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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전4: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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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행복으로 가는 길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9-12
우리 인생은 길을 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인생은 '나그네'라 했고, ' 행인'이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입에서 불리워지던 유행가의 가사 가운데서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바람이 불듯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아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나그네 길은 피곤한 길이요, 고독한 길이요, 정처없는 길입니다.
엘리옷(T.S. Eliot)의 작품 '칵테일 파티'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홀로 살고 있다. 나도 홀로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소리를 내고, 서로 만나서 이해하는 것 같지만, 내가 알기로는 여전히 올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길을 가고 있는 인생들이 행복의 길을 가는 이가 있고, 불행의 길을 가는 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고 원하면서도 불행의 길을 가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면서도 행복의 조건을 몰라 불해하게 사는 이가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 권세, 사랑, 가정, 직업, 이성, 종교라고 하는데, 그 대답은 환경과 입장에 따라 다양할 줄 압니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이라고 다 행복할가요? 권세가 높다고 진정 행복할까요? 명예가 있다고 다 행복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행복한 여건이 다 갖추어진 것 같은데도 불행하도 자살을 하고, 어떤 사람은 세상적으로 불행하여 보이는 데도 만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뭏든 인생은 행복을 원하고 있는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양 신화 주엥도 행복의 여신은 짖궂어서 붽아가면 잡힐듯 잡힐듯 하면서도 멀리가고, 그런가 하면 다시 가가이 와서 우리를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1) 주께로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사방에 흩어져 살다가도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깅이 제일로 행복하게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4:23에 "아버지게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했습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하나님이 찾이시면 그는 여원한 행복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신다고 하셨으니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 목사님이 전도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날 저녁 술취한 청년이 진료소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의사를 향해 이 청년은 듣기 거북하리만큼 계속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의사에게, "이 돌팔이 의사야, 그래 내 병을 고치겠나 못 고치겠나 대답해 봐요!"하고 외쳤습니다.
의사는 참다 못해, "이 청년아, 자네 병은 여기서는 고칠 수 없으니 저기 보이는 교회에 가게!" 하고 내뱉아 버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술취한 청년은 건들거리며 진료소를 나서서 교회로 찾아와서 그는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뜻밖에 자기 죄를 뉘우치게 된 이 청년은 그날 저녁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음주하는 버릇까지 버리게 되었으니 술취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발걸음이었기에 새로운 삶을 통한 행복과 영생이 찾아왔습니다.
* 지금 병 중에 계십니까?
만병의 의사되신 예수님께 나와 예배 드리십시오. 주께서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계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마 8:17)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마음에 고민이 있으십니까?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께 나와 예배드리십시오. 예수님게서 말슴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고 약속하셨습니다.
* 사업에 실패하셨습니까?
새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재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오"(사 40:31) 했습니다.
* 죄를 범하고 근심 중에 계십니까?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와 죄를 자복하고 예배 드리십시오. 완전 사죄함을 받을 것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들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 세상에 임하셨느니라"(딤전 1:15)했습니다.
* 생활이 어려워 고통 중에 있습니까?
부유케 하시는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주께서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내가 온 것은 양으로(너희로)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했습니다.
주께 나와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이 행복한 줄 모르고 따분하고 짜증스럽게, 인색하게 여기다가 불행해진 후에야 행복함을 깨닫고 돌아오는 이가 많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등산으로 가는 길, 골프나 낚시하러 가는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 같으나, 그 길만 좋아하다간 결국은 불행으로 끝납니다.
제일 행복한 길의 첫 걸음은 주게 나와 예배 드릴러 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나의 부모요, 애인이요, 친구이기에 그 분과의 만남에는 슬픔이 끼어 들지 못합니다. 그 분의 품 속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1-7에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했습니다.
옳습니다. 참행복이란 부족함이 없는 삶인 줄 압니다. 오늘날 세상의 불행은 부족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부족한 사랑, 부족한 인격, 부족한 재물, 부족한 시간….
