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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아 안녕?
지금은 4시 37분. 내 방 전자시계가 혼자 깜박이며 나를 보고 있어. 내 방은 어둡지만 창 밖 가로등 불빛에 희미한 빛이 스며있어. 매일 내 곁에서 잠들어 있던 엄마가 오늘은 거실에서 아빠와 다투는 소리도 들려.
"내가 왜 둘을 다 길러야 해? 누구 좋으라고. 생활비를 제대로 줄 것도 아니잖아."
엄마의 목소리는 앙칼져. 보통 때보다 훨씬 작은 소리였지만 매섭고 독하게 느껴진단다.
"아직 돌봐줘야 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따로 기르냐구. 몰라 몰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빠의 말이 그렇게 끝나자 엄마는, 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어. 엄마의 소리는 바람소리 같더라.
새벽에 너한테 편지를 쓰는 건 조금 낯선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야. 아주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 내린 탓에 너무 많은 양의 바람을 들이마신 탓일까. 어지럽고 멍해. 꿈을 꾸었거든.
절벽 위에는 망원경이 있었어. 얼마 전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갔었던 통일 전망대랑 똑같은 곳이었어. 바람은 살살 불었지. 머리카락을 흔들며 기분좋게 몸에 와 닿았어. 내가 왜 이 바람의 느낌을 기억하냐면 나중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훅훅 공격해오는 바람과 그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지.
- 그림=권신아
난 망원경 앞으로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보았어. 망원경 저 멀리 짙푸른 수평선이 보이는 거야. 절벽과 바다는 현실에서 느끼는 것보다 짙고 커다랬어. 나도 평소보단 큰 몸집이었고. 꿈의 화면을 모두 다 뒤덮을 듯 사물들은 크고 무시무시하더구나.
'어, 내 키가 언제 이렇게 컸지?'
꿈속의 나는 생각했어. 통일전망대에서 나는 그 망원경으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거든. 키가 너무 작아서 말야.
망원경 속은 온통 바다였어. 아까 말했듯이 짙푸르러서 소름이 좀 돋는 파도가 보였어. 그때 저 멀리에서 커다랗고 찌글찌글한 돌덩이 하나가 빙글빙글 돌면서 나에게 오는 거야. 처음엔 아주 천천히 오다가 나중에는 재빠르게 쉭쉭 소리를 내며 달려왔지.
'오, 너구나!'
하고 말했던 것 같아. 그건 바로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명왕성, 못난이 별이었지. 넌 내가 일곱 살 때 태양계에서 쫓겨난 별이야. 네 이름은 이제 행성이 아니라 '소행성 134340'이거든. 왠지 쓸쓸한 죄수번호처럼 느껴진다. 꿈속에서 너는 화가 났는지 나에게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왔어.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나는 억울하다고 소리치면서 도망쳤어. 하지만 꿈에서는 늘 그렇잖아. 발은 잘 떨어지지 않고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어. 몸 안에서는 소리들이 강렬하게 아우성치고 있는데 무언가가 목소리를 먹어버린 것처럼 밖으로는 안 나와. 답답해서 계속 꺽꺽거렸어. 나는 발판에서 뛰어내려 발을 동동 구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그런데 언덕이 갑자기 가파른 벼랑으로 바뀌더구나. 나는 어느 결에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벼랑에서 뛰어내렸어.
'아아악!'
잠에서 깼을 때 오랫동안 입을 벌리고 있었던지 입안 구석구석이 바싹 말라 있었어. 그리고 콧속으로 들어오던 바람의 싸한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지난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을 적엔 엄마가 낮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지. 엄마 품에서는 따뜻한 심장 소리가 들렸어. 그런데 오늘은 새벽부터 불길한 목소리로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거야.
'나는 누굴 따라갈까? 우리 오빠는 누굴 따라갈까?'
엄마는 오랫동안 아빠랑 각방을 써왔어. 게다가 얼마 전까지 엄마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어. 오빠는 엄마와 아빠가 별거를 했던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엄마 아빠가 왜 싸우는 건지는 몰라. 집에 다시 돌아왔지만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별 이유 없이 싸우셔. 나는 간장을 올려놓지 않는 엄마,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아빠, 인사할 줄 모르는 엄마, 월급을 제때 가져오지 않는 아빠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거든. 다만 우리 가족이 가족사진에서처럼 행복하게 웃고 지냈으면 좋겠는데 또 헤어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드는 거지. 그때마다 가슴에 뭔가가 얹힌 것처럼 더부룩해. 소아과에 가서 물었더니 위궤양이라고 하더군. 엄마도 나도 깜짝 놀랐어. 초등학교 5학년이 위궤양이라니…….
