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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3) 호렙산에서

출애굽기 이동원 목사............... 조회 수 2188 추천 수 0 2013.01.03 21: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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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3:1-5 
설교자 : 이동원 목사 
참고 : 2008년 1월 20일지구촌교회 http://www.jiguchon.org 

출31-5

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3) 호렙산에서

 

전통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입학 조건은 소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성적이나 품행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명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명은 소위 성직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직업이 사실상 소명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을 영어로는 ‘vocation’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vocatio’에서 온 말로 ‘부르심’ 곧 소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물론 소명 없이도 우리는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 직업을 수행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즐겁고 보람찬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부르심이 아닌 경제적 동기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명에 따라 직업을 수행하면 잘 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소명의 순간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한 직업으로 처음 부르심을 받는 순간 혹은 하나의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인도되는 순간은 우리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리더로 소명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는 모세가 40년의 애굽 궁중 생활을 마치고 일단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를 자임하다가 자신의 민족들에게 거절당한 후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다시 40년간을 양치는 목자로 살던 어느 날 호렙 산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성경 학자들에게 호렙 산은 일반적으로 시내산과 동일한 산으로 간주됩니다. 호렙 산맥 중 가장 높은 산의 하나가 바로 시내산이었거나 아니면 시내 산맥의 하나로 높은 산이 호렙산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바로 이 호렙산(현재명, Jebel Musa/모세의 산, 2285m, 해발 1530m지점에 모세의 소명을 기념하는 성 캐터린 수도원이 위치함)에서 모세는 출애굽의 리더로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의적인 선택에 의한 부르심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때가 찬 주권적인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명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기되는 이슈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자 할 때 혹은 하나님의 소명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소명을 분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을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1. 일상적인 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아주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이 존재하는 데 그것은 소명을 경험하는 모든 이들이 일상생활에 성실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때로 그들은 세속적인 안목으로 보면 별로 성공적인 인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모두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때로는 성실하게 실패하면서도 말입니다. 베드로의 케이스를 상기해 보십시오. 그는 그날도 밤을 지새우며 성실하게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결과를 내지 못한 허탈감 속에서 새벽을 맞고 있었습니다. “내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라고 그는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도 ‘죽마고우’(?)들과 한가롭게 어울리던 중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실성은 모든 사역의 필수적인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 돌아온 주인의 칭찬의 공통적인 근거는 바로 ‘착하고 충성됨’이었고 여기서 ‘충성됨’의 의미는 다시 말하면 영어로는 ‘faithfulness’ 곧 ‘성실함’이었습니다.



모세의 경우도 동일했습니다. 소명이 오기 전까지 그는 그에게 맡겨진 그 일에 성실했습니다. 본문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바로의 진노를 피하여 애굽에서 ‘미디안’(요르단 남, 아라비아 북서쪽 홍해 연안)으로 간 후 미디안 제사장에게 고용되어 양떼를 치는 일(2:15-22 참조)이 그의 새로운 직업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제사장 이드로(혹은 르우엘-2:18/고대에는 두 이름을 보편적으로 소유/르우엘은 ‘하나님의 벗’, 이드로는 ‘장관’의 의미로 아마 공식적인 이름)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성실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장인이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것이 모세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장인의 집에서 40년을 살며 두 아들을 낳고 기르게 됩니다. 출애굽기 18:3-4에 의하면 모세가 얻은 두 아들의 이름은 하나는 게르솜(‘나그네’의 의미)이고, 또 하나는 엘리에셀(‘하나님의 도우심’의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이 두 아들의 이름에서 모세의 미디안 시절 40년 세월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모세는 이 광야에서 나그네 되었으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사하는 계절을 살아온 것입니다. 소명이 올 때까지 그는 묵묵하게 평범한 생활인으로 가정인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것입니다. 아직은 소명이 없으시다구요? 모르시겠다구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일단 주께서 인도하신 당신의 미디안에서, 당신의 갈릴리에서 성실하게 날마다를 사십시오. 어제 성실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에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성실함은 모든 인생을 향한 가장 보편적인 요구입니다만 왜 성실한 사람들이 소명에 응답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일까요? 소위 일상성에 빠져버린 나머지 하나님의 손짓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도에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고 사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가 와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성실하면서도 우리는 소위 일상성에 빠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다른 말로 ‘깨어 있음’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마태복음 24:42에 보면 주께서는 그의 다시 오심을 준비할 것을 가르치시며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깨어 있지 못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마태복음의 같은 맥락인 마태복음 24:38-39에서 주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한마디로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일상성에 빠진 사람들의 종말론적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여기서 결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을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이런 일상성에 빠져버린 나머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깨어 있는 영성을 준비하지 못한 삶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다행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삶의 자리에서 깨어 있는 영적 개방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일상성에 성실했지만 일상성에 빠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적어도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고자 신호를 보내실 때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깨어 있는 영성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깨어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혹은 일상성 속에서 경이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떨기나무를 보는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본문에 언급된 떨기나무는 일종의 아카시아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로 사막의 거주지나 여행자들에게는 매우 일상적인 볼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있었음에도 이 나무가 타지 않고 있음을 주목한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모세에게 이 떨기나무의 존재는 자기 민족의 정체성으로 비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 온 이스라엘,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아직도 애굽 땅 고센에서 모질게 생존하고 있었던 민족의 모습 말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 떨기나무에서 모세는 기구한 자신의 자아상을 보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태어나자마자 나일강에 던짐을 받아야 하는 불행한 출생으로 출생과 동시에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그가 갈대상자의 섭리로 아직도 이 척박한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불타고 있는 광야의 가시나무의 운명을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라도 다가 올 새로운 운명에 자신의 존재를 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영적 개방성이 마침내 그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1975년 봄, 저는 첫 미국 유학의 한 단계를 마무리하며 아직도 불투명한 미래, 불확실한 내일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주실 기회 앞에 자신을 던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막연히 앞으로 조국에 돌아가 젊은이들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유학하던 신학교 도서실에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숙제를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목회’라는 두 글자가 제 마음속에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즉각적으로 “주님,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목회는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솔직히 제 안에 떠오른 느낌에 의하면 목사가 된다는 것은 대학 예비고사에 떨어진 사람을 우두머리로 한 이상한 ‘조직’의 간부가 된다는 감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제 눈앞에 등장한 불붙는 떨기나무는 사라지지 않았고 저는 마침내 석 달 후 별로 원하지 않았던 목사 안수를 받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적어도 주님께서 주실 새로운 소명의 기회 앞에 마음을 열고 계십니까? 닫고 계십니까?


