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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출애굽기 성홍모 목사............... 조회 수 3404 추천 수 0 2013.01.03 21: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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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3:1-12 
설교자 : 성홍모 목사 
참고 : 2009. 2. 11(수) 영주교회 [서울시 후암동] http://youngjoo.co.kr/ 

출3:1-12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오늘은 모세의 소명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을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소명’ 또는 ‘소명의식’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소명(召命)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에로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노아를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또는 어떤 선지자를 부르시고,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을 봅니다.  본문의 말씀은 민족의 해방자로 모세를 부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명에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소명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소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일반적인 소명, 외적인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어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으신 목적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 일반적인 소명을 뛰어넘어 특별한 부르심, 내적인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대적인 일꾼으로 사용하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르심을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모세는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면서 40세에서 80세에 이르도록 40년을 보내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르우엘이란 이름도 있고, 호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름인 이드로라고 하겠습니다.  이드로라는 이름은 “탁월하다”는 말인데, 그는 미디안의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목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양을 치는데, 하루 이틀 하고 만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지속적으로 가축을 돌아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에 앞서 약 40년간 양떼를 돌아보는 목자로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을 소중한 일꾼으로 부르실 때에,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을 파격적으로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 걸쳐서 연단하시고, 훈련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보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요셉이란 사람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란 사람을 시위대장 보디발의 수하에 들어가서 가정총무가 되도록 훈련하시고, 사람을 거느리고, 사업을 추진하고 한 집안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훈련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는지 않는지의 시험도 치르게 하십니다.  감옥에 보내어 인내심을 기르게 합니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감옥에서 정치가 무엇인지도 알게 합니다.    그런 후에 때가 되매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일약 총리대신에 오르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요셉이 아직 어린 청년의 때에는 종으로, 가정 총무로 감옥에서 성실히 살게 하시고, 그 후에 정계에 나오게 하십니다.


모세를 보면 미디안 들판을 다니며 양을 치는데 40년을 한결같이 양떼를 몰게 하셨습니다.   40년이란 시간은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를 보낸 것입니다.  나이 40에서 80세에 이르렀다는 것은 인생의 황금기를 양떼와 보내게 하셨습니다.  양떼란 소떼와 다릅니다.  소몰이꾼과 양의 목자는 다릅니다.  소떼는 거칠게 몰아도 됩니다. 때로는 거칠게 몰아야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양의 목자는 거칠게 몰아갈 수 없습니다.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고, 생명을 아껴야 합니다.  양을 사랑하지 않고는 느긋한 마음으로 양을 칠 수가 없습니다. 


하루는 양떼를 몰고 가는데,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양떼를 치면서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그날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게 하시는데, 예전보다는 좀 멀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도 양떼를 먹여야 하는 목자로서 풀이 많은 곳을 찾기 마련인데, 하나님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인도하여 호렙산에 이르게 했습니다.  


원문에 “하나님의 호레바”라고 하셨습니다.  호렙산은 성경에서 시내산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산을 지리적으로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산이 두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산 이름은 호렙산인데, 정상부분만 시내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한 산에 두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호렙산이고, 다른 하나는 시내산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이 두 산은 같은 산으로 두 가지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우리 서울 근교에 가장 높은 산이 북한산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삼각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이렇게 큰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삼각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북한산도 맞고, 삼각산도 틀린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지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하는 헤르몬 산이 있는데, 헤르몬이라는 이름과 함께 시룐과 스닐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3:9에 보면 친절하게도 “헤르몬산을 시돈 사람은 시룐이라 부르고 아모리 족속은 스닐이라 불렀느니라.”고 했습니다.  헤르몬산은 시룐산이요, 스닐 산입니다. 


 그러니 호렙산과 시내산을 구별하기란 어렵습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오늘의 호렙산, 시내산은 시내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제벨무사’(모세의 산이란 뜻)라고 합니다.  이곳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른 것은 모세가 소명을 받은 산이고, 모세가 이 산에서 언약을 맺었고, 율법의 두 돌판을 받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기 위하여 당신을 드러내신 현현의 장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산으로 성별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지금 양떼를 몰고 가다가 호렙산에 와서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다른 곳으로 번지던지, 아니면 떨기나무가 다 타버려 불이 사그라지던지 할 것인데 떨기나무가 그대로 있으면서 불은 활활 타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신 형태의 불은 그 떨기나무의 가지를 불사르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기 위함이요, 주목을 끌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데, 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광경입니다.  희한한 광경입니다.  모세는 광야를 40년간 배회하였지만, 이런 사건은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미미한 관목에도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보잘것없는 적은 나무라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떨기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멸시받는 것의 상징입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가시나무에 불과합니다.