진정 만족한 삶은 주님의 품 안에만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성군 다윗 임금도 고백하길, 자신의 만족한 삶은 임금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이 행복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죄를 자유함을 받고, 예배를 통하여 질병에서 건강을 얻고, 예배를 통하여 벽 같이 막힌 문제들이 허물어지며, 갖가지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은 천국을 보장 받으며, 멸망에서 구출 받으며, 부활과 영생이 있는 까닭에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2) 일터로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본문 11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했으며, 요한복음 5:17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며, 식사할 겨를도 없이 일터로 가셨습니다.
①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1:27-28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많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출애굽기 20:9에도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셨으니, 이 말슴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며, 곧 불행하게 될 것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의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인생은 저주요, 고통이요, 지옥인 것입니다. 세상이 무위도식하는 인생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유교 사상에는 일을 천시하고 노동을 경멸했습니다.
양반은 일하지 않는다고 하여 남들은 뙤약볕에서 일하는데 한가히 그늘 밑에서 풍월이나 읊고, 바둑, 장기등을 두면서 소일했습니다. 심지어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노래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라의 경제가 궁핍하게 되고, 개인은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잠언 6:6-11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하였고, 18:9에는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하였습니다.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왜냐하면,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일을 하면서 살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대에 일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이르이 사명을 어기는 죄를 짓는 자입니다.
레오날드 다빈치는 "충실한 하루가 행복한 수면을 가져오듯이, 충실한 일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③ 일터로 가는 길은 행복이 찾아 옵니다.
1) 일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의 복이 찾아듭니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병이 찾아들 수가 없고, 일하지 않는 한가한 사람에게는 병이 찾아들기 쉽습니다. 비만증, 고혈압, 소화불량, 신경쇠약, 불면증 등의 많은 병들은 대체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운동은 일하는 운동이라 하겠습니다.
2) 일함으로 기쁨이 옵니다.
영어로 행복을 해피(happy)라고 하는데, 그 뜻은 "행운" "기쁘고 즐겁다"라는 뜻입니다. 돔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쁜 감정은 생리적으로 볼 때 세포조직이 활발히 움직이는 순간에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예로서, 운동을 한 후에나 목욕을 한 후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세포가 활발히 움직이고, 피가 잘 순환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란 일을 많이 하고 분주하여 세포가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이 제일 기쁜 사람입니다.
전도서 3:22에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3)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잠언 10:4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에게 부요의 상급을 주십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보면 믿으직스럽습니다. 자기 일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깁니다.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행복해 보입니다.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가지 일거리가 있고, 일하되 하나님을 위하여, 조국과 가정을 위하여 일하실 수 있는 건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으로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랑은 행복의 열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쇠만이 행복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으며,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37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듯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왔음을 알 대 행복합니다.
타락한 세상, 범죄한 나라, 허물어진 백성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인이 전도받고 주께 나와 회개하고 은혜 받은 후 풍자적으로 이렇게 비유했다고 합니다.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 사경에서 헤메이고 있을때";
첫번째 한 사람이 나타나,"어떻게 하다가 거기에 빠졌소? 잠시 잘못하면 그렇게 되니 앞으로 조심하시오'하고 갔으며,
두번째 사람이 나타나 '불쌍하게 되었군, 이젠 어쩔도리 없으니 죽어서 좋은 곳이나 가시오!'하고 지나 갔으며,
세번째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자신이 직접 수렁에 빠져 끌어내 주고 그는 거기서 죽었는데,
알고보니 첫째 사람은 도학자인 공자요, 두번째 사람은 염세주의자인 석가모니요, 세번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② 인생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을 인식할 때 행복합니다.
저는 인생을 정의하라면 "인생은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으로 먹고 자라, 사랑하며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의 재료가 무엇이냐고 물어 오신다면, 전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루터는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보이는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는 보람을 떳떳이 느낄 수 있는 사이가 부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조때, 무인이며 시를 쓴 박인로의 오륜가를 보면, "남으로 생긴 것이 부부같이 중할까. 사람의 백복이 부부에게 갖췄으니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코 어찌하랴"고 했습니다.
