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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임재 체험의 길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970 추천 수 0 2013.01.07 18: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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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3:7-1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2.12.17 http://www.john316.or.kr 

주님의 임재 체험의 길 (누가복음 3장 7-14절)

 

< 길을 닦는 삶의 축복 >

 2000년 전, 로마의 속국이었던 유대 민족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치는 신임을 잃었고, 경제는 도탄에 빠졌고, 윤리는 땅에 떨어졌고, 종교는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선지자도 400년 동안 없었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이 등장해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제 메시야가 오실 때가 가까워 왔습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십시오. 메시야가 오시면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은 산이 낮아지고, 험한 길들이 평탄해지고, 굽은 길이 곧아질 것입니다.”

 지금도 전쟁, 인종갈등, 종교갈등, 빈부격차 및 양극화 등으로 광야시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앞 5절 말씀을 보면 4가지를 도전합니다. 첫째,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처럼 지금도 불신의 골, 피해의식의 골, 배신과 상처와 실망의 골이 얼마나 깊습니까? 그러나 주님이 오시면 원망의 골짜기는 감사로 바뀌고 절망의 골짜기는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산이 낮아져야 합니다. 그 말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높은 산들이 있습니다. 돈과 지식으로 인한 교만의 산, 능력과 권력으로 인한 교만의 산, 자존감은 없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교만의 산, 심지어는 봉사와 기도 대장이란 영적인 교만의 산도 있습니다. 그런 산이 낮아져야 예수님이 그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셋째, 굽은 것을 곧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구부러지면 매사를 삐뚤게 보고 비관적으로 봅니다. 그때 칭찬은 아첨처럼 듣고, 충고는 멸시처럼 듣고, 위로는 조소처럼 듣습니다. 또한 깨진 거울로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말씀도 깨진 상태로 삐뚤게 받아들입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렸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굽은 마음이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넷째,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여러 어려움을 통해 마음이 상한 심령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시면 깊은 평안과 위로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면 모든 병든 마음이 치유되어 절망했던 사람이 희망을 가지게 되고, 버림받은 사람이 주님 품을 찾게 되고, 추하게 살던 사람들이 주님의 신부처럼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

<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길 >

 본문에서도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원리를 도전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과 주님의 임재는 엄밀하게 말하면 같은 개념입니다. 그처럼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로 회개하십시오

 본문 8절 말씀은 참된 회개를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회개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죄를 뉘우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를 뉘우쳤다가 얼마 후에 또 같은 죄를 지으면 그 뉘우침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새 삶을 다짐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삶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사람이 회개했다고 죄를 전혀 안 짓는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을 볼 때 가장 깨끗하게 살았던 때도 “나는 깨끗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영적인 교만 죄가 있었습니다. 그처럼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교만 죄로 인해서 가장 깨끗하지 못한 때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회개를 완벽한 의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참된 회개는 멀어집니다.

 저는 회개를 이렇게 정의해보았습니다. 불신자에게 회개는 ‘주님을 향한 순수한 첫 사랑을 가지게 된 것’이고 기존 신자에게 회개는 ‘주님을 향한 순수한 첫 사랑을 다시 찾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즉 회개는 순수한 첫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살면서 잃는 것들이 많지만 순수했던 첫 사랑만은 잃지 마십시오.

 사람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고 사소한 일로 상처를 입습니다. 큰일을 당하면 오히려 문제가 안 생깁니다. 가정이 큰 환난이 생기면 부부가 같이 기도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오히려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의외로 작은 일에서 갈등이 커질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런 물건을 사느냐? 왜 전기를 끄지 않았느냐? 왜 운전을 그렇게 하느냐? 왜 식당에서 그렇게 행동하느냐? 왜 물건을 치우지 않느냐? 왜 치약을 몸통부터 짜느냐? 왜 내 처지를 몰라주나?”

