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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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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황두용 목사 |
참고 : | 2009.10.18. 어울림교회 http://cafe.daum.net/eoulimchurch |
출3:13-22; 빌2장 1-11
함께의 이름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출애굽기 3:13-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1-11)
<요약>
사람들은 대상에 부착하여 이름을 짓습니다. 그렇게 부착된 이름에 부쳐서 서술하는 내용은 대상의 성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신 뜻은 이름을 받은 사람과 함께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존재에 부착된 이름 같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내용도 하나님의 속성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언약의 내용입니다.
<이름짓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서술적인 내용입니다. 마치 "철수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철수의 아버지"라는 것만으로는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이름을 아는 것은 이름과 더불어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것 외에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열린 것입니다. 이름에 다른 서술적인 내용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으로 이야기되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게 되면 그런 제한성에서 벗어납니다.
구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뜻과 같이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으로 이야기됩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개됩니다.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의 이름에 붙여서 서술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구별됩니다. 구별된 내용은 서술적이 아닙니다. 서술된다면 있는 것이지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별된 것은 그렇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우선 구별되는 것은 판단될 것이 아닙니다. 구별됨은 드러나는 것이지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판단되는 것은 서술적인 내용을 부여함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존재로 이야기하게 되면 존재하는 성질을 부여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질을 부여하는 것은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하나님을 존재로 말할 수 없고 구별된 분으로 이야기한다고 할 때 하나님에 대하여서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 것은 기도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이름은 사람이 지은 이름입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니는 이름은 지어진 것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 같은 것도 지어져서 이어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름을 말할 때 지어짐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대상과 그 이름을 단순히 대상과 이름의 관계로만 말할 것이 아닙니다. 특정한 대상을 특정한 이름으로 지적하는 것은 그렇게 맺어진 이름짓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름짓기에 근거하지 않고는 대상과 이름의 관계를 보일 수 없습니다. 말이 사물과 같이 어울러 삶을 이룰 때 삶에서는 말과 지적되는 사물과의 관계를 가르쳐가야 합니다. "물"이 물을 지적한다는 것은 삶에서 가르치며 내려가는 것입니다. "물"이 하늘이 아닌 물을 지적한다는 것은 삶에서 습득되는 것입니다.사람이 이루는 삶에서는 사람에 의하여 대상에 대하여 이름짓기가 보입니다. 이름이 지어짐으로 그 대상은 삶에 자리잡게 됩니다. 즉 사람의 의식에 그 대상은 이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이름짓기를 신(神)에 대하여 적용하게 되면 우상 의식으로 가게 됩니다. 이름을 적용하는 신이 사람이 생각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을 생각하고 거기에 이름도 부여하니 신의 이름이란 사람들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렇게 나아가는 마음이 우상 숭배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이름짓기는 다분히 마음을 우상 숭배로 몰아가는 것이 됩니다. 마음을 떠나서는 신도 이름도 아무런 내용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과 이름은 마음에 지닐 뿐이고, 그런 마음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조절되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로 가는 마음이 광적(狂的)이 되는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종교적으로 신을 이야기하게 되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종교가 마음의 성향을 표현하는 것이니, 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이 그런 성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신을 향하여 나아가는 마음은 절대적이라 우상 숭배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이렇게 나아가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다루는 이름입니다. 존재론적으로 다루는 이름은 존재하는 대상에 부착되거나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 존재하는 하나님을 대상화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름받음>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이름짓기의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이름짓기의 이름이 아닌 이름받음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서 그 이름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하나님으로부터 이름을 받는 것은 언약에 근거하여 이야기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주시고 사람이 이름을 받음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언약의 이름입니다. 종교적인 이름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이름에 부쳐서 이야기됩니다. 약속의 내용을 사람이 지은 이름에 부쳐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지은 이름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내용은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신에 대하여서 이야기하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이 신에 대하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신의 이름을 설정하고 거기에 사람이 생각한 바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신화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지은 이름에 부여하는 내용은 서술적입니다. 그러나 받은 하나님의 이름에 부여하는 것은 서술적인 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만 하나님의 이름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기도, 찬양, 감사를 보입니다.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도와 이루어진 것에 대한 찬양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사람 같이 생각하여 어떻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서술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찬양, 감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을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하나님이 어떻다고 하면서 마음을 모아가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로 나아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함께하는 이름>
이름짓기는 대상에 대한 것이니 존재론적 내용을 갖습니다. 이름에 대상에 '부착'되니 이름은 그 대상을 떠나서는 뜻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받은 이름이기에 존재론적 내용을 갖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함께하는 내용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려고 주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는 데는 함께로 지녀야 합니다. 따라서 이름을 부르는 데는 함께하는 내용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별되이 부른다고 하는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주기도문 참조).하나님께서 이름으로 함께하신다고 할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에 대한 이름은 그 대상을 있는 대로 서술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함께하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존재의 이름은 이름에 서술되는 내용이 존재의 성질에 부합하거나 적절한가 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부합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함께의 이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서술되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세 신학에서는 그리스 철학을 입어 그렇게 말하였습니다만 성경의 내용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판단될 것이 아닙니다. 판단될 내용이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온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사람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판단될 내용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은 함께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함께로 이야기되기에 판단되지 않습니다. 삶에 자리잡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판단이 아닌 함께의 내용이 이야기됩니다. 함께하는 삶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내용의 구심점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사람의 말로는 합의를 보더라도 함께를 보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주어로 말하는 것으로는 함께의 내용을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름이 보이는 것은 개체이니 사람의 이름으로 하는 말은 개체의 모음을 보입니다.하나님의 이름을 주어로 전개하는 말은 함께의 내용을 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주어로 이어지는 말은 기도, 찬양, 감사의 함께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여지는 것은 함께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함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말하여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언약의 이름이니 하나님의 이름은 이루어지는 내용으로 이야기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따라 나오는 말은 상태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찬양, 기도, 감사가 됩니다.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부여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부여되는 내용은 구별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 기도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기도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부쳐진 저희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하오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드리는 저희 기도도 거룩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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