사랑의 위대함을 아는 남편, 사랑의 고귀함을 아는 아내,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자녀들이 모여 사는 가정이라면 부디 행복이란 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사랑하며 사는 삶인 줄 믿으며, 사랑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방향은 상류층의 종교인 문화도 아니요, 중류층의 종교인 윤리도 아니요, 하류층의 종교인 빵도 아니요, 젊은 층의 종교인 쾌락도 아니고, 이는 복음이요, 구원이요, 십자가요, 사랑인 것입니다.
③ 우리는 사랑의 빚을 갚아 가며 살 때 행복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관계를 맺고 삽니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인 의식주 문제도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의 빚을 지고 그것을 갚아 가면서 살아갈 때, 사람은 행복하여 인생의 삶의 맛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부모님에게 빚을 지지 않고 세상에 온 사랑은 하나도 없으니, 이 육신의 빚을 갚아 가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요 그것이 효의 생활입니다.
둘째로, 문화와 자연의 빚을 갚아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문화와 자연의 빚을 한없이 지고 살면서도 그것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갚을 줄도 모르는 무지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셋째로, 복음에 대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리라"고 했으며, "나는 복음의 빚을 진자"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은총과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축복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힘써 복음을 전하고, 주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거시요,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④ 가장의 빚을 갚아가면서 사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알버트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과 도움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 나갈 수 없다"고 하며, 왕의 자리를 물러나와 두번이나 이혼한 미국의 평민 심프슨이란 부인과 결혼하여 77세까지 행복을 만끼하면서 살다가 1972년 5월 2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끓어 넘쳤으면 주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죄악 세상에 오시여 가진 고추를 다 겪으시며 우리와 더불어 영원히 임마누엘 되어 주셨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빛을 갚아가는 동안, 그 길은 행복으로, 영생으로 가는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바쳐야 합니다.
* 결 론 :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발걸음이 행복으로, 영생으로, 승리의 길로 가시는 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1. 주께 예배 드리러 가는 길입니다.
2. 일터로 가는 길입니다.
3.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9-12
우리 인생은 길을 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인생은 '나그네'라 했고, ' 행인'이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입에서 불리워지던 유행가의 가사 가운데서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바람이 불듯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아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나그네 길은 피곤한 길이요, 고독한 길이요, 정처없는 길입니다.
엘리옷(T.S. Eliot)의 작품 '칵테일 파티'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홀로 살고 있다. 나도 홀로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소리를 내고, 서로 만나서 이해하는 것 같지만, 내가 알기로는 여전히 올로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길을 가고 있는 인생들이 행복의 길을 가는 이가 있고, 불행의 길을 가는 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고 원하면서도 불행의 길을 가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면서도 행복의 조건을 몰라 불해하게 사는 이가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 권세, 사랑, 가정, 직업, 이성, 종교라고 하는데, 그 대답은 환경과 입장에 따라 다양할 줄 압니다. 그러나 돈 있는 사람이라고 다 행복할가요? 권세가 높다고 진정 행복할까요? 명예가 있다고 다 행복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행복한 여건이 다 갖추어진 것 같은데도 불행하도 자살을 하고, 어떤 사람은 세상적으로 불행하여 보이는 데도 만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뭏든 인생은 행복을 원하고 있는데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양 신화 주엥도 행복의 여신은 짖궂어서 붽아가면 잡힐듯 잡힐듯 하면서도 멀리가고, 그런가 하면 다시 가가이 와서 우리를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1) 주께로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사방에 흩어져 살다가도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깅이 제일로 행복하게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4:23에 "아버지게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했습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하나님이 찾이시면 그는 여원한 행복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아신다고 하셨으니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賀川豊彦) 목사님이 전도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날 저녁 술취한 청년이 진료소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의사를 향해 이 청년은 듣기 거북하리만큼 계속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의사에게, "이 돌팔이 의사야, 그래 내 병을 고치겠나 못 고치겠나 대답해 봐요!"하고 외쳤습니다.
의사는 참다 못해, "이 청년아, 자네 병은 여기서는 고칠 수 없으니 저기 보이는 교회에 가게!" 하고 내뱉아 버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술취한 청년은 건들거리며 진료소를 나서서 교회로 찾아와서 그는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뜻밖에 자기 죄를 뉘우치게 된 이 청년은 그날 저녁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음주하는 버릇까지 버리게 되었으니 술취한 중에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는 발걸음이었기에 새로운 삶을 통한 행복과 영생이 찾아왔습니다.