 그런 잔소리들로 마음이 상하다가 “당신! 수준이 왜 그래? 당신은 그렇게 배웠어?”라고 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그러다가 “당신네 집안 식구들은 왜 그래?”라고 상대방 집안까지 들먹이고 조상과 족보와 지역까지 들먹이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그처럼 사소한 일에서 상처가 없게 하려면 무엇보다 첫 사랑을 회복하고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이렇게 하리라!”고 다짐했던 때처럼 행동하십시오. 선한 결단과 사랑의 다짐은 보통 18개월을 넘기기 힘들고 아주 오래 가도 3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사랑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의지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더 공부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특히 습관과 본능을 이기고 처음처럼 행동해야 사랑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그처럼 순수한 첫 사랑의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은 정이 떨어지면 관계도 끝나기 쉽지만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굳은 마음을 사랑의 단비로 적셔주시고 다시 믿음과 사랑을 회복시켜 주셔서 새로운 축복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을 처음 진실하게 믿고 사랑할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범사에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때는 예수님만 바라봤는데 점점 사람을 의식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나?” 그러면서 점점 첫 사랑을 잃는데 그 첫 사랑의 회복을 위해 회개가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면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이 다 반갑게 보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런 열매가 있을 때 주님이 그 마음에 찾아와주실 것입니다.

2. 이기주의를 버리십시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자 무리들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이 말씀은 이기주의를 버리고 나눔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눔은 행복을 얻는 최적의 길입니다. 진짜 행복은 내 행복이 남에게도 행복이 될 때 얻습니다.

 또한 주는 삶을 실천할 때 가장 성도다운 모습이 나옵니다. 주기를 좋아하면 언제나 감사가 넘치지만 받기를 좋아하면 언제나 불평이 넘칩니다. 결국 받으려는 마음에서 싸움과 섭섭함이 생깁니다. 왜 인간관계에 사단이 납니까? 더 많이 받으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넘치는 성도가 되고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려면 나눔을 최대한 실천하십시오. 다른 어떤 교회 훈련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훈련이 바로 나눔의 훈련입니다. 나눔의 최고수가 될 때 은혜도 최고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 본부>에 장기 기증을 서약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특히 목사님 부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래도 그 사실을 성도들에게 잘 알리지 않습니다. 자랑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어차피 썩거나 화장할 장기들인데 기증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목사님 부부 사후에 그 시신이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은밀한 사랑에 비로소 고개를 숙이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어차피 인간사회는 다양합니다. 개중에는 한 자리 얻겠다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목사들도 있지만 그런 목사들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또한 개중에는 한 권세 잡겠다고 정치판을 주도하려는 교회도 있지만 그런 교회들 때문에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자신도 다른 면에서는 인간적인 욕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욱 열심히 실천하십시오.

 시신 기증을 고려하면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시신을 기증하면 수치스런 부분이 다 드러나는데 그것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수치는 과학발전을 위해 몇 사람의 의학도 앞에서 보이는 잠깐의 수치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극복할 힘이 생깁니다. 이 땅에서 선한 목적을 위해 부끄러운 수치를 받으면 나중에 부활할 때 더욱 찬란한 영광체가 될 것입니다.
 
 가끔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오. “내 관심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있는가?” 그렇게 끊임없이 성찰하며 다짐하십시오. “어떻게 줄까? 어떻게 더 줄까? 어떻게 더 아름답고 깨끗하게 줄까? 어떻게 받는 분의 자존심과 명예도 지켜주면서 겸손하게 드릴까?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에 동참하면서 받은 은혜를 갚을까?”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진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는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특징에 관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자기 것을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을 잠시 관리하는 것이란 집사 의식 혹은 청지기 의식이 탁월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 육신적인 재고가 많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홀가분하게 주님께 가려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나눔에 힘썼습니다.

 한국 교인들은 전 세계에서 헌금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런데 교회적으로는 큰일을 잘 못합니다. 반면에 미국 교인들은 개인적으로는 헌금을 잘 못합니다. 옛날에 미국의 유명한 초대형 교회에 갔을 때 헌금 바구니가 쟁반 형태라서 다 보였는데 거의 1불이나 5불짜리 지폐였습니다. 그처럼 미국에서는 개인적으로는 헌금을 적게 해도 교회적으로는 큰일을 합니다. 유산처리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인들은 비교적 작은 돈은 교회를 위해 잘 바치지만 큰돈은 자기를 위해 쓰고 특히 자식을 위해서는 펑펑 씁니다. 그러나 미국 교인들은 작은 돈은 잘 안 내지만 큰돈은 거의 모두 교회나 대학이나 자선기관에 바칩니다. 그래서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장학금이 남아돕니다. 하버드, 프린스턴 등의 명문대는 학생의 95%가 각종 장학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기부금도 무조건 받지 않고 가려서 받습니다.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전에 미국이 9년째 호황으로 대학에 기부금이 넘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때 상당수의 명문대들이 각각 20억 달러 이상을 기부 받았습니다. 2조원이 넘는 엄청난 돈입니다. 당시 서울대에 들어가는 정부 보조금이 1천억 원도 안 될 때였습니다. 그처럼 미국 교인들은 번 돈을 다 그렇게 쓰는데 우리는 끝까지 거머쥐고 자식들 주겠다고 하다가 자식들 싸움만 붙여놓고 갑니다. 자녀에게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끝나야지 고기를 물려주면 그 고기도 썩고 그 고기를 관리하는 영혼도 썩습니다.

