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과 등

출애굽기 박종화 목사............... 조회 수 2052 추천 수 0 2013.01.03 22:12:18
.........
성경본문 : 출3:17-23 
설교자 : 박종화 목사 
참고 : 2010년 01월 17일 경동교회 http://www.kdchurch.or.kr/ 

출3:17-23, 고전2장 12-15, 막2장 21-22  

하나님의 얼굴과 등

 

출애굽기 33:17-2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잘 알고, 또 너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마."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멘.

 

고린도전서 2:12-15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아멘.

 

마가복음서 2:21-22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아멘.

 

<하나님의 얼굴과 등>

 

찬양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찬양은 참 아름다운데, 합창은 특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됩니다. 오늘은 아이티 지진을 생각하며 찬양을 들었습니다.

 

땅 속에서 암석권의 판들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가 서로 자기 갈 길을 찾아갑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눈이 없어 보이지 않고, 생각도 없고, 각자 생긴 대로 움직이다가 결국엔 어디선가 부딪힙니다. 부딪히고 났더니 파열음이 생겼고 집도 무너졌고 사람도 죽었고 자기들도 깨져서 손해 봤습니다. 그런 다양한 지층들이 바다에만 있을까, 하늘에만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 땅 위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홀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는 망망대해를 유유히 지나가는 한 척의 배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될 테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할 때는 다양한 음성들이 지층을 이룹니다. 서로 부딪히지 않고 옆으로 비비며 가고, 엎어서 가고, 끌어안고 가고, 앞으로 가고, 뒤로 가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단체나 사회가 다 지구상에 사는 지층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르듯이 각자 가진 특징대로 지층이 있는데 앞뒤 안 보고 가다가 서로 부딪히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딪히면 깨지고, 깨지면서 소리만 큰 게 아니고 깨짐으로 생기는 피해가 엄청납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 그래서 로마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양보하고 화해하고 힘을 모아 깎고 함께 하라는 말씀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면 상생하며 서로 도울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부딪히면 깨지고 깨지면 죽습니다. 지진을 보면서 지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지진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엄청납니다.

 

혹시 우리가 합창을 하듯이 이 땅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까? 사는 곳도 다르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있더라도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 들려주어 서로 맞지 않으면 비켜갈 수 있고 끌어갈 수 있으면 보람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티 지진도 미리 예상했더라면 그 엄청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예상도 못했고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몇 년 전의 쓰나미 피해도 그렇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왜 하필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정말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의문을 가져봅니다. 물론 일본은 지진이 났을 때도 예방대책을 잘 세워놔서 피해가 많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뭐라고 답변하실지 정말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연의 현상은 그렇다 치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 위에서 지진과 비슷한 일들이 매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첨단을 달리는 우리 한국 사회도 지금 지진 급전직하에 있습니다. 지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당도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부딪쳐서 깨지라는 겁니까? 업히고 설키고 끌어안고 해서 뭔가 새로운 선을 만들라는 겁니까? ‘협력하여, 합동하여, 화음을 이루어 선을 이루라.’ 선은 누구 홀로의 선이 아니라 모두의 선입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입니다. 그 선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도 지진이 있습니다. 부딪히면 깨집니다. 가정도 부딪히면 깨지고, 정치도 부딪히면 깨집니다. 노사도 개인관계도 부딪히면 깨집니다. 문제는 부딪힐 때 상대방의 아픔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부딪히는 데에 있습니다. 많은 좌절과 아픔이 있습니다. 또 깨집니다. 자꾸만 부딪히고 당한 상처가 또 부딪힙니다. 그렇게 세상은 악순환이 됩니다. 개인관계가 그렇고 교회관계가 그렇고 가정관계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는 것이 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평화를 위해서 견뎌야 할 것입니다.

 

땅 아래에서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변동을 지진이라고 합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 간의 지진을 인진이라고 해 봅니다. 하늘에서는 천진도 있겠죠. 그럴 때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인진에도 불구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뭘 가지고 합력하시겠습니까?

 