* 지금 병 중에 계십니까?
만병의 의사되신 예수님께 나와 예배 드리십시오. 주께서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계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마 8:17)고 말씀하셨습니다.
* 지금 마음에 고민이 있으십니까?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께 나와 예배드리십시오. 예수님게서 말슴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고 약속하셨습니다.
* 사업에 실패하셨습니까?
새 힘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재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오"(사 40:31) 했습니다.
* 죄를 범하고 근심 중에 계십니까?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와 죄를 자복하고 예배 드리십시오. 완전 사죄함을 받을 것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들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 세상에 임하셨느니라"(딤전 1:15)했습니다.
* 생활이 어려워 고통 중에 있습니까?
부유케 하시는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주께서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내가 온 것은 양으로(너희로)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했습니다.
주께 나와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이 행복한 줄 모르고 따분하고 짜증스럽게, 인색하게 여기다가 불행해진 후에야 행복함을 깨닫고 돌아오는 이가 많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등산으로 가는 길, 골프나 낚시하러 가는 길이 행복으로 가는 길 같으나, 그 길만 좋아하다간 결국은 불행으로 끝납니다.
제일 행복한 길의 첫 걸음은 주게 나와 예배 드릴러 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원한 나의 부모요, 애인이요, 친구이기에 그 분과의 만남에는 슬픔이 끼어 들지 못합니다. 그 분의 품 속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1-7에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했습니다.
옳습니다. 참행복이란 부족함이 없는 삶인 줄 압니다. 오늘날 세상의 불행은 부족한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부족한 사랑, 부족한 인격, 부족한 재물, 부족한 시간….
진정 만족한 삶은 주님의 품 안에만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성군 다윗 임금도 고백하길, 자신의 만족한 삶은 임금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이 행복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죄를 자유함을 받고, 예배를 통하여 질병에서 건강을 얻고, 예배를 통하여 벽 같이 막힌 문제들이 허물어지며, 갖가지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 드리러 가는 길은 천국을 보장 받으며, 멸망에서 구출 받으며, 부활과 영생이 있는 까닭에 예배드리러 가는 길은 축복의 길입니다.
(2) 일터로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본문 11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했으며, 요한복음 5:17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며, 식사할 겨를도 없이 일터로 가셨습니다.
①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1:27-28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많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출애굽기 20:9에도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셨으니, 이 말슴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며, 곧 불행하게 될 것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기의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인생은 저주요, 고통이요, 지옥인 것입니다. 세상이 무위도식하는 인생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유교 사상에는 일을 천시하고 노동을 경멸했습니다.
양반은 일하지 않는다고 하여 남들은 뙤약볕에서 일하는데 한가히 그늘 밑에서 풍월이나 읊고, 바둑, 장기등을 두면서 소일했습니다. 심지어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라는 노래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나라의 경제가 궁핍하게 되고, 개인은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잠언 6:6-11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하였고, 18:9에는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하였습니다.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왜냐하면,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일을 하면서 살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대에 일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이르이 사명을 어기는 죄를 짓는 자입니다.
레오날드 다빈치는 "충실한 하루가 행복한 수면을 가져오듯이, 충실한 일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③ 일터로 가는 길은 행복이 찾아 옵니다.
1) 일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의 복이 찾아듭니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병이 찾아들 수가 없고, 일하지 않는 한가한 사람에게는 병이 찾아들기 쉽습니다. 비만증, 고혈압, 소화불량, 신경쇠약, 불면증 등의 많은 병들은 대체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운동은 일하는 운동이라 하겠습니다.
2) 일함으로 기쁨이 옵니다.
영어로 행복을 해피(happy)라고 하는데, 그 뜻은 "행운" "기쁘고 즐겁다"라는 뜻입니다. 돔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쁜 감정은 생리적으로 볼 때 세포조직이 활발히 움직이는 순간에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예로서, 운동을 한 후에나 목욕을 한 후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세포가 활발히 움직이고, 피가 잘 순환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란 일을 많이 하고 분주하여 세포가 활발히 움직이는 사람이 제일 기쁜 사람입니다.