3. 하나님의 소명에 진지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손짓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명 앞에 처음부터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랬습니다만 저는 교회 역사와 영적 지도자들의 전기를 통해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할 수만 있으면 피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4장을 통해서 보다 상세하게 기술됩니다. 무엇보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내 백성을 설득하지 못하겠다고 변명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4:11-12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셨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말을 가르치리라” 무슨 말입니까? 내가 너로 필요한 말을 하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또 네 곁에서 너를 대변할 사람을 함께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의 형 아론을 출애굽의 여정에 동반 리더로 동행하게 하시지 않습니까?


사실 40여년전의 청년 모세는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족들에게 보이콧트를 당하고 바로에게 쫓기고 미디안 광야 목자 생활 40년을 하면서 그는 많은 자신감을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80년 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진지하게 부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찍 무디 목사님은 모세의 일생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첫 애굽의 궁중에서의 왕자 모세의 존재를 가르쳐 1)굉장한 존재로 자신을 착각한 시절(He was somebody), 다음 미디안 사막의 목자 모세를 2)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절(He was nobody), 그러나 이제 출애굽의 미션을 위해 부름 받은 지도자 모세를 가르쳐 3)하나님께만 자신의 존재를 의탁하는 시절(He was God`s body)로 묘사한 바가 있었습니다. 아주 탁월한 설명이지요.

 

당신과 저의 단계는 어디에 와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실 때 중요한 것은 굉장한 응답이 아니라 진지한 응답입니다. 진지한 대화입니다. 무엇보다 도망가지 마십시오. 이제 솔직한 응답을 시작하십시오. 내가 과연 할수 있느냐 못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적어도 도망은 안가시겠다고 응답하셔야 합니다. 할수 있다면 순종하시겠다고 응답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책임감이 아닙니까? '책임‘을 영어로 ’responsibility‘라고 합니다. ’response(응답)‘과 ’ability(능력)‘이 결합한 말입니다. 진지하고 적절하게 반응하시면 응답에 따른 그 일을 수행할 능력은 주께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소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여기서 ’따라 오라‘가 명령이비다.

 

그러면 우리의 책임은 따라가는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그 능력‘을 그가 공급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모세의 케이스로 돌아와 보십시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진지하게 중요한 미션을 위해 부르실 때 그는 한번만 부르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사무엘을 부르실 때도 두 번씩 부르십니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번의 기회로 이 중요한 응답을 놓치지 않기를 원하시지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직 우리의 소명의 내용을 다 몰라도 우리 자신의 능력을 신뢰할 수 없어도, 우리의 미래를 전망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모세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것이 시작입니다. 그 순간 우리가 서 있는 그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이 시작되는 땅이 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출애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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