 지금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 본부>에 가입된 사람도 거의 대부분 기독교인입니다.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가르치십시오. “얘들아! 유산은 아예 없는 줄 알고 살아라.” 부모들이 미리 그렇게 자녀들의 이해를 구하면 성숙한 자녀들은 그런 부모의 모습에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사람답게 살려고 하고, 더욱 스스로 성공하려고 노력해서 인물 되는 길로 갈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특이한 신앙형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려는 마음이 넘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과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주려는 모습이 바로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게 되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저분에게는 내 기도와 물질과 사랑의 동역이 필요하다.” 그처럼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나눔의 사명감으로 넘치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가정에서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용돈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마음을 사는 길은 간단합니다. 용돈을 드리면 됩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그 용돈을 어디에 씁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대개 아끼고 꼭꼭 숨겨 두었다가 나중에 손주들 주거나 헌금하는 재미로 삽니다. 그처럼 더 주고 싶고 더 드리고 싶은데 가진 것이 적어서 안타까워하는 복된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은 가질수록 더 목마르고, 더 욕심이 커지고, 더 고민이 많아집니다. 그런 기갈과 고민을 극복하려면 나눔을 체질화시키십시오. 그래서 나눔을 통해 자기중심에서 주님중심으로 중심이동을 이루는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십시오. 그처럼 자기의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다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면서 나누려고 할 때 주님이 그 삶에 찾아와 주셔서 진정한 은혜와 자유와 행복을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3.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세례 요한이 나눔을 강조하자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려고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그때 요한이 말했습니다. “부과된 세금 외에는 거두지 말라(13절).” 왜 유대인들이 세리를 그토록 싫어했습니까? 로마에 세금 부역을 하며 동족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인들도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그때 요한이 말했습니다. “남의 것을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14절).”

 이 말씀들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높여주고 살려주라는 말입니다. 남을 살려주면 나도 살지만 남을 죽이면 나도 죽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냄비 안의 팝콘처럼 서로 화내지 말고, 냉장고 안의 얼음처럼 서로에게 냉담하지 말고, 가슴에 품은 초콜릿처럼 서로를 녹여주십시오. 그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녹아질 때 하나님이 그 관계 속에 임재하실 것입니다.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계도 사랑해야 하지만 가까운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남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비판하고 윽박지르는 것’을 이웃사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정의로운 모습 같지만 오히려 그 모습은 ‘이웃’이란 말에 자기를 투사해서 “왜 자기와 같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랑받으려는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복이란 결국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대개 사람을 통해 오기에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사람을 놓치지 말고 웬만하면 그를 최대한 붙드십시오. 이별은 인생의 큰 손해입니다. 상대가 자신을 오도하고, 너무 혼자만 알고, 거짓과 술수로 자신을 기만하면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지만 작은 일들로 섭섭함과 상처를 키워서 헤어지지는 마십시오. 한번 선택한 사람을 웬만하면 평생 놓지 마십시오. 그를 바꾸든지 안 되면 자신이 바뀌든지 해서라도 만남의 축복을 오래 유지하십시오.

 축복과 행복과 기쁨은 대개 사람을 통해 옵니다. 그래서 사람을 무시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고 사람을 잘 잃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제 사람을 무시하거나 잃지 말고 웬만하면 그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렇게 좋은 만남의 수를 늘여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특히 만날 때 상대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유익을 주겠다는 생각으로 만나면 오히려 자신의 외로움이 덜어지면서 유익도 얻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노송처럼 고고하게 지내지 말고 적절한 기회를 봐서 어울림에 동참하십시오. 그래서 식사도 잘 대접받고 잘 대접하십시오. 물론 안 주면 억지로 빼앗지는 마십시오. 반대로 주면 억지로 안 받지는 마십시오. 누가 대접해주면 기쁘게 대접을 받고 다음에 기쁘게 대접해주면 됩니다. 그처럼 주고받는 대접과 섬김 속에 정이 깊어집니다. 그런 여백과 너그러움이 있을 때 축복과 행복이 밀려오고 차오릅니다.

