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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농부의 방귀와 피마골

출애굽기 최형묵 목사............... 조회 수 2223 추천 수 0 2012.12.31 0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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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3:1-12 
설교자 : 최형묵 목사 
참고 : 2004년 5월 23 천안살림교회 http://www.salrim.net/ 

출3:1-12

에티오피아 농부의 방귀와 피마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 에티오피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위대한 영주가 지나갈 때, 현명한 농부는 머리를 깊이 조아리면서 조용히 방귀를 뀐다." 인정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불복종의 행위를 말하는 속담입니다. 영주의 눈과 귀와 코에 농부의 방귀는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농부에게, 그리고 함께 엎드린 농부들에게 그 방귀의 의미는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것은 부당한 권력, 인정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너무나 명백한 저항의 행위이며 농부들의 강렬한 자의식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영주와 농부들의 관계를 당장 변화시키지 않지만, 소멸될 수 없는 농부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자포자기하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자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으면 기어코 일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속담은 그 진실을 말합니다.

 

에티오피아에 농부의 방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나라에는 피마골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농부 이야기가 '무형문화재'에 해당한다면 우리 나라의 피마골은 '유형문화재'에 해당합니다. 서울 종로에 가면 피마골이라는 골목이 있습니다. 지금은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종로2가까지 쭉 이어지는 골목입니다. 사이 'ㅅ'을 붙여 '피맛골'이라고 쓰기도 하고, 또 그 골목에 들어가면 빽빽하게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어서 무슨 '맛'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은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는 뜻입니다. 종로에 지체 높은 분이 말을 타고 출두하면 상민들은 길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피마골은 그 짓이 하기 싫어 도망쳐버리는 뒷골목입니다. 역시 에티오피아 농부의 방귀 이야기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적입니다. 거드름이나 피우고 백성들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관리들에 대한 저항을 그와 같이 나타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도 그 자체가 당장 어떤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면면히 살아 이어져온 민중들의 전통을 보여줍니다. 그 전통이 어떤 계기를 만나 분출하게 되면 질풍노도로 돌변하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엽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런 차도도 없고, 그렇고 그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지만 강렬한 자의식이 살아 있을 때 그 무덤덤한 사태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묻혀 있는 그대로 정말로 묻혀버리면 아무 일도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그 안에 이글이글 불타는 용광로와 같은 것이 있다면 어느 순간엔가 놀랄 만한 지각변동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의 소명체험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왕자로서 40년을 살다가 히브리인의 아들로서 자각한 후 모세는 쫓기는 신세가 되어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결혼하여 처자식을 거느리고 양치는 목자로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작렬하는 햇빛 아래 삭막한 광야의 일상에 묻혀 산지 40년이었습니다. 나뭇잎이 돋아나고 지고, 꽃잎이 피고 지고 하는 것을 실감하기 어려운 광야의 삶이란 어제나 오늘이나 크게 다른 것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삶이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작렬하는 태양 아래, 언제나 있는 둥 마는 둥 보이는 둥 마는 둥 하는 가냘픈 풀포기들을 좇아 다니며 양을 먹이는 일상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소식이 쉽사리 전해지는 것도 아니오 다른 곳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쉽지 않은 그런 곳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런 일상에 파묻혀 있던 모세가 어느 날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떨기 가운데 이는 불꽃을 발견합니다. 불꽃은 타오르는데 떨기가 타지 않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일상의 무덤덤한 적막을 깨트리는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모세는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명을 내립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라."

그 순간부터 모세의 삶은 달라집니다. 이집트의 왕자의 신분에서 히브리인의 아들로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모세, 그러다가 일상에 파묻힌 목자에 지나지 않았던 모세는 이제 이집트에서 억압받는 히브리인의 해방을 위한 지도자로서 변모를 합니다. 모세의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모세의 삶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그 사건은 분명히 극적이었습니다.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광야의 한복판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가녀린 떨기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도 타지 않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바로 그 사건의 그 순간만을 주목하고 기억합니다. 바로 그 특별한 계시의 순간이 있었기에 모세는 일상의 삶을 떨치고 민족 해방의 지도자로 나섰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에 모세는 민족 해방의 지도자로 나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 기적을 체험하기 이전에 이미 강렬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저 일상에 파묻힌 목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으나, 그 목자로 살아가는 모세의 가슴속에는 벌써부터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를 갖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을 때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 하고 탄식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그대로 그 말을 뜻하는 '게르솜'이라 지었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자리가 안주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이 상태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강렬한 자의식의 표현입니다. 목자로서 살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일상에 묻혀 살면 먹고사는 일 걱정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눌러앉아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자기를 둘러싼 현실에 그렇게 이의를 제기했고 그렇게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 자의식이 당장 삶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성서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출애 2:23)고 전합니다. 지금 있는 그 처지에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 없는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자의식에 불꽃이 튀었습니다. 바로 오늘 장면입니다. 모세가 목격한 불꽃은 사실은 모세의 자의식의 불꽃이었습니다. 떨기나무와 같이 연약한 히브리 동포들, 그 연약한 떨기나무와 같이 무력해져 있는 자신에게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게 빛을 발하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오, 그렇게 빛나야 할 히브리 동포들에 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주어진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저버리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가온 깨달음이오 초월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 무력해져 있던 자기를 뛰어넘어 민족 해방의 지도자로 모세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락에 떨어졌을 때는 물론이오, 그저 그런 대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때에도 무력감을 느낍니다. 마치 어제도 오늘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광야와 같을지 모릅니다. 무슨 새로운 계획을 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 그야말로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그냥 그렇게 살지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마냥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냥 그런 대로이거나, 아니 오히려 지금보다 더더욱 어려워지는 수도 있습니다. 당장의 어떤 변화가 없어 보여도 꿈을 꾸고 새로운 설계를 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닥쳐옵니다. 무력한 일상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냥 그런 대로 존속하는 교회라면, 많은 교회에 또 하나 더해지는 교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라고 하지만, 가만히 현실의 교회를 보면 오히려 개인의 일상적인 삶보다 더더욱 무덤덤해지기 쉬운 것이 교회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변화가 더디고 항상 그 모양 그대로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단히 애를 써도, 그렇게 당장 가시적 변화를 경험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면 그 사태는 더더욱 말할 것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이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우리는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살림교회는 많은 교회에 교회 하나를 더하자는 교회가 아닙니다. 여기에서부터 교회를 새롭게 하는 기운을 일으키고,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운을 일으키자는 교회입니다. 죽임의 문화 가운데서 살림의 문화를 일구자는 교회입니다. 그 자의식이 당장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해도해도 한국교회가 별로 변한 것 같지도 않고 이 사회가 변한 것 같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우리들 각자가 모인 이 교회 자체도 그렇게 쉽사리 변화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의식을 갖는 것과 갖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그 자의식이 변화 없는 일상에 돌파구를 내줍니다. 그 자의식, 그 자긍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단히 노력합시다. 지지치 않고 달려갑시다. 그 믿음으로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에 놀랍게 변화되어 있는 이 교회, 우리들 자신,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관계, 그것을 꼭 경험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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