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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자

마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4455 추천 수 0 2013.01.04 22: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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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12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2.12.2 http://charmsarang.onmam.com/ 

애통하는 자

5:1-12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와 무능을 발견하고 나는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주장할 것이 없으며 자랑할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겠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철저히 깨지고 부서지고 비워진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심령이 가난해지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어떤 복도 채워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놀라운 팔복으로 채워지려면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비워져야 합니다. 당신은 심령이 가난합니까?

이처럼 심령이 가난해진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심령의 가난뿐 아니라 애통하는 것도 역시 영적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 잘난 맛에 살다가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심령이 가난해지면 충격을 받게 됩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게 될 때’, 자신이 내면으로부터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가슴을 치면서 오로지 내 안에 있는 것은 죄와 허물 뿐이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만 남아 있음을 느끼며 마음을 찢고 울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통의 의미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애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애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애통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슬픔이나 고민을 나타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갑니다. 긁어서 부스럼을 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일, 즐거운 일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인 태도는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4)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슬픔과 절망 속에 행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슬픔은 행복의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또 큰 관심을 보이다’, ‘잘못을 한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애통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기쁨일까요? 그것보다는 무감각, 무관심, 방치, 냉담, 무정 등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내가 애통하는 이유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아픔과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그러한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애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능과 소망 없는 모습에 애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해결 받을 수도 없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애통함과는 다르다.

세상에서는 언제 애통함을 느낍니까? 실패했을 때, 손해 볼 때, 속임을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슬픈 일을 당할 때, 이별할 때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애통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애통은 이러한 것들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영적인 애통인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박한 것을 느끼며 가슴을 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롬7:19,24에서 바울의 애통해 하는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나의 죄성과 무능함을 깨닫고 애통함

우리는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능력이 없으며, 실제로 행하는 것은 죄뿐인 것을 깨닫게 될 때 갈등을 느끼게 됩니다. 내 안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성이 자리 잡고서 그것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실감할 때 애통하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과 같은 체험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왜 나는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가? 순종하기는커녕 왜 불순종하며 늘 죄를 짓는가? 나는 왜 그렇게 화를 잘 내는가? 왜 성질이 이렇게 못되었을까? 왜 나는 이렇게 참지를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 불친절할까? 나는 왜 늘 악하고 추한 생각을 품고 있을까? 왜 나는 항상 교만할까? 이러한 것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고, 그러한 죄들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속상해서 그것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애통함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 찔리고 괴롭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죄를 덮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합리화시키고 변명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속이는 어리석은 자요, 애통할 줄을 모르므로 결코 참된 위로와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애통하는 것은 죄를 깊이 깨닫고 통회 자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 David Brainerd에게서 우리는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40.10.18일자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침기도 시간에 나는 나의 영혼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 속에 있는 사악함과 타락함을 목격하고 나는 깊이 울었다.” 1742.4.6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산보를 나갔다. 나 자신의 추하고 더러움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회개와 용서를 주시고 나를 깨끗하게 해주시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비로소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다윗은 자신의 충성된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있던 우리야를 불러 특별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우리야는 자기 집, 자기 아내에게 가서 휴가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죄를 은폐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렇게 간음과 살인죄를 범했던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애통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1-5)

6:6에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얼마나 울었으면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띄운다고 했겠습니까? 이 시에서 우리는 다윗이 얼마나 자신의 범죄를 슬퍼하며 괴로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눈물로, 이 애통으로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32:1) 다윗은 자기가 범한 추악하고 뻔뻔한 죄를 회개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고 큰 복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애통함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도 애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 그리고 그 죄로 얼룩진 사회와 비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애통해야 합니다. 느혜미야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주의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향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1:6-7)

우리 주님께서도 사람들의 죄와 그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 때문에 애통해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오고 생활을 파괴하며 불행하게 만드는 무섭고 추악한 죄를 보셨고, 이것 때문에 우셨습니다. 심령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지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응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19:41-44)

우리도 주님과 같은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민족의 뿌리 깊은 우상숭배의 죄와 이 사회의 죄악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바로 서지 못한 것을 보고,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생각하며 우리는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합니다.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은 사죄의 은총을 힘입고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서 철저한 절망을 느낀 후에는 구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애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나의 구주이심을 확실히 체험적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애통 가운데서 더욱 비참해지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애써 애통하는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면 애통하며 신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사도들이 느꼈던 죄의 고통스러운 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애통하는 즉시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진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깊은 자각과 차원 높은 기쁨의 교리가 합해진 아름다운 진리입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

우리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제대로 맛보며 누리려면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절실히 깨닫고, 내 안에 온갖 추악한 죄가 가득한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애통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죄를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할 때 우리는 애통하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고, 그 죄 때문에 소망이 없게 된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라야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만일 당신에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애통하지 않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다윗은 철저히 애통하며 회개하면서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51:12)

 

위로

애통하는 자가 받는 위로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의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61:1-3)

이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주실 위로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25) 여기 이스라엘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포함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 위로는 믿는 자에게, 특히 애통하는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위로는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7:17)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3-4)

오늘 당신은 자신의 죄와 영적인 무능 때문에 애통하고 있습니까? 죄악된 세상에서 마음이 상하고, 그로 인하여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성도에게 주님께서 찾아 오사 사유의 은총을 베푸시며, 친히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주님의 위로를 받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 세상에서 믿음과 거룩함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신음하며 애통하는 성도에게 주님께서는 머지않아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다시는 애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진정으로 깨어지고 상하고 빈 마음으로 애통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이 복된 위로를 충만하게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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