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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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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봉희 목사 |
참고 : | 2004-01-22 수 번동평화교회 http://www.bunpeace.com/ |
출3장 15
조상숭배의 잘못을 알아봅니다
오늘 우리는 설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조상숭배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에 따르는 제사가 복음전도와 무엇이 부딪히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이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전도전략을 가져야 할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관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이 같은 조상숭배 문제로 가족 친족 간에 커다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조상숭배 문제와 결부되어 믿는 자가 가족과 친족에게서 따돌림 받기까지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또한 이런 현상은 복음전파에 거침돌이 되었고,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 문제는 아직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괴롭혀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신자들이 말하는 "예수는 믿고 싶으나 조상제사 때문에 곤란하다."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는 동안에는 안된다.” 등등의 핑계가 단순한 핑계가 아닌 것입니다. 예나 오늘이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미신을 버리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버리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고, 지금까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탈하는 혁명적인 사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믿어도 좋겠으나 조상에 대한 불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반발은 조상숭배를 미신으로 보려는 편견을 저들은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관례·혼례·상례·제례 네 가지 관혼상제 의식은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의식으로 소중히 지켜 왔고 이것이 없이는 사람이 사람구실을 못한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그 뜻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생각하려 들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지키며 지키는 자체에 뜻이 있는 듯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 관례/ 예전에, 남자가 성년에 이르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하던 예식. 유교에서는 원래 스무 살에 관례를 하고 그 후에 혼례를 하였으나 조혼이 성행하자 관례와 혼례를 겸하여 하였다.)
우리 나라의 제사의식은 두 가지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무속적인 형태입니다. 곧 민속신앙과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이 결합해서 생긴 것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풍속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고대 조선시대에 우리 민족이 조상을 숭배해서 제사했다는 풍습을 전하는 기록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무속신앙에 근거하여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이 신앙이 제사의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뿌리가 됩니다. 시체를 매장할 때 여러 가지 격식을 갖추려는 것은 죽은 영혼이 그 시체에 있든지 또는 배회하고 있으며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민속신앙에 근거하여 조상숭배 사상과 결합할 때에 죽은 조상의 혼이 다시 찾아와 차려 놓은 제물을 먹는다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죽은 조상의 혼이 배회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지정된 안식소에 가 있지만 때때로 자손들을 찾아오며 특히 죽은 장소와 그가 살던 곳에 찾아오고 그 혼들이 끊임없이 자손들의 제사와 공양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동시에 이처럼 극진한 공양을 받는 조상의 혼은 그 자손을 가호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민속신앙이 발전하며 또 세속화될 때에 죽은 조상의 혼의 가호를 받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욕망이 우선되고 심지어는 이 자손들의 액운과 재해를 막아 주고 또 큰 복을 내려 준다고 기복 사상에까지 내려가게 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늙은 부모는 자손을 돕지 못하고 죽은 부모의 혼백은 자손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엉뚱한 말도 나오게 되고 살아 계신 부모에게 등한히 하고 죽은 후에 극진한 제사를 드리는 앞뒤가 바뀐 불효한 제사의식도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죽은 혼은 구중천을 헤매고 다니면서, 그 혼은 죽은 날에 주로 옛 집을 찾아와서 제사음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후손은 그 주린 혼을 달래고 먹이고 섬기는 행위를 제사를 통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혼은 후손을 가호하며 해를 주지 않는다는 일종의 사자에 대한 공포의식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학자 스펜서는 장례에서 사자숭배로, 조상에서 신으로 그리고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한편, 스미스는 산 자가 죽은 자와 함께 사회조직을 형성하고 산자는 애정과 존경으로 죽은 자를 모시며, 죽은 자는 산 자를 보호하는 구조심리에서 조상숭배가 기원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대상에게도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죽음과 죽은 자를 부정하게 보고 무력하게 묘사하고 있고(레 7:24, 22:8), 죽은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정결의식을 행하도록 하였고, 거역할 때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도록 엄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민 19:11, 18-20).이와같이 죽은 자에게 강력하게 부정성을 부여한 의도는 죽은 자 숭배를 배척하기 위한 의도로 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배척사상은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이나 죽은 자에 대한 어떤 형태의 섬김행위나 죽음을 미화시키려는 숭배적 요소가 들어올 것에 대비한 의도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사복음서에서 강조한 것으로 보아서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았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조상에 대한 인식도 숭배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서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조상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상숭배에 젖은 가족과 이웃들에게 어떻게 기독교의 바른 신앙을 전파할 수 있겠습니까?
의식의 전환
한국의 전통제사가 기독교의 복음과 정면으로 충돌되고, 기독교 사상에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사후에 대한 의식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기타 다른 종교들의 공통된 생사관은 죽은 혼과의 연결의식입니다. 죽은 자의 혼은 한 곳에 머물러 안정되게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제사가 필요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굶주린 혼의 재앙을 두려워함으로써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성경적 죽음에 대한 이해와 아울러 기독교인들이었던 조상들과의 영원한 재연합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력으로 도우시며, 복을 내리시며, 보호하시며, 죄를 벌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곧 의식을 깨워야 합니다.
생활전도
그들이 선입견으로 갖고 있는 것 중에 한 가지가 기독교인들은 제사도 들이지 않는 불효자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불신가족과 친척들에게 복음전도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살아계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더욱 극진히 효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인륜에 대한 계명의 첫째되는 계명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더 살아계신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성과 가족간의 화목은 자신의 가정은 물론 이웃에게 큰 감화력을 주게 됩니다.
부활신앙 지도
조상숭배가 고집되는 이유는 사후에 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사실 부활신앙이 없는 곳에는 조상숭배가 고집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자손들에게 공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종말론과 부활신앙을 알게 해야 합니다.
가정예배와 추모예배
가족 구성원 중에서 불신자는 가정예배를 통해서 복음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예배에 대한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됩니다. 또한 평소 가정예배를 통하여 가족 구성원 상호간에 신앙성장을 도모함은 물론, 가족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면 조상제사를 추모예배로 대치하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앞에서 엄숙하게 되며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추모예배는 영혼의 문제와 하나님의 구속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과 장차 있을 심판과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시간이므로 선교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결 말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아브라함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죽은 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십계명중 제 1,2계명을 어기는 종교행위입니다. 그럼 조상숭배하는 자들과는 계속 충돌해야만 하며 그들의 죄악을 정죄해야만 합니까? 만일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제례예식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충돌하여, 외래종교로 이 땅에서 배척된다면 장래의 선교를 위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기독교인들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부모님께 효도하며 집안 어른들을 공경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야만 하겠습니다. 효의 정신은 시대가 변해도 영구히 남아 있을 모든 도덕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입장에서 효를 이해하고 그것을 복음 전파와 도덕성을 회복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특히 바른 부활신앙에 기초해서 조상숭배를 거절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가족 구성원들의 신앙성장은 물론, 가족, 친족간의 연대감을 강화시켜 나감으로 선교의 문이 열려질 수 있게 해야만 하겠습니다. 또한 추모예배를 통해 복음전파의 기회로 활용하며, 친교와 봉사의 기회로 삼는다면 조상숭배로 인한 갈등과 대립은 점차 극복되리라 확신합니다.
복되고 즐거운 설을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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