너희 가족은 누구니?
어느 과학책에서 '사라진 행성 명왕성'이라는 글을 보았거든.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가 너의 가족이야? 그렇다면 네가 행성이 아니라 '소행성 134340'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때 많이 슬퍼했겠다, 그치.
"오빠, 명왕성은 왜 행성이 아니야?"
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인 우리 오빠에게 물어보았어. 오빠는 내가 묻는 모든 것에 아주 정확하게 대답을 해준다. 그래서 난 오빠를 엄마 아빠보다 더 좋아해.
"너처럼 쪼맨하고, 빛도 어둡고, 차갑고, 다른 작은 위성도 거느리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전에는 왜 행성이라고 불렀는데?"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어. 하지만 미국 사람이 발견한 별이라 여지껏 인정해줬던 거지."
오빠는 엄마 아빠가 싸워도 혼자 알아서 제 궤도를 잘도 돌아.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상위권이지. 하지만 오빠는 나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어. 오빠를 따라다닐까 봐 귀찮아한단다. 학교 갈 때 오빠, 오빠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신호등을 건너간다. 마치 '날 아는 척하지 마.' 그러는 것처럼 말야.
"오빤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 거야?"
"아마 아빠 따라갈걸. 난 별로 그러고 싶진 않지만."
"엄마랑 나를 못 볼지도 모르는데?"
"엄마 아빠는 우리 생각은 안 하는 독불장군들이야. 그래서 난 상관 안 하기로 했어."
불쌍한 오빠.
"오빠도 우리 가족이 헤어지는 게 싫지?"
"난 상관 안 해. 니가 안 크는 것도 다 엄마 아빠 탓이야."
오빠의 여드름에는 얼마 전부터 노란 고름이 올라와 있었지. 고름을 짜낸 얼굴은 독이 오른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더구나.
오빠 말처럼 나는 우리 반에서 키번호 1번이고 체격도 작아. 아이들은 어깨동무하고 손가락 '브이자'를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오두마니 서 있는 반 사진은 숲 속에 버려진 고아처럼 보이지. 하지만 내 친구 윤지원은 우리 반에서 키가 가장 커. 우리는 친구지만 같이 다니면 터울 있는 자매처럼 보인대. 난 윤지원에게 옷과 운동화 같은 걸 많이 받았었지. 또 신기한 동영상도 많이 보여주니까 정신적, 육체적 언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치?
"베이비, 안녕?"
"꺽다리, 안녕?"
우린 늘 이렇게 인사해. 베이비는 내 별명이고 꺽다리는 지원이의 별명이거든.
"오늘 너희 집에 놀러가도 돼?"
나는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까지 윤지원네 집에서 놀곤 했어. 지원이가 키우는 강아지 민돌이랑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는 것도 우리 집보다 훨씬 편하고 좋거든.
"오우, 오늘은 안 돼. 오늘 아주 특별한 약속이 있거든."
"남자애들?"
요즘 윤지원은 남자 친구를 만들려고 다른 반 애들과 노래방에 간다고 했거든. 며칠째 난 윤지원네 집에 가지 못했지.
"우리 짝 맞춰서 셔플댄스 추고 놀았다!"
지원이는 벌써부터 몸을 달싹거렸어.
"어떻게 추는 거야?"
나는 말로만 듣던 거라 지원이가 어떻게 추는지 궁금했어.
"너 셔플댄스도 몰라? 이렇게 추는 거 말야."
왠지 키가 큰 그 애에게는 어울리는 춤이었어. 하지만 내가 춘다면 웃길 거 같아.
"가도 돼?"
난 윤지원을 빤히 쳐다보았어.
"……글쎄. 올래면 와."
느낌이 안 좋았지만 꾹 참고 약속 장소로 갔어.
백화점 앞에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 특선상품 카네이션이 진열돼 있었어, 처음에는 엄마, 아빠에게 어떤 카네이션을 사줄까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어. 하지만 약속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아이들은 오지 않더구나. 그날 윤지원은 하늘색 잠바를 입고 있었는데 눈 씻고 찾아도 없었어.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지원이가 일부러 전화기를 꺼놨다는 생각을 하니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어. 백화점을 나와 엄마 피아노 학원까지 걸어갔어. 화끈거리는 얼굴로 버스 정류장 세 곳을 지났지.
피아노 학원 문을 연자 엄마는 아이와 피아노를 치다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어.
"왜?"
엄마의 관심이 집중되자 나는 또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물이 났어.