전도서 3:22에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3)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잠언 10:4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사람에게 부요의 상급을 주십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보면 믿으직스럽습니다. 자기 일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이 생깁니다. 일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행복해 보입니다.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가지 일거리가 있고, 일하되 하나님을 위하여, 조국과 가정을 위하여 일하실 수 있는 건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으로 가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사랑은 행복의 열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열쇠만이 행복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셨으며,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37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듯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으로 세상에 왔음을 알 대 행복합니다.
타락한 세상, 범죄한 나라, 허물어진 백성들이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인이 전도받고 주께 나와 회개하고 은혜 받은 후 풍자적으로 이렇게 비유했다고 합니다.
"내가 깊은 수렁에 빠져 사경에서 헤메이고 있을때";
첫번째 한 사람이 나타나,"어떻게 하다가 거기에 빠졌소? 잠시 잘못하면 그렇게 되니 앞으로 조심하시오'하고 갔으며,
두번째 사람이 나타나 '불쌍하게 되었군, 이젠 어쩔도리 없으니 죽어서 좋은 곳이나 가시오!'하고 지나 갔으며,
세번째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자신이 직접 수렁에 빠져 끌어내 주고 그는 거기서 죽었는데,
알고보니 첫째 사람은 도학자인 공자요, 두번째 사람은 염세주의자인 석가모니요, 세번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② 인생은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을 인식할 때 행복합니다.
저는 인생을 정의하라면 "인생은 사랑에서 태어나서, 사랑으로 먹고 자라, 사랑하며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의 재료가 무엇이냐고 물어 오신다면, 전 분명히 '사랑'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루터는 "사랑하는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보이는 낙원"이라고 했습니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는 보람을 떳떳이 느낄 수 있는 사이가 부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조때, 무인이며 시를 쓴 박인로의 오륜가를 보면, "남으로 생긴 것이 부부같이 중할까. 사람의 백복이 부부에게 갖췄으니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코 어찌하랴"고 했습니다.
사랑의 위대함을 아는 남편, 사랑의 고귀함을 아는 아내,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자녀들이 모여 사는 가정이라면 부디 행복이란 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사랑하며 사는 삶인 줄 믿으며, 사랑으로 행복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방향은 상류층의 종교인 문화도 아니요, 중류층의 종교인 윤리도 아니요, 하류층의 종교인 빵도 아니요, 젊은 층의 종교인 쾌락도 아니고, 이는 복음이요, 구원이요, 십자가요, 사랑인 것입니다.
③ 우리는 사랑의 빚을 갚아 가며 살 때 행복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관계를 맺고 삽니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인 의식주 문제도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 사랑의 빚을 지고 그것을 갚아 가면서 살아갈 때, 사람은 행복하여 인생의 삶의 맛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부모님에게 빚을 지지 않고 세상에 온 사랑은 하나도 없으니, 이 육신의 빚을 갚아 가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요 그것이 효의 생활입니다.
둘째로, 문화와 자연의 빚을 갚아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문화와 자연의 빚을 한없이 지고 살면서도 그것에 고마운 줄도 모르고 갚을 줄도 모르는 무지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셋째로, 복음에 대한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리라"고 했으며, "나는 복음의 빚을 진자"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은총과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축복의 빚을 갚기 위해서는 힘써 복음을 전하고, 주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거시요,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④ 가장의 빚을 갚아가면서 사는 길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알버트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과 도움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 나갈 수 없다"고 하며, 왕의 자리를 물러나와 두번이나 이혼한 미국의 평민 심프슨이란 부인과 결혼하여 77세까지 행복을 만끼하면서 살다가 1972년 5월 28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끓어 넘쳤으면 주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죄악 세상에 오시여 가진 고추를 다 겪으시며 우리와 더불어 영원히 임마누엘 되어 주셨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빛을 갚아가는 동안, 그 길은 행복으로, 영생으로 가는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바쳐야 합니다.
* 결 론 :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발걸음이 행복으로, 영생으로, 승리의 길로 가시는 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1. 주께 예배 드리러 가는 길입니다.
2. 일터로 가는 길입니다.
3.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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