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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4: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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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홍문수 목사 |
참고 : | 2005.11.13 |
하나님의 백성된 증거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시는지라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장차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그 앞에서 천국 입국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 ?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걱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마7:23에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만의 하나라도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천국 문을 당당히 통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미리 미리 하나님께 우리 얼굴을 알려서 하나님이 꼭 기억하시도록 하면 되나요? 그건 아니죠.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같은데,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중년 부인이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앞으로 50년은 더 살게 해 주실 거라는 강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구만리 같은데 좀 젊어 보이면 좋겠다 싶어서 성형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분이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운명해서 천국 문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 약속과 다르잖아요. 이렇게 빨리 부르시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 웃으시면서 “아, 내가 그랬나? 너무 많이 고쳐서 못 알아봤지~ 괜찮아. 기왕 왔는데 여기가 더 좋으니까 그냥 있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얼굴이 변해도 당신의 백성을 다 알아보십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때 증명서를 지참하면 되나요?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발행한 세례교인 증명서, 뭐 이런 것 들고 가면 될까요? 장례식 때 관 속에다 세례교인 증명서 넣어두면 될까요? 물론 이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굳이 증명서를 지참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다 알아보십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를 할례 제도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할례를 아주 중요시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할례를 중요시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시간에는 구약의 할례제도에 관해 살펴보고, 그것이 할례제도가 폐지된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우리도 스스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를 가짐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하나님의 백성 된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이유 : 할례의 불이행
본문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지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애굽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시절입니다. 그 당시 애굽 정권은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 살아남아 애굽 바로 왕 공주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 궁궐에서 40년 동안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다가 40세가 되던 해에 실수로 살인을 하게 되었고, 미디안 광야로 피신합니다. 거기서 40년을 보낸 후 하나님이 그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 구원의 소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 소명을 받고 미디안 광야에서 애굽으로 떠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못되어 여행 도중 큰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모세가 다 죽게 된 겁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중병에 걸렸던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본문 24절은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소명을 주셨을 때 그가 고분고분 따른 게 아니었습니다. 못 가겠다고 계속 버텼습니다. 그러는 걸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킬 때 강제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설득하십니다. 모세가 하도 못 하겠다고 하니까, 심지어 이적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이 되고, 뱀 꼬리를 잡으니까 다시 지팡이가 되는 이적, 또 손을 품에 넣었다 빼니까 문둥병이 발하고 다시 넣었다 빼니까 정상이 되는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에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갈 수 없다고 버티니까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긴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모세가 떠나게 된 겁니다.
기껏 그렇게 해 놓으시고, 이제 와서 모세를 죽이시려고 하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또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을 굳이 하셨을까요? 본문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25절 보면, 모세의 부인 십보라가 황급히 그 아들(둘째 엘리에셀)에게 할례를 베풉니다. 그 태도로 보아 미디안 여인이었던 십보라가 할례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반대했던 게 아니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 문제로 인해 죽게 되니까 하는 수 없이 그 아들에게 할례를 베푼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그녀의 퉁명스러워 보이는 태도를 보면 짐작이 갑니다.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 ” 그러고 나니까 26절에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놓으시니라 ... ” 여기서 놓는다는 말은 치료를 의미합니다. 모세가 나음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보면 모세가 죽을 병에 걸렸던 이유가 할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얼마나 중요시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사명보다 더 중요시하셨습니다. 할례를 이행하지 않으면 차라리 모세를 죽여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2] 할례의 의미 : 하나님의 백성 된 표시
이토록 하나님이 중요시하신 할례!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할례에 담긴 의미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한 마디로 ‘하나님 백성 된 표시’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포피를 잘라내는 포경 수술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포경 수술은 위생적인 차원에서 하는 데 반해, 당시 이스라엘의 할례는 종교의식의 차원에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육신에 표시해 두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은 할례를 하나님 백성의 신분 확인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러 가고 있는 모세가 가장 기본적인 할례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체크하시고, 기어코 할례를 이행하게 하신 겁니다.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됨을 확인하지 않으면 사명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죠. 구원받은 게 확실해야, 하나님의 백성 된 게 확실해야 그 다음 사명을 이행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아무리 큰일을 해도 하나님의 백성 된 게 불확실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3] 진정한 할례의 의미 : 마음의 할례 - 참 믿음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할례를 형식적으로 기계적으로 행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되었습니다. 그것은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① 할례의 기원 : 이것을 보면 진정한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할례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 때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신 겁니다. 창17:10~12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상징적 표시입니다. 그러니까 할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할례는 ‘하나님 백성의 증거’였습니다.
오늘 신약 시대에는 할례가 폐지되었습니다. 그 대신 물 세례를 시행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성례입니다. 마28:18~20 보면 승천하시면서 복음 전파와 더불어 세례에 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세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믿음이 전제된 것입니다.