시내산 제벨무사(모세의 산) 동쪽에 카테린수도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수도원 안에는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떨기나무, 가시떨기나무란 어떤 나무입니까?  아라비아어로 산트라고 하는 이 떨기나무는 히브리어로 “세네”라고 하는데, 이집트 아카시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굽과 시내반도에 생육하는 가시가 있는 나무로 가시관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떨기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이방인이 랍비인 요슈아 카르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왜 하필 떨기나무를 택하셨지요?” 


이때에 랍비가 대답하기를 “쥐엄나무나 돌무화나무였다 할지라도 당신이 그런 질문을 했겠소? 여하 간에 답변을 주지 않고 당신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기에 내 답변을 하리다.  이는 어느 곳이든, 심지어  하찮은 가시 관목과 같은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요”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또 ‘엘리에제르’라는 랍비와 ‘요세’라는 랍비는 이에 대해 다음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 가시 관목이 세상에서 가장 키 작은 나무인 것처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낮아지고 겸손해졌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유대의 문서인 미드라쉬 출애굽기 랍바2:5에 보면 “가시 관목은 모든 나무 중에서 가장 가시투성이의 나무여서 거기 들어갔다가 나오는 새라면 찔리거나 긁히지 않은 새가 없듯이, 애굽의 노예 생활이 세상의 어떤 노예 생활 보다 더 비참했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미드라쉬가 편집되었던 중세 11세기는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핍박과 환란이 계속되었고,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랍비들은 떨기나무에라도 하나님은 임재하실 수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고난 가운데 처한 자기 동족을 위로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란 말은 천사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오늘의 천사라는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라고 번역합니다.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후에 보면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실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삿6장에서 사사 기드온에게 나타나신 분은 여호와의 사자이셨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지금 불꽃을 보면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신 것입니다. 


신33:16에서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계시던 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 불꽃, 여호와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분은 여호와의 사자요, 보이는 모습은 불꽃이요,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4-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헸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간 곳이 없고, 여호와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 큰 광경을 보리라고 떨기나무로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 불꽃으로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 앞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직감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즉시 응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데도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심히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세의 소명의 순간을 이렇게 말로 설명하지만, 모세에게는 그의 생애를 바꾸어놓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요,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80세가 이르도록 그는 생생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요, 자기의 생각으로 민족을 위하여 나섰지만, 실패하고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도피한 것이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음성을 부르시는 순간이 있었다면, 우리도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하셨습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신발이 없이는 한 걸음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땅은 맨발로는 다닐 수 없도록 뜨겁습니다.  광야는 돌도 많고 모래도 많아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를 보호해주고 힘이 되어 주는 신발을 벗어놓고,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오는 동안 발이 더러워졌습니다. 여행으로 먼지가 많이 묻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신은 깨끗하지 못하였습니다.  종교적인 관습은 신전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맨발로 가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그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 맨발로 떠났습니다.  우리 주님이 갈보리 십자가로 나아가실 때에 맨발로 가셨습니다.  맨발이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당신 신발을 벗었다는 말은 노예라는 표시였습니다.   모세는 과거 왕궁에 살면서 신발을 신지 아니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모세는 신발을 벗으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노예에게는 어떤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꽃간이 타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어,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맨발로 예루살렘을 떠나므로 정복당한 왕으로의 굴욕을 철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당신 앞에 놓인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빌2장에 보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하셨습니다.    노예에게는 권리가 없습니다.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셨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육신의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위하여 주님은 육신의 어머니를 뒤로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권리도 포기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9:5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돈에 대한 권리도 포기하셨습니다.  데나리온을 가지고 설교하실 때에도 남의 돈을 빌려서 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명예도 포기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생아로 알려져야 했고, 멸시받는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귀신, 귀신의 아들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을 죽이는 십자가에 달리셨고, 남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모든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데, 너무나 가진 것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사실 모세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시는 엄숙하신 음성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지만, 그분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실 때에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피조물인 주제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이 고통받는 노예에서 건지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어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겠느냐면서 소명에 대하여 주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는 자기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11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성취하여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확증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그동안 연단시키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로 성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이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자신을 헌신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아멘으로 응답하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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