< 이웃 사랑의 축복 >

 이제 항상 이런 질문을 하며 사십시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가?” 학력이나 외모, 그리고 물질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교인들에게 기쁨을 주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헌신하며 사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교우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드십시오. 아무튼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사람은 최대한 놓치지 마십시오. 그를 놓치면 얼마 후에 다가올 축복도 놓칩니다. 그래서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복은 감사할 때까지 복이 아닙니다. 그처럼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될 때까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특히 가까운 이웃사랑은 성숙한 신앙의 표시입니다. 오지에 선교헌금을 보내는 것도 성령 충만한 모습이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어떤 며느리는 진심으로 시어머니를 사랑해서 매일 새벽기도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닙니다. 그런 모습이 깊은 감동을 주는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누가 동서를 칭찬할 때 “맞아!”라고 같이 기뻐해주는 것도 이웃 사랑이고, 직장 동료가 능력으로 자기보다 앞서서 승진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도 이웃 사랑이고, 사촌에 땅을 살 때 배가 아프지 않고 오히려 아픈 배가 낫는 것도 이웃 사랑입니다. 결국 진정한 이웃 사랑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시기심을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그런 사랑이 있을 때 인간관계에서도 승리할 수 있고 참된 행복도 얻습니다.

 어느 날, 한 수도사가 동굴에서 수행할 때 한 젊은 마귀가 그를 넘어뜨리려고 찬란한 세상 것들로 갖은 유혹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까딱도 없었습니다. 결국 낙심해서 돌아오다가 늙은 마귀를 만났습니다. 늙은 마귀가 젊은 마귀에게 왜 그렇게 낙심해 있느냐고 묻자 젊은 마귀가 동굴 속의 수도사가 아무리해도 넘어지지 않아서 낙심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늙은 마귀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넘어뜨리는 비법을 가르쳐줄까?” 젊은 마귀가 가르쳐달라고 하자 늙은 마귀가 그 비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마귀가 수도사에게 곧 가서 늙은 마귀가 가르쳐준 대로 그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수도사님! 수도사님의 친구가 며칠 전에 안디옥의 대주교가 되었대요.” 그러자 수도사가 눈을 번쩍 뜨고 얼굴에 시기심을 드러내면서 기도의 영성이 깨졌다고 합니다.

 그런 질투하는 마음까지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고 성령 충만입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할 때 마음이 평화롭게 되고 자신부터 즐거워집니다. 꽃 한 송이를 남에게 주면 자기 손에도 향기가 묻어나듯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처럼 이웃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면 현재의 행복 및 내일의 축복이 그를 비켜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뉴햄프셔에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한 작은 오두막집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요나단과 사라가 살던 집!”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님 부부는 그 작은 오두막집에서 열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백 여년 후에 그들의 후손 팔백 여명이 거의 대부분 큰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한 학자가 그렇게 위대한 가문이 된 원인을 분석하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요나단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산 것이 최대의 축복 비결이었습니다. 결국 이웃 사랑에서 비롯된 행복이 위대한 자녀와 위대한 가문을 낳은 것입니다. 위대함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거기서 행복과 위대함이 창조되고 그 은혜가 후대까지 이어집니다. 항상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고 위대함의 길도 열어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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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3 출애굽기 은혜로운 얼굴 관리 출34:29-35  이한규 목사  2013-01-07 1890
8002 출애굽기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출4:1-5  피영민 목사  2013-01-06 2338
8001 출애굽기 열등감을 극복하라 출4:10-17  이중표 목사  2013-01-06 2819
8000 출애굽기 네 손에 있는 것 출4:1-4  이중표 목사  2013-01-06 2100
7999 출애굽기 진실의 힘 출4:10~17  최형묵 목사  2013-01-06 1659
7998 출애굽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출4:1-9  임덕순 목사  2013-01-0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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