② 마음의 할례가 참 할례 : 할례나 세례나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결여되면 무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마음 속의 믿음이 빠진 형식적 할례를 강하게 경고합니다. 많은 구절들 중 다음의 몇 구절만 소개해 드립니다. 신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렘4:4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겔44:9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이미 신약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부인한 채 할례를 고집하 는 유대인들을 향해 외칩니다. 롬2:28~29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 ”
세례도 마음 속의 할례와 같이 마음 속의 세례가 중요합니다.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골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지 할례나 세례 자체로 구원 받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할례도, 세례도 믿음이 전제되어야 유효한 것이지 믿음이 없이 받으면 무효입니다. 차라리 믿음이 있으면서 할례나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한편의 회개한 강도가 그랬습니다. 그는 분명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세례 받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천국을 보장받았습니다. 요즘도 그런 예가 많습니다. 평생 예수를 부인하다 병상에서 마지막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병상 세례라도 받으면 좋은데, 그 기회마저 놓치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믿음만 분명하면 구원받습니다.
그렇다고 세례를 사소하게 취급해도 곤란합니다. 기왕에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는데 굳이 안 받겠다고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기회가 있는데도 안 받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믿음이 있어야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또 믿음이 있으면 당연히 세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를 받게 되면 더욱 믿음이 견고해지고 스스로 하나님 백성 된 증거를 얻어 강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세례는 그 자체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으로 이미 구원 받은 사람에게 믿음을 견고하게 해주는 큰 유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 마음의 할례 받은 자의 외적 증거 : 새 사람 - 거룩한 삶, 목적 있는 삶
마음의 할례 혹은 마음의 세례, 즉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내적 증거입니다.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은 확실히 해주시려고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십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진정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이미 성령으로 인을 쳐 주셨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만 있으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 염려 없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적 증거를 외적 증거로 나타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가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를 요구하면 무엇으로 그 증거를 댈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내적 증거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보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적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조각가이자 삽화가인 도레(Paul Gustavé Doré 1832∼1883)의 일화입이다. 그는 발자크의 소설 인간희극,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단테의 신곡 지옥편 등에 삽화를 그린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런데 도레가 한번은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자에게 제일 중요한 여권(Passport)을 분실했습니다. 요즘처럼 외국 공관에서 재발급을 받을 수 없었던가 봅니다. 걱정을 하면서 이민국(Immigration)의 입국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민국 직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잘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그 관리는 당신이 그 유명한 화가 도레라는 사실을 어떻게 믿느냐며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당황한 도레는 계속 통사정을 합니다. 귀찮아진 관리를 그러면 종이와 연필을 줄 테니 한번 그림을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도레는 반색을 하며 즉석에서 그 관리의 초상화를 그려냅니다. 그 그림을 본 관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당신이 그 유명한 화가 도레 맞군요!” 하면서 자신의 무례를 용서해 달라고 사과하고 입국 허가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도 외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겉모습만 그럴 듯하다고 외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경책을 끼고 왔다 갔다 한다든지, 혹은 교회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일을 한다든지 하는 것을 외적 증거로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일 외적 증거는 ‘진정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란 180도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의미를 왜곡합니다. 단순히 마음속으로 후회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회’(悔)입니다. 회개는 ‘개’(改)까지 해야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음속으로 ‘후회’하면서 동시에 돌이켜 ‘개선’해야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회개를 한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새로운 목적 있는 삶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① 거룩한 삶 : 할례는 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옛사람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의 상징은 죄를 씻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침례의 방식에서 보는 것처럼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할례는 생후 8일째 시행됩니다. 현대 의학자들은 그때가 되어야 비타민 K가 형성되고 지혈 작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런 점보다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7일+1일, 즉 한 사이클이 지나고,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즉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후5:17에 나오는 ‘새로운 피조물’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은 죄에서 벗어난 성결한 삶, 거룩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외적 증거입니다.
② 목적 있는 삶 : 참 믿음이 생기면 삶의 목적에 변화가 생깁니다. 예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예전에는 자기 욕망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복음 증거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살게 됩니다.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지는 겁니다.
「미션 바라바」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 야꾸자 출신 8명의 간증집입니다. 그들은 암흑세계에 있다가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는 남을 해치며 살았지만, 이제는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수익금의 상당한 부분을 복음 전도와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 소문이 퍼져서 멀리 미국 대통령 조찬 기도회에 초청되어 간증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선교회를 조직했는데, 그 이름이 ‘미션 바라바’입니다. 바라바가 살인 강도였지만 예수님 덕분에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도 그런 셈이니까 이제 예수님이 살려주신 목숨 예수님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뜻으로 명명한 겁니다. 그들의 고백입니다. “과거에는 오야붕을 모시고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오야붕으로 모시고 삽니다. 과거에는 몸에 문신을 새겼지만 이제는 영혼에 예수 문신 새기고 삽니다.” 그들의 이렇게 변화된 모습이 하나님 백성 된 외적 증거로 나타난 겁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도구가 되었고,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론 특수한 예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최선을 다해 하나님 백성 된 외적 증거를 많이 나타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백성 된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그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내적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성령의 인(印) 치심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외적 증거도 있어야 마땅합니다. 물세례를 받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일 겁니다. 그러나 그 이상 중요한 것은 진정한 회개입니다. 변화입니다. 옛 사람의 죄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증거의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고, 천국 갈 때 하나님 백성으로 담대히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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