...이다.” 혹은 “나는 그 무엇 이다.” 라고 해석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해석하신 곳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요14:6에서 “I am the way, the true, the life” 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길이고, 너희의 진리이고, 너희의 생명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준비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평강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그 무엇이십니다.
I am that I am 은 “나는 네가 필요한 그 무엇이다.” 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무엇이든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기입할 수 있는 백지 수표를 건네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것은 이론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확인됩니다.
시18:에 보면, 다윗은 ‘나는 ...이다.’ 라고 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정확히 이해했던 사람이라고 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고백하고는 덧붙여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다윗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의 반석, 요새, 방패, 구원이셨고 그의 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원하는 모든 것 이셨습니다.
498장을 잘 아시지요? A.B 심슨 이라는 분이 지은 찬송시입니다.
은혜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은사원한 내게 은사의 주님
신유구한 내게 신유의 주님, 나의 마음 속에 지금오셨네
나의 생명되는 내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기쁨넘치네
94장 찬송을 한번 불러볼까요? 밀러, 라는 분의 고백적 찬송 시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자의 빛이시며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93장은 어떻습니까? W. 톰슨 이라는 분의 찬송입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예수 떠나가면 죄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이 주 예수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그은혜를 간구하면 풍성히 받으리,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열매 주신 이는 주 예수
3, 4절은 예수는 나의 기쁨, 소망, 보호자 축복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나는...이다.’ 라고 당신의 이름을 설명하여 주셨기 때문에, 다윗이 했던 그런 고백, 아브라함의 그런 고백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심슨이 했고 밀러, 톰슨이 했던 그런 고백은 우리가 체험하는 사실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누구시라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오늘은 광복기념주일입니다. 광복이란 잃어버렸던 빛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빛을 누가 만드셨고 빛을 누가 주십니까? 오직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만이 빛을 주십니다. 우리 민족이 36년 동안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자유와 희망이라는 빛이었습니다. 1919년에 독립만세 운동에 기세를 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일제의 통치는 강화되었습니다. 성과 이름과 말과 문화와 한글 신문도 빼앗겼고, 전 세계는 이미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요즘 와서 과거 친일파를 색출하자는 운동을 하는 모양인데,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예 없었고, 독립의 가망성도 전혀 없었던 때입니다. 공부를 좀 하고 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당시 정부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한국정부가 따로 있고 일본 총독부가 따로 있다면 모르지만, 당시에 유일한 정부는 일본의 총독부 아니었습니까? 당시에 잘 살면서도 고위직에 올라가고 싶은 욕심으로 일본정부에 아부한 친일파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의 배고픈 사람들은 일본에 협력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위해서 일자리를 구했을 것이고, 일자리는 모두 일본 총독부 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때 일 한 사람들 모두를 친일파로 몰아서 처벌한다면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당시에는 일본만 있었고 한국은 없었습니다. 일본이 좋아서 친일파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교만의 극에 달한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일으켰다가, 1945년 8월에 원자폭탄 두개를 맞고 일본이 패전함으로서, 한국은 생각지 않았던 독립을 공짜로 얻게 되었습니다. 꿈에서나 그려본 독립을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만세” 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요즘 와서는 애국가에서 하나님을 빼자고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불교인도 천도교인도 다 그런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빛을 다시 찾게 해 주신분이고 하나님 자신이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광복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시다. 빛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평생을 살면서 찬양 드립시다.
광복 기념 주일에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나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빛이요 구원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평화요 영광이신 하나님은 우리 믿는 신자들에게는 아버지까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희생시켜 주심으로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약속까지 해 주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나는.. 이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셨습니다.
“네가 내 안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마, 나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되어주마, 네가 말씀대로 살면서 순종하는 삶 가운데서 네게 필요한 것을 믿음으로 간구해라. 나의 이 신성한 이름 뒤에 기록해 넣기만 하면, 그러면 내가 그대로 되어주마!” 이것이 “나는...이다.” 라는 말씀의 참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네가 바라는 그 무엇이다.” 라고 말씀하셨으니, 이제는 우리가 참된 생명을 간구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의 생명이다.” 라고 하시고,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하면 주님은 “나는 너의 위로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면 주님은 “나는 너희 능력이야” 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평강이 필요하면 주님은 우리의 평강이 되어주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혜, 공평, 통일이라면 주님은 이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게 귀한 의미가 담겨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백지수표가 될 줄은 몰랐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날마다 감사하고 의지하여 삽시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날마다 필요한 은혜를 하나님께 공급받지 못해서 이 땅에는 고통 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서로 갈라서는 부부들, 방황하는 젊은이들, 절망하는 노인들,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이 누구든지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이가 젖이 필요하니까 무의식적으로 엄마 젖을 찾는 것처럼, 사람은 그 누구라도 종교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찾고 따르는 사람은 행복자입니다. 히브리 서 기자는 이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모세는 이 위대하신 이름과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이름을 친히 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평생을 그분과 동행하며 그의 종이 되었는데, 그는 대단한 일을 해 낼 수가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자라면서 40년이나 공부를 하고도 실패만 했던 별 볼일 없었던 사람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위대한 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산기슭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아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연히 하나님을 만난 게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위대하신 이름을 가지신 분에게 붙들려 그의 심부름을 시작했습니다.
그 모세가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때 실패하고 40년이나 도피생활을 하던 미디안의 목동 모세는, 그 시대 세계의 지배자였던 애굽 왕 바로를 맨손에 지팡이 하나로 정복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민족 200만 명을 애굽에서 해방시켰고 독사와 전갈과 살인적인 태양빛만 내리쬐는 광야 사막에서 40년 동안이나 살아남게 했고, 가나안땅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그렇게 큰일을 했습니까? ‘나는 이다.’ 라고 하신 그분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다.” 라고 하신 그분께서 광야생활 내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물이 필요할 때는 물을 주셨고, 승리가 필요할 때는 승리를 주셨고, 음식이 필요할 때는 음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물이셨고 음식이었고 그늘이었고 빛이셨습니다.
하나님 한분이면 다른 무엇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광야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질병과 재난과 유혹과 위험이 가득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득불 시련과 곤경을 만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온갖 연약함을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나는...이다.’ 라고 우리 앞에 당신의 은혜와 능력을 약속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친 환경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위대한 이름을 들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아십니까? 스스로 계신 분,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그 하나님을 내가 알았다는 것, 내가 그분을 믿고 의지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십니까?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지금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아십니까? 이 어찌 떨리는 일이 아닙니까? 이 어찌 신을 벗어야 하는 일이 아닙니까?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다운 새 삶을 시작합시다. 우리 모두 죄와 악행의 신발들을 벗읍시다. 과거의 경험과 인간의 한계 안에서 했던 생각들도 다 던져버립시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감사하며 경배하면서 살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성실로 새 걸음을 시작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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