부딪히는 지층 각자의 뜻보다 모든 것을 만드신 한 분, 모든 것을 다 초월하시는 분, 나 홀로 독식할 수 없지만 함께 나누어야 산다고 하시는 분, 그 분을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분의 뜻을 중심으로 조금 양보합시다. 조금 깎읍시다. 그분의 뜻을 가운데 두고 함께 집을 지읍시다. 그렇게 해서 같이 행복해 봅시다. 그게 선진사회입니다. 그게 성숙한 사회입니다. 그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사회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힘들 때 싸우고 많이 부딪혔습니다. 이제는 21세기 선진국이 됐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지금도 우리 사회가, 우리 삶이, 우리 정치가, 우리 모든 영역이 그렇게 서로 부딪히고 깨지며 왜 지진이 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도 미래 희망이 적은 건지, 그렇게도 자기 성깔을 부려야 하는 건지, 그렇게도 고집을 체제, 제도, 개인성격으로 부려야 하는 건지, 같이 살길은 없는 것입니까? 오늘 아이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지진은 바다 밑에만 있지 않습니다. 땅 위에도 있습니다. 하늘 위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온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사막 땅에서 살 수가 없는데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하는 하나님, 그 양반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라도 알고 믿읍시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라도 압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을 누구도 지어줄 수 없느니라. 나는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본래부터 있는 창조주이기 때문에 나한테 이름지어줄 생각하지 마라. 나는 이름이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 나다(I am that I am).” 그 말이 히브리어로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가 원하는 사고방식으로 지을 수 없습니다. 내가 뜻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밀고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따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여호와가 아니라 우상입니다. 우상과 여호와의 차이는 극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야훼’, ‘여호와’, 뭐라고 부르든지 그 분은 규정할 수 없는 분, 내가 멋대로 만들 수도 없는 분, 내 주관 가지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분, 그 분은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분, 그 분은 그분대로 계시는 분, 여호와이십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으시면 하나님의 이름을 짓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규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규제 당하지도 않으시고 그분대로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아껴주시고 구원하시는 분, 우리는 그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차라리 안 믿으면 안 믿었지 그 분의 이름이 왜 그러냐고 시비 걸지 마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와서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믿으면 구원받고, 안 믿으면 관두자.” 믿음과 믿지 않음의 구분을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또 물었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그분을 우리가 규정할 수 없고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를 지배하시는 안 보이는 이름 없는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 얼굴 좀 봅시다.”

 

모세가 또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백성들이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나는 불쌍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고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 이유는 내 얼굴을 보여주면 다 죽는다. 내 얼굴을 이 땅의 모든 사람은 감당할 수가 없다. 내 빛은 이 땅의 어둠이 감당할 수가 없다. 내 얼굴이라는 말은 내 나라, 하나님 나라라는 뜻인데 아직은 하나님 나라에 살 정도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보면 죽는다.” 여러분, 엄청난 부와 엄청난 성공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지면 난리가 납니다. 분수에 맞게 축복을 받아야지 축복이 넘치면 망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이 봤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이 그겁니다.

 

“얼굴을 보면 다 죽는다. 그 대신에 등만 봐라.”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모세를 통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등만 보여주시고 얼굴을 안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 나라는 아직 등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등이란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세계역사, 나라, 국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등과 관련된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이 땅을 통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서, 사람들의 문화를 통해서, 사람들의 종교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깊은 뜻으로 통치하시지 직접 나오셔서 명령하시거나 제도화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통치하시는 것이 얼굴이라면 등은 하나님이 간접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도 못 보는데 교회가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 나라가 있는데 이 땅에 나라는 왜 필요합니까? 왜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국이 아닌 겁니까? 왜 우리한테 달란트를 주셨고 그것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달란트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등을 보여주십니다. 등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등을 보여주어도 등을 보는 우리는 등을 가지신 분의 얼굴이 있다고 믿고 등을 봅니다. 죽은 자의 등을 보고 얼굴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등을 봤더니 등을 가지신 하나님은 얼굴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그걸 믿습니다. 세상의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고 은혜를 느끼면서 그 분은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없지만 규정할 수 없지만 얼굴을 가지신 하나님, 그걸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보이는 등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얼굴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믿어라. 그렇게 믿어야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친척 중에 고모가 결혼하셨는데 친정에 올 때 보니까 고모부는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고 조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논두렁을 따라 유유히 오시는데 ‘와, 잘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모님은 10미터쯤 뒤에 따라 오시면서 짐을 가득 지고 한복을 입고 힘들게 따라 오시는데 ‘고모는 고모부 등만 보고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분은 양가 부모님들의 중매로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등만 따라 다니나 봅니다. 지금도 잘 사십니다. 요즘에는 얼굴을 반드시 보고 결혼하는데 행복하신가요? 등만 보면 불행합니까?

 