"왜 그러는지 말 못해?"
답답하게 구는 걸 못 견디는 엄마는 또 소리를 질렀어.
"윤지원이…… 윤지원이…… 약속을 해 놓고 안 나왔어."
"뭐라고? 그 꺽다리가 왜 너를 따돌리는데? 그러기에 왜 너랑 비슷한 애랑 놀아야지. 언니 같은 애랑 노냐구?"
나는 상담실 의자에 앉아 눈물을 닦았어. 엄마는 내가 작고 변변치 못해 짜증을 내는 거야. 우리 엄만 나한테 늘 화를 내거든.
그날 엄마와 난 한의원에 갔지. 운동화를 벗고 키도 재고 몸무게도 쟀어. 내 키는 128센티미터, 몸무게는 28킬로그램. 초등학교 2학년 표준키와 몸무게라고 했어.
엄마는 몇 년간 신고 있던 내 운동화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어. 운동화 밑창이 반질거리며 닳아 있었거든.
소행성 '134340'아!
지금 내 가슴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우주의 어디론가 네가 뚝 떨어져나간 느낌. 나도 어디론가 뚝 떨어져 갈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난 가족카드를 만들고 있어. 지금 헤어지려는 엄마 아빠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더라도 까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어서 나눠줄 거야. 너도 예전처럼 우주의 마당을 돌면서 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행성은 아니지만 비슷한 소행성들과 새로 사귀고 있을지도 모르지.
미국인들은 너를 탐사하려고 2006년에 2015년 도착할 '뉴허라이즌스호'를 발사했다지? 우리 오빠 말처럼 너의 몸은 차갑고, 어두운 거니? 희미한 빛을 내면서 공전하고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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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롱스타킹, 인간 세계에 놀러 온 바바야가 마녀, 나무의 정령 토 토로에 마음을 빼앗긴 딸, 아내, 엄마를 참아준 우리 가족에게 먼저 이 상을 바칩니다.
쇼생크 감옥을 나서는 레드처럼 철문이 열리니 새로운 세상이 낯설지만, 리듬 잊지 않고 걷겠습니다. 깜깜해질 때까지 ‘대지’를 끼고 읽던 어린 소녀와 해산한 지 얼마 안 돼 어린이책을 배달하러 나섰던 아기 엄마가 제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저의 삶에 큰 위안이 되었던 모든 작품에 감사하고 저 또한 그런 작품을 쓰겠습니다.
어린이책 작가교실 식구들, 논술학원 식구들, 대학교 글벗들, 동부문학회 글벗들, 동두천시 시민연대 선후배들, 저를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답할게요. 2013년 신나게 한번 달려볼까요?
▲건국대 국문과 졸업
▲현 독서·논술학원 운영
최윤정(아동문학평론가)
올해 응모작은 287편으로 작년의 두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이러한 양적인 증가가 질적인 향상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 중에서 당선작을 결정하기 위하여 최종적으로 추려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김지숙의 ‘치킨버스’, 이은화의 ‘닭 한 마리’, 박마루의 ‘용정의 별 헤는 밤’, 그리고 박진영의 ‘가기 싫어요’와 박윤우의 ‘명왕성에게’. 앞의 세 작품은 뒤의 두 작품에 비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투박하고 진솔한 기운이 눈길을 끌어서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다.
박진영의 ‘가기 싫어요’와 박윤우의 ‘명왕성에게’는 당선작을 고르기 전에 무척 망설일 만큼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원고들이었다. ‘가기 싫어요’는 아이의 힘으로는 거역할 수 없는 ‘엄마의 말’ 때문에 황당한 상상을 하는 모습을 ‘이상한 아저씨’를 통해서 반복적이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학원에 가기 싫다는 그 한마디를 아이가 엄마에게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느끼게 해주는 솜씨 있는 마무리도 돋보인다.
‘명왕성에게’는 엉뚱한 상상을 좀 더 색깔 있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또한 이혼이 진행 중인 엄마 아빠와 사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안쓰럽지만 참으로 사랑스럽다. 어른들의 일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가족의 기억을 흔적으로 남기려는 아이의 마음이 ‘사라진 행성 명왕성’과 ‘우주의 마당’ 같은 비유 덕분에 빛을 발한다. 그 희미한 빛 뒤에 깔린 어른들의 어둠이 그래서 더 잘 보인다.
글 솜씨는 좀 덜 세련되었으되 아이와 어른의 내면이 좀 더 깊이 있게 드러난 ‘명왕성에게’를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를, 그리고 ‘가기 싫어요’의 투고자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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