등에 얼굴이 있습니다. 얼굴을 봤더니 그 얼굴이 갖고 있는 등도 있습니다. 같이 협력해야합니다. 얼굴과 등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겁니다. 하늘에 있는 보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보화를 이 땅의 어려운 땅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받은 모든 축복이 그걸로 전부가 아니라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얼굴이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다르지만 둘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선물입니다. 얼굴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등만 보고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등 넘어 얼굴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얼굴은 항상 빛납니다. 그 얼굴은 우리한테 안 보입니까? 보여주십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등을 보고 살지만 하나님의 앞에 얼굴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과 등이 언제 합쳐졌는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과 등은 십자가에서 합쳐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찢긴 얼굴을 보고 사도바울은 일그러진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표현합니다. ‘일그러진 하나님의 얼굴을 보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고 ‘하나님의 찔린 옆구리를 보라.’ 일그러진 얼굴이었지만 이 일그러진 얼굴이 오래가지 않고 부활을 통해서 새롭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광채가 항상 일그러진 얼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못 볼 뿐이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아주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말씀해 주셨습니다. 포도주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모든 선물은 포도주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포도주를 주마.”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주를 잘 마시니까 좋습니다. “그냥 포도주 말고 새로운 포도주를 주마.” 그 말은 내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이나 염소 가죽을 벗겨서 말린 다음에 그 가죽에 포도주를 담아 보관도 하고 먹었습니다. 가죽이 오래되면 포도주가 썩고 물들고 없어집니다. 헌 가죽은 포도주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썩어빠진 율법의 그릇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이 아니고 새로운 포도주인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있는 변화된 인간, 변화된 사회와 가정이 하나님의 구원의 포도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포도주가 어떤지 얘기하지 마시고 포도주는 항상 새로 주실 건데 포도주 담을 그릇을 새롭게 하십시오. 옛날 것이 있으면 과감하게 버리시고 새로운 그릇을 마련하십시오. 하늘의 역사를 탓하지 마시고 하늘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를 담을 우리의 역사를 바꾸십시오.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꿀 수 있습니다. 몸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릇을 바꾸면 포도주는 항상 새 것으로 우리한테 옵니다. 새 날은 새 사람 속에 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그릇을 담을만한 성실한 그릇 속에 옵니다. 그 대신에 새 포도주는 항상 맛이 있습니다. 진실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지진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계속 됩니다. 그릇만 마련하십시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7962 출애굽기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누릴 삶 출3:20-27  이영훈 목사  2013-01-03 1903
» 출애굽기 하나님의 얼굴과 등 출3:17-23  박종화 목사  2013-01-03 2052
7960 출애굽기 맥추감사절! 출3:16  송수천 목사  2013-01-03 3921
7959 출애굽기 구원자 모세를 세우심 출3:1-20  김강호 목사  2013-01-03 2073
7958 출애굽기 불꽃 출3:1-5  박주락 목사  2013-01-03 1827
7957 출애굽기 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3) 호렙산에서 출3:1-5  이동원 목사  2013-01-03 2188
7956 출애굽기 진정한 리더십 출3:1-5  정연석 목사  2013-01-03 2047
7955 출애굽기 비젼과 야망 출3:1-12  노경모 목사  2013-01-03 2057
7954 출애굽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출3:1-12  성홍모 목사  2013-01-03 3404
7953 출애굽기 선택된 자에게 임한 보너스 출3:1~10  윤요셉 목사  2013-01-03 1833
7952 고린도후 허탄한 자랑 고후10:17  한태완 목사  2013-01-02 2349
7951 마태복음 죄인(罪人) 마9:9-13  황성현 목사  2013-01-02 1830
7950 에스겔 하나님을 터전삼자 겔10:1-22  최장환 목사  2013-01-02 4209
7949 예레미야 비우는 신앙생활 렘14:1-12  최장환 목사  2013-01-02 4397
7948 이사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라 사30:18  한태완 목사  2013-01-01 4005
7947 마태복음 좁은 문 마7:13-14  황성현 목사  2013-01-01 4442
7946 마태복음 천국의 보화 마6:19-21  황성현 목사  2012-12-31 4254
7945 출애굽기 거룩한 계보 출3:5-10  정연석 목사  2012-12-31 2162
7944 출애굽기 에티오피아 농부의 방귀와 피마골 출3:1-12  최형묵 목사  2012-12-31 2223
7943 출애굽기 순례의 길 출3:7-8  최형묵 목사  2012-12-31 2129
7942 출애굽기 무엇이라 대답해야 합니까 출3:13-15  최형묵 목사  2012-12-31 2045
7941 출애굽기 스스로 계신 분이 보내셨다 출3:13~15  최형묵 목사  2012-12-31 1702
7940 출애굽기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 출3:1-5  임덕순 목사  2012-12-31 2593
7939 출애굽기 최고의 대화 출3:11-15  임덕순 목사  2012-12-31 1733
7938 출애굽기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 출3:6-12  임덕순 목사  2012-12-31 2099
7937 출애굽기 스스로 있는 자 출3:13-22  임덕순 목사  2012-12-31 2949
7936 출애굽기 하나님의 소유권 출3:1-16  임덕순 목사  2012-12-31 2128
7935 출애굽기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3:17-22  임덕순 목사  2012-12-30 2018
7934 출애굽기 갈대상자 출2:1-10  유우열 목사  2012-12-30 3777
7933 출애굽기 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2) 나일강에서 출2:1-10  이동원 목사  2012-12-30 2482
7932 출애굽기 낯선 땅의 나그네 출2:15-25  최형묵 목사  2012-12-30 1699
7931 출애굽기 훈련하시는 하나님 출2:15-25  임덕순 목사  2012-12-30 2132
7930 출애굽기 자기 민족을 선택한 모세 출2:11-25  성홍모 목사  2012-12-30 2054
7929 출애굽기 모세 출2:1-10  연재선 목사  2012-12-30 1700
7928 출애굽기 모세의 출생의 의미 출2:1-10  박순오 목사  2012-12-30 3399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